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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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처음 손에 들고 생각한 것이 '아, 표지 참 이쁘다' 였고, 책을 놓고 생각한 것이 '아, 이야기 참 이쁘다' 이다.  얼마만에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읽은 것일까?  마음을 훈훈해지고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신의와 사랑이 있는 이야기들....  역시 '감동' 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모두가 단편과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서로 하나이기도 한 이야기들....  그리고 통조림, 컵라면, 티뷔가 없던 시절들의 이야기라 그 모든 것들이 전혀 별날 것 없이 일상적인 것들이 되어 버린 지금, 그런 모습들을 보는 것이 참 재미있기도 했다. 

  참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고 내 친구였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  UFO를 만들어야만 했던 아이들의 속마음을 보고 기특한 녀석들 하며 머리를 보듬어 주고 싶었고 이야기를 고쳐쓰는 삼류작가를 보고 진정 글의 힘을 믿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란우산 소년(내가 붙인 별명이다)의 우산찾아 삼만리....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노란 우산을 받쳐들고 기분좋은 걸음을 걷겠지?  개인적으로 제일 정이 많이 가는 소년이었다.  비내리는 날 길을 걷나 노란 우산을 들고 걷는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면 잠시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만 같다.  말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아이, 죽음을 잘 모르지만 사랑을 아는 아이의 동심어린 몸짓들....  두부를 부수는 두부가게 주인, 과거를 잃은 남자와 그의 아내, 직원을 생각해주는 사장, 사장님을 생각해주는 직원.... 모두 일일히 소개하기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  기어코 사귀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렇게나 이들이 그리운 이유는 뭘까?  지금 내가 사는 이 현실 속 공간에서는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지금 나에게 없는 그들의 따스함을 마구 내 것으로 삼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낀 일은 언제이며 누군가에게 마음 깊이 도움을 준 일은 또 언제 일까?  그 마져도 아니라면 '주거니 받거니' 가 아닌 내 것을 온전히 주어버린 일은 얼마나 될까?  아날로그적 감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손길 하나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사람들로 그득했으면 좋겠고 온전히 돕고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다.     

  이 책이 감동적이라고 하여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눈물나는 수기와 같이 어렵고 힘겨운 사람들....  그러나 세상이 여전히 아름다운 공간일 수 있는 것은 이 공간을 채우는 훈훈한 온기와 사랑이 아닐까?  이런 포근한 가슴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해질무렵 아름답게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을 볼 수 있는 3번가는 어디일까?  어디로 가야 그 모두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아닐까?  당신이 서있는 그 자리는 아닐까?  '항상'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은 3번가는 바로 우리가 있는 이 곳이다.  고개들어 해질녁 하늘을 한 번 보라.  바로 당신의 머리 위 아름다운 석양이 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곳이 우리가 찾던 3번가다.  당신과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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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과 만나다 - 시와창작 동인지 4
임윤식 외 지음 / 책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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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창' 이라는 동인지의 시집으로는 <눈물도 안난다> 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 시집을 읽고서 가장 먼저 든 느낌이 '진실한 시들이구나' 싶었다.  한 사람의 시를 소개한 개인시집이 아니라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쓴 시들이 담긴 동인지라서 더 그랬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 받아든 이 시집 <초록과 만나다>  표지에서 풍기는 연초록의 싱그러움과 오순도순 모여 앉은 꽃잎들의 모습을 오래토록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집 <초록과 만나다> 는 표제만큼이나 푸르다.  책장을 펼쳐놓고 한 숨 들이 마시면 여기 이 푸르름이 죄다 내 것이 될 것 같다.  꽃이 만개하기 전 새싹처럼, 잎사귀들이 조랑조랑 달리어 흔들리기 전 덜 자란 어린 잎사귀같이 푸르다.  동인지라 하여 (소위 말하는) 아마추어들이려니 했더니 어랍쇼?  모두 프로다.  익을대로 익어 지금 당장 탈곡을 해도 아쉬울 게 없을 그 네들이, 내 이름 박아 시집을 낼 수도 있는 그 네들이 무엇하러 동인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시를 낼까?  이들은 봄을 기억하는 여름이고, 여름을 기억하는 가을이다.  또 가을을 기억하는 겨울이 되겠지.  모든 것이 태동하는 그 봄의 연초록을 사계절 내내 간직할 작정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젊음을 기억하려 '시' 아래 모여앉은 사람들의 우정어린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 겠는가.  나는 그래서 동인지가 좋다.  그들의 싱싱한 초록빛 숨결이 좋다.     

