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목 안을 따갑게 찌르는 쓰라림, 담배는 허공에 흩뿌려지는 허무함. 그것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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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단편
히로아키 사무라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12월
3,500원 → 3,15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원(5% 적립)
2003년 10월 18일에 저장
절판
사무라 히로아키의 유머는 냉소적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연민을 갖고 비꼬는 이 이야기들은 일견,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그 흐름의 자연스러움을 깨닫는다면 그 유쾌한 여행의 순간에 동참하고 싶어질 것이다. 젊은 날의 오래된 기억에 대한 찬가.
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15,800원 → 14,22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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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8일에 저장

폴 오스터의 글을 읽는 것은 인생을 읽는 것이다. 그의 글엔 운명을 따라 얽힌 회한과 추억의 이야기들이 공들인 양감처럼 새겨져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중독이고 담배와 맥주이며 한마디로 못 견디게 만들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제껏 느껴보지 못 한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음악은 재즈, 빌 에반스와 스탄 게츠의 협연이 좋겠다. 'grandfather's waltz'의 세션은 당신이 느낄 슬픔을 부드럽게 위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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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 전부터 빛은 전능한 신의 중요한 개념이자 이미지 중 하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광휘를 받아 지속되는 세상에 대해 얘기했으며 빛의 신성함은 성당을 장식할 스테인드글라스의 예술적 변용을 가져왔다. 어둠은 그 대척점으로써 두려움이고 미지였다. 그래서 전기가 발명되고 빛이 인간의 손에 들어온 순간은 신학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광휘'를 마음대로 다루게 된 다음, 과연 절망은 사라졌는가.

2.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오는 어느 날, 그녀는 아들과 함께 스스로 밀양으로 내려간다. 그곳을 택한 이유는 자신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이다. 그러나 밀양은 좁은 도시다. 대로를 따라 걸어서 한시간 내외로 동네를 휭하니 둘러볼 수 있으며 그 시간동안 아는 사람을 서넛은 볼 수 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을 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알게되며 그래서 그녀의 비밀은 새어나가고 비극이 닥쳐온다.

타자들 안에서 타자가 된 신애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불안해보인다. 그녀는 뻘쭘해하고 서있거나 머뭇거리고 서성거린다. 그리고 자주 비틀거린다. 그녀는 그녀에게 가해지는 노골적인 종교 권유에 당혹해하고 자신을 흉보는 뒷담화를 듣게된다. 그녀는 조금씩, 지친 자신이 선택한 곳이 자신에게 모종의 쉼터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곳은 애초에 그녀의 헛된 욕망의 흔적으로 인해 선택된 곳이었기에.

 



3. 중요한 것은 고통이다.  -이창동. "이창동의 <밀양> ② 이창동 감독, 영화평론가 허문영 대담" 씨네21 No.602


4. 그녀는 아들의 장례식 때 울지 않고 그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비난받는다. 그녀의 오열은 뒤늦게서야 터져나오며 그 결과로 그녀는 기독교라는 틀에 자신을 맡긴다. 거기까지 이뤄지기까지의 그녀가 보여주는 속도와 적극성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신애의 엇박자적 감정과 태도를 우회해서 보여준다. 그녀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혹은 더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성적으로 스스로 구원,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그것은 맹신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맹신이기 때문에 그녀는 처절하게 절망하게 된다. 그녀가 기억하는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빛 아래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신의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고통을 방관하는가. 하나님의 그 심원한 계획은 언제, 어떻게 나타난다는 것인가. 이 너무도 단순하고 당연하며 그저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질문은 하나님에게 귀의한 신애의 입으로 설명된다. 그것은 마치 연애와 같은 것이라고. 시선에 따라선 일방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그 모호한 감정이 답으로 나온 순간 이 이야기는 이성적인 공동체험의 길을 포기한다. 관객은 관찰자가 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할 수 밖에 없다. 그저 여기서 묘사되는 기독교에 대한 입장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해서 직관의 힘이 필요하게 되는 순간이다.

5. [밀양]은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연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서 자신을 놀리려고 숨은 아들을 불러내기 위해 우는 연기를 하는 신애의 모습은 후반부의 기독교에 귀의한 그녀의 모습과 부합된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지만 그 모든 것은 우는 연기를 했던 그녀처럼 어설프게 보인다. 그래서 정말로 눈물이 나올 때 그녀는 띄엄띄엄 끊어지는 주기도문으로 자신을 추스리려 애쓴다. 그것은 하나님을 어설프게 끌어다놓는 일종의 집착과도 같다. 그리고 고작 그런 걸로 그녀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이 자신의 앞에서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말할 때 깨닫게된다. 이어서 순식간에 추락한다. 절망은 무지가 아니라 깨달음에서부터 오기 때문이다.

