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의 규방철학 바리에테 4
D.A.F. 사드 지음, 이충훈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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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끝에 실려있는 가라타니 고진이 쓴 작품 해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나는 사드를 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이것은 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사드의 저작이라곤 거의 이 한 권만을 꼽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토록 흔하게 인용하곤 있지만 정작 온전하게 접하진 못하고 있는 사드라는 인간과 그의 세계는 도대체 무엇이라고 해야할 것인지, 다시 묻는 것은 썩 온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너무 자주 행해져 왔기 때문이다. 

[규방철학]은 역자의 말과 [규방철학] 본편,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방철학] 본편 안에는 '프랑스인이여, 공화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을'이라는 제목의 소책자가 실려있다. 여기서 보여지는 밀고 당김과 역전되는 역할극에 대한 예술적인 경지의 가학-피가학적 광경 보다는 선생들의 교육을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행동들을 본능적으로 수행하는 으제니의 고분고분한 모습이 사디즘의 순진했던 고전시대를 느끼게 만드는데 사드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당시 문학양식 특유의 장식적이고도 장황한 설명으로 이뤄져 있는 소책자가 들어가 있다는 것으로도 짐작 가능하거니와 끼울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접합을 연구하며 묘사되는 난교의 풍경들이 양념 치듯 간간이 나오는 반면 상대적으로 도덕과 이성에 대한 사드 자신의 이론들이 현란한 수사의 장광설로 펼쳐지는 이 책의 흐름은 다분히 정치적인 사드 자신의 사상에 대한 개인적 욕구가 반영되어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글이 보여주는 자유는 현학적이고도 거침없는 상상의 영역과 동의어다.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혐오할 수밖에 없는 영역의 행위에 쾌락의 왕관을 씌워서 온갖 수사를 동원해가며 호들갑스럽게 찬사를 퍼붓는다. 그 방법론이 되려 과장과 망상으로 이뤄진 일종의 독임을 알아챈 이들은 과장스럽게 구축된 혼돈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쾌락을 통해 찾아내려 하는 사드가 일종의 골방혁명가였음을 간파해냈다. 그의 혼돈은 실로 혼돈 그 자체이며 그 도발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이론적인 설명의 불가능함을 역설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은 예리하다. 과연 지고의 가치인 '쾌락'을 어떻게 해야 이론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쾌락은 플라톤이나 토마스 아퀴나스로 설명되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천박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노골적이며 끈적이는 타액과 타액의 교환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하는 세계다. 개구리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가 뭐가 다른지 어떻게 구분해야 하겠는가. 그렇게 끈적거리고 금기투성이며 궁극적으론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다루는 작업이었기에 사드는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구속된 상태에서 보내야 했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의 글들은 지하를 통해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까지 광기에 절은 풍경에 천착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실상 현실은 이미 사드의 상상을 넘어서는 세계였기 때문이리라. 혁명으로 인해 구체계가 부숴지고 로베스피에르의 압제가 날뛰던 세계. 로코코풍의 부패한 일탈들과 권력에 의한 민중의 도륙, 그리고 민중에 의한 권력의 도륙이 마구 뒤엉켰던 시대. 그의 글이 아직도 우리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폭력의 광경들이 말그대로 혼돈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경험들의 댓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나온 이 번역판은 말그대로 완역본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사드의 원저작을 삭제 없이 그대로 뽑아냈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문학 전공자인 역자의 꼼꼼한 태도는 이 소설을 하나의 두툼한 풍속 및 문학사전으로 보이게 만들어놓을 정도로 풍부한 주석과 해설로 채워놓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현상 그 자체인 사드의 저작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리라. 그래서 별이 하나가 부족한 까닭은 사드라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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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돌아왔다. 커뮤니케이션 북스에서 나왔던 만화들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엘프를 사냥하는 색휘덜], 한국어판 [엘프사냥꾼]이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출간했던 14권 이후, 15권부터가 삼양에서 출간되기 시작했다. 정가도 신선한 가격 3000원. 아마도 삼양에선 미디어웍스 소속의 야가미 유 만화에 대한 국내판권을 거의 다 확보한 듯, 그의 다른 작품들이 나온 곳도 모두 삼양출판사.... 주로 미디어웍스 계열의 만화들에 손을 많이 뻗고 있는 이 회사의 모회사가 뭐하는 회산지 가끔씩 궁금해진단 말이지-_-