 

  <초록을 만나다>는 시와 산문이 어우려져 읽는 맛이 좋았다.  53인의 시와 산문의 주인공은 우리다.  내 사는 이야기, 네 사는 이야기.  우리 사는 이야기.  내 사는 이 땅, 네 사는 이 땅.  우리 사는 이 땅.  이렇듯 사는 이야기, 발 아래 땅 이야기를 하는 그들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시인이라는 허울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게 아니며 글쟁이라 불려지는 자만이 쓰는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닌 것을.   

 

  그렇다면 시는 무엇일까?  시는 '날숨' 이 아닐까.  하늘보고 땅보고 달보고 별보고 물보고 꽃보고 풀보고....  그것들과 쉼없이 조근조근 이야기 나누다 급기야 내 안에 삼켰다가 뱉어내는 숨 말이다.  시는 내 들이 마신 숨을 네게 뱉어내고 내 뱉어낸 숨을 네가 들이 마시며 소통하는 '호흡' 이다.   그 내뱉은 숨 고스란히 받아 마신 나의 폐는 어느새 시인의 그것이 되어 있다.  그러니 시를 읽으면 이토록 시가 쓰고 싶은가 보다.  들숨과 날숨이 사이좋게 드나들어야 살아간다.  마냥 들이키거나 뱉어내기만 한대서 살 수가 없듯이 시를 마시고 나면 응당 시를 뱉고 싶어지는가 보다.  아이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동심이요.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시심이 아닐까.   연초록의 싱그러움을 고이 간직한 채 오순도순 모여 앉은 꽃잎이여,  그대들 안에 꿈틀대는 시심을 절대 재우지 마소.  항상 깨워 두소서.

 


물 한 모금 들이키고 
펜을 들었디마는
글자마다 방울방울
물방울이 걸렸네


담배 한 까치 꼬나물고
펜을 들었디마는
글자 우에 히끄무레
안개가 누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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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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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창인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읽은 작품이다.  조창인씨하면 삶, 가족,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가시고기> 출간 당시, 김정현씨의 <아버지>와 함께 부정(父情)을 담은 소설로 대히트를 쳤었는데 그것이 '조창인' 이라는 작가를 세상에 알린 계기가 아닌가 싶다.  실상 이 책은 시리즈 아닌 시리즈인 듯 싶다.  <가시고기> <등대지기> <아내>는 표지도 닮았다.  흰 바탕에 거친 붓으로 쓴 듯한 주황색 글자, 하늘색 글자, 이번 <아내>는 분홍색이다.  비단 표지만 닮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소설 <가시고기>가 부정을, <등대지기>는 모정을 담은 소설이라면, <아내>는 부부, 그리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마치 시리즈마냥 연거푸 '가족'을 다룬 소설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차기작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 <아내>는 두 가지 생각거리를 내게 안겨 주었다.  부부가 뭐지?  사랑이 뭐지?  부부는 뭘까?  제 각기 이에 대한 정의는 다를 것이다.  형태적으로 보자면 하나로 결합한 두 남여일 것이고, 의미론적으로 보자면 평생을 나눌 친구를 얻는 일일 것이고, 사회적으로 보자면 배우자 외 다른 이성과 깊이 사귀지 않음을 공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혼은 왜 하는 것일까?  안정된 삶을 위해?  자손번식을 위해?  합법적으로 성적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글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깊이 생각해 본 바는 아니지만....  '정착'을 위함이 아닌가 싶다.  정착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갈음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뭐지?  아주 일차원적으로 대답하자면 '그냥 좋은 것'이다.  더러는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 하고 반문하며 사랑 뒤에 부수적인 이유들이 따르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게끔 한 책이다.

