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225
후지노 지야 지음, 박현주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루트225]의 첫인상은 노을이다. 두 남매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그 시점, 놀이터의 빈 그네가 내는 삐걱거림만이 남아, 한순간 아무도 없어진 낯선 공간을 풍만하게 장식하는 적갈색 색채는 무언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순간의 모호함과 다채로움을 내비춰준다. 그 낮과 밤의 어정쩡한 경계에서처럼 [루트225]에서의 공간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경계 그 자체를 보여준다. 변해버린 강과 알 수 없는 거리, 사라진 부모들. 이제 끝났다고 생각된 관계가 복원되고 죽었다는 아이가 살아 돌아온다.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혹은 완전히 뒤집혀져 버린 일관성 없는 패러렐월드에서 내가 유령인가 그들이 유령인 것인가. 아니면 모두 다 유령인 걸까. 노을은 이제 유령들이 움직일 시간임을 경고해주는 표식이기도 하잖은가.

미묘하게 이상해진 세계에서 모든 것은 불일치를 향해 흘러간다. [루트225]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대상에 대한 시선이 왜곡을 거듭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체지방도에 대한 의견은 끝까지 합치되지 않으며 아이들이 닿은 세상이 어떻게 되먹은 건지에 대해서도 그저 각자가 가진 시야에 갇힌 의견들이 나올 뿐 어떤 결론을 짓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확인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확인하고자 해도 안되는 것들이다.

275페이지지만 아담한 판형에 담긴 이 길지 않은 이야기는 동화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불려져 오는 것은 루이스 캐럴이지만 여기서 발견되는 낯설음과 당혹감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보여줬던, 현실에 느슨하게 걸쳐진 채로 의도적으로 유리된 환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파생된다. 즉 그 비틀린 세계의 기반이 아이들이 머무르고 있던 현실에 기반하여 알 수 없는 이유로 변동되어있는 것이며 그 돌발성 탓에 언제 또 바뀌어 자신들이 시공간의 미아가 되버릴 수 있다는 상상이 이 소소한 모험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루트225]가 보여주는 카프카적 상상력은 독자를 가혹하게 시험하지 않는다. 컨셉면에서의 클리셰적 한계에 봉착할 위험을 안고 있는 이 방황하는 남매의 이야기는 그들의 내면적인 고독과 그들 나이가 가지는 독특한 사고, 일상에서의 실제적 충돌과 아기자기한 의식들에 대한 면밀한 묘사들에 의해 풍부해진다. 애초에 제목의 의미가 15의 제곱을 뜻하는 숫자에 접질러진 길의 의미를 붙인 다의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경계선 상에 선 아이들의 방랑에 대한 시선을 가리키고 있는 이 소설은 그들이 이제 유년기의 끝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호한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자이자 남매의 누나인 에리코는 이제 열 다섯 살이 됐으며 특유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그 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그로 인해 몇가지 관계가 비틀린 상태다. 동생인 다이고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가면서 바뀐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흔들고 있는 변화에 아직 익숙치 않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고 변하는 걸 피할 수는 없다. 이 거부감이 그들을 덮친 모험의 동인일까? 그마저도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모호함이 뿌연 안개처럼 소설 속의 관계와 방향을 내내 유동하게 만든다. 모호함과 유동하는 세계,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선. 이것들이 한데 모여 그들이 겪어내고 있는 유년기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총체적인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루트225]는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대신 그 머뭇거림에 대한 세심한 관조를 통해 이야기의 가치를 획득해내는 고전적인 현명함을 보여준다.

 

동경을 떠나 한동안, 나는 동경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생각하고 있던 것은 이 세계의 동경이 아니라 원래 세계의 동경에 대한 것이지만, 어느 쪽이든 떨어져 있으면 그 경계는 서서히 틈이 생겨, 지금은 어느 쪽도 마찬가지로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장소라는 생각도 든다.

[루트225] 247P~248P

 

유년기는 그 시간에 머무르고자 하는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강제적으로 끝난다. 사실 그들은 계속 경계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이 보여주는 그 모든 헛된 시도들과 별볼일 없는 모험 또한 그 방랑을 위한 동인이다.
그들의 경계를 부수는 건 그들 자신이 아니라 외적인 힘에 의해서다. 그들이 닿은 세상에서 관계는 복구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또한 그들에겐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돌아갈 곳은 저 너머에 있게 된다. 우연한 죽음에 대한 돌연한 회고처럼, 망각이 그들을 완전히 잡아먹어버리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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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ddkfl3 2007-07-2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세로드러왔어요.
저많히사랑해 주세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