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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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에 이처럼 지은이들의 이름이 크게 새겨진 책이 또 있을까?  오히려 지은이가 누군지 꽤 유심히 들여다봐야 알만한 책들을 찾기가 더 쉬울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최인호씨와 김점선씨 때문이었다.  최인호씨 하면 문학계의 대부요, 김점선씨는 미술계의 대모 정도 되지 않는가.  물론 나는 이 정도로 밖에 말할 수 없다.  최인호씨의 문학을 낱낱이 파고드는 독자도 아니거니와 김점선씨의 그림을 한 점도 갖고 있지 못한 독자일 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상하리만치 두 작가의 이름을 보고는 이 책을 믿어 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  도란 도란 두런 두런 사는 이야기, 시끌 시끌 벅적 벅적 세상 이야기.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또한 최인호씨를 곁에 두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할 사적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던 책이다.  평소 수필은 가까이 하지 않던 탓인지 수필하면 피천득씨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역시 수필을 대하는 기분으로 읽어서인지 피천득씨가 생각났다.  굳이 비교할 일도 아니고 비교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느껴지는 대로를 이야기 해보자면, 피천득씨의 글이 졸졸졸 샘물이라면 최인호씨의 이 글들은 찰랑찰랑 강물이다.  피천득씨가 포근하게 불어보는 봄바람 같다면, 최인호씨는 뜨거운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같다.  계절에 비하다보니 가을이 아니 떠오를 수 없지.  가을은 전혜린씨다.  전혜린씨는 스걱스걱 낙엽이 발 아래 바스라지는 가을 같다.  그렇담 겨울은?  허허  갈 수록 가관이다.  자자, 이제 그만.

  그리고 이 책은 수필이면서 동시에 내게는 자서전 같은 책이었다.  '아, 최인호씨가 신춘문예에 고2때 입상을 했구나' '그도 나처럼 햇볕을 좋아하는구나' 등등.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 그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 소소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최인호씨는 우리의 인생을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은 찬란한 꽃들' 에 비유했다.  이 책 꽃밭은 그 정원에 심겨진 꽃의 생김새를 살펴보고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김점선씨의 소박한 삽화들이 더욱 더 그런 맛을 잘 전해준 것 같다.  그림들은 추상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어렵지 않아 편안하고 소박해서 정겹고 따뜻하다.  그림을 이해하려 기를 쓰지 않아도, 미간의 힘을 풀고 그저 보기만 하면 되는 솔직한 그림들....  김점선씨 그림의 매력에 더욱 푹 빠지게 되었다.    

  인생....  이토록 짧은 단어의 모습이지만 이토록 복잡, 묘연한 것이 또 있을까?  노래를 하지 못하는 아내 대신에 노래를 대신 해주고, 나와 눈길 닿는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내는 것, 제라늄이 죽을까 자신의 병든 몸을 이끌고 병원을 탈출하는 것처럼 삶에, 생명에, 사랑에 애정을 갖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런 모습이야말로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겨진 그 찬란한 꽃들을 잘 가꾸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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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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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표지를 봤을 때, 머드팩을 하는 세 남자같아 웃음이 났었다.  이 이야기는 복면 쓴 남자들이 머드팩 하는 남자들로 보이는데 비할만큼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였다.  이 우스꽝스런 표지에 20세기 걸작 미스터리 1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뭔가 카리스마까지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미스터리라고 부르기엔 뭔가 석연찮다.  오히려 명랑소설이라 부르는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국내에서 최근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데 관심이 갔다.  

  이 책 <대유괴>는 말 그대로 큰 유괴다.  이 사건이 실제했다면 초대형 유괴사건임은 물론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사건으로도 손꼽혔을 것이다.  또 하나, 이 사건의 시작은 명백한 유괴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유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상천외한 할머니를 '스스로 유괴된 할머니' 라고 할 수 있을까?  유괴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는 쓸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스스로 유괴범과 공범이 된 할머니' 라는 뜻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유괴범과 유괴된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할머니와 손자지간 같기도 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서로 조언을 얻고 도움을 주며 의지하는 모습은 실제 할머니와 손자지간에서 볼 수 있는 그 보다 더 막역한 사이다. 

  유괴된 천재 할머니의 유괴범 지휘는 대범하기까지 하다.  유괴범이 요구한 몸값에 버럭(!)하며 그것을 스스로 인상할 할머니라니 역시 엽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이 천재 할머니 심성 고우시고 자선사업 많이 하신 할머니시라니 망정이지 심사가 조금만 뒤틀린 고약한 할머니였다면 바로 야쿠자 보스쯤 되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선량함과 유괴범들의 순진무구함이 만난 유쾌한 범죄(?)소설이다.  

