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내 친구는 그림책
나카가와 리에코 지음, 야마와키 유리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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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 자다 깬 아이의 투정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야말로 투정 그 자체다.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인다. 한마디로 "나를 재워줘"다. 자기를 달콤한 잠의 무릉도원으로 보내달라는 것이 아이의 요구사항이다. 어제밤 우리 둘째 꼬맹이가 바로 그랬다. 이제 세상에 태어난지 38개월된 이 꼬맹이는 특히 선잠깨면 달래기 어려운 녀석이다. 만사가 마음에 안든다는 투다. 7시쯤에 잤다가 9시에 일어났는데, 잠이 1시간 정도 모자란 느낌이었다. 그길로 울고 투정부리다가 마지막에 나온 요구사항은 "음료수 먹으러 가자"였다. 냉장고에는 음료수가 없으니 집에서 제일 가까운 가게에 가서 캔이나 페트병에 담긴 음료수를 사먹고 싶다는 말이지. "아빠가 음료수 만들어주까?"하고 물으니, "아니. 싫어. 만드는 것 말고 사줘." 아이고 어쩌다가 우리 꼬맹이가 벌써 이렇게 상업주의에 물들었는가. 속으로 탄식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먹히는 말이 몇 개 있는데, 그것을 써 보았다. 울고 짜길래 일단 등에 업었다. 그리고 나서 물어보았다.
"아빠가 책 읽어주까? 응?"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아빠가 책 읽어주까? 응?"
"응. 책 읽어줘." 다행스럽게도 대답이 왔다. 다시 묻는다.
"구름빵 읽어주까? "
"아니. 구름빵 말고"
"음. 그럼 호랑이와 곶감 읽어주까?"
"아니. 호랑이와 곶감 말고."
"음. 그럼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읽어주까?"
"응. 읽어줘."
옳다구나 하고 책꽂이에서 책을 뽑아 이불에 드러누웠다. 왼쪽 팔을 펴서 팔베개를 하고 책을 읽었다. 울다가 지친 뒤끝이라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다. 나도 신이 안 난다. 중간 정도 읽어가니까 우선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내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다. 좀 더 실감나게 읽어야지 하는 결심을 한다.  구리와 구라가 숲 속에서 커다란 카스텔라 빵을 만드니까 숲속의 동물들이 모여든다. 두더지, 뱀, 거북이, 사슴, 멧돼지, 늑대까지 몰려든다. 그 대목에서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읽는다. 책에는 없는 내용도 내가 지어내서 덧붙인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대목이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구리와 구라가 커다란 알껍질로 자동차를 만들어서 떠나는 장면까지 읽었다.
"구리와 구라는 남은 알껍질로 자동차를 만들었어요."하고 읽으니까, 우리 꼬맹이가 하는 말이
"자동차가 아니라 기차다."
딴은 기차같기도 하다. 알껍질을 반으로 쪼갠 것을 둘로 이었으니까 기차인 셈이다. 정확한 관찰이네. 두냥짜리 기차가 맞다. 이때는 맞장구를 쳐주어야 한다.
"그렇네. 자동차가 아니라 기차네. 뒤에는 후라이팬이랑 배낭도 실었네."
"아빠. 그런데 왜 이 애만 운전을 해."
과연 그렇네. 구리와 구라 둘 중에서 한 애만 운전하고 옆에 있는 애는 그냥 앉아만 있다.
"그렇네? 아. 이 애가 운전하고 나서 나중에 옆에 있는 애가 운전할라는가 보다."
이렇게 한번을 재미있게 읽고 나면 곧바로 반응이 온다.
"아빠. 또 읽어죠."
그럼 읽어주고 말고. 투정이 가라앉은 것만 해도 고맙고 기특한데 얼마든지 읽어주지. 두번째는 나도 신이나서 읽는다.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짜잔~"
이렇게 읽다가 보니 예전에 늘 보면서도 발견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인공인 구리와 구라를 구분 안하고 그냥 보았는데 알고보니 파란색 옷을 입은 것이 구리, 황토색 옷을 읿은 것이 구라였다. 제목을 보니 구리는 파란색으로, 구라는 황토색으로 선연히 구분해 놓았다. 또 세세한 표정의 변화도 알게 되었다. 구리와 구라가 커다란 알을 발견했을 때의 그 놀란 표정이라든가, 카스텔라 빵이 익기를 기다릴 때의 그 표정같은 것을 세밀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구리와 구라가 밤과 도토리를 줍다가 커다란 알을 발견했을 때 그 광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와. 세상에 이렇게 큰 알이 있다니. 이 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니까 우리 꼬맹이는 마치 진짜 큰 알을 발견할 아이라도 되는듯이 손뼉을 치면서 "우와. 진짜. 우와아"하고 놀라고 신이 난 목소리를 낸다. 카스텔라빵을 만들면서 맛있는 빵 냄새가 나자 숲속 동물들이 모두 모여들자 우리 꼬맹이도 신이 난다. 동물들 이름을 일일이 거명한다.
"이건 사슴, 이건 거북이, 이건 늑대, 이건 코끼리, 이건 달팽이......"
그러다가 잘 모르겠다 싶은 동물이 있으면 묻는다.
"이건 뭐야?"
"아. 그건 뱀이야. 뱀도 빵냄새를 맡고 나타났네."
동물들이 모두 한 덩이씩 빵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빵을 먹고 싶은 모양이다.
"아빠. 나도 카스텔라 빵 먹고 싶다."
"그렇구나. 그럼 우리도 다음에 엄마한테 카스텔라 빵 만들어달라고 그럴까?"
"다음에 말고 지금 만들어먹자."
"그래. 그럼 이 책 다 읽고 엄마한테 만들어달라고 그러자."
"응"
책을 다 읽고 나서 뒷표지를 보았더니 거기에 그릇그림이 있고, 속에 먹을 것이 담겨 있다.
"우와. 여기 봐. 빵이 있네. 우리 이거 같이 먹을까?"
"응. 그래."
같이 빵 먹는 시늉을 한다.
"음. 맛있다.맛있어. 얌냠 쩝쩝."
