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지음 / 동방미디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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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것의 출발이 우연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무방비의 상태로 만나게 된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정보도 일절 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잠시 후에 이야기 하도록 하자. 

  일상에서 항시 나와 동행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커피, 카메라 그리고 책이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유 모를 무기력에 빠지거나 급기야 그것을  찾아다니게 되고 만다.  이런 상태를 칭하고자 '중독'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겠지.  그 중에서 나는 지금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어디론가 갈 때면 읽을 꼭 책을 챙기는 편이다.  나의 평균 독서 속도와 그 곳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독서하는데 쓸 수 있는지를 잘 계산해서 그 보다 한 두권 정도 여유롭게 가져가는 편이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날 때의 내 짐들 중에서는 읽을 책의 무게와 부피와 만만찮다.  

  그 날 나는 여름 휴가를 고향으로 보낼 심산으로 옷가지가 든 가방, 읽을 책 한 꾸러미를 들고 역으로 향했다.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책을 갖고 나서지만 항상 책이 있는 곳에서는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가는 역에는 개찰구를 통과해 들어가면 플랫폼으로 내려가기 전 도서가판대가 서있을 때가 많다.  그 날 역시 도서가판대가 세워져 있었고 정가보다 저렴한 값에 팔리는 시시콜콜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  천자문, 음식궁합, 로맨스 문고, 무협소설 등....  그 곳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이 그 곳에 있었다는 자체가 참 불명예스러울 정도로 저급한 책들 더미에서 였다.  더군다나 한 권 밖에 없던 책을 집어들고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그런 무리의 책들 속에서 (어떻게 끼이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책을 구원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올랐다.  이 책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런 책더미 속에서 건진 책이래봐야 별 볼 일 없지 않겠냐고 생각할지도.  그러나 나는 분명 이 책은 누군가의 실수로 그 곳에 놓여지게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쓰는 것 역시 좋아한다.  그동안 쓴 소설과 시들 또한 적지 않다.  이런 말 참 우습기도 하겠고 콧방귀가 절로 나오리라 생각하지만, 나의 꿈은 작가이다.  나의 꿈을 꿈이라고 소개한다는데 이것에 대해 너무 아연실색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글짓기에 대해 따로 공부해 본 일이 없다.  이것은 일종의 나의 핸디캡이기도 하다.  '정통'이 아니라는 것 '비주류' 라는 것은 항상 나를 주춤대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작문에 대해 부던히 배우고 노력해야 겠지만 여지껏 쓰여지는 대로 쓰는 것이 진리라 생각하며 글을 가지고 수많은 죄악을 범해 왔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활자로 죄악을 범치 않기로 다짐하며.

  이외수 선생님의 글은 참 명쾌하다.  그리고 살아있다.  글이 살아 벌레같이 마꾸 꿈틀대며 삽시간에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그의 산문집도 소설도 아닌 단지 문예창작을 위한 책임에도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유인 즉슨, 그의 언어는 생어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언어라는 얘기다.  문장 안의 단어들이 그들 각기의 성격을 역동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생어를 쓰고 있는가?  생어는 쉽게 말하자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 오감들을 각성시키는 단어다.  단어의 속성을 파악하고 그런 단어들을 채집하는 것이 글쓰기전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글을 쓰다 떠오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적절한 단어를 쓰면 되지 구태여 단어를 채집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실제 예를 들어 열거해둔 단어채집들을 보며 이를 실천하고 연습한다면 훨씬 더 풍성한 단어를 구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떡과 고추장만 가지고 만든 떡볶이와 떡, 고추장, 어묵, 카레가루 등, 여러가지 재료로 요리한 그것의 맛이 서로 다르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외수 선생님은 문장을 꾸미고 지나친 수식을 가하는 일, 지적허영에 빠지는 것을 조심하라고 단언하고 있다.  뜨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멋있게, 좀 더 그럴 듯 하게, 소위 말해 있어 보이는 문장을 쓰려고 발버둥을 친 적은 없는가?  당체 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허황된 문장을 열거하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어휘를 구사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끝까지 읽기 힘든 글을 쓴 적은 없는가?  감정을 철저히 배재한 채 어려운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된 문장을 보고 지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고개가 끄덕여 진다면 그대는 지적 허영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치는 말아라.  그것을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누군가의 가슴에 스밀 수 있는 글을 쓰려거든 지금부터라도 당장 가식과 욕심과 허영을 버리자.