일본 만화 역사에 독보적인 업적으로 버티고 있으며 아마 아직도 연재중일 것인 [파타리로]는 당시 횡행하던 순정만화들의 도식화된 구조에서 삐져 나오는 뻔한 이미지, 뻔한 이야기라는 독을 작품의 자양분으로 삼고 나타난 작품이었다. 그래서 [파타리로]는 기본적으로 패러디를 바탕에 두고 당대의 소녀만화들에 대한 적극적인 이죽거림을 동반하는 지극히 장르해체적인 작품이었다. 이렇게 [파타리로]의 경우에서 보듯, 어떤 장르라는 것이 고착화되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부터 장르의 해체가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은 일종의 순리와도 같다. 그런 면에서 TRPG룰에서 파생된 먼치킨 환타지 문학의 도식화가 갈데까지 갔던 시기에 [엘프사냥꾼]이 나오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엘프사냥꾼]에서 [파타리로]에서 볼 수 있었던 능청맞은 개그와 조소를 발견하기란 힘들다. [엘프사냥꾼]은 그보단 훨씬 뻔뻔하다. 말만 환타지지 아주 노골적으로 적당하게 현실세계에 기댄 세계에 떨어진 세 주인공은 이종격투기광, 밀리터리광,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히로인 전문의 여배우다. 이 구성원부터가 상당히 깨는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환타지 소설에서 아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차원이동형 먼치킨 환타지 소설에의 적극적 선례라고도 볼 수 있으리라. 아무튼 그들은 자꾸만 그들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이 왁자지껄한 활극을 보다보면 그들이 뭐하러 골때리는 현대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아무튼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들이 하는 짓은 무어냐. 바로 엘프를 벗기는 거다. 이유인즉슨 그들이 돌아갈 수 있는 주문조각들이란 것이 생성될 때의 실수로 전세계로 퍼져버려서, 그게 엘프들의 몸에 새겨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그 주문조각을 얻기 위해 가는 곳마다 엘프를 벗기고 다녀야 한다.... 우리는 지와 덕을 갖춘 조정자이자 수백 년을 살아가는 고고한 존재들인 엘프들이 옷이 안 벗겨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봐야한다. 물론 이 만화의 주소비대상층을 고려하여 여기서 엘프는 죄다 여자들뿐이다.

여기서 확인 가능한 것은 야가미 유는 이러한 기존 질서를 조롱하는 유희들에도 불구하고 먼치킨 환타지 세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죽거릴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되려 환타지 세계의 개방성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물론 그 방법론은 충분히 먼치킨 환타지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고 적어도 그 틀 안에서 이 작가는 독자를 웃길 줄 안다. 기존의 시트콤의 법칙들을 빌어와서 만들어내는 즐거움. 웃기는 상황을 짜내는데 있어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야가미 유는 [엘프사냥꾼]에서 먼치킨 환타지 소설이 어째서 활자가 아니라 만화책 대본으로 쓰여야 하는지를 자신있게 증명해 보인다.

