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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ㅣ 자모역사소설 1
림종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안중근에 대해 말해 보시오'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그를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독립 운동가이자 그간 심심찮게 보아 온 약지 잘린 손도장의 주인이라며 꽤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을 것이다. 어쩌면 입가의 미소까지 지었을런지 모르겠다. 한데 ‘그리고 또요’ 하며 호기 어린 눈으로 내 입이 더 말하기를 채근한다면.... 나는 어떤 말도 더 잇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가늘게 한 숨을 쉴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책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북한에서 창작하여 공연하던 연극을 소설로 옮긴 것이란다. 북한소설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그네들에게 ‘소설’ 같은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여담으로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냐는 혹자의 말에 ‘북한소설을 읽는다’ 하니 ‘그런거 읽으면 안될텐데...’ 하며 말꼬리를 감추는 게 아닌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북한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거니와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처럼 세련되고 문학적으로 훌륭한 작품이 있다는데 새삼 놀랐으며 그들 소설에 담긴 역사정신과 한민족 의식은 오히려 우리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도 훌륭한 북한문학이 남한에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것이 아니라 이 참에 남과 북에 가로놓인 삼팔선을 허물고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하나되는 그 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내 안에 이는 것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귀 익지 않은 북한 말들.... 그러나 그것이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큰 방해요인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외래어 사용을 가급적 피하며 본래의 한국 언어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의지를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이등박문’ 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는가. 지금 당장 길로 나가 지나는 이 여럿에게 물어보아도 이등박문 보다는 이토 히로부미로 알고 있는 자들이 갑절은 많을 게다. 그리고 눈을 돌려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 얼마나 많은 외래어와 외국어 간판이 있는지. 물론 이 책의 배경이 된 당시에는 서양 문화 유입이 통상적이지 않았으며 서로 왕래가 교류가 부족했던 때였으니 외래어나 외국어가 적은 것은 당연한게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 북한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로 인해 웃음을 참지 못한 일이 있다. 더불어 고유의 것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와 때 묻지 않은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여 심심찮은 감동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목댕기’ 라는 단어였다. 목댕기는 오늘날 남성의 양복 와이셔츠 목 언저리에 두르는 천 조각, 바로 ‘넥타이’ 이다. 북한 말들을 들어 보지도 말해 보지도 못했지만 소통에 큰 어려움을 없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가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 이토록 변화무쌍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이 또 있을까. 김명국의 야반도주 장면에서는 줄행랑치는 자가 김명국이 아니라 마치 나인냥 초조한 긴장감에 휩싸였고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하던 장면에서는 도저히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 앞에서 코를 베어가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하는 내 조국이 안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규설이 그들의 손에 끌리어 나갈 때의 통분함은 또 어찌하랴. 이완용, 송병준과 같은 변절자들에게 가슴 구석이 옥죄이는 울분과 배신감에 붉어지는 낯을 뒤로 하고 화를 삼켜야 하기도 했다.
