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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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 두근' 가슴 콩닥이는 사랑의 느낌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한 평생 내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조금 다른 생각이다.  사랑이라는 것, 그것을 지금의 (아직 젊은) 나를 놓고 대입했던게 아닐까?  정말 백발노인에게 첫사랑과 같은 설레이는 사랑이 가능할까?  이 책은 나에게 일흔이 넘은 노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입했을때 산출되는 값을 구하도록 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나서 더 헷갈린다.  사랑은 일평생 가능할꺼야?  몸은 노쇄해도 마음은 소녀처럼 뜨거울꺼야 하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일흔 일곱의 우타코씨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너무나도 불편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같이 느껴졌다.  음....  뭐랄까?  백발의 노인이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거리를 활보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솔직히 일흔일곱의 우타코씨가(더불어 그 또래의 늙은이들이) 섹스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게는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아니, 사랑의 감정으로 두근거리는 모습 또한 내게는 부자연스럽게 보여졌다.  내가 이리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우타코씨가 내게는 전혀 공감가지 않는 캐릭터였던 것 같다.  그녀는 그저 주책스러운 한 늙은 여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녀가 일흔일곱이나 되는 노인이기에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말하는 것은 굉장히 버르장머리 없는 짓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노년기 사랑을 다룬 이야기들은 이 소설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2002)> 라는 영화도 있었고 얼마 전 읽었던 김채원의 <미친 사랑의 노래>에서 쉰(쉰을 노년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말이다)이 넘은 그녀들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겨우 쉰을 넘긴 그녀들이었지만 그녀들의 사랑이 내게는 아주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면서 '육신은 늙을지라도, 그네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사랑을 잠재우고 살아갈 뿐 젊은 육신에게 깃들 법한 사랑이 가능할 것이다' 하고 결론이 내려졌는데 오~  다시 혼란스럽다.  무려 일흔일곱의 할머니에게 사랑이라니. 섹스라니....  오~ 진정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나요?

  이 책을 처음 선택한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미라는 영화의 원작자의 소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책은 내게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니, 주제가 주는 생경함과 낯선 감정이 편하지 않게 읽힌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역시 다나베 세이코답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라는 영화에서는 '장애'에 대해, 이 소설 <두근 두근 우타코씨>에서는 노년기의 사랑에 대해....  외면당하고 소외당하기 쉬운 주제를 그의 따뜻하고 녹록한 감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그의 화두다.

  노년기의 사랑, 섹스....  이런 것은 마치 청소년에게 부모님의 잠자리를 상상하라고 하는 것 만큼 어색했다.  왠지 나의 부모는 그런 끔찍한(?) 행위를 하지 않으리라 믿고 싶은 것처럼 내게도 그랬다.  노년기의 사랑이니, 섹스는  희뿌연 머리의 그들에게는 괜시리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나의 할머니에게 "할머니, 할머니는 맘이 맞는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고 섹스할 수도 있어요?" 하고 물어볼 용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없다....  절대 그런 걸 물을 수는 없다,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노인들의 사랑을 배척하는 것이 나는 아직 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늙어봐야 알겠지.  

  노년기의 사랑.  허리 구부정한 백발의 노인에게 사랑이 가능하리라는 것은 현실이 아닌 우리의 희망이 아닐까?  결코 사랑만은,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오로지 사랑만은, 그것만은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세상 모든 가슴 위에 살아 있기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이자 꿈이 아닐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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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산 수첩 Outdoor Books 5
최선웅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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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명산 수첩이라....  솔직히 처음 이 책을 보고 '우리 나라의 명산이 100군데나?' 했다.  산을 참 좋아하지만 사실 내가 아는 산이래봐야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속리산 정도에 우리 동네 앞산 뒷산 정도가 다이니 말이다.  그런데 100군데의 유명한 산 정보를 총망라한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산을 어렴풋이(?) 좋아하는 내가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 곳으로 직접 걸음을 옮기게 하는 길라잡이가 되리라 하는 기대감도 컸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참 만족스러웠던 책이다. 

