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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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스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불안해졌다. 시가지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답답하고 불안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낯선 얼굴들, 뻐기는 듯이 높게 치솟은 휘황찬란한 건물들,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는 길, 철로 마차 그리고 길거리의 소음이 한스를 겁에 질리게 했을 뿐 아니라 괴롭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숙모 댁에 묵기로 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들, 숙모의 친절함과 수다스러움, 그냥 무턱대고 앉아 있어야 하는 분위기,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배려, 이러한 것들이 어린 소년을 완전히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다시피 했다.-26쪽

한스는 어설프고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방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눈에 익지 않은 주위의 환경, 숙모가 입고 있는 도시풍의 옷차림새, 벽에 걸려 있는 큰 무늬의 양탄자, 탁상시계,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시끌벅적한 거리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벌써 오래전에 집을 떠나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힘들게 배운 지식을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26쪽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학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예술이라고 불리울 만한 신학이 있고, 학문이라고 불리울 만한 신학이 있다. 혹은 적어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신학말이다. 그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오래된 포도주를 언제나 새로운 술 포대에 담는다. 새로운 술 포대에 담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치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얼핏 보기에 그릇된 주장들을 태연스럽게 고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비평과 창조, 학문과 예술 사이의 불평등한 오랜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과학은 별다른 도움 없이 언제나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다. 언제나처럼 예술은 믿음과 사랑, 위로와 아름다움, 그리고 영원에 대한 예감의 씨앗을 뿌려왔다. 또한 풍요로운 토양을 새로이 발견하여 온 것이다. 그것은 삶이 죽음보다 강하고, 믿음이 의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62쪽

주 시험에 대한 불안감과 승리감으로 인해 사라져버렸던 야망이 다시금 살아나서는 한스에게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동시에 지난 몇 달 사이에 자주 느껴왔던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그의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통이 아니었다. 빠른 맥박과 흥분을 동반한 승리에 대한 조급함이었다. 또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억제되지 못한 욕망이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섬세한 고열이 지속되며 독서와 학습의 성취는 폭풍처럼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한스는 예전에 15분 가량 걸리던 <크세노폰>의 가장 어려운 문장들을 이제는 손쉽게 읽을 수 있었다. 사전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고도 날카로운 이해력을 십분 발휘하여 무척이나 난해한 글들을 척척 읽어 내려갔다.-70~71쪽

두 소년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마 이 순간에 처음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본 것 같았다. 젊음이 넘치는 매끄러운 생김새 뒤에 깃들여 있을지도 모를, 특유의 성향을 지닌 남다른 인간적인 생명과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영혼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헤르만 하일너는 천천히 팔을 펴 한스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러고는 서로의 얼굴이 거의 닿을 만큼 한스를 끌어당겼다. 한스는 갑자기 상대방의 입술이 자기의 입에 닿는 느낌 때문에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112쪽

학교 선생은 자기가 맡은 반에 한 명의 천재보다는 차라리 여러 명의 멍청이들이 들어오기를 바라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생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절제한 인간이 아닌, 라틴어나 산수에 뛰어나고, 성실하며 정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더 상대방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게 되는가! 선생이 학생 때문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학생이 선생 때문인가! 그리고 누가 더 상대방을 억누르고, 괴롭히는가! 또한 누가 상대방의 인생과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더럽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마다 누구나 분노와 수치를 느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서 우리가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142쪽

<그렇다면 난 정말이지 짐작할 수 없네. 어딘가에 문제가 있긴 있을 텐데 말야. 자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주겠나?>

한스는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았다. 교장 선생은 그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146쪽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한스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가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책들은 그림자처럼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수업 시간에 히브리어의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수업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예습을 시작해야 했다. 구체적인 관조의 순간들이 자주 나타나기도 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 안에 서술된 사물들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물보다도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치고, 현실에 가까웠다. 한스는 자신의 기억력이 전혀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느슨해지고,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따금 낡은 기억들이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그를 엄습하기도 했다. 그럴 대마다 한스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었다.-161쪽

