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구하고 말았음.... 당대의 트렌드를 수용함에 있어서 거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느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빡쎄진 비틀즈 같음.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전곡에 적용되는 게 아니어서 띄엄띄엄 해당되는 중이고, 리마스터링이 된 곡이라 해도 워낙 오래 전 물건인 탓인지 마스터테이프 상태가 개떡 같았던 것 때문인지 어찌되었든 음질이 탁월하다곤 말하기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구매 사이트에서의 만족도나 음악지에서의 평점이 고르게 고득점 지향인 것은 노래들 자체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반증하는 바라고 볼 수 있겠음.

근데 이 메이드 인 홀랜드판으로 구하고 나니까 페이퍼슬리브판 품절이 풀렸던데 뭐 나도 몰러 그런 껍데기 복각에 집착하는 타입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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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지방 상영만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허겁지겁 보고 왔음. 

 

솔직히 신지가 도망치지 말자고 중얼거릴 때 흥분된다기보다는 좀 쪽팔렸다. 그 반추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골백번은 더 들어서 이젠 희화화의 대상이 되버린 대사를 다시 듣게 되자 올라오는 이 뻘쭘함. 그려그려. 에바는 막 오덕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에서의 우리나라에 있어서 오덕 문화의 정점이자 상징과도 같았고 그 붐을 전후로 무지막지하게 재생산된 온갖가지 리믹스들(그 난장판 한가운데엔 창설 이래 최고의 대박 티켓을 잡아쥐게 된 가이낙스의 열정으로 가득한 용돈 벌기도 있었고)로 인해 에바는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탕진해버린 것처럼도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것이든 시시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무차별적인 리믹스들은 되려 원본에의 갈망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에바-안노 히데아키-가이낙스 스텝 라인이라는 조합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에바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가질 권위는 양산된 동인혼적인 소품들과 대적될 바가 아니다. 바로 그래서(상업적으로나 내적으로 납득할 만한 지점으로서나) 에바가 다시 시작됐다.


에바의 그리운 초반씬, 아버지를 앞에 두고 왜 타야 하느냐고 소리 지르다가 주섬주섬 결국 에바를 타버리는 신지의 모습에 얼마나 감정이입이 되느냐가 에바를 이해하는 단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란 작자가 신경도 안 쓰다가 수 년만에 아들내미를 불러와선 기계반 생물반으로 된 괴물딱지를 타라고 강요할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래? 그럼 타지 마.', '헹, 좆까슈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수.' 이러고 돌아가는 성미라면 에바에의 동의는 물 건너 간 거라고 보면 된다. 휙 하고 돌아서지도 못하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양껏 표출하지도 못한 채 징징 짜면서 자신의 너절한 처지와 정신세계 때문에 비관하고 머뭇거리다가 레이 앵벌이 보고 나서 일말의 마인드 자위질로 자기최면 건 다음 결국 에바를 타게 되는 자기억압적인 신지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파더 컴플렉스, 혹은 다양한 종류의 권위에의 무기력한 굴종에 대한 깊은 일치를 성립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문득 서쪽 나라 사람들이 에바를 받아들임에 있어 레이와 아스카라는 투디 미소녀 궁극의 디자인에 대한 헉헉거림과 초호기 헉헉 외에 신지에 대해선 어떤 반응이 주류였는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난 마침 대니얼 클로즈의 [고스트월드]를 다 읽은 참이었고, 아마 이것이 그 익숙한 초반부를 십여 년만에 보는 내게 어색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서]는 꽤 명민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극장에서 접하게 되는 셀-리미티드 애니적인 투박함이 CG가 활용된 박력 넘치는 액션신과 은근하게 충돌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에바를 처음 접하는 이와 옛팬들을 동시에 먹어버리겠다는 의도로 펄펄 살아있다. 그러니까 물론 이것은 에바를 다시 접한 이로서의 판단이지만, [에반게리온:서]는 디테일의 애니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다 더 보여줌으로써 보다 더 완고해진 세계를 구축한 작품이다. 기술력의 발달은 애니 속에서의 비생물들, 소위 대파괴 이후의 도시적 양상들에 대한 정교한 구축과 플롯 기능요소로서의 엑스트라들을 보여주는 것에 열중한다. 그 흐름으로 우리가 파악하게 되는 것은 일련의 '과정'이다. 에바가 기동하고 그를 서포트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살아가는 살아있는 도시가 있다. 압축된 시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축소된 것은 그 모든 인물들이 마땅히 가지고 있을 마음에 대한 주의 깊은 확대경이었지만 그를 희생해서 얻은 것은 보다 거시적이고 신지의 동기부여에 대한 굵직한 부분이다. 동시에 이것은 티비판과는 달라진 신지의 성격적인 차이와 연계되는 부분이다. 이와 같은 너무나 많은 정보량을 짧은 시간에 전달하느라 휙휙 넘어가는 컷들에서 침착한 흐름을 기대 못하기에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이 부분은 옛 팬들의 눈썰미에 기대는 바가 있다. 거대한 금속 덩어리들 사이에 선 인물이 불러오는 소외감 섞인 정적과 압도감, 그리고 과포화 상태의 이미지 정보는 원작에도 존재하는 것. 이번 극장판은 앞서 얘기한 '과정'의 디테일화와 더불어 전자가 보다 증폭된 인상이다.