이렇게 책을 또 한번 더 읽어서 모두 세번을 읽어주었다. 세번 읽고 나니 좀 성이 차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이 마르는지 "물 먹고 싶다." 그런다. 평소 같으면 엄마나 아빠가 물 떠주기를 기다릴 텐데, 오늘은 자기가 직접 간다. 금방 냉장고에서 물병을 하나 꺼내 가지고 온다. 맛있게 먹고 나서 " 아, 시원하다"하더니 아빠에게도 물을 먹으라고 준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고 입에 대서 먹여준다. 이런 황송한 일이 있나? 아빠가 갑자기 몇 배나 고맙고 좋아진 모양이다. 건너편에서 누워 소설책을 읽고 있는 마누라에게 자랑을 한다.
"여보. 여기봐라. 우리 꼬맹이가 나한테 물을 먹여주네."
이런 황송함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평소에는 엄마하고만 잔다고 하던 녀석이 오늘은 왠일인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빠하고 잘 거다."
그러면서 공부방에 가서 그림책을 세 권을 가지고 왔다. 얼마든지 읽어주지 하고 누웠는데 잠이 온다. <호랑이와 곶감>을 읽어주는 도중에 눈이 얼마나 감기던지. 그렇게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면서 어느 순간 내가 먼저 잠을 자버렸다. 잠자는 순간에도 행복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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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책 + 인형)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사계절출판사 편집부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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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제일 친근하게 느끼는 것이 똥이 아닐까 싶다. 오줌은 액체이다보니 줄 흘러버려서 모양을 가늠할 수 없는데 비해서 똥은 모양도, 색깔도, 냄새도 있으니 아이들은 자연스레 똥을 친근하게 느낀다. 더구나 자기 몸에서 이런 요상한 물건이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도 신기해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되지. 똥은 더럽고 냄새나고, 불쾌한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 우리는 똥을 잊어버리게 된다. 더구나 요즘 화장실은 똥은 바로 수용소로 보내버린다. 양변기에 앉아서 똥을 누면 자기 똥의 색깔이나 모양조차도 알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밥만큼이나 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우게 된다. 우리 시대는 밥보다 똥 때문에 괴로운 시대다. 똥을 못 누어서 고민하고, 독한 똥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똥의 이치를 알면 밥의 이치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오늘도 나는 내 똥에 대해서 관찰하고 때로 명상한다. 맛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 경지는 안 된다. 단지 냄새만 맡고, 색깔, 모양만 관찰할 뿐이다. 새벽 화장실에서 똥을 만날 때면, 저것이 어제 내가 먹고 남은 찌꺼기거니 하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지은이 이름을 잘 못 외우겠다. 독일 이름은 참 익히기 거북하다. 마치 일본 사람 이름을 머리 속으로 되뇌일 때의 그런 기분이다. 베르너 홀츠바르트. 외워보아야겠다. 이 사람은 똥의 가치에 대해서 제대로 깨달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멋진 똥 이야기를 들려주다니 말이다. 더구나 두더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생각을 하다니 기발하다. 두더지 똥이 곶감씨만하다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처음 알았다. 눈 나쁜 두더지 머리 위에 똥을 누고 간 동물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동물의 똥에 대해서 배운다. 비둘기, 돼지, 소, 염소, 개, 그리고 똥청소군 파리까지.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서 동물의 똥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 것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지식책이라고 보아도 된다.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동물의 똥모양>쯤 되겠지. 그렇지만 지은이는 이것을 재미난 이야기와 그림으로 엮어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따라가다보면 동물의 똥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지식은 이야기의 부산물일 뿐이다. 주인과 손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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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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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째 꼬맹이가 요즘 잘 읽어달라는 책이다. "아빠. 구름빵 읽어줘" 할 때의 그 '구름빵'이라는 말의 어감은 참 귀엽다. 우리 첫째는 <구름방>을 읽고 나더니 당장에 진짜 '구름빵'을 만들었다. 서랍에 들어있던 솜을 가져다가 밀가루를 입혀서 빵 모양을 만들었더라. 그러고는 "아빠, 내가 구름빵 만들었다"하고 자랑하고 그런다. 참, 아이들이란 이렇게 바로 무언가를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지. 이 정도만 해도 나는 책값을 톡톡히 건진 셈이다.

