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김의담 글, 남수진.조서연 그림 / 글로벌콘텐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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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다.  내겐 색깔이 필요했다.  검은 활자만이 아닌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색깔들 말이다.  그러던 중 멋진 삽화들로 가득한 이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눈이 너무 즐거웠다.  감각적인 인물 중심의 멋진 삽화들.  한 장 한 장 같은 크기의 액자에 담아두면 참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담백한 일상적인 삶의 단상들과 우화와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에세이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한 편의 탈무드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놓치고 살아가기 쉬운 것들.  그것들은 꼭 꼭 짚어주는 듯한 글들.  인생을 걸어온 나의 발자취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었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씌여진 글들은 그녀의 일기장을 펼쳐 보는 듯 했다.      

  

   무엇보다 책의 후미에 '시작'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이 출판사를 찾아가 투고를 하고 결국 빛을 보게 된 김의담씨의 저서라는 것이.  그리고 그녀의 비젼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향후 10년 안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그리고 세계 각 국에 자신의 번역본을 내는 것이라니.  역시 꿈이라는 것은 꿈꾸는 자의 특권이 아닐까.  그것이 현실적이건 비현실적이건을 떠나서 무언가를 '꿈꾼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  그것이 상상이건, 몽상이건 아니면 그 경계에 있는 것이건 말이다.  꿈꾸는 자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 보지도 마라'라는 그런 절망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삼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현실이 두려워 남들이 보지 못할 한 켠에 미루어둔 소심하게 웅크린 그런 꿈이 없는지.  나는 궁금했다.  꿈이야 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며 목적지가 있는 여행자의 여권 같은 것이 아닐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어떤 상상과 몽상을 하며 지금 나는 그 어디에 있을지.  이 책은 작고 얇고 가벼운 예쁜 책이었다.  그러나 더 보다 크고 두텁고 묵직한 예쁜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대여, 마음껏 상상하라.  그것이 몽상이라도 좋다.  그대를 비웃지 않을 것이다.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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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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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정혜윤씨의 저서이기에.  둘째, 고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참 신선한 표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고전이 세기를 걸쳐 읽히기 되는 것은 놓고 '세계가 여러번 진행된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이건 역시 정혜윤이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정혜윤씨가 이 책에서 다룬 것들 중 내가 읽어본 고전은 단 몇 편에 지나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 역시 저자와 독자의 소통으로 보자면 일방적인 이야기를 겨우 듣는 입장에 불과한 독서였다.  그동안 고전을 외면해 왔던 나를 질책할 일이었다.  누구였던가.  이름만으로 모두가 아는 세계적 명사인 그는 '고전'만 읽으라고 했다.  (그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게 참 안타깝네)  뿐만 아니라 고전의 중요성은 여러 차례 많은 이들로부터 들어왔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내놓은 '추천도서' 리스트를 잘 들여다보면 많은 량의 고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토록 고전을 외면해 온 것인지.  그러면에서 이 책은 나의 편중된 독서습관에 빨간 등을 켜주었다. 

  책으로 들어가보다.  정말 아쉽게도 나는 이 책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첫째는 내 탓이요.  앞서 말한 것처럼 독자인 나의 독서량 부족으로 저자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음이다.  둘째는 정혜윤씨 탓(?)이다.  (어허, 오만한 독자일세. 거참....)  그 이야기를 슬슬 해보자.  고전이란 뭐랄까?  발견하며 읽는 맛이 제 맛이 아닐까 싶다.  어떤 책이든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고전은, 그 안에서 나만의 것을 발견하는 맛이 쏠쏠하다.  그런데 정혜윤씨는 이 책에서 고전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발견' 해두었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을 하나의 요리에 비교해 보자.  제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 할지라도, 요리조리 맛깔나게 찍어준 음식 사진이라 할지라도 직접 맛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기에 그럴까? 그 요리가 맛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먹어보지 못한 자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는 '이미 맛 본 자의 후기' 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 맛있겠군.  먹어봐야겠어'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할터이다.  그런데 정혜윤씨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전반적으로 맛있어요.  하지만 그 버섯은 조금 덜 익었구요.  소스는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포크날은 적당히 길이가 있는 것으로 선택하세요.  그래야 면이 흐르지 않아요' 하고 이야기 해주었다.  어떤 독자에게는 이런 상세한 후기가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더 이상의 발견거리가 없으리만치 '완벽한' 후기는 절망스러웠다. 

  반면,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어떻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한낱 남녀의 사랑이야기 정도로만 해석한 것인지.  베르테르의 절절함과 그 가슴아린 섬세하고 연약한 감성은 왜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유독 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좋아하고 이 책은 몇 십번을 읽은 책이라 남다른 애정을 가진 책이긴 하다.  하지만 너무 표면적인 읽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우리의 베르테르씨를 제대로 알아봐주지 못했음이 서운했다.   