모든 것은 야시마 작전을 향해 달려간다. 야시마 작전 에피소드는 원작의 전체 스토리상에서도 모종의 화해와 일말의 결론을 담보한다(사실 티비판에서 이후에도 별 변화되지 않는-되려 심화되는-신지의 캐릭터로 인해 캐릭터의 구제불능적 속성을 제시하는 덴 성공했지만 후속 스토리로 이어지는 마땅한 흐름과 일치되지 않는 어정쩡함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에피소드였기에 이 부분을 시작 파트의 끝으로 잡아놓은 것은 현명했다). 바로 이 마지막 부분에서의 긴장감과 갈등을 높이기 위해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신지가 에바 안에서 겪는 고통은 비주얼적으로 강력하게 업그레이드가 됐다. 티비판에서 이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육체적 통증이 다양하게 강조됐던 정신분열증적 고통에 비추어 영 심심하게 여겨졌던 이라면 이번 리뉴얼판에선 확실한 마조히즘적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품의 제작진 또한 마찬가지 마인드였을 것이며 그 결과가 빚어낸 증거는 만족스럽게 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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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이 로리콘 색기 오덕이었음.

결국 4000원대 돌파라는 현실이 상징적일 수밖에 없는 물건. 근데 이젠 타성도 안 생기는 게....

전나 뻔한 후까시물이긴 한데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용으론 괜찮았다.

정석적인 전개. 해피엔드 지향의 정치성. 무난한 개그물. 이혼녀 패치.

쿠샨 왕다마 존나 싱겁네. 그러고보니 1년 2개월만.

이건 딱 일년만. 여전히 이빨과 후까시로 싸우는 애들이 잔뜩. 그러나 그와중에 은근하게 진지한 면도 보이곤 해서 이제는 좀 관대한 의미로 재밌음. 아직까진 일본편이 최고임.

잘 생각해보면 이 만화 자체는 생각 없이 후까시 잡는 색기들을 존나게 까는 내용이었는데 스타일 자체가 워낙 세련되다보니 그거 따라하는 놈들을 잔뜩 만들어낸 운명이 되버렸다. 작품 자체의 소용에서부터 이야기까지 조롱의 방법론으로 풀어가는 것이 여전히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질릴 법한 스타일리쉬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되가고 있는 중.

가끔 읽고 나서 왜 이걸 다 읽느라 시간을 날려버렸지 싶은 생각이 드는 책들이 있다.

이것보단 신선조 혈풍록을 더 읽고 싶었는데, 뭐 번역되긴 할려나. 암튼 시바 료타로와 나랑은 안 맞는다는 걸 재확인하게 만들었음. 이 영감이 구사하는 단정적 문장 자체가 싫음. 일본 대중소설 문장의 어떤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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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라를 접은 다음 실업자가 되었을 필립 안젤모를 생각하며 그의 미래와 의료보험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으나 프로젝트로 굴리기 시작한 밴드 가지고 지방공연 다니며 멀쩡히 잘 살고 있었음. 1집이야 명실공히 걸작이었던 거에 비해 2집은 영 헤매는 느낌이었는데 5년만에 나온 3집은 1집 때 느낄 수 있었던 그 매력적인 리프들과 강력한 훅으로 중무장해서 돌아왔다.

 

Temtations Wings. 근데 이놈은 1집 거.

 

On March The Saints. 요번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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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칭찬이라고 하긴 힘들겠지만, 마치 이 만화에서 지금껏 나왔던 인물군들이 삶을 대처함에 있어 자주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은 실패작이다. 스토리적으론 흥미로울 수 있는 새로운 배치와 소재들이 있었지만 도저히 제대로 살아났다곤 할 수가 없다. 원작보다 더 붙었지만 살려내질 못하니 거추장스러웠고 쓸 데 없었다.

이 작품이 기이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뒤로 가면서부터 작화와 스토리 양쪽에서 동시에 보여줬던 붕괴에 가까운 퀄리티 하락이었다. 마치 원작자인 타키모토 타츠히코는 주인공 타츠히로처럼 이 고정 월수익 만화의 미래를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만화 자체가 보여주는 정서적인 혼란과 파쇄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던 건, 이 만화가 월간 연재로 8권까지 채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끌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질질 끌려온 것 같다. 제 속이 다 까발려져 보일 정도로.

물론 가까스로 살아나는 순간들이 있다. 완전히 구렁텅이에 빠진 만화를 구제한다기보다는 거의 작가 자신의 버둥거림에 가까울 만치로, 박살나기 직전까지 굴러가는 타츠히로의 의식이 자각되는 간헐적인 순간들에 이르러 이 만화는 자신의 가치를 가끔씩 일깨우게 된다. 마치 진행시켜야 하는 억지스러운 흐름에 대한 반발처럼도 느껴지는 그런 장면들은 가까스로 이야기를 작품 본래의 파멸적인 흐름에 대한 자각의 즐거움으로 환기시켜주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8권에서 또한 그런 장면들이 간간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실패작이다. 실패를 구술하는 것 자체가 실패라는 방법론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그 모습이 측은하여 이 작품을 마음 속으로나마 구원하는 것도 이 비뚤어진 것에 대한 비뚤어진 여정 만큼의 비뚤어진 애정이라 부를 수 있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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