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이 처음 나왔을 때, 그리고 그것이 이뤄낸 의외의 대성공은 청소년 문화라는 억압된 채로 생성된 하나의 돌출된 흐름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는 걸 뜻하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일찌기 학교괴담에 있어서 일가를 이룬 일본 호러영화 장르에서의 벤치마킹이었음을 부정하긴 힘드리라. 하지만 여고괴담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7, 80년대의 활극형 청소년 영화 장르에서 볼 수 없었던 어두운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개방형 문화 풍습에 의한 육체적 즐거움이 외계에서 온 도살자에 의해 이내 악몽으로 변질되는 서양의 틴에이지 공포물과는 다른, 공모자들의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자리하는 음험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공존하는 존재들이며 [여고괴담]은 그 광범위하게 퍼져있지만 정작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곳을 직시함으로써 얻어낸 공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고괴담]은 영화가 성공한 시점에서부터 커뮤니티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전작이 보여줬던 그런 가능성, 그 미묘한 지점을 역설적이게도 모호한 이미지들을 통해 정확하게 잡아냈다. 전작의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시장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어야 했을 이 속편은 그 '당연함'이 보장하는 시스템적인 공식들을 무시하고 레즈비어니즘, 내밀한 청소년 문화, 관음증, 사제 간의 사랑과 같은 기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기호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모든 기호들은 금기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금기들은 말그대로 '여고'라는 폐쇄공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욕망에의 접촉이다. 모든 미묘한 소재들은 영화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립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을 뿐이다. 가정과 가족이 거세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 심리극은 그저 놓여진 기호들의 잔치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올 것을 유혹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선 잊혀져 있으며 그와는 반대급부로 열렬한 매니아층을 형성시켰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치 지나가버린 10대 시절의 괴담처럼.

이번에 나온 이 얼티밋 에디션은 그 괴담 커뮤니티의 열렬한 추종자들을 화끈하게 노리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186분 짜리 가편집본의 수록은 가뜩이나 여고에서의 생활과 감정에 대한 세세한 천착으로 이뤄진 영화를 여고에 대한 [우든크로그]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절판된 사운드트랙의 수록은 그것만으로도 매니아적 수집욕을 돋우게 만들고 그렇게 만들고들 싶어했던 영화 속 교환일기의 양산형 공장제 버전이 들어가 있다는 건 아주 명백하게 저 커뮤니티성을 겨냥한 도발이라 할 수 있으리라. 상당히 사고 싶은 물건이 나왔다.

어차피 DVD플레이어도 없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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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보의 통제와 자유에 대한 아주 오래됐지만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 고전적인 문제제기에 관한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난 후자를 지지한다. 인간은 굳이 멸망을 늦춰야 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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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릿 2005-03-2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너무 재미있는 화면입니다. 설마 저런 날이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KT 불매운동'이 소개되고 있더라구요. KT가 그런다고 하더라도 분명 정액제를 하는 인터넷사업자가 있을겁니다. 유선케이블방송사는 아마 정액제를 유지할거에요.
암튼.. 불행히도 정액제가 된다면, 알라딘 서재도 그렇고, 각종 커뮤니티 서비스도 문닫을 확률이 높겠네요. 쯥.. ㅠ.ㅠ

hallonin 2005-03-30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굴러다니는 그림파일인 줄 알았더니 어젠가 디시인사이드 힛갤에 올랐더군요-_- 다행히도 무단으로 옮겨다니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원작자의 불평은 없었습니다. 혼미스러운 세상입니다....
 

말도 많았던 카트린M의 성생활을 이제 읽는다. 광진구에 위치한 어느 화실에서. 난생 처음 모델 사생의 말석에 앉은 채로. 내가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캔버스 위를 굴러가는 연필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 책이 읽는 이로 하여금 쉼없이 스스로를 자각하게 만든다는 것은 확실하다. 카트린이 겪은 경험의 폭은 소위 일반적인 이들, 더군다나 아시아 구석에 자리한 유교풍습으로 가득한 국가에선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크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거의 환타지 수준으로 보이는 저자의 세계는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그 냉정한 태도-마치 해부를 하는 듯 서술되는 이미지들의 반복적인 연쇄 화학작용으로 미니멀리즘적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제의의 탈을 빌린 일상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오늘의 모델인 그녀는 막 사랑에 빠진 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랑에 빠질려고 노력하는 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버림받은 남자들을 안다. 그리고 그녀를 버렸던 남자들을 안다. 그 지리하고 반복적인 고통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 또한 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어왔던 일들이고 앞으로도 그녀는 변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녀가 남자의 태도에 대해 칭송하며 3일동안 하루에 세번씩 섹스를 했다고 수줍게 고백할 때조차도 나는 그남자의 안녕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야했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질투심을 동반한 감정이었다. 오지 않는 행복은 비록 순간적인 것이라도 치명적으로 부러웁기 마련이니.

