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꽃은 집니다
흐르는 강물에 실려 아름답던 날은 가고
바람불어 우리 살에도 소리없이 금이 갑니다
사시사철 푸른 나무로 살고자 하던 그대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대에게 꽃 지는 날이
찾아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대 이기고 지고 또 지기 바랍니다
햇살로 충만한 날이 영원하지 않듯이
절망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가지를 하늘로 당차게 뻗는 날만이 아니라
모진 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찢겨진 꽃들로 처참하던 날들이
당신을 더욱 깊게 할 것입니다
슬프지만 피었던 꽃은 반드시 집니다
그렇지만 상처와 아픔도 아름다운 삶의 일부입니다
                                                                 <슬픔의 뿌리>

꽃이 지는 일이 슬픈 일인가? 그렇다. 단풍이 지는 것이 슬픈 일인가? 그렇다. 바람에 날리든, 저절로 떨어지든 꽃이 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제 따스한 봄날은 가고 무더운 여름, 싸늘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처참하던 날의 상처가 나를 깊게 할 것인가? 모른다. 처참함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긴 하지만 삶을 깊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않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 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무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슬픔의 뿌리>

 

산을 오르는 것을 인생에 비유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 짧은 시 안에도 그와 같은 이치가 가득하다.  인생의 메시지가 각 행마다 들어있다. 들뜨지 말며, 주저않지 말며, 조급하지 말며, 게으르지 말며. 누가 이런 인생의 함정들을 그냥 비껴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다 결점투성이인 사람들이다. 다만 인생의 이치를 제대로 알게 되면 그런 구덩이들에 빠지지 않고, 큰 상처 입지 않고 길을 갈 수 있지 않겠나. 내가 지금 마음에 쏙 드는 구절은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라는 구절이다.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사실을 늘 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록 꽃나무

                                                      도종환
꽃 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게 함께 서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숲을 이룬다
꽃 피던 날들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슬픔의 뿌리>

그렇군. 꽃피는 시절은 기껏해야 나무의 일년에서 몇 일일까? 손에 꼽을 정도의 나무도 있고, 몇달을 쉼없이 피는 나무도 있다. 대부분의 나무는 보름 안쪽의 기간 동안만 꽃을 피운다. 그리고 꽃잎을 날린다. 그 동안에 벌이며 나비들이 모여들어서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푸른 잎을 달고 몇 달을 난다. 그 시절도 끝나면 잎을 떨어뜨리고 열매도 떨어뜨린다. 곧 겨울이 닥친다. 잎지는 나무들은 온통 잎을 떨어뜨린채 벌거벗은 겨울나무로 추운 시절을 지낸다. 나무처럼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꽃피는 날들은 짦고, 초록의 시절은 긴' 것이 인간의 삶이다. 문득 생각한 것은 주역에 나온다는 '삼현일장(三現一藏)'이라는 문구다. 자연의 원리는 셋은 나타내고, 하나는 감춘다는 것인데, 인간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종환의 이 시도 입에 맴도는 시구가 있다.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쓸쓸한 세상

도종환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 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슬픔의 뿌리>

꽃,새,노래,파도,글쓰기,사랑,내리는눈. 이 모든 것이 쓸쓸한 세상을 감추기 위하여 생긴 것이라는데. 참 시인의 상상력은 기막히군. 생각의 샘을 얼마나 깊이 파고, 세상을 얼마나 자세히 관찰해야  이런 생각이 떠오를까? 도종환의 시선은 참 따뜻해서 좋고, 그 따뜻함 속에 굽혀지지 않는 의지 같은 것이 있어서 더욱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세상은 영혼의 성숙을 위해 우리가 잠시 지나가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것, 고통은 영혼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항상 사랑과 친절로 대해 주려는 노력이라는 것, 삶에 대한 이러한 방향 전환은 나를 부드럽게, 또 포용력이 조금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의식혁명> 324쪽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