   이 책을 한 번 살펴보자면, 그 산의 명칭, 유래, 컬러로 된 산 사진들, 교통편, 숙박 그리고 음식점까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만한 지침서가 또 있을까?  아니 나처럼 이제 막 산과 악수를 나눈 사람에게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다.  늘 곁에 두고 쓰는 전화번호부처럼 오늘 보고 내일 보고 또 보아도 좋을 책이다.  그러기에 이 책을 선뜻 짚어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정보서들은 유통기한이 있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기록된 정보들은 수시로 갱신되거나 내용 첨삭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의 손으로 옮기기 어려운 산이라면 문제는 조금 틀려진다.  결국 이 책은 곁에 두고 오래토록 볼 수 있을 책이라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또 작은 사이즈로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좋고 책의 표지가 아웃도어용으로도 아주 적합하다.  표지가 비닐로 되어 있어 물, 비에도 비교적 강하게 제작이 되어있다.  산으로 떠날때 점퍼 안주머니나 배낭 한 쪽에 넣어다니기에 안성마춤이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은 엮은 책이 아니라 저자가 있다는 사실도 참 마음에 들었다.  다시 말해, 발품 팔아 팔도를 돌며 이름난 산의 정보와 등산코스를 제시한 책이라 하여 더욱 믿음이 간다.  특히 여러 등산코스를 모델로 제시하고 소요시간까지 명시가 되어 있어 본인에게 맞게 등산 난이도를 조절하여 참고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아쉬웠던 점을 들자면 모든 여행서적들은(잡지 부록으로 딸려오는 바캉스 소책자등은 물론) 모두 서울을 기점으로 경로가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긴 서울이 아니고 또 어디를 기점으로 삼을 수 있겠냐마는 말이다.  그러나 5대 도시 정도로 구분을 하여 발간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여느 여행서적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조금이라도 접근을 시도했다면 그야 말로 감동적인 등산가이드서적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은 반드시 산 타기를 좋아하는 등산 애호가가 아니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내 고장에 있는 명산에 대해 알 수 있는 백과사전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말이 있다  '산이 그 곳에 있어 올랐노라'고.  그렇다.  산은 그 곳에 있다.  이제 우리는 등산 메이트 역할을 톡톡히 해 줄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거기 있는 그 산에 오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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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의 감성사진 - 세상에서 제일 멋진 감성사진 찍는 법
레아 지음 / NEWRUN(뉴런)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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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참 좋아한다.  그러나 많고 많은 책들 중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이 책이 사진촬영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에 관해 담은 책이기 보다 '감성' 이라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 조명한 책이라는 것이 너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내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것은 사진은 카메라의 기종, 좋은 렌즈, 멋진 장소, 훌륭한 스킬 모두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찍은 이의 마음' 이라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나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감성'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감성이라는 글자는 너무 반가웠다.  

  이 책은 먼저 휘뤼릭 넘겨보기 아까울 정도의 예쁜 사진들로 가득했다.  책 속 예쁜 사진들을 미리 보고 싶었다.  글자를 읽기보다 먼저 사진만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한 장이라도 미리 보아버려 식상한 맛에 빠지지 않도록 참아가며 차례차례 꼼꼼히 읽고 보았다.  별스럽지 않은 일상의 소품들, 늘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들....  이 모든 것들이 찍는 이에 눈을 통해 마음에서 헹궈내면 그만의 느낌을 담은 사진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사진의 매력이 아닐까?  모두가 같은 것을 보지만 그것을 읽는 방법은 제각각 다르다.  그런 서로의 다른 시각들을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이다.