 

우선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것이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가는 아빠에게 구름빵을 건네줄 때에 아빠의 반응은 한마디로 "야옹"이었다. 어쩐지 빵과 구름, 고양이는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에 사람이나 개, 토끼 같은 존재를 등장인물로 했다면 느낌이 또 달랐을 것 같은 생각이다. 보통의 우리가 상상하는 구름은 솜사탕이나 동물, 구름차(손오공의 자가용인 근두운 같은) 같은 것이 대부분인데 여기서는 구름을 빵의 재료로 만들었다. 그래서 오븐에 넣어서 구워낸 구름빵을 먹으면 사람이 구름처럼 하늘을 날게 된다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지. 그렇게 해서 아침도 못 먹고 회사에 간 아빠에게 구름빵을 가져다 드리고, 아빠는 그 빵을 드시고서는 날아서 회사까지 제 시간에 도착하고. 커다란 모험은 없지만 발상들이 기막히고,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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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선재동자 > 퓨전 스타일의 글쓰기 방식을 제대로 맛보다!
대학생 글쓰기 특강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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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범람하고 있는 논술 관련 서적들을 보면 우선 그 양에 질식할 것 같다. 독서와 논술이 이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으로 사용되고부터 엄청난 양의 논술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양에 비해 그 질적 가치를 따지다 보면 이내 허망해지기 일쑤이다.


대개는 논술이 마치 언어의 형식적인 면만을 야무지게 다루어 내면 되는 줄 아는 냥 언어의 형식면을 주로 다루거나 혹은 내용의 피상적인 면만을 건드리는 경우가 가장 다반사다. 물론 그 내용 또한 대부분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서양 고전의 문구나 문장을 일부분 인용해서 제시해서 논술을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생 글쓰기 특강, 강준만 저, 인물과 사상사>는 하지만 기존의 논술 관련 서적과는 그 거리를 두고 있다. 글쓰기의 방법을 다루되 단순히 언어의 형식적인 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가치와 사상의 문제에 역점을 두면서 글쓰기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편향과 편견의 논술의 넘어서!


우선 그의 책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소제목이 ‘세상엔 공짜는 없다’였다. 이미 방대한 양의 대중서적을 낸 저자이기에 그 말이 담고 있는 고충과 아픔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실감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과 사상’을 비롯해서 ‘한국 현대사 산책’에 이르기까지 몇 십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는 이 시대의 다양한 부분을 감싸고 때론 찌르면서 애독되고 있다.