이렇듯 고통과 고독에 내맡겨진 병든 소년 한스에게 위로자의 가면을 쓴 또 다른 유령이 다가왔다. 그리고 점차 그와 친숙하게 되어 급기야는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권총을 구한다거나 숲속 어딘가에 밧줄을 매단다거나 하는 일은 물론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거의 매일같이 한스의 산책길을 따라다녔다. 한스는 조용하고 외딴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끝에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죽음의 보금자리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 찾아갔다. 머지 않아 사람들이 여기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상상을 하며 이상야릇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181쪽

한스는 갑작스레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엠마가 빨리 가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뜰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웃기도 하고, 재잘거리기도 하고, 어떤 농담이라도 재치있게 슬쩍 받아넘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당신>이라는 존칭을 해야 하는 젊은 아가씨들과 사귄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쩐지 끔찍하게 여겨졌다. 더군다나 이 아가씨는 지나치게 활달한 수다쟁이였다. 더욱이 그녀는 한스가 옆에 있거나, 그가 수줍어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를 움츠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짐짓 싫증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방금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 듯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207쪽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헤세는 특히 고독과 허무를 주제로 한 서정시에서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물론 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도 예외는 아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서전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그의 분신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한스처럼 <수레바퀴 아래서> 힘든 삶의 여정을 밟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이섭, <작품 해설> 中-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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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집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1월
품절


차례
목수의 집
날개의 집
내가 네 사촌이냐
아우 쌍둥이 철만 씨
시인의 시간
돌아온 풍금소리
뚫어
빛과 사슬
오마니
나이의 짐
작가의 말-시간 지우기의 흔적
해설-장인성 혹은 근대의 저편. 이광호-7쪽

사람의 심성과 공동선의 질서를 함께 읽어나가야 하는 소설 쓰기 일이 그에겐 늘 천형처럼 버거웠다. 그것은 그의 허약한 정신태에 대한 끊임없는 고문이자 감당하기 어려운 육신의 노역이었다. 더욱이 나이 50줄로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밀어닥친 정보화 사회의 물결과 몰개성적 가치관은 그의 창작 욕망과 세상 읽기의 의욕을 무참하게 소진시켜갔다. 유통과 대량 모방 복제 위주의 획일적 생산성은 그가 애초에 꿈꿔오던 소설 창작의 본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글쓰기의 관심사도 아니었고 능력 안의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도 그 달갑잖은 새 풍조를 뛰어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는 자기 모방, 거듭된 좌절감 속에 끊임없는 자기 마모와 소진만을 일삼고 있었다. <목수의 집> 中-13~14쪽

"한번은 영감님이 근 한 달 가까이나 종적이 없이 사라지고 말았더래요. 젊을 때는 으레 그렇거니 반포기를 하고 지냈지만 나이가 나이다 보니 식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었겠어요. 그런데 이곳 저곳 아무리 수소문해 찾아봐도 소식을 알 수 없던 양반이 한 달쯤 뒤에사 나타나선 이웃집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대수롭잖게 말하더래요. 내 참, 별 싱거운 작자들을 다 보았구먼...알고 보니 그 무렵 서슬이 시퍼렇던 신군부 사람들이 어떻게 소문을 알고 급히 영감님을 징발해간 거였더라구요. 영감님을 데려가선 저희들 높은 분의 시골 별장에다 정자를 한 채 지으라더래요. 정자를 짓는데 육모정이나 팔각정이 아니라, 자기들 권력 연대를 상징하는 오각정으로 말예요. 그렇잖아도 위인들의 마구잡이식 처사에 비위가 잔뜩 뒤틀린 영감님, 그럴 수는 없다 하신 거예요. 세상 천지에 머리털 나고 오각지붕을 인 정자는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다. 그것은 정자의 법식이 아니다, 나는 못 짓는다...하지만 그 사람들이 쉽게 영감님 말을 알아듣고 생각을 고치려 했겠어요? 법식이야 어찌 됐든 자기들은 오각 정자가 필요하니 당신은 시키는 대로 오각 정자를 지어라,-23~24쪽

오각 정자를 짓지 않고는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결국 우리 뜻대로 따라야 할 일을 웬 쓸데없는 고집이냐...위협을 해봤다 달랬다 별 짓을 다 했지만 영감님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은 거예요. 날 잡아잡숴라, 나는 죽어도 오각집은 못 짓는다...그렇게 한 달을 버텼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위인들을 이기고 풀려났다는 거예요. 어때요. 그 고집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고집으로 일생 동안 나무집만 지으며 늙어왔으니?" <목수의 집> 中-24쪽