아치 타로우의 원작을 야가미 유의 감수성으로 풀어낸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도 마찬가지의 케이스다. 우주 경찰의 새 패트롤복 실험을 위해 지구로 온 우주 완구 회사의 세일즈맨 겸 테스터와 엉뚱하게 일에 휘말리게 되는 뭣 모르는 주인공, 그리고 그들 주위를 둘러싸게 되는 무늬만 악당인 다양한 캐릭터군이 다같이 코스모스장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들을 그린 이 작품 또한 재치있는 상황설정에 강한 야가미 유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3권 분량의 단기연재였지만 1쿨 짜리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고 투니버스에서 방영도 했었다. 그러고보면 야가미 유의 만화는 연재와 동시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두 작품에 걸쳐 있는 셈인데([엘프사냥꾼] 또한 1쿨 짜리 애니로 제작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소속이 말그대로 미디어웍스사여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 웨스트]는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과 비슷한 시기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우리는 작가 특유의 웃기라고 작정하고 만든 상황설정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고 웨스트]는 절반 이상의 실패, 혹은 작가 자신의 매너리즘에의 침식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찾아 무턱대고 서부시대의 황야로 나선 여주인공(일본인), 그리고 그녀 앞에 선 오빠라고 주장하는 아프로 파마의 폭탄광 흑인과 아빠라고 주장하는 정신 나간 총잡이 백인. 그리고 일직선으로밖에 갈 줄을 모르는 무식한데다 힘만 쎈 로데오용 말 한 마리. 이런 상황만 보면, 이 작품 또한 오지게 웃길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1권에서, 그런 설정 상의 재치있는 장치들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일단 저 자칭 오빠와 아빠가 등장하면 상대적으로 극이 유연해지고 웃기긴 웃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여기서 야가미 유가 묘사하는 서부라는 공간은 [엘프사냥꾼]의 주인공들이 떨어진 환타지 세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 공간에 떨어진 일본인 여자애가 약간 맛이 간 광폭한 말을 타고 다니는 여행기라고 하는 것은, 서부극이 아직 먼치킨 환타지 만큼의 법칙과 지위를 얻지 못한, 혹은 그 자리 자체에 어울리지 못한, 혹은 그런 먼치킨 웨스턴물의 풍류가 이미 지나버린 작금의 시대에서 개그극을 펼쳐보인다는 것이 어떠한 리스크를 가지는 일인지 확인시켜 준다. 주인공에게 있어 서부라는 공간은 [엘프사냥꾼]의 주인공들처럼 어딘가로 돌아갈 곳이 마련된 임시거처도 아니고 [정들면 고향 코스모스장]에서처럼 가족적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공간도 아닌, 그저 어중간한 위치의 세계일 뿐이며 그런 공간에 선 주인공의 입장이 가질 어색함 또한 작품 내에서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다 서사 구조가 워낙 [엘프사냥꾼]을 생각나게 하는 통에 간간이 나오는 억지 감동적인 에피소드들 또한 썩 매력이 없게 다가온다. 굳이 리얼리즘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이 작품에서 또한 거슬리는 것은 이국인 주인공과 조연들 간의 의사소통이 전혀 문제 없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마디 더하자면 웨스턴물의 팬들은 전통적으로 최소한의 고증이 바탕이 된 픽션을 좋아해왔다는 점이다. 여기가 [엘프사냥꾼]의 먼치킨적인 자유로 가득한 세계로 가꾸길 바랬다면, 작가는 좀 더 다른 방향에서의 접근을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했다. 이것은 장르의 독에 대한 유희를 바탕으로 작품을 나놓던 야가미 유가 되려 자신의 작품이 뿜어내는 독을 맞이하게 된 결과와도 같다. 그래서 작중에서 '서부란 이런 거야!' 라고 특유의 휴머니즘삘 나는 목소리로 간간이 외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 나이 먹어서는 슬쩍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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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시 드라마, 솔직히 요즘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론에 있어서가 아니라 편성과 기획에 있어서의 문제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이 방송사에서 나오는 드라마는 가끔씩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우선 [내 이름은 김삼순]이 보여줬던 매니아 드라마와 대중 드라마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그랬고 철저하게 작가 지향이었던 [아일랜드]가 그랬으며(그러나 이 건은 이후 엠비시 드라마 시청율 부재의 서막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떨리는 가슴] 또한 하나의 강렬한 지점을 남겼다. 문제는 삼순이를 빼고 죄다 시청율이 엉망이었다는 것이지만. 그런데 지금, 다시 그놈의 엉망인 시청율의 낙인을 안고 서서히 묻혀져 가고 있지만 더없이 빛나고 있는 드라마가 엠비시에서 방영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태릉선수촌]이다.