붕괴 이후의 그녀는 반은 고통 속에 반은 연기 속에 자신을 담근 채로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약속을 깨고 거짓으로 유혹하며 자학한다. 돌아갈 곳은 애초에 없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를 소진하는데 주력하는 그녀가 갈 곳은 하나뿐이다. 이 영화가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면 그 결말이 아니라 전도연이란 배우가 보여주는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의 생생함 때문일 것이다.

6. 폭발은 어둠 속에서 찾아온다. 신 혹은 그 무언가의 손길이 사라진 밤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대체할 빛, 형광등, 전등을 필사적으로 켜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빛을 흉내낸 것일 뿐이다. 그것엔 햇빛의 온화함, 따스한 열기, 그리고 세상을 전부 비추는 풍성함이 없기에 절망을 씻어내주지 못한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 절망은 언제나 벌건 대낮에 찾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에 대한 형식적인 애착만 가지고 있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실질적이고도 지독한 부재, 그 자체다. 결국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다. 빛이 무엇이든 간에,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밤은 그 무언가의 부재만이 도드라지는 시간이기에 그녀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리라. 자신의 것이라 여기던 것들을 하나씩 잃고난 뒤, 그녀를 지켜보는 무언가마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그녀는 새롭게 절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적으로 오열할 수밖에 없게 된다.

7. 영화는 끝까지 관객에게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순간 따위를 제공할 생각 같은 건 없다. 도식적 구원의 기회에 가장 근접하는 말미의 씬에서조차 신애는 (영화적으로) 뻔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거기엔 분명 운명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상황이 보여주는 전능한 신이라는 가능성에 진저리가 난 그녀는 종찬에게 짜증을 내며 따진다. 신에게 지지않을 거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그녀에게 있어서 신의 개념은 마니교적인 의문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과연 신은 선한가 악한가. 어느 쪽이든 그녀는 쉽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그녀는 앞으로도 한동안 방황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곁을 종찬은 항상 따라다닐 것이다. 그녀가 손을 내밀 때마다 기쁘게 받아들이며.

 



8. 송강호가 연기한 종찬이라는 인물은 결론적으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에 관한 개인사적인 부분은 오직 두 번의 어머니와의 통화, 그것도 무척 퉁명스러운 통화로만 우회해서 보여질 뿐이다. 그의 세련되지 못해서 우스꽝스러운 맹목적 호의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밀양]에 비치는 진짜 숨겨진 빛이다. 극장에 가면 다른 관객들과 함께 그의 등장과 행동에서 그나마 웃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호함으로 보장되는 전형적인 바탕을 통해 영화속 무기력한 구원을 보조해준다. 혹은 아무리 엉망이 된다 하더라도 끝까지 향하는 어떤 따스함과 같다.

9. 그러나 [밀양]은 신애의 영화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는 것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행동이 보여주는 의지는 저항으로써의 주체를 보여준다. 어찌되었든 간에 관찰자로 다시 돌아온다면, 신은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신은 방관자일 수도 있다. 그저 우연찮게 우주를 만든 다음 어디선가 다른 우주를 꾸미느라 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광휘 같은 것에 신의 죄, 혹은 의지 같은 건 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믿고 증오하고 울고 저항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음지의 진흙탕에 닿는 빛은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그녀의 신학이다.

10. 처음, 신애의 질문에 답하여 밀양에 대해 구구절절이 얘기하던 종찬은 말미에 이르러 단 한마디로 밀양을 말한다. "사람 사는데 어디든 다 똑같죠 뭐." 그렇다. 신애는 어딘가 별난 여자가 아니다. 종찬 또한 성자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며 이것은 어디서든, 누구나가 겪게될 수 있는 절망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마치 인간인 이상 빛을 피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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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오늘 이거 봤는데, 어렵습니다... 감정이.

다락방 2007-05-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제겐 충분한 글이로군요. 추천.
앞으로 더 많은 영화감상 페이퍼를 올려주세요.

배가본드 2007-05-2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볼꺼니까 내일 다시 올께요 ㅋㅋ

hallonin 2007-05-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되도록이면 스포 안 쓰고 말하는 방법을 고심해왔건만, 이번 경우는 지키지 못했군요.