  여자라면,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을 거다.  "넌 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니?  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니?"  물론 결혼이라는게 일방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거니와 쌍방의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굳이 한 번 따져 보자면 말이다.  내 대답은 줄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었다.  그러나 상희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 찬우에게 '꼴보기 싫은 존재' 이상 되지 못했다.  참 사랑이라는게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 무엇이길래 그것이 내게 있을 때는 세상을 다 줄 듯 하다가 그것이 사라져 버리면 '남' 보다 더 한 사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냐 말이다.    

  이 책에 '아내' 라는 이름을 붙이 이유는 무엇인가?  부부가 아니라 구태여 '아내' 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속내를 다 안다 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을 통해(상희를 통해) 헌신적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한결같은 아내상을 제시하고자 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상희'는 바람직한 아내상인가?  내가 대답을 하자면 '아니다' 쪽이다.  책 속 '상희'는 너무 답답했다.  모든 걸 다 참고 인내하고 감내하고 마치 소 귀에 경 읽듯 처신하면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말그대로 착한 아내인가?  남편의 냉대와 무시를 다 견뎌내며 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아내가 바람직한 아내일까?  틀림없이 부부사이에 있어 '인내' 는 사랑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그토록 굴욕과 모욕을 감당하며 '아내' 라는 자리를 지키려는 상희는 처참했다.  주종관계로 보자면 종이었다.  너무 심한 비약인가?  '아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는 대목에서는 내게는 한낱 미련한 여자의 모습일 뿐이었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아내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상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야 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이혼이 더 나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조창인씨는 저자의 말에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반성하며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싶다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아내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다른 표현은 아닐까?  나는 조창인씨에게 되묻고 싶다.  언제까지 아내에게만 '희생' 을 강요할 것인지 말이다.

  혹자는 이 글을 읽고 '너도 같은 여자라고 여성을 옹호하는게 아니냐?'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성(性)은 중요한게 아니다.  한 인격체인 인간이 또 다른 존재인 한 인간에게 하찮은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내' 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하찮은 위치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강요해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고 그것이 사랑하는 부부의 연으로 산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나를 깡그리 없애가며 오로지 배우자를 위해 여생을 사는 것은 억울하고도 미련한 짓이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을 포기할 만큼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인내하고 기다려 주는 아내로 인해 숱한 남자들이 면죄부를 받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혼이라는 것이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자기자신을 깡그리 태우고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그 무언가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라는 의미가 사라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어찌보면 갈라서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결국 허울좋은 개살구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아내여, 남편이여~  물론 서로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없는 관계여서는 안되겠지만 나도 상대만큼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져버리고 나를 포기한 채로 살아가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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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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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다.  아니 두 번째라고 말 할 수 없겠다.  처음 읽었던 것이 <오! 수다>였으니까.  <오! 수다>는 기행문(이 조차도 의심스러움)이기도 하고 작품으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작품이었다.  그간 들어왔던 오쿠다 히데오의 명성(?)에 크게 실망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이자 처음 읽은 작품이 바로 이 <한 밤 중에 행진> 이다.  

