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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것의 출발이 우연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무방비의 상태로 만나게 된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정보도 일절 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잠시 후에 이야기 하도록 하자.
일상에서 항시 나와 동행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커피, 카메라 그리고 책이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유 모를 무기력에 빠지거나 급기야 그것을 찾아다니게 되고 만다. 이런 상태를 칭하고자 '중독'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겠지. 그 중에서 나는 지금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어디론가 갈 때면 읽을 꼭 책을 챙기는 편이다. 나의 평균 독서 속도와 그 곳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독서하는데 쓸 수 있는지를 잘 계산해서 그 보다 한 두권 정도 여유롭게 가져가는 편이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날 때의 내 짐들 중에서는 읽을 책의 무게와 부피와 만만찮다.
그 날 나는 여름 휴가를 고향으로 보낼 심산으로 옷가지가 든 가방, 읽을 책 한 꾸러미를 들고 역으로 향했다.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책을 갖고 나서지만 항상 책이 있는 곳에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가는 역에는 개찰구를 통과해 들어가면 플랫폼으로 내려가기 전 도서가판대가 서있을 때가 많다. 그 날 역시 도서가판대가 세워져 있었고 정가보다 저렴한 값에 팔리는 시시콜콜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 천자문, 음식궁합, 로맨스 문고, 무협소설 등.... 그 곳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이 그 곳에 있었다는 자체가 참 불명예스러울 정도로 저급한 책들 더미에서 였다. 더군다나 한 권 밖에 없던 책을 집어들고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그런 무리의 책들 속에서 (어떻게 끼이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책을 구원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올랐다. 이 책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런 책더미 속에서 건진 책이래봐야 별 볼 일 없지 않겠냐고 생각할지도. 그러나 나는 분명 이 책은 누군가의 실수로 그 곳에 놓여지게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쓰는 것 역시 좋아한다. 그동안 쓴 소설과 시들 또한 적지 않다. 이런 말 참 우습기도 하겠고 콧방귀가 절로 나오리라 생각하지만, 나의 꿈은 작가이다. 나의 꿈을 꿈이라고 소개한다는데 이것에 대해 너무 아연실색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글짓기에 대해 따로 공부해 본 일이 없다. 이것은 일종의 나의 핸디캡이기도 하다. '정통'이 아니라는 것 '비주류' 라는 것은 항상 나를 주춤대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작문에 대해 부던히 배우고 노력해야 겠지만 여지껏 쓰여지는 대로 쓰는 것이 진리라 생각하며 글을 가지고 수많은 죄악을 범해 왔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활자로 죄악을 범치 않기로 다짐하며.
이외수 선생님의 글은 참 명쾌하다. 그리고 살아있다. 글이 살아 벌레같이 마꾸 꿈틀대며 삽시간에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그의 산문집도 소설도 아닌 단지 문예창작을 위한 책임에도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유인 즉슨, 그의 언어는 생어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언어라는 얘기다. 문장 안의 단어들이 그들 각기의 성격을 역동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생어를 쓰고 있는가? 생어는 쉽게 말하자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 오감들을 각성시키는 단어다. 단어의 속성을 파악하고 그런 단어들을 채집하는 것이 글쓰기전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글을 쓰다 떠오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적절한 단어를 쓰면 되지 구태여 단어를 채집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실제 예를 들어 열거해둔 단어채집들을 보며 이를 실천하고 연습한다면 훨씬 더 풍성한 단어를 구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떡과 고추장만 가지고 만든 떡볶이와 떡, 고추장, 어묵, 카레가루 등, 여러가지 재료로 요리한 그것의 맛이 서로 다르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외수 선생님은 문장을 꾸미고 지나친 수식을 가하는 일, 지적허영에 빠지는 것을 조심하라고 단언하고 있다. 뜨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멋있게, 좀 더 그럴 듯 하게, 소위 말해 있어 보이는 문장을 쓰려고 발버둥을 친 적은 없는가? 당체 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허황된 문장을 열거하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어휘를 구사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끝까지 읽기 힘든 글을 쓴 적은 없는가? 감정을 철저히 배재한 채 어려운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된 문장을 보고 지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고개가 끄덕여 진다면 그대는 지적 허영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치는 말아라. 그것을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누군가의 가슴에 스밀 수 있는 글을 쓰려거든 지금부터라도 당장 가식과 욕심과 허영을 버리자.
그리고 이 책은 수사법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직유법, 은유법, 활유법, 의인법, 제유법, 대유법, 과장법, 점층법, 반복법, 설의법, 돈호법, 대구법, 대조법.... 이 것 같기도 하고 저 것 같기도 한 많은 수사법들을 예문을 들어 특징을 알고 정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 영어든 국어든 문법이라는 것은 참으로 따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예문들은 문장 하나 하나가 가치로운 것들이라 그것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부분이 수사법에 대한 설명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이 책 모든 페이지가 그러하다. 모든 페이지가 재미있다. 그리고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이외수씨는 진정 언어의 연금술사구나' 싶었다. 그리고 스승이 하는 일은 제자가 다 알 수 없지만 그의 언어 연금술 과정을 어깨너머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즐거웠다.
그 밖에 모두 열거하기 어려운 글짓기의 핵심을 이 책은 담고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느낀 바를 쓴다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정리하고 또 읽어 줄 누군가와 느낌을 나누기 위함이지 이 책을 요약하기 위함이 아니니 내용에 대해서는 이 정도 하려 한다. 자, 이제 좀 더 맛깔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언어가 제 힘을 발하는 글을 지을 수 있을까? 물론 연습에 연습이 거듭되어야 겠지. 그렇지만 이 책을 덮고난 지금, 어떤 희망 한 줄기가 움찔대는 것을 느낀다. 매진하자! 매진하자! 글을 쓰는 일에 매진하자! 어느 덧 그대 역시 하늘을 날으는 카펫 위에 앉아 두둥실 떠올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