  그러나 '역시 소설이니까' 라는 전제없이 읽기에는 그저 우스운 소설일 뿐이다.  소설 속 할머니는 여든 두살의 노령으로 나오는데 솔직한 말로 여든 두 살에 그 정도 카리스마를 발휘한다는게 가능할까?  '세월 앞에 장사없다' 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영악(?)하고 순발력 있는 이런 노인네가 과연 있을까?  혈기왕성한 장정 셋을 좌지우지할만큼 상황판단을 하고 사건의 핵심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것이 여든이 넘은 노인에게서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책 속이나 시트콤과 같은 드라마가 아니고는 찾기 힘들 것이다.  소설 속 할머니의 나이는 억지였다. 

  또 '역시 소설이니까' 라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은....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온 국민을 대상으로 명색이 공영방송에서 범인들의 요구대로 방송이라는 매체로 대대적인 실시간 보도가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제 아무리 거물급 인사라 하더라도, 몸값으로 제시한 금액이 너무 크다 하더라도, 자선사업으로 사회에 명망높은 어르신이 유괴되었다 하더라도....  방송을 통해 교섭하는 것을 쉽게 응할 수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국민들에게 이에 대해 낱낱이 보도하는 것이 위험한 것은 아닐까?  이 역시 소설이기에 가능했던게 아닐까?    

  그러나 이 책은 참 신선하다.  유괴라는 비정한 사건이 이처럼 달짝지근한 이야기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지 않을까?  소재의 느낌을 완전 뒤엎어 버리는 산뜻발칙한 소설이다.  게다가 훈훈하기까지 하다니.  역시 일본소설이다.  기발하고 참신하다.  이것이 일본 소설이 무수히 많은 국내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이 아닐까?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신선하고 새롭다는 느낌.  <대유괴> 할머니에게서 풋풋한 소녀의 기운이 발그스레 묻어나는 발랄하고 유쾌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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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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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 우스개소리를 하자면, 이 책은 내게 수불석권의 경지에 다다르게 한 책이다.  얼마간 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다 되돌아 오다 읽다 되돌아 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올해들어 가장 오랫끝에 읽은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덮고 난 지금, 참 복합적인 심정(?)이다.  '다 읽었다'는 성취감 그리고 '제대로 이해 못했다'는 자괴감?  이 책을 읽기 전 엄청난 기대를 했다.  이 말은 이 책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뜻이 아니다.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스스로 다다르지 못한 것 같아 답답할 따름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을 모두 열거해 보라면....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무한히 많기 때문이 아니라(실은 내가 이해한 것은 극히 일부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학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어마어마한 과학의 이기를 누리고 살지만 내 경우로 보자면, 과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관심있는 것이라면 학창시절 배웠던 '생물' 교과라고 생각해 왔다.  개괄적으로 보자면 이 책도 생물학을 다룬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알던 생물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음을 처절히 깨달아야만 했다.  내가 알던 생물은 알코올에 적힌 거즈를 개구리의 머리 위에 얹고 그들의 배나 가르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껏해야 식물의 광합성 따위였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형성된 개체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입을 빌자면 '우리는 유전자들의 생존기계'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유전자가 주체인 셈이다.  다시말해, 우리는 각 유전자들이 지령을 내리는 대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아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대로 살아가게 되며 내가 가진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할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에서 칼빈의 '예정설' 이 얼핏 떠올랐다.  칼빈은 '모두 신에 의해' 라고 말하는 한 편, 리처드 도킨스는 '모두 유전자에 의해'라고 설명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이것은 너무 심한 비약일까?  

  다윈의 '종의 기원' 을 읽지 못한 내가 그것을 추종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학설을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빗나가는 논지일 수도 있겠으나 진화론, 창조론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인간은 한 유기체에서 진화된 생물체이냐, 누군가로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냐는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문 논쟁의 대상이다.  '진화론' '창조론' 이라는 두개의 문 중에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문제는 상당히 달라진다.  나 역시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화론에 대한 학설들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의문과 고찰은 어떤 식이건 의미있는게 아닐까.  왜냐하면 너와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근원은 모든 것의 시작인 것이고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화론' 이냐 '창조론'이냐의 양자택일을 떠나서 우리 또한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어려운 '유전자' 의 개념을 동물행동에 비유해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쉬운 단어로 옮겼다 한들 평생을 유전자와 동물행동학 연구에 매진한 그들의 학설이나 추론을 다 받아먹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목소리를 모조리 듣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모든 생물체가 지니고 있는 '유전자' 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리처드 도킨스' 라는 생물학자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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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9-3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읽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유전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도서일 것 같네요. 이름은 많이 들어본 책인데 아직 읽지 못했네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매우맑음 2007-09-30 21:17   좋아요 0 | URL
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학서의 고전으로 꼽힐만한 책이니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
 