  또렷하게 잘 잡힌 접사나 몽롱하고 애잔한 느낌의 아웃포커싱이나 빈티지하고 멋스러운 비네팅 효과나 모두 좋다.  하지만 역시 모든 것에는 그것에 진심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사진 뿐 만이 아니다.  글에도 그렇고, 음악에도 그렇다.  진심이 있는가?  진심을 담았는가?  제 아무리 잘난 글솜씨라 한들, 제 아무리 뛰어난 음악가라 한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은 글과 음악으로 존재할 뿐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감동이라는 것을 전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 진심을 잘 담는 것이야 말로 감성을 담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닐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진으로 말 할 수 있듯이 말이다. 

  조리개니 셔터 속도니, 이런 저런 렌즈니....  솔직히, 이 책을 읽어도 완전 초보인 나로서는 다 알 수 없다.  더더군다나 사진에 대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 볼 마음이거나 수려한 스킬을 배우고자 한다면 이 책은 잘못 짚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사진에 담으려 하는 그것에 마음을 담는 법을 알고 싶다면, 그렇다면 이 책을 한 번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따라해보자.  친절한 레아를 따라 한 번, 또 한 번 찰칵 찍어보자.    

  사진은 종이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카메라에 담은 그 날, 그 때의 상황과 기분을 이 사진이라는 녀석이 고스란히 비춰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찰나를 영원으로 담을 수 있는 이 매력적인 것을, 슬슬 한 번 시작해보자.  오늘 하루를 일기로 적어내려가듯, 오늘 나의 하루를 사진으로 담아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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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하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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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탁환씨의 소설로는 두 번 째 읽은 것이다.  그 처음이 <나, 황진이> 였고 이것이 두 번째였다.  먼저 읽은 <나, 황진이>가 예술적 극치에 달한 문체와 아름다운 그만의 표현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것이 김탁환이라는 작가와 나의 첫만남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 소설 역시 김탁환이라는 작가를 내 마음에 자리새김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열하광인> 을 처음 손에 잡고는 쉬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을즈음 곁에 믿음직한 국어사전 한 권 놓여있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물론 주석들이 달려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나의 어휘력을 탓할 일이지 뭐.  처음 접해보는 우리 말들....  그 탓에 유난히도 허덕였던 것 같다.  더불어 정조시대에 대한 지식이 없음도 한 몫 한 듯 싶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광인이 되도록 한 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그것이 어떠하기에....  하기사 그 당시에는 패관소설들을 금기시 했다니 그만으로도 그들 사이에 이슈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  그들을 '굴복시킨' 그 책을 조만간 읽어보아야 겠다.   

  백탑파 서생들의 줄이은 죽음.  용의자는 의금부 도사 청전 이명박.  그러나 이들을 둘러 싼 음모는 화광 김진에 의해 백일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역시 살인사건이 있고 범인을 밝혀내는 소설에 있어서는 서평이 아니라 스포일러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가급적 많은 말을 하지 않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김진이 그 사건을 호청하게 밝혀내는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되지 않았나 싶다.  의금부 도사도 유추하지 못한 사실을 김진이 순식간에 풀어 고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반전을 안겨주기 위해서라면 독자에게까지 범인에 대해 절대 비밀에 부쳐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범인을 밝히려는 김진의 행보나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의문스러운 죽음을 풀어가는 점에만 너무 급급한 나머지 '열하광인' 과 그들 모임에 대해서는 비중이 다소 적지 않았나 싶다.  표제도 '열하광인' 이고 글의 모티브도 매설을 즐기고 열하를 아끼던 '열하광인' 들에게 일어난 살인사건이라면 이 모든 사건들이 반드시 그들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응당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반드시 그들에게가 아니더라고 어디든 먹힐 살인사건과 추리소설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비밀리에 모이기까지 했어야 할만큼 그들의 뜨거운 속내를 드러낼 만한 사건들이나 상황들이 좀 더 있어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깊이 남는다.

