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목수의 집 날개의 집 내가 네 사촌이냐 아우 쌍둥이 철만 씨 시인의 시간 돌아온 풍금소리 뚫어 빛과 사슬 오마니 나이의 짐 작가의 말-시간 지우기의 흔적 해설-장인성 혹은 근대의 저편. 이광호-7쪽
사람의 심성과 공동선의 질서를 함께 읽어나가야 하는 소설 쓰기 일이 그에겐 늘 천형처럼 버거웠다. 그것은 그의 허약한 정신태에 대한 끊임없는 고문이자 감당하기 어려운 육신의 노역이었다. 더욱이 나이 50줄로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밀어닥친 정보화 사회의 물결과 몰개성적 가치관은 그의 창작 욕망과 세상 읽기의 의욕을 무참하게 소진시켜갔다. 유통과 대량 모방 복제 위주의 획일적 생산성은 그가 애초에 꿈꿔오던 소설 창작의 본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글쓰기의 관심사도 아니었고 능력 안의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도 그 달갑잖은 새 풍조를 뛰어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는 자기 모방, 거듭된 좌절감 속에 끊임없는 자기 마모와 소진만을 일삼고 있었다. <목수의 집> 中-13~14쪽
"한번은 영감님이 근 한 달 가까이나 종적이 없이 사라지고 말았더래요. 젊을 때는 으레 그렇거니 반포기를 하고 지냈지만 나이가 나이다 보니 식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었겠어요. 그런데 이곳 저곳 아무리 수소문해 찾아봐도 소식을 알 수 없던 양반이 한 달쯤 뒤에사 나타나선 이웃집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대수롭잖게 말하더래요. 내 참, 별 싱거운 작자들을 다 보았구먼...알고 보니 그 무렵 서슬이 시퍼렇던 신군부 사람들이 어떻게 소문을 알고 급히 영감님을 징발해간 거였더라구요. 영감님을 데려가선 저희들 높은 분의 시골 별장에다 정자를 한 채 지으라더래요. 정자를 짓는데 육모정이나 팔각정이 아니라, 자기들 권력 연대를 상징하는 오각정으로 말예요. 그렇잖아도 위인들의 마구잡이식 처사에 비위가 잔뜩 뒤틀린 영감님, 그럴 수는 없다 하신 거예요. 세상 천지에 머리털 나고 오각지붕을 인 정자는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다. 그것은 정자의 법식이 아니다, 나는 못 짓는다...하지만 그 사람들이 쉽게 영감님 말을 알아듣고 생각을 고치려 했겠어요? 법식이야 어찌 됐든 자기들은 오각 정자가 필요하니 당신은 시키는 대로 오각 정자를 지어라,-23~24쪽
오각 정자를 짓지 않고는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결국 우리 뜻대로 따라야 할 일을 웬 쓸데없는 고집이냐...위협을 해봤다 달랬다 별 짓을 다 했지만 영감님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은 거예요. 날 잡아잡숴라, 나는 죽어도 오각집은 못 짓는다...그렇게 한 달을 버텼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위인들을 이기고 풀려났다는 거예요. 어때요. 그 고집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고집으로 일생 동안 나무집만 지으며 늙어왔으니?" <목수의 집> 中-24쪽
"나 이번에 또 된통으로 혼났네요. 처음에 팔당 쪽으로 집을 옮겨 지을 생각을 할 때부터 어쩌면 쓸모가 있을 듯싶어, 그때 마침 먼저 집을 부수고 나간 이웃 헌 한옥집의 들보를 하나 얻어다 미리 옮겨 놓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영감님이 그걸 여태 본체만체 아무 말이 없더니, 며칠 전에야 비로소 그것을 처음 본 물건마냥 저건 무엇이냐는 거예요. 눈치가 심상찮아 내 깐엔 한껏 조심조심 사실을 말했더니 영감님이 처음엔 이 집도 원래 제 들보가 있으니 소용없는 물건이라면 우리 집 대청마루가 너무 헐었으니 그걸 켜서 바닥을 다시 깔면 어떻겠느냐 물어본 것이 실수였어요. 무어라? 한 집의 대들보란 그 집의 중심체요, 그것만으로 족히 한 집의 가대를 대신할 만한 물건인데, 그래 네 놈이 남의 집 한 채를 통째로 켜내서 마룻장으로 깔고 앉아? 그 집 성주님한테 천벌을 받을 이놈아! 그걸 당장에 옛 임자를 찾아 돌려주거나 그리 못하겠으면 고이 다른 사람에게라도 넘겨주어 새집을 짓게 하지 못하겠느냐! ...거기에 정말 무슨 혼령이라도 깃들인 물건인 양 전에 없이 노기를 못 찾아하는 거예요.-25쪽
들보 대신 당장 내 머리통을 켜버릴 듯 톱날을 바싹바싹 들이대오면서 말예요. 그 바람에 혼비백산 영감님 눈앞에서 그 들보를 치우느라 나 혼자 얼마나 홍역을 치렀는지." <목수의 집> 中-25쪽
"내게 왜 집이 없어! 게다가 내가 왜 남의 집만 지었어! 내가 그동안 남의 집 짓는다는 생각으로 지은 집 한 채도 없어. 일평생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집을 지어왔어. 그걸 모두 내 집으로 알고 살아왔어. 세상 천지가 그런 내 집이여." <목수의 집> 中-28쪽