"나 이번에 또 된통으로 혼났네요. 처음에 팔당 쪽으로 집을 옮겨 지을 생각을 할 때부터 어쩌면 쓸모가 있을 듯싶어, 그때 마침 먼저 집을 부수고 나간 이웃 헌 한옥집의 들보를 하나 얻어다 미리 옮겨 놓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영감님이 그걸 여태 본체만체 아무 말이 없더니, 며칠 전에야 비로소 그것을 처음 본 물건마냥 저건 무엇이냐는 거예요. 눈치가 심상찮아 내 깐엔 한껏 조심조심 사실을 말했더니 영감님이 처음엔 이 집도 원래 제 들보가 있으니 소용없는 물건이라면 우리 집 대청마루가 너무 헐었으니 그걸 켜서 바닥을 다시 깔면 어떻겠느냐 물어본 것이 실수였어요. 무어라? 한 집의 대들보란 그 집의 중심체요, 그것만으로 족히 한 집의 가대를 대신할 만한 물건인데, 그래 네 놈이 남의 집 한 채를 통째로 켜내서 마룻장으로 깔고 앉아? 그 집 성주님한테 천벌을 받을 이놈아! 그걸 당장에 옛 임자를 찾아 돌려주거나 그리 못하겠으면 고이 다른 사람에게라도 넘겨주어 새집을 짓게 하지 못하겠느냐! ...거기에 정말 무슨 혼령이라도 깃들인 물건인 양 전에 없이 노기를 못 찾아하는 거예요.-25쪽

들보 대신 당장 내 머리통을 켜버릴 듯 톱날을 바싹바싹 들이대오면서 말예요. 그 바람에 혼비백산 영감님 눈앞에서 그 들보를 치우느라 나 혼자 얼마나 홍역을 치렀는지." <목수의 집> 中-25쪽

"내게 왜 집이 없어! 게다가 내가 왜 남의 집만 지었어! 내가 그동안 남의 집 짓는다는 생각으로 지은 집 한 채도 없어. 일평생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집을 지어왔어. 그걸 모두 내 집으로 알고 살아왔어. 세상 천지가 그런 내 집이여." <목수의 집> 中-28쪽

김승조 씨가 새 고향을 삼으려 찾아 헤맨 땅이 그런 곳이고, 최봉수 노인의 마음속에 집이 숨겨져 있었다면 그런 비슷한 집을 꿈꿨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땅은 애초에 정의(情誼)로운 곳이 아니었고, 그 집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었다. 척박하고 궁벽한 곳에 사람의 마음을 심어 세운 집이었다. 우록과 동천과 계산 들이 긴 세월 서로 함께 간절한 소망과 삶으로 세워 가꾼 집이었다. 쓰레기 매립장이 생기든 말든 그의 고향마을을 찾아 집을 짓는 일도 그 앞엔 별뜻이 있을 수 없었다. 그 김승조 씨의 헤매임으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땅, 평생을 목수로 늙어온 최 노인조차 손쉽게 지어올릴 수 없는 집, 스스로 찾아 가꾸고 지어올려야 하는 마음의 집-, 거기 함께 머물기에도 넘치고 버거웠던 그런 큰 집을 세훈 씨는 언감생심 엄두조차 내볼 수 없었다. 그는 다만 그런 집을 부러워하며 자기 집을 그 비슷이 간절한 꿈으로나 지녀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렇듯 현실 속의 고향집 설계가 깨어진 그로서는 그의 그 마지막 집에 대한 꿈이 더한층 깊이 사무쳐올 수밖에 없었다. <목수의 집> 中-37쪽