무릇 스포츠 드라마는 승부와 감동이라는 두가지 키워드가 주축이 된 일정한 공식을 타고 그에 대한 변주에 변주를 더함으로써 진화해 왔다. [태릉선수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 땀내 물씬한 고색창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승리와 좌절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태릉선수촌]은 대단히 감각적으로 선수촌의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니까 이것은 금메달를 향한 감동적인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아니라 운동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삶에 대한 드라마다.

가을 개편 특집으로 베스트극장의 4주 연속 방영 전 8화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유도, 양궁, 체조, 수영의 각 분야에서 자리한 네 명의 남녀를 보여주면서 각 화가 이야기적으로 완결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대단히 트렌디한 감각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트렌디하다는 것은 현재 [달콤한 스파이]를 진행시키고 있는 LK사단의 드라마들처럼 지극히 가볍고 세태지향적이란 점에서가 아니라 청년층의 근원적인 정서를 그들의 호흡에 맞춰 절묘하게 잡아낸다는 의미에서 트렌디하다고 칭할 수 있다. 굳이 비슷한 성격을 찾아보자면 [GO]를 떠올릴 수 있겠으며(사실 편집이나 촬영 측면에서 상당히 흡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떤 이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보다 리얼한 변주로서의 드라마로 훌륭하게 컨버전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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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1-16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슬쩍 보면서 아다치 미츠루를 많이 참조했다는 걸 느꼈죠. 그런데, 뭐랄까. 제대로 된 편집 감각이 많이 부족해 보였어요. 나른함과 적막함을 표현한 듯한데, 지루함과 썰렁함이 느껴졌다구요. 스토리에 급급하지 않고 정서를 따라가는 건 보기 좋았지만요. 제대로 보지 않고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blowup 2005-11-1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욕심이 너무 커서 그런가 봐요. 정말 근사한 중편 드라마를 기대했다구요.

hallonin 2005-11-16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오히려 제 눈엔 30분이란 시간 안에 그런 정서를 밀어넣느라 꽤 밀도 있게 보였는데. 뭐 상당 부분 영화적 감각이란 걸 따왔다는 점에서 벤치마킹의 의구심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아다치스러우면서도 마냥 아다치스럽지 않고, [GO]를 느끼게 해주면서도 또 마냥 [GO] 같진 않은 그런 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이뻐서 하악하악....

로드무비 2005-11-1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멋부리지 않은, 막 들이대는 듯한 제목이 신선해 보일 때가 있어요.
이번주에 우연히 봤는데 와, 정말 청춘드라마잖아~ 하는 느낌이 오더군요.^^

hallonin 2005-11-16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런 기획물이 늘어나야 하는데 말이죠....

blowup 2005-11-2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발언 취소요. 첨부터 다시 봤는데 좋았어요. 드라마는 중간에 보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기며... 마루의 연기는 진짜 놀랍지 않나요? 저게 연기야? 싶은,
최상급 날 연기 최고였어요.

hallonin 2005-11-2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효진삘이죠. 좋았습니다.
 