  그리고 이 책은 수사법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직유법, 은유법, 활유법, 의인법, 제유법, 대유법, 과장법, 점층법, 반복법, 설의법, 돈호법, 대구법, 대조법....  이 것 같기도 하고 저 것 같기도 한 많은 수사법들을 예문을 들어 특징을 알고 정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 영어든 국어든 문법이라는 것은 참으로 따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예문들은 문장 하나 하나가 가치로운 것들이라 그것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부분이 수사법에 대한 설명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이 책 모든 페이지가 그러하다.  모든 페이지가 재미있다.  그리고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이외수씨는 진정 언어의 연금술사구나' 싶었다.  그리고 스승이 하는 일은 제자가 다 알 수 없지만 그의 언어 연금술 과정을 어깨너머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즐거웠다.

  그 밖에 모두 열거하기 어려운 글짓기의 핵심을 이 책은 담고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느낀 바를 쓴다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정리하고 또 읽어 줄 누군가와 느낌을 나누기 위함이지 이 책을 요약하기 위함이 아니니 내용에 대해서는 이 정도 하려 한다.  자, 이제 좀 더 맛깔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언어가 제 힘을 발하는 글을 지을 수 있을까?  물론 연습에 연습이 거듭되어야 겠지.  그렇지만 이 책을 덮고난 지금, 어떤 희망 한 줄기가 움찔대는 것을 느낀다.  매진하자!  매진하자!  글을 쓰는 일에 매진하자!  어느 덧 그대 역시 하늘을 날으는 카펫 위에 앉아 두둥실 떠올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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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2 - 군주의 자리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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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테메레르 1>을 읽고 사랑스러운 테메레르와 로렌스에게 푹 빠져 학수고대 하고 뒷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리 오래지 않아 <테메레르 1>의 여흥이 채가시기도 전에 <테메메르 2>가 나와주어 참 반가웠다.  일전에도 말한 바, 나는 판타지라고는 읽어 본 일이 적다.  사실 그간 판타지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아직도 판타지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테메레르>는 내게 판타지의 매력과 참 면모를 각인시킨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 얇지 않은 두께의 책이지만 책장이 어떻게 넘어가는지 모르게 빠져드는 것 또한 판타지의 매력인 것 같다.   

  그런데 왜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현란한 것으로 독자를 사로잡아 미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테메레르>에 열광하느냐고?  글쎄.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음....   <테메레르>는 판타지가 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을 극복했기에 그런게 아닐까.  비현실성을 탈피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실제했던 역사적인 전장 속에 용들을 투입하므로 리얼리티를 살렸다.  <테메레르>를 읽으면서 나는 용이 실존했으리라는 망상에 빠지곤 하니까 말이다.  이런 망상에 빠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 아닐 것이다.  실제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는 듯한 묘사는 그것에 사실적인 형태를 부여하기까지 한다.   또한 마법을 갖고 있고 어딘가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여느 판타지와 달리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한 인간인 로렌스와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스러운(?) 테메레르를 등장시켜 독자에게 친숙함을 안겨주고 있다.  이것이 내가 테메레르를 사랑하는 이유다.

