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172
알베르 카뮈 지음, 김예령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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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고전. 그 중 <이방인>으로 시작한 고전 읽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쩌면 뫼르소라면 이런 말조차 부담스러워 했으리라 생각되어서, 이 소설에 '관하여'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다. 담백하게, 유의미한 말만 남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상 일에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종종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것은 현실과 소설세계와의 큰 차이점이리라. 하지만 <이방인>의 뫼르소에게 '이유'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이 소설이 쓰여진 '이유'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고, 뜨겁게 쏟아지는 태양빛  아래 아랍인을 총쏘아 죽인 것은 그저 그렇게 '벌어진 일'이었다. 이웃들이 포주로 여기고 멸시하는 레몽과 친구가 되는 것도, 갈망하는 여인이지만 그녀와의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고, 발가벗은 존재 자체로만 그에게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이다. 관습에 따른 관습으로, 죄와 벌에 앞에서 그럴듯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뫼르소에게 판사는 사형을 구형한다.

   왜 끝내 그는 변명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답답했다. 그는 설마 위선 없는 태도의 댓가로 사형에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두려움이 없는 걸까. 그의 존재는 정직함과 본능만으로 채워져 있는 건가. 이야기의 후반에 이르러서 벼락처럼 쏟아져 내리는 뫼르소의 말들에서, 그 의문이 풀리는 듯하다.

  "그들이 새벽녁에 나를 찾으러 오곤 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의 저녁들을 그 새벽을 기다리는 데 썼다. 나는 기습당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어떤 일이 닥칠 때 그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낮시간에만 약간 자고 밤에는 내내 참을성 있게 창유리로 하늘의 새벽빛이 터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가장 참기 힘든 때는 통상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시간대라 알고 있는 무렵으로 접어들 즈음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동정을 살폈다. 내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를 포착하고 그토록 희미한 음들을 분간해 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게다가 그 모든 시간 내내 발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러고 보면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종종 사람이 완벽하게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늘이 채색되고 새 빛이 내 독방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이 오면, 나는 나의 감옥에서 엄마의 말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간밤에 발소리를 듣지 말란 법도 없었고, 또 만약 그랬다면 내 심장은 터져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비록 아주 사소한 기척에도 문으로 달려가 나무 널판에 귀를 찰싹 붙이고 정신없이 기다리다 잠시 후 나 자신의 숨소리, 마치 개의 헐떡임처럼 으르렁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스스로 놀랄지언정 내 심장은 아직까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24시간을 확보한 것이었다."(203-204)

  죽음 앞에 두려움 없는 것이 아니고, 생의 본능적 감각 앞에 누구보다 민감한 모습인 뫼르소의 모습. 터질듯한 심장을 그러쥔 뫼르소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장면이 주는 감각이 낯익다. 위선도 위악도 없는 뫼르소의, 가장 그다운 모습이다. 사실 내게도 두려움이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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