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피부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뱀의 머리가 연상되는 손, 손톱끝에 조로롱 달린 붉은 액체 방울, 고개숙인 분홍꽃을 꼬옥 집은 손가락....  그리고 표제 '차가운 피부'.  '차가운 피부' 라는 제목의 첫 느낌은 인정없고 인간미 없는 인간군상, 바로 냉혈인간이 떠올랐다.  게다가 스페인인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이국적인 느낌에 신선한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무인도라....  무인도는 말 그대로 無人島 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그런데 그 곳에 내가 아닌 다른 한 명의 인간이 더 존재한다면, 그 섬은 무인도일까?  그렇다면 하나 더.  꽤 여러 명의 사람이 살지만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잊은 채 살고 있는 섬이라면, 그 섬은 무인도일까?  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곰곰히 생각해 보노라면 이번에는 인간을 다시 정의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찾아낸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채점할 수 있는 정답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으로 보자면, 전자의 땅의 도착하게 되는 한 남자가 있다.  인간이었으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가는 한 남자.  인간이었을 것이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린 다른 한 남자.  이 두 남자와 알지 못할 괴물(?)들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지,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  절망, 분노, 좌절, 기쁨, 슬픔, 사랑, 쾌락, 아픔, 공포....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섬의 모습이었다.  이 책은 일종의 '감정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랄까?  그러나 유쾌하지는 않다.  아니, 쓸쓸해진다.  마치 내가 이 몹쓸 섬에서 기어코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얻은 자처럼....

  우습지만 나는 아이처럼 잠들기 전 보았던 것이나 생각했던 것들을 꿈으로 꾸게 될 때가 많다.  이 책을 읽고 잠든 날 몇 일동안 그 괴물들이 나타나 총칼을 들고 바티스와 함께 싸웠는지 모른다.  그 꿈은 또 어찌나 실감나는지....  그건 그렇고 나는 이 책 속 괴물들이 정말 무서웠다.  그들을 신비롭게 묘사하는 대목도 몇 있으나 역시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나와 같은 종의 인간에게 더 쉽게 동화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괴물들을 대상으로 싸웠으니 말이다.  우뢰매에나 등장할 법한 그런 괴물들이 어처구니 없을만도 했는데, 나는 정말이지 무서웠다.  공포란, 진심으로 거부하고 혐오하는 대상과 억지로 마주쳐야만 하는데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이 책에서 인간의 본성과 다양한 변모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체의 생존전략과 본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면 너무 장황할까?  모든 생물체들이 그들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인지.  처절하기까지 하다.  생물학적으로 살펴보자면 이미 전쟁은 종을 넘어선 싸움이다.  때로는 다른 개체를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그 섬의 주인은 누구일 것일까?  그들의 싸움 중 정당한 쪽은 누구일 것인가?  한 아름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이 책은 참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읽혀질 수 있는 책이다.  모든 책이 그러하겠지만 이 책은 특히나 더 그러할 것 같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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