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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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영원히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모든 것에 무감해진 사람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끝없는 고통 끝에 스스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들은 비로소 울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말을 냉소적으로, 약간의 자만심을 섞은 웃음과 함께 뱉곤 한다. 어른이 되고 성숙해진 거다, 너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결국 세상과 인간은 다 똑같은 거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부여된 고통에게 악의라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면, 그 악의가 바라 마지 않은 결과가 아닐런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삶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 너는 틀렸다 라고 말하긴 힘들다. 그리고 그 어려움 만큼 무감해져야 했던 그들의 말 또한 두터운 진실들을 담고 있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외피를 차가운 철갑으로 두르게 된 것에 대해서 비난하고픈 마음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겪어야 했던 것들의 가혹함은 그들에게 건낼 수 있는 비판과 충고의 효력을 현저히 무너뜨린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런 식으로 차츰차츰, 우리는 늙어가면서 점점 교활해지고 무디어져 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굳이 다른 세계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 보내고 있는 이 한 생애 동안 충분할 정도의 폭력과 냉소와 자기모멸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이 짧지만 깊숙이 파고드는 몽상과도 같은 동화는 그들의 이야기, 아니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이 이기적인 고양이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강렬한 공명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우리들이 여기서 삶에 대한 슬픈 진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환생과 경험을 거듭하는 고양이, 타인의 사랑을 모르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모르는 이 뻔뻔스러운 고양이는 명백히 에고이스트이며 더없이 이기적으로 진화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현명한 작가는 섣불리 이 고양이에게 어리석다든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든지 하는 작가적 결론 같은 걸 내리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고양이가 겪어야 하는 조용한 운명의 흐름뿐이다.

 

마침내 고양이는 단 한 번, 구원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너무 오랜 시간 끝에 부여된 이 마지막 경험의 끝에서 고양이는 비로소 냉소적으로 웃지 않고 슬프게 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예정된 우울과 묵직한 평온함이 공존하는 이 마지막은 슬픔을 몰랐기에 슬퍼해야 했던 고양이를 향해 '드디어' 라고, 따뜻하게 말해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렇게 동화는 그들, 혹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꿈꾸게 만든다. 달콤하고 잔인하지만 더없이 소중한 그런 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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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와 관능의 탐험가 도미시마 다께오
섹스를 파는 소설가 도미시마 다께오(富島健夫)

“제가 다에꼬 18살 이예요”
넘길수록 진해지는 본격성애소설.
‘여인추억’시리즈의 여인들이 달아오른 여체의 비밀스런 몸짓을 당신에게만 은밀히 보여드립니다.

이것은 ‘어떤 소설’의 광고다. 1990년 ‘풀빛출판사’에서 펴낸 『소설 창작의 길잡이』(우리소설모임 지음)는 이 광고문구를 소개하면서, 이 소설이 ‘무엇을 ‘팔고 있는가’를 질문 한다. 『소설 창작의 길잡이』는 “소스라쳐 깨어나면서 팥알만한 유두가 손가락을 마중 나왔다. 오랜 비바람에 풍화된 무덤같이 유방이 그 아래 누워 있었다. 도엽은 발작적으로 그것에 입술을 찍었다. 혓바닥이 껍질을 벗고 늑대처럼 달려 나왔다. 그는 바람을 빨아들이듯 거칠게 유방을 한입 베어 물었다”라는 ‘다른 어떤 소설’의 대목을 인용하며 이런 류의 소설은 ‘무엇을 팔고 있는 지’를 다시 묻고 있다. 『소설 창작의 길잡이』는 제목과 작가를 언급하는 것조차 무가치하다고 여겼는지 더 이상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류의 소설은 섹스를 팔고 있다. 그런데 섹스를 판다고 찍힌 책들의 정체는 뭘까.

광고 문구의 소설은 일본의 성애소설가 ‘도미시마 다께오’의 것이다. 다른 것은 1980년대 이름을 날리던 국내대중작가 ‘박범신’의 최초의 신문연재소설 『풀잎처럼 눕다』다. 섹스를 판다는 혐의는 박범신으로서는 좀 억울할 듯 싶다. 박범신의 소설은 섹스를 양념으로 가져갔을 뿐이다. 그렇게 많지도 않다. 이런 저런 섹스 양념을 걷어내면, 80년대 고향을 떠나 도시로 진입한 젊은이의 고단한 생과 절망이 꽤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시대 최고지성의 산실이라는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문순태’의 『걸어서 하늘까지』와도 비슷한 울림을 담고 있다. 읽고 나면 짠한 느낌과 함께, 일그러진 사회에 살던 당시 젊은이들의 욕망과 아픔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대중문학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고급스런 정서적 체험을 준다.