국채를 갚아내려 담뱃대를 꺾고 가락지고 비녀고 모조리 빼어 내는 손길들을 보니 월드컵 당시 붉은 물결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던 그 기백이 예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김명국과 최순영의 죽음에 급기야 목구멍을 얼얼해지는가 싶더니 참던 눈물이 기어코 쏟아졌다. 차라리 눈물을 쏟아내는게 나았다. 그 조차도 하지 않았으면 가슴 안에 꽉 들어찬 그 무언가를 도저히 풀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안중근이 포로된 미조부찌를 놓아주는 장면에서는 의병들과 매한가지로 나 또한 불만스러웠으며 솔직히 모진 앙갚음을 해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도주의적 처사는 그의 인애한 성품의 발로였으며 그의 참된 인간다움에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미조부찌와의 재회라니.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라손 치기에는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그러면서 미조부찌 역시 안중근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거니, 양심은 있겠거니 했건만. 가면을 뒤집어 쓴 듯 다른 태도를 보이는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와 동시에, 한 번 받은 감화나 감동으로 사람의 인품이 온전히 바뀌기는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애시당초 미조부찌를 알아채고도 모른 척 한 안중근의 처신에 한 번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역시 대장부요, 세상 어디를 뒤져도 쉬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위인이 아니구나 싶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등박문의 가슴에 탄환을 박던 날, 그간 삭아지지 못한 채 가슴속을 막고 있던 것이 일순간에 터져버리는 듯 했다. 조국의 원수를 통쾌하게 응징하고 구국을 향한 광명이 비추이던 날, 가슴이 뜨거워지며 온 몸의 맥이 일제히 뛰는 듯 했다. 걷히었노라! 회색 구름은 걷히고 드디어 이 땅에 빛이 내리 쬘 순간이어라! 그런 기분도 잠시, 혼신을 받쳐 싸웠건만 그들은 그에게서 육신을 거두어 갔다. 비굴할지언정 제 목숨 부지할 길은 있었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그의 모습에 가슴 에이는 슬픔을 느껴야만 했다.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조바심 내지 아니하고 오로지 나라 향한 충심과 절개를 굽히지 않다니. 이 얼마나 충직하고 용맹스러운 모습인가.
책을 읽기 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그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앞에 나는 부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내 어찌 오로지 구국을 위해 숨 한포기 아끼지 않은 당신을 이토록 모를 수 있었단 말인가. 어찌 일본의 식민으로 온갖 굴욕과 모욕을 감내하며 타들어 간 그 가슴을 몰랐단 말인가. 피가 땀같이 흘렀을 그대들을 생각지 않았단 말인가. 학창시절에(만) 펼쳐 보았던 국사책에서 기록된 ‘그저 훌륭한 일 하다 간 위인’ 정도로만 기억하는 무례를 범했단 말인가. 내 나라 역사를 모르고, 진정 애국을 모르고 어찌 그의 업적만 밑줄 쳐가며 달달 외웠단 말인가.
이 책은 이렇듯 나를 부끄럽게 했다. 책장을 덮고 난 지금,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 그의 충정어린 애국심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한 인간으로 보더라도 그토록 강인하고 곧은 정신이 내게 있다 자신할 수 있을까. 소나무같이 변치 아니하며 대나무같이 줏대 있게 곧다 할 수 있을까.
남과 북을 오가며 펼치었던 독립운동. 그러나 이제는 서로 넘지 못할 곳이 되어 총부리를 맞댄 채 서로를 겨낭하는 분절된 조국을 보고 안중근은, 그와 뜻을 같이했던 조국의 순국 열사들은 무어라 하겠으며 어찌 평온히 잠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백절불굴이라 했던가? 넘어져도 쓰러져도 주저앉지 않고 기어코 일어나는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다. 끝내 이루어내고야 마는 우리란 말이다. 다시 한 번 뜻을 모아야 할 때다. 총과 칼을 거두어 고요하던 한반도를 되찾아야 할 때다. 아름다운 그 땅과 이 땅을 찢어발기었던 흔적조차 없이 하나의 반도상태로 돌리워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야 할 것이다. 잃어버렸던 내 나라를 되안겨준 숭고한 넋들이여! 빛에 바래지도 않겠거니와 바람에 쓸려가지도 않을 고귀한 정신이여! 소인의 시를 마음으로 드리오니 부디 그토록 되찾으려 열망했던 이 나라 위에서 참지 못할 기쁨을 마음껏 누리소서.
빛이여 혼이여
빛이여 혼이여
내 것 아니라 조국 것이라
내어놓은 그 숨결 위에
이 나라 섰습니다.
내어놓은 호흡에도 모자라
나자빠진 육신 위에
이 나라 있습니다.
한반도 물들은
그대들의 붉은 선혈
영영히 씻어내지 않겠습니다.
정녕 외면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