  <테메레르 1>이 테메레르와 로렌스와 만남, 용들의 세상을 펼쳐보였는가 하면 <테메레르2>는 테메레르의 혈통찾기와 출생의 비밀에 관해 파헤치고 있다.  '용'하면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승천하는 용 그림은 누구나 한 번 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용에 대한 가치평가 역시 동양이 압도적이다.  빤딱한 가죽재킷을 입은 어깨형님들의 벗은 몸 위에는 대개 용 한 마리씩이 누워 있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몸에 새겨진 타투는 대개 변형된 십자가, 해골, 이니셜 따위일 뿐 그들에게서 용을 발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용은 지극히 신비롭고 영험한 상상 속 동물로 유독 동양에서 제값을 치르고 있다.  그런 <테메레르>가 용의 본고장 중국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중국으로의 여정이 다소 긴 듯 해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둘리같던 '테메레르' 에게서 어른스러운 감정이 싹트는 것이 조금 낯설기도 했다.  나는 왜 굳이 테메레르를 피터팬 증후군에 걸린 용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일까?  음....  그 거대한 몸집의 테메레르에게 처음 가졌던 모성애를 계속 쏟아붓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관계란 어떠한 것일까?  어떤 대상과 대상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그것.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우정관계, 테메레르와 어머니 용의 혈연관계, 테메레르와 또 다른 용의 연인관계.  결국 우리는 뿌리냐, 정이냐를 놓고 갈등하게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말도 있잖는가?  음, 쉬운 예를 찾아보면 제 부모를 기억하지 못하는 입양아가 성인이 되어 친부모를 만나고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놓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나를 존재케 한 대상에 대해 무한한 그리움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테메레르는 인간이 아니라 용이 아니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 속 용은 틀림없이 인성을 가지고 있는 의인화된 용인 것을 생각해 보자면 억지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혈연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볼 때, '테메레르가 로렌스를 택함'은 역시 감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후속작은 대개 속편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무의식중에 그러하기도 하고 일부러 그런 비교를 즐기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테메레르 2>는 1편에 비해서는 덜 스펙터클했고 스토리가 늘어졌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뒤 이을 후속작을 포기해버릴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테메레르 3> 을 기다리려 한다.   

  끝으로, 이것이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은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와 각계각층의 큰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은 부담 또한 숨길 수 없을 것이다.  나오미 노빅은 <테메레르> 로 이미 성공했다.  그녀의 이어질 테메레르 시리즈들과 다른 이야기들 또한 전과 같이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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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션展 - 세상을 뒤흔든 천재들
이명옥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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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표지만으로 망설임없이 선택했던 책이다.  존 레논과 그의 일본인 아내 오노가 제일 먼저 보였다.  오노 요코의 그녀의 수많은 기괴한 퍼포먼스들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녀를 한 번 파헤쳐 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눈에 띄는 클림트의 그림까지....  사실 눈길은 잡아 끈 것들은 내가 아는 것이고 결론적으로 나는 아는게 이게 다였다.  예술적은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다닥다닥 붙은 조각사진들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기대만큼 흥미로웠던 책이다. 

  '예술이라는 건 언제나 어려웠고 이해하기 힘들었어.  그렇지만 이렇게 꾸역꾸역 접하다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겠어?' 하는 심정으로 도서관 구석에 꽂힌 예술서적들을 펼친 것만 여러 권이다.  그러나 역시 내가 얻은 결론은 '예술이란 일반적이고 평범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뭔가 아주 독특한 사람들만의 행위지.  역시 어려워' 라는 것이었다.  대개 그런 책들은 독자들의 손을 타지 못하고 그늘 진 책장에 꽂혀 눅눅한 습기 냄새를 뿜어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에 반해 내가 좋아하는 제과점에서 방금 구워낸, 아직 온기가 머물러 있는 보드라운 빵조각 같은 책이었다.  신선했다.  마치 예술가들이 살다간 그 시대에 나를 데려다 둔 듯 했던 책이다.  실감났다.