저자 강준만은 우선 언론학과 교수답게 신문사설에서 논술 공부의 졸가리를 잡아라고 강조한다.


“매일 신문 사설 10편 내외를 꼼꼼히 읽는 버릇을 몇 개월간만 지속하면 자신의 글쓰기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내 경험담으로 보증한다. 속는 셈 치고 일단 한 번 시작해보기 바란다”(p17에서)


하지만 신문 사설이 가지고 있는 이념 편향성을 넘기 위해 적어도 세 개 정도의 신문을 보수파․진보파․중간파로 분류해서 각각의 논조를 비교․평가해 나가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비교적 자유로운 글쓰기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신문 칼럼 읽기로 넘어가라고 강조한다.


논술이라 함은 곧 자신의 주장을 적절한 논거에 맞게 전개시켜 나가는 글이다. 이런 글의 가장 큰 함정은 다름 아닌 편향과 편견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있다.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두 가지 이상의 신문 사설을 비교해 가면서 보라고 강조하는 점은 논술 공부의 가장 핵심적인 비법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논술의 형식과 내용을 가로지르고 넘어서기


<대학생 글쓰기 특강>은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논술 특강이다. 하지만 내용을 훑어 보면 단순히 대학생들의 취업관련 논술만을 다룬 서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우선 논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을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입시와 관련한 논술 공부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이 책이 단순히 글쓰기의 피상적인 면, 즉 언어의 형식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주요한 문제를 골고루 전면에 제시하면서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에서 비롯해, 이건희, 이문열, 김용옥 등 이 시대의 화두가 될 만한 무수한 이들의 생각과 주장의 파편들을 논술의 주 재료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술 서적이 동서양 고전의 딱딱하고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진 죽은 지식의 쪼가리를 다루는 반면에 저자는 지금 이 시대를 감싸고 꼬집어면서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실감나는 논술 참고 서적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말 없이 글 없다’, ‘주어에 책임지자’, ‘접속사 사용을 자제하자’, ‘어정쩡한 대안을 경계하자’, ‘스타일이 내용을 압도한다’, ‘화합적 글쓰기를 지향하자’ 등에서 보듯이 다분히 논술의 형식적인 면도 놓치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퓨전 스타일의 글쓰기 방식


이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전략의 하나로 책읽기와 글쓰기가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무수한 글읽기의 재료라 할 수 있는 책들을 무수하게 나오고 있지만, 정작 그 글들을 읽고 소화해 내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글쓰기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시중의 수많은 논술 서적들이 이런 것을 역설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강준만의 <대학생 글쓰기 특강>은 단순한 논술방식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다양한 사회과학 지식을 쉬운 예들을 통해 제시하고, 또 나아가 이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연결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도 인문사회과학적 이론․개념과 글쓰기 방법을 결합시킨 형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퓨전’스타일인 셈이다.”<머리말에서>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미 제시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단순한 논술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넘어 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사회, 문화, 정치 분야의 문제를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으로 글쓰기 방식과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나아가 저자 특유의 쉬우면서도 명확한 전개 방식이 더해져 큰 품이 들이지 않고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점이 이 책이 가지는 또 하나의 미덕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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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작가 성석제의 독서에 관한 이야기

출처 : 미스터북맨


20대가 될 때까지 나는 식물성 위주로만 먹는 편식을 했다. 반면에 내가 읽었던 책들은 축산전서에서 성경 · 무협지 · 추리소설 · 아동문학 전집 · 교과서까지 아주 잡다했다. 20대 에 군대를 가게 되면서 나는 잡식성으로 식성을 바꾸었다. 군대라는 환경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측면이 있지만 새롭게 알게 된 고기맛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군대 시절 이후의 독서 범위는 문학과 인문학, 역사 등으로 상대적으로 순수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안에서는, 이를테면 문학이라면 그 중에서도 내가 흥미있어 하는 것이 순진무구, 천진난만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잡다했다. 30대에 들어서는 음식도 별로 가리지 않게 되었고 분야도 그다지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저 내키는대로, 얻어걸리는대로 감사하며 먹고 읽었다.