  요즘 일러스트 표지들이 많지만 이 표지는 특히나 마음에 들었고 책을 읽어보고 싶게끔 했던 것 같다.  팔뚝의 용문신이나 흰색 러닝셔프나 삐뚫어진 입에 꼬나문 담배, 뱀눈 그리고 지폐가 쏟아지는 돈가방....  남자는 확실히 내 타입이 아니다.  나를 보고 있는 이 남자의 눈빛이 나를 사로잡은 것을까?  하하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이 언밸러스한 띠지도 상당히 감각있는 듯~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하다.  장르로 보자면 느와르 코믹정도?  스릴러라 보기에는 유머스럽고 코믹이라고 보기에는 꽤 진지하다.  그 중간 즈음에 놓여지는게 딱 좋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음모 뒤에 음모가 있고 반전 뒤에 반전이 있는 소설이다.  참 스피디하게 진행됐다.  문장도 간결하고 깔끔한 편이라 읽는데 어려움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 수다>에서 느꼈던 오쿠다 히데오의 유쾌한 입심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오! 수다>는 기행문이나 에세이로는 완전히 실패작이라고 보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생기발랄한 어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군데 군데 유쾌함과 익살스러움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세 사람.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돈!  돈이다.  이야기를 더 하자면 돈을 쫓는 사람은 셋이 훨씬 넘는다.  이 세 사람 중 아버지를 응징하려는 딸 치에나 누나의 하수인과 같은 동생.  이들의 모습이 너무 비정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야말로 해피엔드다.  그들이 쫓던 그 돈이 교묘하고 발빠른 누군가가 덥석 물어가는 먹이가 아니라 제 주인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참 다행스러운 일.  그리고 와해된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하게 된 일이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이 책은 <한 밤 중에 행진> 보다는 <한 밤 중에 질주>가 어떨까?  소설의 전개 역시 질주였고 돈을 쫓든 그들 역시 질주였다.  뭐 아무래도 좋다.  <한 밤 중에 행진>은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딱 끊어버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이로서 오쿠다 히데오와 화해를 하게 된 것일지.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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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2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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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나는 과연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주마간산식으로 아는 것도 과연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름이 귀익고 무엇 한 사람인지 들은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나는 그를 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름은 김정희, 호는 추사, 명필가.  이게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추사 김정희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이 50이고 한승원씨의 작품이기 때문이 50이었다.  이 책은 기대만큼이나 김정희와 한승원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역시나 아름다운 언어들....  분명 한승원은 추사가 글을 쓰듯 글을 지었을 것이다.

 

  추사.  그가 쓰고자 했던 板殿(판전:널빤지 판, 큰집 전)이라는 글자.  그는 글자를 쓰기 위해 거의 강박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받는 듯 했다.  문 앞에 적어 붙인 '입춘대길' 이라는 글만 보고도 천재라는 인정을 받았던 그가 아닌다.  솔직히 '명색이 명필가인데 어렵사니 써야하지 않나?’하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이것은 무엇일까?  그가 명필가이기에 그가 글자의 천재이기에 망설임없이 고민없이 휙휙 갈겨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그토록 고심하며 어렵사리 하는 것을 보고 참 많이 놀랐다.  하물며 '대가' 라는 이도 이러한데 나는 어떠한가?  '내 이는 쉬 할 수 있지’하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그 어떤 다른 것들보다 오랜 고민 없이 해치워 버리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참 섧게 살다간 추사.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하지 못했던 삶들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들 또한 추사를 조카로 보며 얼마나 가슴 아리할 때가 많았겠는가.  유배자의 삶....  그것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초의와의 우정은 얼마나 눈물겹던지....  그런 귀한 우정을 누리며 살았다는 것이 그에게 허락된 호사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글자를 쓰는 것은 그에게는 숨과 같은 것이었다.  참아버리면 이내 갑갑증을 느끼고 죽음까지 이르고 마는 호흡.  그에게는 글자가 바로 이것이다.  그를 견디고 살아지게 한 것이 바로 글자다.  그리고 이 책은 한 편의 인생지침서와 같았다.  어찌나 가슴에 아로 새기고 싶은 글들이 많던지.  가슴에 새기고픈 말들이나 추사의 일생을 통해 보았던 삶의 모습을, 열정을 닮고 싶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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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0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한승원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던데요~~ 좀 지루하달까... 그랬어요.
그래서 이 책은 안 보려 했는데, 님 리뷰를 보니 왠지 끌립니다!

매우맑음 2007-09-01 00:57   좋아요 0 | URL
저 역시 한승원씨가 사용하시는 단어나 표현법이
그리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습니다 ^^
덧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