바람의 화원 2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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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숨가쁘게 읽었다.  쉴 새없이 책장이 넘어갔다.  재미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에 대해 다룬 소설이라기에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당대 내로라 하는 화원이었음은 물론 오늘날까지 귀 익은 훌륭한 화원이다.  이 둘을 다룬 소설이라는데 더 이상 흥미진진할 수 있으랴?  이 책은 그들의 그림을 소개함은 물론 그들 그림의 차이와 감상법까지 일러주는 친절한 책이다.  더불어 해설까지 되어있으니....  그림과 동시에 김홍도와 신윤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그림만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쓰인 소설인지 아니면 실로 그러한 일들이 그들 사이에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때문에 모호한 느낌마져 든다.

  참 예술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릴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추리소설과도 같으며 심심치 않은 반전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실존 했던 인물의 성별까지 바꾸어 버리는 것은 조금 고얀 짓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하지만 역사의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려버려 혼동을 야기한다면 글쎄....  조금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전에는 관심도 없던 한국화를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도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많이 보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한국화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화려하고 유려한 서양화쪽이 더 그럴 듯해 보였다.  서양화에서만 허락되는 추상화 또한 그 매력에 매력을 가미하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민화와 동양화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렇게도 많이 보았던 김홍도의 '씨름' 이라는 작품도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 그림들이 서양화 못지 않은 멋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닳은 듯 싶다.

  이 책에 관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는 것만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으며 또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더욱이 지금 더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 투성이가 될까봐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정명씨의 소설로는 이 소설이 처음이었는데 <뿌리깊은 나무>도 읽어보고 싶다.  오랫만에 정말 흥미로운 소설을 읽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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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자모역사소설 1
림종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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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에 대해 말해 보시오'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그를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독립 운동가이자 그간 심심찮게 보아 온 약지 잘린 손도장의 주인이라며 꽤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을 것이다.  어쩌면 입가의 미소까지 지었을런지 모르겠다.  한데 ‘그리고 또요’ 하며 호기 어린 눈으로 내 입이 더 말하기를 채근한다면....  나는 어떤 말도 더 잇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가늘게 한 숨을 쉴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책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북한에서 창작하여 공연하던 연극을 소설로 옮긴 것이란다.  북한소설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그네들에게 ‘소설’ 같은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여담으로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냐는 혹자의 말에 ‘북한소설을 읽는다’ 하니 ‘그런거 읽으면 안될텐데...’ 하며 말꼬리를 감추는 게 아닌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북한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거니와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처럼 세련되고 문학적으로 훌륭한 작품이 있다는데 새삼 놀랐으며 그들 소설에 담긴 역사정신과 한민족 의식은 오히려 우리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도 훌륭한 북한문학이 남한에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것이 아니라 이 참에 남과 북에 가로놓인 삼팔선을 허물고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하나되는 그 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내 안에 이는 것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귀 익지 않은 북한 말들....  그러나 그것이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큰 방해요인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외래어 사용을 가급적 피하며 본래의 한국 언어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의지를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이등박문’ 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는가.  지금 당장 길로 나가 지나는 이 여럿에게 물어보아도 이등박문 보다는 이토 히로부미로 알고 있는 자들이 갑절은 많을 게다.  그리고 눈을 돌려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  얼마나 많은 외래어와 외국어 간판이 있는지.  물론 이 책의 배경이 된 당시에는 서양 문화 유입이 통상적이지 않았으며 서로 왕래가 교류가 부족했던 때였으니 외래어나 외국어가 적은 것은 당연한게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 북한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로 인해 웃음을 참지 못한 일이 있다.  더불어 고유의 것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와 때 묻지 않은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여 심심찮은 감동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목댕기’ 라는 단어였다.  목댕기는 오늘날 남성의 양복 와이셔츠 목 언저리에 두르는 천 조각, 바로 ‘넥타이’ 이다.  북한 말들을 들어 보지도 말해 보지도 못했지만 소통에 큰 어려움을 없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가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 이토록 변화무쌍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이 또 있을까.  김명국의 야반도주 장면에서는 줄행랑치는 자가 김명국이 아니라 마치 나인냥 초조한 긴장감에 휩싸였고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하던 장면에서는 도저히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 앞에서 코를 베어가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하는 내 조국이 안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규설이 그들의 손에 끌리어 나갈 때의 통분함은 또 어찌하랴.  이완용, 송병준과 같은 변절자들에게 가슴 구석이 옥죄이는 울분과 배신감에 붉어지는 낯을 뒤로 하고 화를 삼켜야 하기도 했다.

