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코폴라, 스필버그가 벌이는 막간 만담극이 꽤 재밌다. 우선 이 세 사람이 나왔다는 것부터가 스콜세지의 날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였겠지만....

이미 오스카상 따위야 아무 의미 없는 양반이긴 하지만, 세친구와 함께 하는 이 뒤늦은 축복은 묘한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다. 이미 1980년에 받았어야 할 것이 무려 27년이 지난 다음에야 찾아왔다.

사실 시대정신을 따지라면 [바벨]이야말로 그 지위에 어울리는 것이었지만 거장에 대한 이 뒤늦은 헌사를 위해서라면 조금은 미뤄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선 감정적인 승화를 불러 일으키는 복고적 찬사라는 점에서 아카데미다웠고, 소통의 부재를 얘기하는 [바벨]이 결국 소통을 못했다는 점에서 아카데미다웠던(또한 그 시대정신에 정확하게 부합된다는 점에서 극적인), 여러 모로 아카데미 영화제 본연이 잘 드러난 79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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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2-2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저렇게 Thank you list를 적어서 준비해서 갔을까요? 이런-
마틴 스콜세지의 수상소감은 재치있다고는 할 수 없겠찌만, 만담 트리오.는 정말 재미있군요. 스콜세지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은 찡하네요. 잘 봤습니다.

hallonin 2007-02-2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크 월버그를 중심으로 하는 [디파티드]의 속편이 시나리오 작업중이라는군요. 어쩌면 영감님이 보유하게 되는([컬러 오브 머니]는 미묘하니 제껴두고) 최초의 프랜차이즈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의 위기인가, 한국소설의 위기인가>
 
[연합뉴스 2007-02-25 15:46]  
  
 
"소설 시장 여전히 강세..한국소설 시장 응전력 자성해야"
'세계의문학' 봄호 '문학의 위기' 진단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2000년 대 들어 '소설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 소설 향유층과 신세대들이 더 이상 소설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문학인들과 출판사들의 하소연이다.

과연 이 시대 소설은 위기를 맞고 있는가. 다음 주 출간되는 계간 문예전문지 '세계의 문학'(민음사 펴냄) 봄호는 특집으로 꾸민 '누가 문학을 읽는가'를 통해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진단했다. 결론은 '소설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소설의 위기'라는 것.

먼저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2000년대의 한국소설 독자Ⅱ'라는 기고문을 통해 "독자들은 즐기기 위해 또는 뭔가 도움을 받기 위해 책(소설)을 읽는데" 한국소설의 주류를 이루는 작품들은 "여전히 민족적ㆍ국가적인 측면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천 교수는 "1990년 대 들어 소설의 사회적 기능이 전세대와 크게 달라지고 문학잡지와 평론의 사회적 위상이 급격히 낮아졌다"며 이에 따라 "문학 박사학위를 가진 '엘리트 독자'조차 (정통문학과 같은) '현장의 소설'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 교수는 이어 "내면성의 문학과 리얼리즘의 근대소설 전통이 빈사 지경으로 독자를 잃어버린 데 반해 탈근대의 상황에서도 대중적 낭만주의는 자신의 형태를 변형해 유연하게 이어가고 있다"며 그 대표적인 예로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예로 들었다.

천 교수는 "이 작품이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평단의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류 비평이 가진 형식주의 지향성과 윤리적 둔감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며 공지영의 인기와 평단의 냉대 사이의 거리는 바로 현재 한국문학과 독자들 사이의 거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소설이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원초적 민족주의를 들이대는 일은 유치하다"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왜 한국소설을 읽어야하는가'라는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통계로 본 소설 독자'라는 기고문을 통해 "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줄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소설 시장의 판매 현황을 볼 때 소설은 여전히 힘이 세다"고 주장했다.

백 연구원은 한국출판연구소가 작년 9월 한달 동안 국내 성인 남녀 1천명, 초ㆍ중ㆍ고 학생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 국민독서실태' 조사를 꼼꼼하게 분석한 뒤 "청소년들의 소설 선호도는 4년 전과 거의 다를 바 없으며 성인독자층의 소설 선호도 조사에서도 소설은 보편적으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장르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출판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도 소설은 건실한 것으로 나타났고 문화콘텐츠산업의 기반으로서 소설의 범용성과 부가가치가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되고 있다"며 '소설의 위기'를 '한국소설의 위기'로 진단했다.

아울러 "판매량 상위권에 외국소설이 많다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는 나라에서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일본 소설이 인기를 끄는 현상도 궁극적으로는 '일본'이 아니라 '소설'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는 징표"라고 설명했다.

백 연구원은 끝으로 "지금 단계는 소설의 엔터테인먼트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일종의 조정국면"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며 "이제 독자의 기대에 엇박자를 치는 한국 소설의 시장 응전력과 작가 양성 시스템을 자성해야한다"고 지적했다.

js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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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어야겠지만 문제는 저런 논의들이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른 게 없다는 거. 결국 '팔리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점검과 변화에 대한 촉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련의 고스트라이터 논란과 신춘문예 당선자의 야설알바 고백이 위기의식을 한층 부추긴 걸 수도 있겠고.

