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도 많았던 카트린M의 성생활을 이제 읽는다. 광진구에 위치한 어느 화실에서. 난생 처음 모델 사생의 말석에 앉은 채로. 내가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캔버스 위를 굴러가는 연필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 책이 읽는 이로 하여금 쉼없이 스스로를 자각하게 만든다는 것은 확실하다. 카트린이 겪은 경험의 폭은 소위 일반적인 이들, 더군다나 아시아 구석에 자리한 유교풍습으로 가득한 국가에선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크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거의 환타지 수준으로 보이는 저자의 세계는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그 냉정한 태도-마치 해부를 하는 듯 서술되는 이미지들의 반복적인 연쇄 화학작용으로 미니멀리즘적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제의의 탈을 빌린 일상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오늘의 모델인 그녀는 막 사랑에 빠진 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랑에 빠질려고 노력하는 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버림받은 남자들을 안다. 그리고 그녀를 버렸던 남자들을 안다. 그 지리하고 반복적인 고통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 또한 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어왔던 일들이고 앞으로도 그녀는 변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녀가 남자의 태도에 대해 칭송하며 3일동안 하루에 세번씩 섹스를 했다고 수줍게 고백할 때조차도 나는 그남자의 안녕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야했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질투심을 동반한 감정이었다. 오지 않는 행복은 비록 순간적인 것이라도 치명적으로 부러웁기 마련이니.
카트린 밀레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남자들의 몸을 통해 사랑받고 사랑했다. 그녀는 언어를 통해 형상화되는 지시대상이 아니라 확실하고 현물적인 단백질 덩어리를 사랑했고 한 번도 그 충만함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그러니까 전형적인 연애를 겪은 적은 없다. 그녀 스스로가 그 모든 지리한 과정에 대한 지루함을 경계하고 싫어했다. 그녀는 영원을 믿지 않았지만 헤어진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끊이지 않고 사랑을 받았다. 이것은 한 면.
그녀는 영원을 꿈꿨다. 영원한 사랑, 운명의 상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연애가 주는 살가움을 사랑한다.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잊어버리길 싫어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찾아 많은 남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지리함의 여정 속에서 찾아왔다. 상대를 버려버리는 가혹한 여왕 역할은 그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후회하는 것 또한 그녀의 몫이었다. 이것 또한 한 면.
사생을 하는 이들, 서로를 선생과 미스터로 부르는 이들이 각자의 소도구들-파스텔, 연필, 붓-로 그녀의 얼굴을 가늠하며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 시선으로 이미지를 해부하여 재구축하기 위해 움직이는 그들의 눈과 턱은 무표정하다. 가끔씩 모델의 자세에 대해 나오는 불평은 로봇이 만들어내는 소리 같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즈음, 세시간에 걸친 사생도 끝났다. 작업이 끝난 그림들을 봤을 때, 그들 중 어느 하나도 그녀의 이미지를 제대로 잡아낸 이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왜곡된 눈, 과장된 미간, 너무 두터운 인중,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길죽한 턱. 그것들은 마치 실패한 섹스 같았다. 또한 그녀가 얼마나 까다로운 모델인지를 증명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내내 아래로 쳐진 입꼬리를 하고 있었지만 결코 찌그러진 표정은 아니었던 그 복잡미묘함에 대한 이 망가진 결과들은 그녀자신이기도 했다. 아니, 망가졌다는 말은 정확치가 않다. 그것은 갈구에 대한 현재진행중인 표상이다. 행복이라고 표현되는, 인간이 살아있어야 마땅한 즐거움을 가리키는 것.
이제 요람의 스승 역할은 그만 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