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않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 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무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슬픔의 뿌리>
산을 오르는 것을 인생에 비유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 짧은 시 안에도 그와 같은 이치가 가득하다. 인생의 메시지가 각 행마다 들어있다. 들뜨지 말며, 주저않지 말며, 조급하지 말며, 게으르지 말며. 누가 이런 인생의 함정들을 그냥 비껴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다 결점투성이인 사람들이다. 다만 인생의 이치를 제대로 알게 되면 그런 구덩이들에 빠지지 않고, 큰 상처 입지 않고 길을 갈 수 있지 않겠나. 내가 지금 마음에 쏙 드는 구절은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라는 구절이다.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사실을 늘 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