  그러나 이 책은 역시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아주 뜨끔한 울림.  '무식하기 짝이 없군.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 그렇게 고전을 몰라?  대화가 안되는군.  좀 읽지 그래?' 하는 송곳같은 날카로움을 느껴야 했다.  또 하나.  역시 직접 경험만한 것은 없다는 생각 '아무리 보기 좋은 것이라도 내가 직접 입어보고 먹어보는 것이 최고' 라고 말이다.  

   정혜윤씨 '저도 세계가 계속 진행되길 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제가 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다음 달 독서목록에는 고전을 두어권 추가해 봐야겠다.  그리고 한 chapter, 한 chapter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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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아서 골든 지음, 임정희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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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오래전에 책과 영화로 나왔었는데 당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독일인 친구가 <게이샤의 추억> 이 책을 가장 인상적으로 꼽고 있다는 말에 읽게 된 책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재미'있다는 것과 '인상적'이라는 것이 다르다면 말이다.  재미 있긴 했다.  그 무슨 TV드라마에서 심은하가 '부서버리겠어' 하며 독을 내뱉던 대사를 한 것처럼 복수와 계략이 뒤엉킨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원래 여자들의 칼이 선 이런 류의 스토리가 재미있긴 하다.  하추모모, 치요(사유리), 마메하, 호박의 이야기들.  서로 게이샤계의 일인자가 되고 싶어한 만큼 냉정하고 집요한 복수들.

  그러나 나는 열살 남짓한 소녀가 '다나카'와 '회장' 을 보고 이성으로서의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아니 물론 이 시기라면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빠뻘이 되는 중년의 남자에게 품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물론 사람이 다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비슷한 연령의 대상에게 호감을 느끼지는 않겠지만 그 어린 소녀가 '다나카'를 마치 성인 여서이 바라보는 듯한 묘사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조금 더 소설 속 인물의 연령과 환경에 맞게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솔하게 와닿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게이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혹자는 실제 게이샤의 삶과는 다른 잘못된 스토리란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하거나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소설들을 읽게 되면 항상 실제와 소설 속에서 혼동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대개 소설 속 이야기가 실제라도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시청률을 올린 일이 있다.  신윤복이 여장남성으로 그려져 많은 젊은이들이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 하고 상식밖의 말들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소설책으로 읽은 것은 그냥 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편이 잘못된 정보의 수집을 차단하는 안전한 방법이 된다.  <게이샤의 추억> 역시 소설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또 이 소설은 실화냐 소설이냐 의견이 분분하다.  이유는 작가가 마지막 '작가의 변'에서 이야기의 자료를 준 일본 게이샤 출신의 여성과의 친분등을 이야기 했으며 소설 구석구석 역사적인 배경을 들추어내고 회상하듯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치요라는 게이샤의 회고록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이런 '페이크 기법'을 사용하는지 몰랐는데 이 역시 '그냥 소설' 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단지 실화와 같이 써 낸 소설인 것으로 말이다. 

  왜 독일 친구는 이 책이 그렇게나 인상 깊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이 책에서 그려진 게이샤는 조금 다르지만 홍등가의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홍등가 매춘부의 자전소설 같은 것은 없거니와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은 현장을 은밀히 취재한 필름 정도에 국한되어 있다.  그런데 <게이샤의 추억>에서 그리고 있는 모습은 일본 기생의 모습을 내밀하게 담고 있다.  이것이 게이샤의 실제 생활이고 아니고를 따질 겨를도 없이 이런 은밀한 기록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동양의 한 나라 일본을 배경으로 한 데 이국적인 느낌을 갖게 된 것이 아닐지 싶다.

  '영화는 어떨까' 하고 영화도 보았지만 책과 영화가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두 편 역시 비슷비슷했다.  하추모모 역의 공리의 앙칼진 연기가 눈에 띄었을 뿐 특별히 다른 느낌을 갖지는 못했다.  국내에는 게이샤에 대해 다룬 서적이 많지는 않다.  고작 두어권 정도?  아무튼 다른 종류의 '게이샤'에 관한 책들을 더 읽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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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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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네 이발관' 이라는 모던 락밴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 산문집은 그 밴드의 보컬 이석원씨 저서다.  사실 이 책을 읽게된 건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나 이석원씨에 대한 개인적이 관심이 때문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선물받게 되는 바람에 읽게 된 책이다.  

