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표지를 봤을 때, 머드팩을 하는 세 남자같아 웃음이 났었다.  이 이야기는 복면 쓴 남자들이 머드팩 하는 남자들로 보이는데 비할만큼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였다.  이 우스꽝스런 표지에 20세기 걸작 미스터리 1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뭔가 카리스마까지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미스터리라고 부르기엔 뭔가 석연찮다.  오히려 명랑소설이라 부르는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국내에서 최근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데 관심이 갔다.  

  이 책 <대유괴>는 말 그대로 큰 유괴다.  이 사건이 실제했다면 초대형 유괴사건임은 물론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사건으로도 손꼽혔을 것이다.  또 하나, 이 사건의 시작은 명백한 유괴였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유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상천외한 할머니를 '스스로 유괴된 할머니' 라고 할 수 있을까?  유괴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는 쓸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스스로 유괴범과 공범이 된 할머니' 라는 뜻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유괴범과 유괴된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할머니와 손자지간 같기도 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서로 조언을 얻고 도움을 주며 의지하는 모습은 실제 할머니와 손자지간에서 볼 수 있는 그 보다 더 막역한 사이다. 

  유괴된 천재 할머니의 유괴범 지휘는 대범하기까지 하다.  유괴범이 요구한 몸값에 버럭(!)하며 그것을 스스로 인상할 할머니라니 역시 엽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이 천재 할머니 심성 고우시고 자선사업 많이 하신 할머니시라니 망정이지 심사가 조금만 뒤틀린 고약한 할머니였다면 바로 야쿠자 보스쯤 되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선량함과 유괴범들의 순진무구함이 만난 유쾌한 범죄(?)소설이다.  

  그러나 '역시 소설이니까' 라는 전제없이 읽기에는 그저 우스운 소설일 뿐이다.  소설 속 할머니는 여든 두살의 노령으로 나오는데 솔직한 말로 여든 두 살에 그 정도 카리스마를 발휘한다는게 가능할까?  '세월 앞에 장사없다' 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영악(?)하고 순발력 있는 이런 노인네가 과연 있을까?  혈기왕성한 장정 셋을 좌지우지할만큼 상황판단을 하고 사건의 핵심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것이 여든이 넘은 노인에게서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책 속이나 시트콤과 같은 드라마가 아니고는 찾기 힘들 것이다.  소설 속 할머니의 나이는 억지였다. 

  또 '역시 소설이니까' 라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은....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온 국민을 대상으로 명색이 공영방송에서 범인들의 요구대로 방송이라는 매체로 대대적인 실시간 보도가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제 아무리 거물급 인사라 하더라도, 몸값으로 제시한 금액이 너무 크다 하더라도, 자선사업으로 사회에 명망높은 어르신이 유괴되었다 하더라도....  방송을 통해 교섭하는 것을 쉽게 응할 수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국민들에게 이에 대해 낱낱이 보도하는 것이 위험한 것은 아닐까?  이 역시 소설이기에 가능했던게 아닐까?    

  그러나 이 책은 참 신선하다.  유괴라는 비정한 사건이 이처럼 달짝지근한 이야기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지 않을까?  소재의 느낌을 완전 뒤엎어 버리는 산뜻발칙한 소설이다.  게다가 훈훈하기까지 하다니.  역시 일본소설이다.  기발하고 참신하다.  이것이 일본 소설이 무수히 많은 국내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이 아닐까?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신선하고 새롭다는 느낌.  <대유괴> 할머니에게서 풋풋한 소녀의 기운이 발그스레 묻어나는 발랄하고 유쾌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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