공지영의 전작들이 잘 팔린 이유에 대해선 나름의 정황들에 근거해서 이해가 가나(페미니즘, 방송캠페인 등등)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어째서 시대와 공명할 수 있었는지는 저도 잘 모를 일입니다만. 암튼 '팔리는 문학'과 관련해서, 두 개의 영역을 돌아다녀봤습니다.

 

주말동안 판타지소설쪽을 좀 파고들어가봤는데, 소위 우리나라에서 양판소라 불리는 것들은 그 소비층에서조차도 혀를 찰 정도의 상태긴 합니다.... 온라인게임과 대여점이라는 전국민적인 일상에 기반을 확고하게 두게 되었고 그럭저럭 대중소설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 그쪽 업계는 철저하게 편집의 방향성이 잡혀있더군요. 극소수의 작가군을 제외하면 수익구조가 오로지 대여점에서밖에 나지 않는 탓에 전국대여점주 연합인 오비디오와 같은 대여점 소비권에서의 입김이 엄청 쎄며(아예 반품게시판이 따로 있습니다), 그에 따른 노골적으로 패턴화된 캐릭터와 수사의 억제(성당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엔 '장엄하다' 한마디면 됩니다), 그리고 공장과 맞먹는 제작속도(얼추 한 달에 네 권 정도?)가 공통된 특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보면 옛적의 양산형 무협소설들이 가지고 있던 딜레마 그대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살펴보다보니 대중 지향의 글쓰시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하나 수확이 있긴 했습니다. 이건 도스또예쁘스끼적 금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바로 '묘사를 줄여라.' 이게 생각해보면 딱 초보작가들의 딜레마죠. 아 이 정도 썼는데 독자들은 이해할까, 과연 이정도로 독자에게 완벽하게 내 세계를 알릴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해봤자, 독자 입장에선 아 전나 기네 얼른 끝내지 뭐이렇게 줄줄이야 몰라 넘겨, 이런 쪽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친절한 독법으로 골아프면 넘겨읽어, 이랬지만요.

재밌게 읽었던 국내산 판타지소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일단 [퇴마록]을 억지로 읽다가 세계편에서 결국 관둬버린 경험이 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즈나이트]는 군대서 훈련 나갔을 때 야영지에서 15분에 한권씩 독파한 기억이 있고.... [드래곤라자]는 군병원에 있을 때 꽤 즐겁게 읽었었습니다. 제대로 된 작가 대접을 받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인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은 읽다가 말았고. 그외엔 기억이 틔미하군요.

암튼 장르라든지 소재면에서도 그렇거니와, 소비층 또한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고착되었기에, 사실 우리나라에서 판타지소설이라고 이름 붙히는 것 자체가 대단히 제한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됐죠. 언젠가는 곪아터지겠지만, 어쩌면 그게 굉장히 오랜 시간 뒤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판타지소설 소비의 주력이 온라인게임과 이어져있는 현실에서, 그래서 게임의 대리만족체인 기능만 가진 소설시장인 상태에서, 그쪽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엔 힘든 일이기 때문이죠. 적어도 이런 상황이 게임태생의 판타지소설만이 아닌 전체 판타지문학계 퀄리티의 점진적 축소지향을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면, 장르문학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상황의 타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귀여니 원작의 영화가 개봉이 좌초됐다는 얘기를 보게 됐습니다. 이건 한국 대중문학의 어떤 과거형이겠군요. 그러니 예전에 정성일이 귀여니 옹호론을 썼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 옹호론은 제게 있어선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을 텍스트로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귀여니문학의 적자들은 지금은 연예인 팬덤의 팬픽 속으로 들어가버렸고, 그녀의 소비자들은 그녀보다는 좀 나은 일본작가들의 책을 선택하게 됐죠. 아마도 정성일은 귀여니를 읽어냄에 있어서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만화와 대중가요, 수목드라마의 영역이며 소위 세대차적인 소비-패러디 패턴을 보여주는 흔한 양산형의 하나였건만 고전주의자인 정성일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귀여니의 문학은 세대의 대표가 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그녀에게 가해진 시기심 섞인 비판은 로또부자에게 가해지는 질투만큼이나 가혹한 것이었습니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비판도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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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2-2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대중이 쓰면 대중 소설, 김진명이 일본어 교재 쓰면 진명 일본어, 이현세가 연구소를 세우면 현'세'연…

hallonin 2007-02-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마 답글을 달기가 뭐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_-
 

http://www.youtube.com/watch?v=mNR4kR1uC-w

 