  상큼한 노란색 표지와 달리 그의 글은 무채색이었다.  어떤 잔잔함과 고즈넉함이 있었다.  뭐랄까?  그를 모르지만 그에 대해 얼마만큼은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으로 그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어렴풋이 그를 알 것만 같다.  어딘지 모르게 나와 비슷하기도 했고 또 나와 틀리기도 했다.  그는 그의 글들로 자신을 '보통의 존재'라고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보통의 존재'를 닮은 나 또한 '보통의 존재'다.  사전은 '보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있어 평범함.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네이버 국어사전).  이 보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편안함을 주는지 다들 알 것이다.  유별나게 도드라지지도 않고 눈길을 끌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과 어느 누구와든 나눌 수 있는 교집합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그저 그런 보통 말이다.  많은 이들은 특별하기를 원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고 특별한 애정을 받고 싶고 특별한 눈길을 받고 싶어 한다.  모두가 어떤 대상들에 파묻혀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 가슴에 더욱 와닿았다.  그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들을 내어 보임으로 어떤 대상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한다.  '나를 보시오.  나는 이렇게 보통이요.  당신들과 비슷한 보통의 사람이니 안심하시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시오' 하고 말이다.  그의 글은 나에게 소박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있는 동안 그의 온기가 느껴졌고 그의 진심을 알 것 같았다.  결국 보통의 존재들끼리 마주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런 두런 나누는 순간이었다.  누가 지은 표제일까?  그의 글에 너무나도 잘 맞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들 그리고 솔직하게 드러낸 상처들.  나는 그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봐주고 보통의 것으로 대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은 딱 차 한잔 마시는 기분이었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인위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은 유독 '맞아맞아' 하며 밑줄치고픈 구절들이 많았다.  역시 보통의 것들이기에?  취향을 내세워 읽고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닌 보통의 것들이기에 그랬을까?  보통의 존재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어하는 이 역시 보통의 존재들이 지닌 마음들.  그 역시 하고 싶었고 나 역시 하고 싶어 진 말, 그 말 한마디를 하고 싶다.  

  당신도, 나도 우리는 그냥 보통의 존재야.  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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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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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제를 보고 놀랐던 것은 두 가지다.  '어머, 세계의 절반이나 굶주리고 있다는 말이야?  그렇게나 많이??' ,'왜? 라니....  축복받지 못한 땅에 태어나서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못먹게 되고 또 힘이 없어 일을 못하게 되고....  이 악순환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 두 의문은 정말 부끄러우리만치 세계 기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 장 지글러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해서인지 기아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달랐다.  기아.  어떤 생각부터 드는가?  먼저 먹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이 앞서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일정금액을 후원하거나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을 남기지 않음으로 일말의 죄책감을 더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기아문제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온 세계가 협력하면 이것을 근절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 '국제관계' 속에서 원인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충격이었다.  나는 많은 나라들이 선량하게 그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고 우리 인류는 모두가 더불어 먹고 살고자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많은 봉사자들이 구호품을 전달하고 기아 근절을 위해 애쓰고 있으니 우리 모두의 마음만은 다 같은게 아닐까 하고.  그러나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들을 더욱 굶주리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기아를 정치를 위한 야욕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배고픔에 주저 앉아 파리조차 쫓을 수 없는 아이들이 아닌 4분의 1이라는 막대한 분량을 소들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구촌 10살 미만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죽는데 120억명 먹고 남을 식량 왜 폐기처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 15대 부호들의 총 자산은 사하라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GDP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나는 가난이 3대에게 대물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배고픔과 기아 역시 대물림된다고 한다.  건강하지 못한 엄마들이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낳기 때문이란다.  이 끔찍한 인류의 비극을 왜 우리는 그저 동정으로만 아니면 내 주머니의 푼 돈을 내어놓는 것으로만 다하고 있는 것일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기아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야 말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아닐까 싶다.

  나의 오해는 그 뿐만 아니었다.  그들은 대개 '게으르다'는 생각.  구호물품을 향해서는 전력질주를 하면서 결코 일하지 않는 그들을 나는 TV에서 자주 보았다.  그런데 그들을 결코 일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있다는 것을 나는 먼저 알아야 했다.  앞서 축복받지 못한 땅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들을 우리보다 수확하기 힘든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륙이 사막화되어가고 비마져 내리지 않으니 농작물을 수확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세네갈 국민들은 아주 부지런하고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단다.  이 무슨 소리?  이들의 수확은 나라에서 관리를 하고 수입의 독점권도 정부 고위 관리에게 있단다.  이런 부패된 정부 아래 배고픈 나라들이 많이 있단다.   

  그러나 이는 비단 정부의 구조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기업들 역시 한 몫하고 있다.  국제적인 기업 네슬레는 최근 오랑우탄의 서식지인 산림을 파괴함으로 인해 국내 많은 동물애호가 및 환경보호 탄체로 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 네슬레의 충격적인 악행은 이뿐 아니었다.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그는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제공하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고 그는 공약으로 매일 0.5리터의 우유를 무상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네슬레에 협력 요청을 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짜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 값을 주고 사겠다는데도 말이다.  아옌데와 정치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미국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일에서 이권을 가진 자에게 승리는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슬픈 현실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이 이 지구 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배불리 먹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구촌의 굶주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기아를 조장하는 배후세력에도 깊이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게 뒤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국제사회가 이런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모두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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