카트린 밀레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남자들의 몸을 통해 사랑받고 사랑했다. 그녀는 언어를 통해 형상화되는 지시대상이 아니라 확실하고 현물적인 단백질 덩어리를 사랑했고 한 번도 그 충만함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그러니까 전형적인 연애를 겪은 적은 없다. 그녀 스스로가 그 모든 지리한 과정에 대한 지루함을 경계하고 싫어했다. 그녀는 영원을 믿지 않았지만 헤어진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끊이지 않고 사랑을 받았다. 이것은 한 면.

그녀는 영원을 꿈꿨다. 영원한 사랑, 운명의 상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연애가 주는 살가움을 사랑한다.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잊어버리길 싫어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찾아 많은 남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지리함의 여정 속에서 찾아왔다. 상대를 버려버리는 가혹한 여왕 역할은 그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후회하는 것 또한 그녀의 몫이었다. 이것 또한 한 면.

사생을 하는 이들, 서로를 선생과 미스터로 부르는 이들이 각자의 소도구들-파스텔, 연필, 붓-로 그녀의 얼굴을 가늠하며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 시선으로 이미지를 해부하여 재구축하기 위해 움직이는 그들의 눈과 턱은 무표정하다. 가끔씩 모델의 자세에 대해 나오는 불평은 로봇이 만들어내는 소리 같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즈음, 세시간에 걸친 사생도 끝났다. 작업이 끝난 그림들을 봤을 때, 그들 중 어느 하나도 그녀의 이미지를 제대로 잡아낸 이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왜곡된 눈, 과장된 미간, 너무 두터운 인중,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길죽한 턱. 그것들은 마치 실패한 섹스 같았다. 또한 그녀가 얼마나 까다로운 모델인지를 증명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내내 아래로 쳐진 입꼬리를 하고 있었지만 결코 찌그러진 표정은 아니었던 그 복잡미묘함에 대한 이 망가진 결과들은 그녀자신이기도 했다. 아니, 망가졌다는 말은 정확치가 않다. 그것은 갈구에 대한 현재진행중인 표상이다. 행복이라고 표현되는, 인간이 살아있어야 마땅한 즐거움을 가리키는 것.

이제 요람의 스승 역할은 그만 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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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45 [the craving]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 메가데스류의 음악을 듣고 싶었고, 부클릿이 맘에 들었을 뿐으로 구입했던 이 앨범의 존재는 영 버거운 것이었다. 멍청했던 난 펑크와 브리티쉬 메탈에 대한 경배로 가득한 이 앨범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스래쉬 메탈답지 않게 밍숭맹숭한 음악으로 차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머스테인에 관한 것이라면 이것저것 다 모으던 양모씨의 되팔라는 제안에 내 손은 뻔뻔하고 부끄럽게도 스스로의 무지를 선언하는 우매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그이후, 어떻게든 귀에 익숙하게 만들려고 질리도록 들었었기 때문에 이 앨범이 들려줬던 음악들은 뇌 한구석에 박혀있다가 가끔씩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곤 했었다. 그렇게 오래된 재생기의 영 변변찮은 재생능력은 점점 내가 한 실수에 대한 자각을 갖게 만들어줬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난 내가 실수를 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디로 구할 수 없었다. 1996년 발매라는 제법 오래된 시간과 프로젝트 그룹이었다는 한정성, 무엇보다도 더럽게 안 팔렸다는 사실 때문에 이 앨범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조차 찾기가 힘들었다. 재고야 기대조차 안 가는 상황이었고 중고 앨범 시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지만 여러 중고 앨범 가게를 돌아다녀봐도 이 앨범의 존재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데이브 머스테인이 이 앨범의 리마스터링 앨범을 내놨다는 것을 알게됐다. 리마스터링이라, 오호, 드디어 구할 수 있겠군... 이러고 있는데 보컬은 머스테인.... 원앨범의 보컬이었던 리 빙의 목소리를 빼버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모조리 바꿔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난 들어보기도 전에 실망했다. 머스테인의 목소리로 원 앨범의 보컬인 리 빙의 파워풀한 보컬 스타일을 대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머스테인은 결국 해냈고 결과는 역시였다. 3번 트랙인 'fight hate'만 들어봐도 머스테인의 목소리는 리 빙의 거친 훅과 샤우팅을 못 따라간다. 나는 결국 당나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 넓은 네트 안에서 단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앨범 zip 파일을 발견하고 다운을 걸어놓길 어언 3개월. 드디어 어제 새벽, 파일 마지막 파트의 전송이 끝났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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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2005-03-2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나도록 축하허네.