배가본드 2007-05-2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퍼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모호한 상황속의 감정들은 정말 실제적인 우리들의 삶을 표현해줬다고.. ㅎ 전도연의 입장에서 한국적인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요 ㅋㅋ

hallonin 2007-05-2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지화란 미묘한 것이죠. 종교에 있어선 특히나.
 







하아하아 수, 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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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5-2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하아 수, 숭배! 2

같은 여자가 봐도 숭배하지 않을 수 없군요. 완전 멋져요!!

그나저나 이시간에 안주무시고 매력적인 여자의 사진을. 쿨럭. ㅡ,.ㅡ

hallonin 2007-05-2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 둘 딸린 유부녀의 위대함이지요...

비로그인 2007-05-2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고생 많이 한 여자지요.
인간승리의 표본이라고 할까.
여튼 미모가 아니었다면 빛을 발하지 못했겠지만요.

hallonin 2007-05-24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약간 많이 불공평한 세상.
 

전교조 前분회장 학생 앞서 하의 벗고 자위
[헤럴드생생뉴스   2007-05-22 11:08:35]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 분회장을 지낸 일선 고등학교의 교사가 남녀학생들 앞에서 하의를 벗는 등 엽기적 행태를 보여 경찰에 검거됐다. 해당학교는 학부모들의 항의에도 문제 교사를 징계하지 않아 더욱 불만을 사고 있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지난 3월 23일 밤 은평구 녹번동의 음식점 앞 노상에서 김모(17)군 등 남녀고등학생 8명이 있는 앞에서 자신의 하의를 벗고 자위행위를 한 혐의(공연음란)로 H고등학교 노모(46)교사를 불구속 입건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자 노 교사는 “소변을 보기 위해 그런 것”이라며 둘러대 넘어갔다. 그러나 위기모면도 잠시.

경찰과 20여m정도 떨어지자마자 노 교사는 또다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후 서울 서부경찰서는 3월 26일 서울시 교육감에 공무원범죄 수사개시를 통보했고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3월 30일 서울시 교육감에 공무원범죄처분결과를 통고했다.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는 것은 이후 노 교사의 행위. 노 교사는 경찰 조사를 받고 난 이후에도 현재까지 담임을 유지한 채 수업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으며 항의하는 학부모들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다. 또 학교 이사회가 노 교사를 징계할 움직임을 보이자 전교조의 힘을 빌어 학교에 항의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평소에도 노 교사는 여학생들을 무릎에 앉혀놓는 등 여학생들 사이에서 좋지 못한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덧붙였다.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은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노 교사를 즉각 교육현장에서 격리하고 이와 유사한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김태경 기자(tk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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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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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왜 저런 교사가 전교조야 또. 전교조는 자체정화시키지 않으면 이대로 망해버릴겁니다. 지난번 교사 성폭행 사건 때도 전교조 내부에서 비판과 옹호가 난무했는데 옹호하는 측이 비판측보다 월등히 숫자면에서 앞섰죠. 감쌀걸 감싸야지. 이번엔 또 어떻게 하나봐야겠습니다. 믿음이 안갑니다.

hallonin 2007-05-2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일선에서 일하는 친우 얘길 들어보면 전교조나 교총이나 별 다를 바도 없이 놀더라고.... 근데 옹호쪽이 많았다니, 음.... 성폭행이 뭐 옹호와 비판으로 나뉠 수나 있는 건덕지인가요?-_-

Mephistopheles 2007-05-2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교직에 계신 알라디너 한분이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운 지경인데도 교편을 잡고 있는 선생님(?)들이 존재한다고 하더군요..

hallonin 2007-05-2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어가보면 결국 그 바닥이 그 바닥인 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 판단에 대한 바람직한 조율이란 항상 난해한 법이죠.

마늘빵 2007-05-23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안됐는데 제 눈에도 보입니다. -_- 정말. 기업이나 학교나 동사무소나 가릴 것 없이 다 아닌 사람들은 존재하나봅니다. 근데 학교는 좀 더 엄격해져야하는데 어떻게 걸러내야하는건지.

hallonin 2007-05-2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오버로드의 강림을 기원하는 것이...

배가본드 2007-05-2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사건도 있었나요 ㅋㅋㅋ 큰 문제로 붉어져나오지 않는다는게 안타까워요 ㅋ

hallonin 2007-05-2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교조 이미지를 깎아내린 수준에 있어선 혁혁해 보입니다....
 
