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하고 있는데 작은 꼬맹이가 옆에 와서 얼쩡거리다가 엄마 지갑을 발견했다. 손에 쥐는 것을 보고 내가 얼른 지갑을 낚아 채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 돈 좀 줘."
 "돈?"
 "응."
지갑을 뒤져보니 동전주머니가 있다. 거기서 10원짜리 동전을 꺼냈다. 다보탑 부분이 나와있는데 깨끗해 보였다.
 "자, 여기 있다."
주면서도 혹시 '이거 싫어. 100원짜리 줘' 할까봐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런데 돈을 받자 마자 하는 말이 재미있다.
 "와. 황금 돈."
 "그렇네. 황금색이네."
두 말 없이 받아서 간다.
  이제 태어난지 3년하고 4개월이다.  요즘 돈이 무엇인지 알게 된 눈치다. 할머니하고 자주 인근 슈퍼마켓에 가다보니 돈으로 물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돈돈'하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그래도 아직 돈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돈이 편리한 물건이란 것을 깨달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얼마전에는 할머니들 경로당에 놀러갔다가 용돈을 얻어온 모양이다. 늘 매고 다니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면서 "할머니들이 돈 줬다. 여기" 하면서 자랑을 한다. 천원짜리 종이돈이 세장이나 된다. 내가 얼른 받아 챙기면서 "이건 아빠가 가지고 있다가 누리 맛있는 거 사 줄게" 했다. 두말 없이 "응" 한다. "응" 하는 소리는 얼마나 귀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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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어둠에 덮인 산골짝 다락논 옆을 지나는데
개구리 소리 천지에 가득하다
점점 차가워지는 시간 속에 잠기어 목만 내놓은 채
개구리들이 이렇게 울어대는 건
막막함 때문이이리라
너도 혼자지 너도 무섭지 이렇게 서로에게 물으며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대답하는 소리 가득하다
어둠 속에서 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외로움을
이기려는 소리 너도 아직 살아있구나
너도 그렇게 견디고 있구나
그래 그래 서로 대답하며 울음의 긴 끈으로
서로를 묶어놓는 소리 밤새도록 가득하다
                                                                       <슬픔의 뿌리>

개구리 소리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시인이지. 참 재미있다. 이 시를 보니까 떠오르는 것이 이오덕의 <개구리 소리>와 권태응의 <맹꽁이>다. 도시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그리운 친구들이다.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들어보아야 여름이 왔구나 하고 느끼는데. '그래 그래 그래 그래'가 인상적이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굴'이겠지. 앞으로는 나도 이렇게 대답해봐야 겠다. "밥 먹었니"하면 "개굴"하고 말이다. 이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무서움을 이기고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런 청개구리짓도 필요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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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김치가 매워서 물에 씻어서 먹는다. 고추가루가 다 없어진 백김치를 참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할머니가 늘 집에서 아침이나 점심을 먹이는 까닭에 안 좋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할머니는 김치를 손으로 찟는 것을 예사롭게 한다. 옛날 할머니들은 원래 손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누리가 이 버릇을 배웠다.

오늘도 저녁을 먹이는데 김치를 빨아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주었다. 그것을 밥에 얹어 먹는데, 젓가락이 아니라 손을 쓴다. 아무래도 네살짜리 꼬맹이에게는 젓가락 사용이 어려운 법이지. 손을 뻗쳐서 김치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한마디 했다.
"김치를 그렇게 손으로 집어먹으면 안 돼지.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그 손으로 눈 만지거나 하면 눈이 아파서 울 거잖아. 그리고 냄새도 나고 말이야. 네가 할머니야 응?"
그랬더니 눈치를 슬슬 살핀다. 아빠 목소리가 제법 엄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무의식중에 한번 더 김치를 손으로 집으려는 것을 제지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알겠다는 투로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렇게 몇번을 먹었더니 씻어놓은 김치를 다 먹었다. 또 김치를 더 달라고 해서 새로 몇 가닥을 씼어서 작은 접시에 담아주었다. 그리고 밥을 먹는데 김치에 손가락이 뻗치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또 손으로 김치를 만지지."하고 좀 큰소리를 쳤다.
그 순간에 녀석이 얼마나 놀란 눈치던지. 잠시 몇 초를 꼼짝 안하고 얼어있더니 금새 "으아앙"하고 울어버린다. 황당했다. 울 거까지야 있나 싶은데, 딴에는 심각했던 모양이다.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갑자기 수도꼭지가 열린 듯 하다. 참 감수성도 좋다. 이렇게 쉽게 울다니 말이야. 부럽다. 아이들은 심각한 것은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모양이다. 바로 이렇게 풀어야한다. 우는 품이 귀여워서 좀 보고 있다가 달랬다.
"아빠가 혼내니까 무서웠구나."하니 더 크게 운다.
눈물을 닦아 주고 나서
"아빠가 혼내니까 많이 무서웠구나"하니까 그제서야 "으응"한다.
"이제 아빠가 혼내지 않을께. 자, 김치먹자. 아 해봐"하면서 김치를 밥숟갈에 얹어서 떠 먹였다. 그랬더니 받아 먹는다. 그렇게 두번 정도 했다. 1분도 안 되어서 또 신나게 밥을 떠 먹는다.