  그러나 엄청난 분량의 참고문헌이나 주옥같은 우리 말들을 발굴해 내 소설 속에 옮겨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점만으로도 ' 역시 김탁환이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본문에 인용된 박지원의 시문과 정조의 시문을 읽는 것도 참 재미있었고 조선 정조시대의 문체반정에 대해,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치욕을 안겼을 자송문에 대해 알게 된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역시 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본질을 속이지 않으려 든다.  이것이 글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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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 이야기 - 양장본
진 에드워드 지음, 허령 옮김 / 예수전도단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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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본의 두껍지 않은 책이었다.  이 책은 거울 같은 책이었다.  나는 그 거울 속에서 흉하게 일그러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사울인가?  다윗인가?  아니면 압살롬인가?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정답은 아무도 모르며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부디, 나는 다윗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은 권위와 야욕으로 똘똘뭉쳐 거칠 것 없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들을 지도자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경고를 하고 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여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선량하던 한 인간이 욕심과 야욕에 사로잡혀 악랄하게 일그러지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이 땅에 사울이 존재함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울은 또 다른 사울을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옆의 그가 사울일 수도 있고, 내가 그 누군가에게 사울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속사람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일깨워 주는 책이었다.

  또한 진정한 권위는 무엇인지 절대적인 순종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했다.  그러나 사울왕의 악행에 대한 다윗의 행동과 태도가 진실로 바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정의가 아닌 것을 꾸짖고 흐트러진 것을 세우고 악행을 일삼는 자에게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과정조차 생략하는 것이 진정 참된 것일까?  반항과 분란은 역시 반항과 분랑을 낳고 역사는 그렇게 거듭되어 왔다.  그러나, 그 일에서 나만 홀연히 빠져나와 귀머거리인냥 보지 못하는 사람인냥 처신하는 것이 옳을까?  나에게 창을 던지는 자의 창을 피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나는 다윗의 그런 모습이 수동적이고 피동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듯 어느 한 쪽이 바람 한 점 없는 호수가의 물같이 고요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더 큰 파장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악행 앞에 반항과 저항을 하는 방식이 그저 '피하는 일' 이라면 꼭 그래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는 아직 덜 깨어진 자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 책의 포커스는 권위자의 압제에서부터 '피하라' 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진정 하나님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는 자신의 야욕대로 행동하지 아니하고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타인의 어떤 질타와 시기, 질투, 미움도 감내해내는 다윗을 조명하고 있다.  다윗은 말한다.  나와 같이 '그저 피하는 것이 능사인지요?' 하고 묻는 많은 사람들에게, 또 그의 사람들에게....  '사울과 같이 되니느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소' 하고 말이다.  그가 이렇게 각오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켜 보호하사 안위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해, 하나님 손으로를 철저히 따르는 운명론자일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그의 충정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역시 범상치 않은 왕이다.  그러기에 그는 진정코 위대한 왕이었으면 세세토록 칭찬받는 왕 일 것이다.  

  이 책은 한 시대의 왕으로 살다간 세 왕의 모습을 통해 참된 자신을 발견토록 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이 그러하였듯 인내케 하고 힘든 시련과 고난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아십니다' 하고 말하고 있다.   '내가 난데' 하는 권위의식을 진정 내려놓고 그 분의 뜻에 순복한 다윗의 모습을 본받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  과연 다윗은 참된 왕이자 하나님의 종이요, 인간이었다.  그런 모습을 흉내낼 수 조차 낼 수 없는 나로서는 온전히 내려놓음과 깨어짐을 소망하며 그 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시편의 말씀은 참 은혜로왔다.  얼마만에 읽는 기독서적인지 모르겠다.  말씀 안에 살아 있는 그 분을 느끼며, 내 안에 살아 있는 그 분을 느끼며 예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모습으로 사울에게, 다윗에게, 압살롬에게 부으셨던 그 사랑과 동일한 사랑을 내게도 쏟아붓는 그 분의 사랑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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