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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에 이처럼 지은이들의 이름이 크게 새겨진 책이 또 있을까? 오히려 지은이가 누군지 꽤 유심히 들여다봐야 알만한 책들을 찾기가 더 쉬울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최인호씨와 김점선씨 때문이었다. 최인호씨 하면 문학계의 대부요, 김점선씨는 미술계의 대모 정도 되지 않는가. 물론 나는 이 정도로 밖에 말할 수 없다. 최인호씨의 문학을 낱낱이 파고드는 독자도 아니거니와 김점선씨의 그림을 한 점도 갖고 있지 못한 독자일 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상하리만치 두 작가의 이름을 보고는 이 책을 믿어 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 도란 도란 두런 두런 사는 이야기, 시끌 시끌 벅적 벅적 세상 이야기.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또한 최인호씨를 곁에 두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할 사적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던 책이다. 평소 수필은 가까이 하지 않던 탓인지 수필하면 피천득씨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역시 수필을 대하는 기분으로 읽어서인지 피천득씨가 생각났다. 굳이 비교할 일도 아니고 비교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느껴지는 대로를 이야기 해보자면, 피천득씨의 글이 졸졸졸 샘물이라면 최인호씨의 이 글들은 찰랑찰랑 강물이다. 피천득씨가 포근하게 불어보는 봄바람 같다면, 최인호씨는 뜨거운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같다. 계절에 비하다보니 가을이 아니 떠오를 수 없지. 가을은 전혜린씨다. 전혜린씨는 스걱스걱 낙엽이 발 아래 바스라지는 가을 같다. 그렇담 겨울은? 허허 갈 수록 가관이다. 자자, 이제 그만.
그리고 이 책은 수필이면서 동시에 내게는 자서전 같은 책이었다. '아, 최인호씨가 신춘문예에 고2때 입상을 했구나' '그도 나처럼 햇볕을 좋아하는구나' 등등.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 그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 소소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최인호씨는 우리의 인생을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은 찬란한 꽃들' 에 비유했다. 이 책 꽃밭은 그 정원에 심겨진 꽃의 생김새를 살펴보고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김점선씨의 소박한 삽화들이 더욱 더 그런 맛을 잘 전해준 것 같다. 그림들은 추상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어렵지 않아 편안하고 소박해서 정겹고 따뜻하다. 그림을 이해하려 기를 쓰지 않아도, 미간의 힘을 풀고 그저 보기만 하면 되는 솔직한 그림들.... 김점선씨 그림의 매력에 더욱 푹 빠지게 되었다.
인생.... 이토록 짧은 단어의 모습이지만 이토록 복잡, 묘연한 것이 또 있을까? 노래를 하지 못하는 아내 대신에 노래를 대신 해주고, 나와 눈길 닿는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내는 것, 제라늄이 죽을까 자신의 병든 몸을 이끌고 병원을 탈출하는 것처럼 삶에, 생명에, 사랑에 애정을 갖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런 모습이야말로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겨진 그 찬란한 꽃들을 잘 가꾸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