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조창인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읽은 작품이다.  조창인씨하면 삶, 가족,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가시고기> 출간 당시, 김정현씨의 <아버지>와 함께 부정(父情)을 담은 소설로 대히트를 쳤었는데 그것이 '조창인' 이라는 작가를 세상에 알린 계기가 아닌가 싶다.  실상 이 책은 시리즈 아닌 시리즈인 듯 싶다.  <가시고기> <등대지기> <아내>는 표지도 닮았다.  흰 바탕에 거친 붓으로 쓴 듯한 주황색 글자, 하늘색 글자, 이번 <아내>는 분홍색이다.  비단 표지만 닮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소설 <가시고기>가 부정을, <등대지기>는 모정을 담은 소설이라면, <아내>는 부부, 그리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마치 시리즈마냥 연거푸 '가족'을 다룬 소설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차기작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 <아내>는 두 가지 생각거리를 내게 안겨 주었다.  부부가 뭐지?  사랑이 뭐지?  부부는 뭘까?  제 각기 이에 대한 정의는 다를 것이다.  형태적으로 보자면 하나로 결합한 두 남여일 것이고, 의미론적으로 보자면 평생을 나눌 친구를 얻는 일일 것이고, 사회적으로 보자면 배우자 외 다른 이성과 깊이 사귀지 않음을 공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혼은 왜 하는 것일까?  안정된 삶을 위해?  자손번식을 위해?  합법적으로 성적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글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깊이 생각해 본 바는 아니지만....  '정착'을 위함이 아닌가 싶다.  정착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갈음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뭐지?  아주 일차원적으로 대답하자면 '그냥 좋은 것'이다.  더러는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 하고 반문하며 사랑 뒤에 부수적인 이유들이 따르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게끔 한 책이다.

  여자라면,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을 거다.  "넌 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니?  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니?"  물론 결혼이라는게 일방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거니와 쌍방의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굳이 한 번 따져 보자면 말이다.  내 대답은 줄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었다.  그러나 상희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 찬우에게 '꼴보기 싫은 존재' 이상 되지 못했다.  참 사랑이라는게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 무엇이길래 그것이 내게 있을 때는 세상을 다 줄 듯 하다가 그것이 사라져 버리면 '남' 보다 더 한 사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냐 말이다.    

  이 책에 '아내' 라는 이름을 붙이 이유는 무엇인가?  부부가 아니라 구태여 '아내' 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속내를 다 안다 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을 통해(상희를 통해) 헌신적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한결같은 아내상을 제시하고자 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상희'는 바람직한 아내상인가?  내가 대답을 하자면 '아니다' 쪽이다.  책 속 '상희'는 너무 답답했다.  모든 걸 다 참고 인내하고 감내하고 마치 소 귀에 경 읽듯 처신하면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말그대로 착한 아내인가?  남편의 냉대와 무시를 다 견뎌내며 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아내가 바람직한 아내일까?  틀림없이 부부사이에 있어 '인내' 는 사랑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그토록 굴욕과 모욕을 감당하며 '아내' 라는 자리를 지키려는 상희는 처참했다.  주종관계로 보자면 종이었다.  너무 심한 비약인가?  '아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는 대목에서는 내게는 한낱 미련한 여자의 모습일 뿐이었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아내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상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야 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이혼이 더 나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조창인씨는 저자의 말에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반성하며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싶다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아내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다른 표현은 아닐까?  나는 조창인씨에게 되묻고 싶다.  언제까지 아내에게만 '희생' 을 강요할 것인지 말이다.

  혹자는 이 글을 읽고 '너도 같은 여자라고 여성을 옹호하는게 아니냐?'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성(性)은 중요한게 아니다.  한 인격체인 인간이 또 다른 존재인 한 인간에게 하찮은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내' 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하찮은 위치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강요해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고 그것이 사랑하는 부부의 연으로 산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나를 깡그리 없애가며 오로지 배우자를 위해 여생을 사는 것은 억울하고도 미련한 짓이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을 포기할 만큼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인내하고 기다려 주는 아내로 인해 숱한 남자들이 면죄부를 받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혼이라는 것이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자기자신을 깡그리 태우고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그 무언가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부부라는 의미가 사라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어찌보면 갈라서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결국 허울좋은 개살구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아내여, 남편이여~  물론 서로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없는 관계여서는 안되겠지만 나도 상대만큼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져버리고 나를 포기한 채로 살아가지는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