나중에 내가 또 김치를 빨아서 가져왔다가 너무 큰 가닥이 있어서 자르다가 무심결에 손으로 반을 찢었다. 그랬더니 우리 작은 녀석이 하는 말에 내 가슴이 뜨끔했다.
"아빠. 김치를 손으로 먹으면 안 되잖아."
"으응? 그렇네. 아빠가 깜빡 실수했네. 우리 누리 말이 맞다. 김치를 손으로 먹으면 안 되는데 그렇지?"
"그래."
꼬맹이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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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4-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가끔 어쩌다 날 잡아서 한번씩은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도 좋은데.........
아이가 김치먹는 법을 더 잘 아는군요..호호호~~~!고 녀석 귀여워라..

민달팽이 2006-04-2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30년은 더 나이먹은 나보다 더 고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좋은 날 잡아서 손으로 먹는 자유도 다 같이 만끽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아야겠습니다.
 

시청 마당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다
저녁 종소리를 들었다
직장 문을 나서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는 차량들
시간을 다투듯 급하게 걸음을 떼거나
신호등 앞에 멈추어 서서 초조해하고 있는 사람들
머리 위를 지나 아스팔트에 깔리는 종소리
아무도 귀를 기울이는 이가 없는 도시 한복판을
떠돌다 사라지는 성당의 종소리
그렇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 이 소리 듣고 마음이 움직이거나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 분명히 있으리라 믿으며
울리는 소리가 반드시 있다
반드시 이 소리 듣는 이 있으리라 확신하며
막막한 허공으로 떠나보내는 소리가 있다
그렇게 매일 종을 치는 사람이
                                                     <슬픔의 뿌리>

도시와 종소리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종소리는 꼭 산천과 농토 위를 울려퍼져야만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도시에도 사람은 살고 있고, 희망 역시 존재하는 것. 이 속에도 '숨은 도인'은 많다. 도를 구하고, 사랑을 찾으면서 자기 그림자를 뒤돌아보며, 혹은 달팽이처럼 느릿한 걸음으로 사물을 살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듣는 이 없어보일지라도 매일 종을 치는 종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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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가 싶더니 황사가 또 하늘을 덮습니다
세월 흘러도 늘 푸른 염결과 지조를 지닌 그대여
나는 그대가 이 봄에는 정향나무처럼
사람 사는 동네에도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설한풍에도 변치 않던 그대 굳건함 믿는 만큼
훈풍 속에서 짙고 부드러운 정향나무처럼 살아도
그대 변치 않을 것임을 나는 믿습니다
소나무는 지나치게 우뚝하고 단호하여 근처에
다른 수목들이 함께 살기 힘겨워합니다
없는 듯 있으면서 강한 향기 지닌 정향나무는
사람의 마을에 내려와 먼지 속에 살면서도
저 있는 곳을 향기롭게 바꿀 줄 압니다
그런 나무처럼 당신도 낮고 깊은 향기로
사람들 사이에 꽃피기 바랍니다
지금 쓸쓸하고 허전하지만 우리가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은 그대들 때문임을 압니다
그대들이 골목골목 꽃 피어 세상이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 속으로 내려온 철쭉도 민들레
조팝나무도 내심으론 다 기뻐할 것입니다
                                                     <슬픔의 뿌리>

 

먼지 날리는 세상 속에서도 의연히 자기 향을 잃어버리지 않는 정향나무. 정향(丁香)이라고 나와 있다. 먼저 저 있는 곳을 향기롭게 바꾸기 전에 자기자신이 늘 향기로운 나무. 소나무의 의연함이 필요하던 시대는 설한풍의 시대였나? 이제 훈풍 속에서 오래오래 꽃피우는 시기가 되었나? 골목 속에 산다는 것이 더 힘든 시대라는 것은 살아보니 알겠다. 일상의 힘은 참으로 거대하다. 생활의 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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