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이 출간됐다. 전작을 다 읽는 걸 좋아해서 작가 전집으로 묶인 걸 더 선호하지만, 특별히 이 전집 시리즈로 갖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새롭게 다시 읽을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키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했다. 이후 『해변의 카프카』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어쩐지 독서 이후 드라이아이스처럼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런 걸 '하루키월드'라고도 하더라. 그래도 신작소설이 나올 때마다 늘 손이 간다. (눈보다 손이 가는 느낌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1Q84』도 흥미롭게 읽었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도 그러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서로 다른 여자들의 상을 상상해 보았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정말로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질듯 했고, 놀이터에 뜬 달을 보며 『1Q84』를 생각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면서는 역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지하철로 달려가는 꼬마아이 한 명을 생각했다.(꼬마는 진짜 지인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이전의 작품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심리학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들은 여전히 많지만, 곳곳에 드러난 이전보다 명징해진  표현들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또는 없는) 것들, 사랑(또는 상처)을 주고 받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 글이 순수하게 느껴진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51) 


대학생 때 죽음만 생각하던 나날들을 쓰쿠루는 생각해 보았다. 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즈음 그는 생각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내면 깊은 곳만 응시하면 이윽고 심장이 자연스럽게 멈춰 버릴 것이라고. 정신을 날카롭게 집중하고 한곳에 초점을 맞추면 렌즈가 햇빛을 모아 종이에 불을 피우듯 심장에 치명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뜻에 반해 몇 달이 지나도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은 그렇게 간단히 멈추지 않는 것이다.(427)



아카마쓰 게이(미스터 레드), 오우미 요시오(미스터 블루), 시라네 유즈키(미스 화이트), 구로노 에리(미스 블랙), 하이다와 쓰쿠루, 그리고 사라. 이들의 각각의 면모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색채의 풍성함 때문에,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을 우정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436~437)



덧. 알라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검색해봤다.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다. 도서목록이 무지 많아서 놀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월 27일, 자음과모음 사옥 5층에서 구병모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


자음과모음에서 운영하는 북카페 평판이 좋아서 기대했으나 공사 중이어서 입구에서 30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파과>을 사고,  후마니타스 북카페로 향했다. 

7시 30분, 5층의 작은 강연장에 들어갔다. 30명 정도 들어가면 가득한 공간.

구병모 작가와 좌담을 하는 평론가 분이 아주 소탈해 보이셨다.


참석자들이 대체적으로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 보였다. 편집자 출신인 작가가 회사 일과 등단 준비를 동시에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묻기도 하고, 이름에 얽힌 비화나 결혼 등 신변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작품 자체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던 것도 같다.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작품을 몇 편씩이나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작가의 열정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본 작가의 작품은 총 세 편.




  다섯 살 남짓한 나이에 아버지와 동반자살로 호수에 뛰어들었으나 살아난 아이, 곤에게는 아가미와 비늘이 있다. 그에게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끼며 그를 돌보면서 괴롭히는 강하와 그의 외할아버지, 그리고 약에 취한 강하의 어머니가 함께 동거한다. 강하의 어머니가 죽으면서 곤은 떠나가게 되고, 복잡한 인연 속에 해류라는 여인을 거쳐 강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된다. 인어 왕자, 곤은, 강하를 찾는다.


  그다지 두텁지 않은 이 책의 이야기는, 어두운 사회와 인간의 내밀한 마음을 그려내면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끝내 순수했던 곤의 생존에서 볼 수 있는 희망이리라. <변신>의 '잠자'처럼 절망 속에 방 안에서 죽지 않고, 곤은 밤마다 호수에서 헤엄치고 동전을 줍고 때로는 누군가를 구하고 갈망하며, 살아남았다.


  다큐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마와 곽이 찾아간 로젠탈 스쿨. 낙도의 학교 분위기가 하 수상하다. 표지가 그려내는 판옵티콘은 이 학교에서 드러나는데, 교장과 윤, 정, 민 선생의 음침한 분위기, 은휘를 비롯한 무경 등의 아이들의 무기력한 모습와 그 반대편의 광기가 오싹하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싹 도려내어 낙도에 단순하고 깔끔하게 심어놨다. 결말의 답답함은, 현실과의 유사성을 위해서일까. 답답한 사회를 위하여.






  신작이다. 표지는 작가도 이해되지 않는다던데, 뭘까? 보통 5가지 시안에서 1가지를 선택하는데, 작가는 크게 관여하진 않았다고 한다. 만약 한 명의 디자이너가 5가지 시안을 낸다면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실상은 하나의 디자인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여러 시안을 보아도 결국엔 '이거 하나'란 생각이 든다 했듯이.


  조각, 류와 조, 투우, 해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독특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생각나기도 하고. 조각을 대하는 투우의 양가적인 감정이 인상적이다. 다른 작품들도 그렇고, 인간의 모순된 마음과 행동을 작가가 잘 표현해내는 것 같다. 더불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만연체를 써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독특하다. 독자가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장점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