hallonin 2005-03-26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큰한 감동이여~
 

요즘 가장 즐겨 듣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효리&에릭의 애니모션과 쥬얼리의 수퍼스타입니다.

최근에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은 뭐죠?

-[루팡 3세 카글리오스트로의 성]입니다. [암굴왕]은 웬지 글러먹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가장 맛없게 먹은 음식은 무엇입니까?

-LG25에서 나오는 돈까스버거입니다. 정말 최악인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이걸 하루에 두번씩이나 사먹었다는 거죠. 제자신이 너무 한심해진 나머지 일종의 보조기억장치인 블로그에 [편의점의 맛]이라는 메뉴를 신설하여 편의점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려면 저 염병할 돈가스 버거를 또 사먹어야 할텐데.... 고민이군요.

최근에 가본 가장 재밌는 장소는 어딥니까?

-강북 웰빙 스포츠센터입니다. 벽치기 노가다를 하러 갔던 곳인데 그 건물은 특이하게도 환풍기와 에어컨과 커피 자판기가 없더군요.

요즘은 책을 안 읽습니까?

-네.

[골든보이]의 제목이 '골든'인 것은 역시 그 '골든' 때문인 걸까요?

-그점에 있어선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자주 나오기도 하구요.

요즘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뭡니까.

-철권 플레이어가 되보고 싶습니다. 일종의 금기였던 3D 대전 격투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거지요.

DOA는 이미 즐기시지 않습니까.

-그 작품은 특별합니다.

특별합니까?

-특별하지요.

신타니 마유미의 목소리가 맘에 들지 않습니까?

-킹오파2002에서의 엔젤역은 전작을 넘어서는 마스터피스였죠. 왜 안 떳을까요?

글쎄요. 그런 목소린 원래 인기 없어요. 매니악한 목소리랄까요.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왜 안 읽는 겁니까?

사놓고보니 읽기가 귀찮더군요. 그래도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겨우겨우 읽어냈습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요즘은 책을 안 읽어요.

-빅슈를 너무 자주 사먹는 것 같더군요. 그것이 가진 메리트는 무엇일까요.

먹다보면 옆으로 줄줄 새서 들고 다니며 먹기 힘든데다가 값도 비싸다는 점이지요. 아무래도 그보다는 중국식 호떡이 더 나은 거 같아요.

-산타클로스는 있을까요?

당신의 마음 속에.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좋아하시죠?

칼로리가 높아야 음식은 기름지고 맛있기 마련입니다.

-당신 같은 남자가 어째서 [라그나로크]를 하지 않는 걸까요?

전 [라그나로크]가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었습니다.

-믿기질 않는군요.

실은 저도 그래요.

-동화를 쓰고 싶으십니까?

네. 이미 제목은 정해놨습니다. [성난 말의 죽음과 휴거]. 체코 민간전설풍의 초현실주의 모험드라마로 쓰여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상과 도서관 문헌 목록의 양쪽에서 펼쳐지는 마술적 리얼리즘과 체코 특유의 민족적 색채가 현대 동유럽의 초등학생들이 겪어야하는 복잡다단한 사각연애관계 속에서 물감처럼 퍼져들겠지요.

-적당하게 잘 베껴써야겠군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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