그러면서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다름아니라 그동안 아버지가 그에게 그토록 바라온 소망의 정체가 비로소 어느 정도 확연하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아직도 아버지가 그에게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지, 이 무렵엔 세민의 꿈이 이미 엿장수도 우체부도 아닌 형사 아저씨 쪽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그 중에 아버지가 정작 무엇을 바라는지 구체적인 것까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 마지막 형사 노릇까지를 포함해서 어느것도 썩 탐탐스럽게 여기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아버지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데가 있었다. 세민이 세 가지 중 어느것이 되든 안 되든, 그 세 가지를 다 버리고 또 다른 무엇이 되려 하든, 그가 우선 당신 곁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민은 어느 날 그 나무 위에서 자꾸만 조그맣게 작아진 말을, 더욱이 끝간데 없이 아득해져가는 마을 밖 풍경들에서 차츰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필경은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야릇한 충동 속에 하루하루 그 아버지의 숨겨진 소망에 대한 확신을 더해갔다. <날개의 집> 中-64쪽

"서두를 것 없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 전체로 그리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리고 싶은 것이 자라오르면 손은 그것을 따라 그리는 것뿐이다. 손 공부가 급한 것이 아니라 마음 공부, 사람 공부, 세상일 공부가 더 소중한 것이다. 그러니 너는 지금 손 공부보다도 더 큰 그림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손 공부에 조급하게 마음이 매달릴 것 없다." <날개의 집> 中-86쪽

기이한 일이었다. 그것은 일테면 유당이 그 땅이나 흙이나 사는 일들에 대한 참사랑을 배우는 길이라 뒤늦게 일깨워온 그 아픔이란 것의 본색일시 분명했다. 그래서 그것을 몸으로 배우자고 긴 세월 텃밭 산밭 흙손일을 익히고도 세민에겐 끝내 별 가망이 없었던 그 아픔, 그것은 필시 그림이나 삶의 방편으로는 만날 수가 없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배울 수도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세민이 그 아픔도 사랑도 끝내 다 포기하고 유당을 떠나온 지금, 그림이나 삶의 법식을 다 포기하고 그의 절핍한 생존의 마당으로 돌아와 허덕허덕 지친 지금, 그것이 성큼 증상을 깃들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번 둥지를 틀기 시작한 그 증상은 날이 갈수록 또렷해져 여름과 가을까지 끈질기게 그를 괴롭혀댔다. <날개의 집> 中-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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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 도둑 - 이청준의 흙으로 빚은 동화
이청준 지음, 우승우 그림 / 디새집(열림원) / 2003년 12월
품절


"그것은 진짜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많이 먹게 되면 무엇을 기억하는 힘이 차츰 쇠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실제 있었던 일과 생각 속의 일들이 뒤섞이는 일이 생기게 된다. 요즘 이야기 중에 자꾸 실제의 일에서 옛날 기억 속으로만 빠져들어 가시려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께도 차츰 그런 일이 생기시는 것 같다. 할아버진 아마 나이를 더해가실수록 그런 현상도 더해가실 게다. 그래서 나중엔 아예 실제 일과 기억 속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때가 올 수도 있다.할아버지께서 영영 옛날 기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시면, 그런 이야기 속엔 참다운 즐거움도 온전한 삶도 얻을 수 없는 거다. 우린 힘을 합쳐 그걸 막아드려야 한다. 할아버지께서 더 이상 남의기억을 자신의 일로 말씀하시는 것을 말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아빠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만류하고 드는 것은 그 때문이야." <이야기 서리꾼> 중-121~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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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8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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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있었던 사건일는지도 모르고, 지어낸 이야기일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옛날에 지혜로운 사람들, 많이 배운 학식 있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이 이야기를 사랑하고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단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머리말> 中-13쪽

"그 좋은 머리 때문에 우린 그 여자를 잃어버렸어. 손금을 보고 또 그밖에 다른 점을 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결국에는 마녀로 낙인이 찍혔어. 법에 따라 약한 불에 천천히 굽혀 죽었지. 죽음을 아주 당당하게 받아들이던 그 할망구의 장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고......주위에 모여들어 넋을 잃고 바라보는 구경꾼들한테 그 할망구는 저주하며 욕을 퍼붓더라고. 불길이 날름거리며 위로 치솟아 올라가 자기 얼굴을 핧고 몇오라기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삼키고 잿빛 머리통 주위에서 바삭바삭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말이야......사람들한테 욕을 퍼부었다고, 알겠어?......욕을 퍼붓고 있었던 말씀이야! 천년을 살아도 그렇게 가슴 후련한 욕지거리는 다시 듣지 못할 거야. 아, 그 여자와 함께 그녀의 욕 솜씨도 사라졌어. 지금도 천박하고 시시하게 흉내를 내는 것들이 남아 있지만, 그 할망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뭐야." <17. 푸푸 왕 1세> 中-214~215쪽