  표지로 나를 사로잡았던 책, 그 안에서 만난 예술가들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너무나 궁금했던 화가들, 그리고 너무나 귀익은 이름의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  그렇지만 그 밖에 아는 것 없는 나에게 이 책의 예술가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내가 이 책을 타임머신 삼아 그 시대로 이동해서인지, 예술가들이 책 속에서 살아있어서 그랬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내가 예술가들을 만나는 수단이 되었건,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마을 그 자체이건,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들에 대해, 아니 혐오하던 것들에 대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동성애, 사디즘 같은 것들이다.  역시 그것들을 아직도 공감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화가의 일화나 일대기는 그가 왜 그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되어 주었고 예술이란 그저 고귀하고 경건하고 엄중하여 모든 이가 우러러 볼만한 높은 차원의 것이기 보다 예술가 그들의 속내와 정신적인 것을 유형으로 혹은 실존하는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예술은 배워야 할 학문이 아니고 느껴야 할 학문이 아닐까?

  그러나 제 아무리 오늘 날 추앙받는 예술가라 할 지언정, 나 역시 그들에게 돌을 던진 무리들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품들도 많았다.  역시 예술이라는 것은 '소통' 이라는 과정을 거쳐 관객들에게 도달하게 되는데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쉬운 예를 찾아 보자면 당신과 내가 대화를 하더라도 어딘가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며 와전되기 십상이다.  그처럼 예술가들은 언어가 아닌 그들 자신의 다양한 것들로 관객과 세상과 또는 자신과 대화하고자 하는게 아닐까?

  예술가들?  나는 이들에게서 4가지 특성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기발한 괴짜다, 용기있는 투사다,  오만한 자기애를 가진 자들이다, 열정적인 광인이다.  그들의 많은 작품들이 재기발랄 했다.  경탐과 경악과 감동과 탄성을 자아내는 작품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안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투사들이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누가 내 글을 놓고 '이걸 글이라고 쓰시오?  기본도 없는 글이요' 하고 질타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거나 평생 그 사람을 가슴에 품으며 나를 절망시킨 나쁜 사람이라며 개탄했으리라.  더불어 그들의 '당신들이 나의 예술을 알기나 해?' 하는 오만방자함.  그러면서 그들은 미치도록 열정적이었다.  이런 예술가적 근성이 내게는 과연 있을까?  