루트 225
후지노 지야 지음, 박현주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루트225]의 첫인상은 노을이다. 두 남매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그 시점, 놀이터의 빈 그네가 내는 삐걱거림만이 남아, 한순간 아무도 없어진 낯선 공간을 풍만하게 장식하는 적갈색 색채는 무언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순간의 모호함과 다채로움을 내비춰준다. 그 낮과 밤의 어정쩡한 경계에서처럼 [루트225]에서의 공간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경계 그 자체를 보여준다. 변해버린 강과 알 수 없는 거리, 사라진 부모들. 이제 끝났다고 생각된 관계가 복원되고 죽었다는 아이가 살아 돌아온다.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혹은 완전히 뒤집혀져 버린 일관성 없는 패러렐월드에서 내가 유령인가 그들이 유령인 것인가. 아니면 모두 다 유령인 걸까. 노을은 이제 유령들이 움직일 시간임을 경고해주는 표식이기도 하잖은가.

미묘하게 이상해진 세계에서 모든 것은 불일치를 향해 흘러간다. [루트225]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대상에 대한 시선이 왜곡을 거듭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체지방도에 대한 의견은 끝까지 합치되지 않으며 아이들이 닿은 세상이 어떻게 되먹은 건지에 대해서도 그저 각자가 가진 시야에 갇힌 의견들이 나올 뿐 어떤 결론을 짓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확인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확인하고자 해도 안되는 것들이다.

275페이지지만 아담한 판형에 담긴 이 길지 않은 이야기는 동화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불려져 오는 것은 루이스 캐럴이지만 여기서 발견되는 낯설음과 당혹감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보여줬던, 현실에 느슨하게 걸쳐진 채로 의도적으로 유리된 환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파생된다. 즉 그 비틀린 세계의 기반이 아이들이 머무르고 있던 현실에 기반하여 알 수 없는 이유로 변동되어있는 것이며 그 돌발성 탓에 언제 또 바뀌어 자신들이 시공간의 미아가 되버릴 수 있다는 상상이 이 소소한 모험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루트225]가 보여주는 카프카적 상상력은 독자를 가혹하게 시험하지 않는다. 컨셉면에서의 클리셰적 한계에 봉착할 위험을 안고 있는 이 방황하는 남매의 이야기는 그들의 내면적인 고독과 그들 나이가 가지는 독특한 사고, 일상에서의 실제적 충돌과 아기자기한 의식들에 대한 면밀한 묘사들에 의해 풍부해진다. 애초에 제목의 의미가 15의 제곱을 뜻하는 숫자에 접질러진 길의 의미를 붙인 다의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경계선 상에 선 아이들의 방랑에 대한 시선을 가리키고 있는 이 소설은 그들이 이제 유년기의 끝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호한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자이자 남매의 누나인 에리코는 이제 열 다섯 살이 됐으며 특유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그 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그로 인해 몇가지 관계가 비틀린 상태다. 동생인 다이고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가면서 바뀐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흔들고 있는 변화에 아직 익숙치 않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고 변하는 걸 피할 수는 없다. 이 거부감이 그들을 덮친 모험의 동인일까? 그마저도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모호함이 뿌연 안개처럼 소설 속의 관계와 방향을 내내 유동하게 만든다. 모호함과 유동하는 세계,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선. 이것들이 한데 모여 그들이 겪어내고 있는 유년기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총체적인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루트225]는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대신 그 머뭇거림에 대한 세심한 관조를 통해 이야기의 가치를 획득해내는 고전적인 현명함을 보여준다.

 

동경을 떠나 한동안, 나는 동경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생각하고 있던 것은 이 세계의 동경이 아니라 원래 세계의 동경에 대한 것이지만, 어느 쪽이든 떨어져 있으면 그 경계는 서서히 틈이 생겨, 지금은 어느 쪽도 마찬가지로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장소라는 생각도 든다.

[루트225] 247P~248P

 

유년기는 그 시간에 머무르고자 하는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강제적으로 끝난다. 사실 그들은 계속 경계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이 보여주는 그 모든 헛된 시도들과 별볼일 없는 모험 또한 그 방랑을 위한 동인이다.
그들의 경계를 부수는 건 그들 자신이 아니라 외적인 힘에 의해서다. 그들이 닿은 세상에서 관계는 복구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또한 그들에겐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돌아갈 곳은 저 너머에 있게 된다. 우연한 죽음에 대한 돌연한 회고처럼, 망각이 그들을 완전히 잡아먹어버리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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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ddkfl3 2007-07-2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세로드러왔어요.
저많히사랑해 주세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