"내 이름은 요컬이라고 하지. 한때 농사를 지었는데 제법 잘 살았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고.... 한데 지금은 지위도 직업도 달라졌단 말씀이야. 아내와 자식들은 먼저 이 세상을 하직했어. 어쩌면 천국에 가 있거나, 아니면 어쩌면 지옥에ㅡ그 반대쪽에 있는 곳 말이야.ㅡ가 있을 테지. 하지만 내 가족이 더 이상 영국에 살지 않는 것에 대해 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네! 어디 한 곳 비난할 데가 없는 우리 어머니는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면서 연명을 하려고 하셨지. 그런데 어느 날 병자 하나가 죽었어. 의사들이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자 졸지에 우리 어머니는 마녀로 몰려 불에 타 돌아가셨어. 내 새끼들이 그 모습을 쳐다보면서 흐느끼더군. 그게 영국 법이야!...자, 다들 한 잔씩 들자고!...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축배를 들자고!...우리 어머니를 지옥 같은 영국에서 건져 준 자비로운 영국 법을 위하여 건배! 고마워, 고맙다고, 친구들. 나는 이 집 저 집 구걸하러 다녔지...나랑 아내랑 둘이서...물론 굶주린 자식들을 데리고 말이야...하지만 영국에서는 배고픈 것도 죄가 되거든...그래서 놈들은 우리 식구를 홀딱 벗기고는 매질을 해 대며 동네-217쪽

세 곳을 돌아다니더군. 자, 자비로운 영국 법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축배를 드세!...내 아내 메리는 매를 너무 맞아 피를 하도 많이 흘린 탓에 다행스럽게도 지옥에서 빨리 벗어난 거야. 이제 온갖 고생에서 해방되어 지금 가마터 자리에 묻혀 있어. 또 우리 아이들은...글쎄, 법에 따라 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매질을 당하며 쫓겨 다니는 동안 굶어 죽었어. 얘들아, 마시라고...한 방울만 마셔...새 한 마리 죽이지 못했던 불쌍한 내 어린 것들을 위해서 한 방울 마시자고...난 다시 구걸하러 다녔지...빵 부스러기 하나 얻으려고 다니다가 마침내 노예로 팔렸지 뭐야...여기 뺨에 불로 지진 자국이 있다고. 지금은 때 때문에 더러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깨끗이 씻으면 불에 달군 인두로 붉게 '에스(S)'라는 글자를 새긴 자국이 보일 거야! 이건 노예란 뜻이라고! 알겠어? 그 말을 알고 있느냔 말이야! 영국 노예!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몸이 왕년에 노예였던 말씀이야. 얼마 뒤 난 주인집에서 도망쳤어. 만약 붙잡히는 날에는...이런 법이며 이런 법을 명령하는 이 땅에 하늘의 저주가 내릴지어다!...난 모가지가 날아가게 되겠지!" <17. 푸푸 왕 1세> 中-218쪽

"너도 저애 말을 들었지, 마저리?...저 애가 왕이라고 했어. 그게 정말일까?"

"그럼 정말이잖고, 프리시? 저 아이가 거짓말을 할까? 내 말 잘 들어, 프리시. 만약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건 거짓말이 되는 거야.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잘 생각해 봐. 정말이 아닌 것은 하나같이 거짓말이거든...그러니까 그건 정말일 수밖에 없는 거란 말이야." <18. 부랑자들과 어울린 왕자> 中-243~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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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니 - 나의 삶 나의 문학 시리즈
이청준 지음 / 문학과의식사 / 1999년 4월
품절


돌아다보면 지난 33년 동안 내가 소설을 써 온 일도 그와 비슷한 노릇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우리의 삶도 혼자 어두운 밤 눈길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앞을 잘 알 수 없는 밤눈길처럼 이런저런 장애와 위험이 많은 삶의 길에서 누구나 마음의 위안을 얻고 의지를 삼아 갈 만한 동행자를 찾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앞서간 선행자의 발자국을 찾지 못해 그의 위로나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경우에도 혼자서 이리저리 그것을 꾸며 좇는 가운데에 우리 삶은 중단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그 허구 속의 선행자뿐 끝끝내 동행자의 부재 속에 종착지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그 허구를 허황하고 어리석은 희망으로 허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재의 선행자(그래서 동행자가 되는)를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다행스런 일이 없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소설의 몫이기보다 현실의 몫에 더 가까우리라는 점에서 그 밤길의 허구는 실재의 선행자(혹은 동행자)보다 훨씬 소설의 영역에 근접해 있고, 그 유용성도 더 소설적인 터이므로.