  끝으로 이 책은, 따분하지 않았고 쉬웠고 명쾌했다.  그리고 읽다가 눈으로 대충 훑고 덮어버려야 할 만큼 어렵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일일히 해석하고 나열함으로 감상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작가에 관한 일화등을 소개함으로써 더욱 더 예술에 한 걸음 다가가고 싶게끔 한 책이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명쾌발랄한 예술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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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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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랑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그것들의 허황된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의 사랑은 언제나 멋져보이고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어 현실과 적잖은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그래서인지 드러내고 핑크빛을 띄우는 소설들은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책 '얼마만큼의 애정' 을 냉큼 집어든 것을 보면 예외는 있는 것인가 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의 표제가 주는 묘한 느낌에 이끌리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은 기존에 접해왔던 로맨스물들과는 달랐다.  먼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아키라와 마사히라라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스낵바의 호스티스인 아키라와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마사히라.  누가 보아도 사랑스럽고 멋있어 보이는 캐릭터들이 난립하는 로맨스와는 달리 일상에서 만나기 쉬운 그들의 사랑이라 더욱 공감이 갔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눈물을 한 움큼 쏟아내는 슬픈 사랑이야기가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랑은 안타깝게도(?) 슬프지는 않았다.  단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정해진 운명이 있고 어떻게든 그것을 따르도록 되어있는 삶이라니....  운명에 순응하며 고분고분하게 살아가야 하는 인생, 그것을 이탈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은 참으로 안타깝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살아가는 방식도 또 사랑하는 방식도 틀리겠지만 나는 삶이란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실제 이 책에서처럼 나는 주변에서 결혼을 앞두고 점술가로 인해 헤어지는 경우를 한 번 보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한 번 보았다.  '아내가 남편을 잡아먹을 팔자야' 라는 한 마디 말에 갈라서게 된 연인을 보았고 '둘이 결혼하면 둘 다 죽어' 라는 말을 듣고도 지금까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부부도 알고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아니 사랑이라는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운명' 이라는 이름을 빌어 그것들을 지켜왔을까?  '너와 나의 만남은 운명이야' '하늘이 맺어 준 인연' 이라는 말들로....  연인이란 사랑할 운명이기에 서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있을 서로의 인생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서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사랑은 안타까웠다.  너무나도 피동적인 삶의 자세와, 사랑의 자세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키라와 마사히라의 갈등과 번민은 운명에 묶이었던 사슬을 풀어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서야 서로 사랑으로 인해 사랑할 수 있게 된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것은 지금 자신 앞에 만들어 놓은 상황과 상태에 대해 자위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릴 수 있도록, 피동적인 삶에 안주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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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피부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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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뱀의 머리가 연상되는 손, 손톱끝에 조로롱 달린 붉은 액체 방울, 고개숙인 분홍꽃을 꼬옥 집은 손가락....  그리고 표제 '차가운 피부'.  '차가운 피부' 라는 제목의 첫 느낌은 인정없고 인간미 없는 인간군상, 바로 냉혈인간이 떠올랐다.  게다가 스페인인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이국적인 느낌에 신선한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무인도라....  무인도는 말 그대로 無人島 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그런데 그 곳에 내가 아닌 다른 한 명의 인간이 더 존재한다면, 그 섬은 무인도일까?  그렇다면 하나 더.  꽤 여러 명의 사람이 살지만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잊은 채 살고 있는 섬이라면, 그 섬은 무인도일까?  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곰곰히 생각해 보노라면 이번에는 인간을 다시 정의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찾아낸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채점할 수 있는 정답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으로 보자면, 전자의 땅의 도착하게 되는 한 남자가 있다.  인간이었으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가는 한 남자.  인간이었을 것이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린 다른 한 남자.  이 두 남자와 알지 못할 괴물(?)들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지,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  절망, 분노, 좌절, 기쁨, 슬픔, 사랑, 쾌락, 아픔, 공포....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섬의 모습이었다.  이 책은 일종의 '감정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랄까?  그러나 유쾌하지는 않다.  아니, 쓸쓸해진다.  마치 내가 이 몹쓸 섬에서 기어코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얻은 자처럼....

  우습지만 나는 아이처럼 잠들기 전 보았던 것이나 생각했던 것들을 꿈으로 꾸게 될 때가 많다.  이 책을 읽고 잠든 날 몇 일동안 그 괴물들이 나타나 총칼을 들고 바티스와 함께 싸웠는지 모른다.  그 꿈은 또 어찌나 실감나는지....  그건 그렇고 나는 이 책 속 괴물들이 정말 무서웠다.  그들을 신비롭게 묘사하는 대목도 몇 있으나 역시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나와 같은 종의 인간에게 더 쉽게 동화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괴물들을 대상으로 싸웠으니 말이다.  우뢰매에나 등장할 법한 그런 괴물들이 어처구니 없을만도 했는데, 나는 정말이지 무서웠다.  공포란, 진심으로 거부하고 혐오하는 대상과 억지로 마주쳐야만 하는데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이 책에서 인간의 본성과 다양한 변모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체의 생존전략과 본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면 너무 장황할까?  모든 생물체들이 그들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인지.  처절하기까지 하다.  생물학적으로 살펴보자면 이미 전쟁은 종을 넘어선 싸움이다.  때로는 다른 개체를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그 섬의 주인은 누구일 것일까?  그들의 싸움 중 정당한 쪽은 누구일 것인가?  한 아름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이 책은 참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읽혀질 수 있는 책이다.  모든 책이 그러하겠지만 이 책은 특히나 더 그러할 것 같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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