 나라는 인간은 잡하다. 내가 하는 일, 소설을 쓰는 일은 문학 안에서도 불순, 잡스러운 것에 속한다. 불순하다, 잡스럽다, 잡다하다, 잡종이다라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이 ‘잡, 잡, 잡’에서 힘을 느낀다. 나는 이종 간의 충돌, 혼합, 교잡이 새로움을 낳는다는 것을 믿고 순수하고 가녀린 화원의 꽃보다 더 생명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책은 이런 내 생각을 굳건히 지지해 준다. 

 나는 반드시 건전하고 고전적인 책을 읽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권하지도 않는다. 책의 하위문화에는 그에 걸맞는 매력적인 새로움과 강한 생명력이 있을 것이고 상위문화에는 기품과 깊이, 시간의 단련을 견뎌온 단단함이 있을 것이다. 그 둘이 각자의 영역에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문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며 서로의 유전자를 교환하고 복제하는 가운데 진짜 문화가 된다. 진짜 문화가 되어야 좋은 문화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

 20대에 내가 읽고 가슴이 움직인다고 생각한 책 가운데 기억나는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 [외상죽음]    *가브리엘 바르가스 요사 [빤딸레온과 그의 위안부들]
크누트 함순
[굶주림]

군대에 다녀와서 장편소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기억나는 대로 열거하자면 아래와 같다.
홍명희 : [임꺽정]               *박지원 [열하일기] 외   *미하일 숄로호프 [고요한 돈강]    
*로버트 버튼 편 [천일야화]   *허먼 멜빌 [백경]         *귄터 그라스 [양철북]
장 폴 싸르트르 []

재미있게 읽은 시도 물론 있다. 시집 제목은 기억나지 않으나 시인들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정현종 이하 *고트프리트 벤파블로 네루다 *파울 첼란 *자크 프레베르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쉽게도 희곡은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가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페트 한트케 [관객 모독]  
으젠느 이오네스코 [대머리 여가수]    *베르톨트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오태석 [초분]

그리고 워낙 재미있어서 한 번 집어들면 손에서 뗄 수 없던 명작들이 있었으니.
고우영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 [서유기] [일지매] [임꺽정] [십팔사략]

그리고 역시 한 번 손에 들면 놓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유쾌한 작가가 두 사람 있다.
에프라임 키숀 [가족] [돼지는 돼지다]    *로얼드 달 [] [세계 챔피언]

흥미롭고 짧으며 시적인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재미는 기본이다.
페터 빅셀 [책상은 책상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악어가 사람이라고?] *프란츠 카프카 [변신]

근래에 읽은 인문학 관련 책에서 인상적인 필자는 빌 브라이슨이다. 대책없이 잡다한 것이 가슴에 와닿았다.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참고로 지금 내 책상 위의 작은 서가에 꽂혀 있는 ‘잡스러운 책’의 제목을 쓰면 이런 식이다.
[띄어쓰기·맞춤법 용례] [음식 상식 백 가지] [미식 소식이 오래 산다] [제주도 관광 정보 매거진] [내 몸의 신비] [벌거벗은 여자] [세상의 나무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음식에 관한 47가지 진실]... 책상 위에는 [먹지마, 위험해!]와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 펼쳐져 있고 오른편에 있는 에어컨 박스 위 임시 서가 앞줄에는 [빠블로 네루다] [세계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문학동네] [게으른 산행] [한국식품문화사]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하루만에 정복하는 부동산 재테크]가 꽂혀 있다. 뒷줄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문학의 윤리] [역주 매천야록] [오늘의 SF걸작선] [하늘에서 본 지구] [우리말의 뿌리] [조선역사]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가 있다.

 텔레비전에서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그 사람의 어깨 너머로 엿보이는 책의 제목을 통해 그 사람의 직업과 기질, 나이와 성향을 가늠하곤 했다. 누가 지금 이 목록을 읽는다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잡스러운 인간? 그렇다면 만족이다. 소설은 바로 잡의 장화니까. 어, 장화 아니고 정화(精華)다. 생각해 보니 장화가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은 잡의 정화의 장화라고 하자.

  





 

 

 

성석제 /소설가. 1994년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며 소설을 쓰기 시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등의 창작집과 [재미나는 인생] 등의 짧은 소설, [인간의 힘] 등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본 칼럼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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