<작가의 말_밤길의 선행자 좇기> 中-18쪽

한양대는 86년까지, 2년 가까이 있었죠. 그 과정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고 내가 할 수가 없어서.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도 있지만 창작하는 입장에서 강의란 나한테 방해가 되더라구요. 나는 책을 읽어도 메모를 안 해요. 잊어버려야 돼요. 잊어버려야 되는 얘기들을 번호 붙여서 메모하고 판서하고...... 어떤 면에서는 체험들이 모두 녹아 없어져야 되는데, 뭘 쓰려고 하면 아는 체하는 잡지식들이 자꾸 나오니까.

<대담_이청준의 생애연표를 통해서 본 인문주의적 사유와 새로운 교육문화를 위한 이야기들> 中-146-147쪽

그 당사자들이야 우리들하고는 해석이 아주 다르죠. 7~80년대 오면서부터는 의식 자체가 집단화되잖아요. 저쪽이 워낙 집단적인 힘이 강하니까......, 그래서 양면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힘의 비밀에 대한 변화상이 있을 수 있겠고......, 상호 자존심, 존엄성이랄까 원초적인 존엄성이라고 부를 그런 인격을 모두 깔아뭉개 놓고 잘 살게 해 줬으니 되지 않았느냐고 큰 소리들을 쳤지요. 그 뒤 80년대 후반으로 가면 민주화를 해도 될 것 같았는데 잘 안 돼서...... 아까 정 선생이 말한 IMF 이야기는 그런 허세 속에서 싹튼 거겠지요.

<대담_이청준의 생애연표를 통해서 본 인문주의적 사유와 새로운 교육문화를 위한 이야기들> 中-152쪽

소설의 힘과 생명은 무엇보다 쉼없이 살아 움직이는 눈앞의 생생한 삶의 현실 가운데서 얻어지는 게 일반적 상식이다. 현실 부정과 관념 지향의 측면이 강한 추상적 본질 세계에의 탐구는 그 나름의 덕목을 부인해서도 안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학적 영역의 소설 이전 단계이지 총체성과 구체성을 함께 요구하는 소설 미학의 표현 단계에는 이르기 어려운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생각을 다시 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내게 소설을 쓰게 한 보다 크고 결정적인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생각을 더듬어 찾아낸 것이 내가 어린 시절을 농촌 마을에서 보낸 시골내기라는 점이었다.

<문학 자서전_나는 왜, 어떻게 소설을 써 왔나> 中-190쪽

대량 정보의 고속 유통 현상은 우리의 삶과 말에 더할 수 없는 정확성과 공리성[+확정성]을 확보해 준 듯싶어 보인다[공리적 언어]. 그러나 이면을 살펴보면 그것은 그럴 법해 보이는 것뿐 실제로는 갖가지 폭력과 소외를 낳고 있다. 한 예로, 세상 읽기 공부삼아 전자통신망으로 잠시 정보의 양과 속도의 싸움터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엘 들어가 갖가지 정보와 주가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예측불허로 불합리하고 부도덕하게 움직이는가를 알 수 있다. 대량 고속 정보의 정확성과 공리성은 은행이나 대기업 투자기관들에게 일방적으로 선점, 좌지우지 되어 가게 마련이고, 개미군단이라는 대다수 개인들은 허겁지겁 그 기관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하위 정보에나 매달리다 종당엔 자기 주가의 무참한 학살을 겪게 된다. 그 보이지 않는 정보조직(정보언어)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만 개인들(개인언어)의 광범하고 무기력한 소외현상, 그리고 그 소외된 말들.

<문학 자서전_나는 왜, 어떻게 소설을 써 왔나> 中-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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