 

  국채를 갚아내려 담뱃대를 꺾고 가락지고 비녀고 모조리 빼어 내는 손길들을 보니 월드컵 당시 붉은 물결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던 그 기백이 예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김명국과 최순영의 죽음에 급기야 목구멍을 얼얼해지는가 싶더니 참던 눈물이 기어코 쏟아졌다.  차라리 눈물을 쏟아내는게 나았다.  그 조차도 하지 않았으면 가슴 안에 꽉 들어찬 그 무언가를 도저히 풀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안중근이 포로된 미조부찌를 놓아주는 장면에서는 의병들과 매한가지로 나 또한 불만스러웠으며 솔직히 모진 앙갚음을 해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도주의적 처사는 그의 인애한 성품의 발로였으며 그의 참된 인간다움에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미조부찌와의 재회라니.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라손 치기에는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그러면서 미조부찌 역시 안중근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거니, 양심은 있겠거니 했건만.  가면을 뒤집어 쓴 듯 다른 태도를 보이는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와 동시에, 한 번 받은 감화나 감동으로 사람의 인품이 온전히 바뀌기는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애시당초 미조부찌를 알아채고도 모른 척 한 안중근의 처신에 한 번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역시 대장부요, 세상 어디를 뒤져도 쉬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위인이 아니구나 싶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등박문의 가슴에 탄환을 박던 날, 그간 삭아지지 못한 채 가슴속을 막고 있던 것이 일순간에 터져버리는 듯 했다.  조국의 원수를 통쾌하게 응징하고 구국을 향한 광명이 비추이던 날, 가슴이 뜨거워지며 온 몸의 맥이 일제히 뛰는 듯 했다.  걷히었노라!  회색 구름은 걷히고 드디어 이 땅에 빛이 내리 쬘 순간이어라!  그런 기분도 잠시, 혼신을 받쳐 싸웠건만 그들은 그에게서 육신을 거두어 갔다.  비굴할지언정 제 목숨 부지할 길은 있었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그의 모습에 가슴 에이는 슬픔을 느껴야만 했다.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조바심 내지 아니하고 오로지 나라 향한 충심과 절개를 굽히지 않다니.  이 얼마나 충직하고 용맹스러운 모습인가.  

  책을 읽기 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그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앞에 나는 부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내 어찌 오로지 구국을 위해 숨 한포기 아끼지 않은 당신을 이토록 모를 수 있었단 말인가.  어찌 일본의 식민으로 온갖 굴욕과 모욕을 감내하며 타들어 간 그 가슴을 몰랐단 말인가.  피가 땀같이 흘렀을 그대들을 생각지 않았단 말인가.  학창시절에(만) 펼쳐 보았던 국사책에서 기록된 ‘그저 훌륭한 일 하다 간 위인’ 정도로만 기억하는 무례를 범했단 말인가.  내 나라 역사를 모르고, 진정 애국을 모르고 어찌 그의 업적만 밑줄 쳐가며 달달 외웠단 말인가.

 

  이 책은 이렇듯 나를 부끄럽게 했다.  책장을 덮고 난 지금,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  그의 충정어린 애국심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한 인간으로 보더라도 그토록 강인하고 곧은 정신이 내게 있다 자신할 수 있을까.  소나무같이 변치 아니하며 대나무같이 줏대 있게 곧다 할 수 있을까.

 

  남과 북을 오가며 펼치었던 독립운동.  그러나 이제는 서로 넘지 못할 곳이 되어 총부리를 맞댄 채 서로를 겨낭하는 분절된 조국을 보고 안중근은, 그와 뜻을 같이했던 조국의 순국 열사들은 무어라 하겠으며 어찌 평온히 잠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백절불굴이라 했던가?  넘어져도 쓰러져도 주저앉지 않고 기어코 일어나는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다.  끝내 이루어내고야 마는 우리란 말이다.  다시 한 번 뜻을 모아야 할 때다.  총과 칼을 거두어 고요하던 한반도를 되찾아야 할 때다.  아름다운 그 땅과 이 땅을 찢어발기었던 흔적조차 없이 하나의 반도상태로 돌리워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야 할 것이다.  잃어버렸던 내 나라를 되안겨준 숭고한 넋들이여!  빛에 바래지도 않겠거니와 바람에 쓸려가지도 않을 고귀한 정신이여!  소인의 시를 마음으로 드리오니 부디 그토록 되찾으려 열망했던 이 나라 위에서 참지 못할 기쁨을 마음껏 누리소서.   


빛이여 혼이여

 

 

빛이여 혼이여

내 것 아니라 조국 것이라

내어놓은 그 숨결 위에

이 나라 섰습니다.

 

 

내어놓은 호흡에도 모자라

나자빠진 육신 위에

이 나라 있습니다.

 

 

한반도 물들은

그대들의 붉은 선혈

영영히 씻어내지 않겠습니다.

정녕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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