예전에 남북의 창에서 북조선표 애니메이션을 처음으로 봤던 게 기억난다. 그게 제목이 뭐 연필특공대였나 그랬는데 주인공 철순가 뭐시긴기가 전투숙제라는 혁명과업을 수행하다가 지쳐서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연필이 잠수함인가 전투함인가가 되서 그걸 타고 다니며 미제국주의자들을 박살을 내버린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뭐 스토리야 다분히 북한의 당찬 기개를 엿볼 수 있는 김청기 반공애니와 별 다를 바도 없는 내용이었지만 거기서 눈에 들어왔던 것은 오래 전 디즈니 애니에서 볼 수 있는 탁월한 작화노가다가 빚어낸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그걸 보면서 북한의 애니메이션 역량에 대해 신기해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런데 저기 유튜브에 올려진 [다람이와 고슴도치]는 북한 애니메이션이 가진 기술적 수준의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 역시나 어딘가 뒤틀린 스토리야 차치하더라도 CG의 활용이나 광원효과, 셀작업의 운용에 있어서도 상당한 세련미와 함께 총폭탄 노가다정신의 결정체 같은 부드러움을 선보이고 있는 [다람이와 고슴도치]는 1977년(통일신문에는 주체 66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에 시작된 인기 시리즈물로서 북한 애니메이션 진화의 지표라고도 봐도 좋을 듯 싶다.

한데 음향과 문자디자인 부분은 좀 에러.... 녹음 상태는 연필특공대 때보다 2프로 업글된 거 같고 글자들은 무슨 루니툰의 식자를 프랭크 밀러가 맡아 갈겨쓴 거 같음.

 

 

저기 올려놓는 juchekorea라는 아이디의 양반이 그외 다수의 북한 애니메이션을 올려놓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더 살펴보시길. 아, 그런데 이거 설마 국보법 위반일려나? 착한 어린이들은 아무리 남한현실이 좆같다고 해도 보고서 월북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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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남

흔들리는 구름

이터널 선샤인

로드 오브 워

아무도 모른다

누드모델 - 240분 짜리 버전

크래쉬 - 크로넨버그

크래쉬 - 해기스

어바웃 슈미트

 

간만에 들어가봤더니 꽤 신선한 새것들이 보이더군요. 뭐 단골 프로그램이었던 오시마 나기사의 제국 시리즈 두 편과 [강원도의 힘], [낙타(들)], [나라야마 부시코] 등등은 건재. 크로넨버그의 [크래쉬]도 어찌되었건 에로스럽게 분류되는 만큼 전부터 있었던 듯. 웬일로 터줏대감이었던 장 자끄 아노의 [연인]이 리스트에서 탈락. 에로물이 집중적으로 순위권을 장악하는 시청율 순위에서 놀랍게도 [흔들리는 구름]이 1위로 올라와있는데... 과연, 댓글에는 별점 1.0과 함께 비명소리만 가득.

 

 

 

1부는 보지마세요 ㅋㅋ 1부는 섹스없어요 ㅋㅋ

그럼2 3 4 5 부중에 어떤것이 섹스 있어요. ㅋㅋ

3부가 젤조아요

 

[누드모델] 댓글에 달린 네티즌들의 온정을 확인할 수 있는 훈훈한 대화들. 아, 나도 3부부터 봐야지 히히.

 

 

존나 야해 ㅋㅋ 막 섹스도 많이 나오는것같에 ㅋㅋ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분노에 찬 낚시를 걸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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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은 단단한데, 뭐가 급했는지 하드커버에 붙은 속지 가장자리에 채 덜 닦인 풀이 찔끔찔끔 번져있다. 덕분에 은근히 깝짝껍쩍.

 

2. 공개된 영화판 트레일러와 비교해보면 영화판이 린 발리의 색감을 그대로 옮기려고 꽤 신경썼음을 알 수 있다. 슬로모션으로 가득 채워진 트레일러를 보건데 짧은 이야기를 메꾸기 위한 이미지적인 적극성이 영화판의 주요 포인트일 듯.

 

3.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스티븐 프레스필드의 소설과 비교해볼 때, [불의 문]이 페르시아 포로가 된 스파르타 노예의 눈에서 시작되는 반면 [300]은 살아남아서 다시 싸우려는 스파르탄의 입장에서 구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 기조의 차이를 알 수 있을 듯.

 

4. 여기서 레오디나스는 자유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죽어갔다고 지껄이는데 스파르타가 어떻게 굴러갔는지를 안다면, 이건 뭐 전형적인 서구우월주의에 근거한 지금까지의 역사관과 스파르타인들의 근육에 정신없이 취해버린 프랭크 밀러의 오버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설마하니 이런 얼굴이 화끈해지는 부분에 감동받을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 그냥 낄낄거렸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혹하는 듯. 암튼 당시의 민주주의와도 완전히 달랐던 깡패국가였던 스파르타 덕에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지켜졌다는 것은 역시나 평화와 이면의 폭력 사이에 관한 전형적인 역사적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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