김승조 씨가 새 고향을 삼으려 찾아 헤맨 땅이 그런 곳이고, 최봉수 노인의 마음속에 집이 숨겨져 있었다면 그런 비슷한 집을 꿈꿨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땅은 애초에 정의(情誼)로운 곳이 아니었고, 그 집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었다. 척박하고 궁벽한 곳에 사람의 마음을 심어 세운 집이었다. 우록과 동천과 계산 들이 긴 세월 서로 함께 간절한 소망과 삶으로 세워 가꾼 집이었다. 쓰레기 매립장이 생기든 말든 그의 고향마을을 찾아 집을 짓는 일도 그 앞엔 별뜻이 있을 수 없었다. 그 김승조 씨의 헤매임으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땅, 평생을 목수로 늙어온 최 노인조차 손쉽게 지어올릴 수 없는 집, 스스로 찾아 가꾸고 지어올려야 하는 마음의 집-, 거기 함께 머물기에도 넘치고 버거웠던 그런 큰 집을 세훈 씨는 언감생심 엄두조차 내볼 수 없었다. 그는 다만 그런 집을 부러워하며 자기 집을 그 비슷이 간절한 꿈으로나 지녀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렇듯 현실 속의 고향집 설계가 깨어진 그로서는 그의 그 마지막 집에 대한 꿈이 더한층 깊이 사무쳐올 수밖에 없었다. <목수의 집> 中-37쪽
그러면서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다름아니라 그동안 아버지가 그에게 그토록 바라온 소망의 정체가 비로소 어느 정도 확연하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아직도 아버지가 그에게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지, 이 무렵엔 세민의 꿈이 이미 엿장수도 우체부도 아닌 형사 아저씨 쪽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그 중에 아버지가 정작 무엇을 바라는지 구체적인 것까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 마지막 형사 노릇까지를 포함해서 어느것도 썩 탐탐스럽게 여기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아버지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데가 있었다. 세민이 세 가지 중 어느것이 되든 안 되든, 그 세 가지를 다 버리고 또 다른 무엇이 되려 하든, 그가 우선 당신 곁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민은 어느 날 그 나무 위에서 자꾸만 조그맣게 작아진 말을, 더욱이 끝간데 없이 아득해져가는 마을 밖 풍경들에서 차츰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필경은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야릇한 충동 속에 하루하루 그 아버지의 숨겨진 소망에 대한 확신을 더해갔다. <날개의 집> 中-64쪽
"서두를 것 없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 전체로 그리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리고 싶은 것이 자라오르면 손은 그것을 따라 그리는 것뿐이다. 손 공부가 급한 것이 아니라 마음 공부, 사람 공부, 세상일 공부가 더 소중한 것이다. 그러니 너는 지금 손 공부보다도 더 큰 그림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손 공부에 조급하게 마음이 매달릴 것 없다." <날개의 집> 中-86쪽
기이한 일이었다. 그것은 일테면 유당이 그 땅이나 흙이나 사는 일들에 대한 참사랑을 배우는 길이라 뒤늦게 일깨워온 그 아픔이란 것의 본색일시 분명했다. 그래서 그것을 몸으로 배우자고 긴 세월 텃밭 산밭 흙손일을 익히고도 세민에겐 끝내 별 가망이 없었던 그 아픔, 그것은 필시 그림이나 삶의 방편으로는 만날 수가 없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배울 수도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세민이 그 아픔도 사랑도 끝내 다 포기하고 유당을 떠나온 지금, 그림이나 삶의 법식을 다 포기하고 그의 절핍한 생존의 마당으로 돌아와 허덕허덕 지친 지금, 그것이 성큼 증상을 깃들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번 둥지를 틀기 시작한 그 증상은 날이 갈수록 또렷해져 여름과 가을까지 끈질기게 그를 괴롭혀댔다. <날개의 집> 中-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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