반면 『여인추억(女人追憶)』은 첫 권 첫 장부터 7권 마지막 장까지 내내 섹스만을 이야기, 아니 ‘묘사’한다. 다양한 여인들과 맺는 대학생 마사오의 섹스 체험담으로 가득 차 있다. 고급스런 정서적 체험은 고사하고, 줄기차게 나오는 섹스장면과 노골적인 성적 대화로 읽고 있다는 것을 숨겨야 할 법하다. 이 책은 몸의 체험, 즉 사타구니에 기생하는 ‘형이하학’적 환상을 충족시키고 있다.

『소설창작의 길잡이』가 다그쳐 물었듯이 『여인추억』은 분명히 섹스와 환상을 파는 소설이다. 작가 도미시마 다께오는 섹스와 환상을 빚어 파는 장사꾼이다. 사타구니가 가려웠던 10대 시절 이 장사꾼에게 홀린 사람들은 그 마법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어 “고등학교때 몰래 읽던 책인데 나이먹고 읽어볼라구 했더니 도저히 찾기가 힘드네요.... 보유하고 계신분은 연락좀^^”이라며 헌책방 사이트를 헤메고 다니거나, 아래와 같은 체험담을 남긴다.

당시 야소설이 유행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가로는 ‘도미시마 다께오’.. 멜로와 야설의 환상적인 결합이라고나 할까, 아주 훌륭한 일본의 야설 작가다. 이 사람의 책을 보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안통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저 작가 이름 기억했다가 한번 찾아서 읽어보면은 좋을 것이다. -_-, 동정 1.2’ 추억 4부작’ 이 책들은 꼭 권하고 싶다. 강추다. 이 작가가 쓴 작품으로 여인들의 방이란 책이 있었다. 이 책을 걸렸다. 물론 책 주인은 나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돌고 돌다가 창열이 차례가 돼서 책을 건네줬는데 아 글쎄 이놈이 책을 받으면은 얼른 가방에 다가 집어 넣을 것이지, 그 책을 높이 들더니, 자랑을 하는게 아닌가…-_- 그때 폭력선생이 타이밍이 좋게 들어왔고, 책 주인인 나는 디지게 맞고 부모님이 학교에 나오셔야 했다

성애와 관능의 탐구가 도미시마 다께오

도미시마 다께오는 80년대 후반 『여인추억』 시리즈를 통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지금은 폐간 된 [선데이서울]을 통해 광고 되었고, 일반서점보다는 동네 작은 서점이나 문구점, 터미날 가판서점 등에서 주로 판매되었다. 처음 한동안 이 책은 ‘풋내기’로 불렸다. 시리즈 연작의 첫번째 권의 제목이 ‘풋내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출판사를 바꿔가며 출판되다, 원작제목을 따라 결국 『여인추억』이란 이름으로 굳어졌다. 현재는 전자책 서점 와이즈북에서 시리즈 각 권마다 ‘여인의 향기’, ‘더 깊은 만남’ 등으로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다. 누군가가 일일이 타이핑을 했는지, 야설 사이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인추억』이 거둔 짭짤한 성공 이후 군소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초야』,『동정』,『여인의 마을』, 『야희』, 『밀회』, 『사랑보다 깊은 유혹』, 『벌거벗은 여인』 등 10여 종이 넘는 작품을 번역출판 출판하였다. 연작인 경우 시리즈가 완결되지 않거나 동일한 책인데 출판사가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10여 종이 넘게 번역되었지만, 정작 작가에 대한 소개는 책 표지 뒷면에 소개된 겨우 200자 내외 작가 약력일 뿐이다. 굳이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소화되는 성애소설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도미시마 다께오’라는 브랜드가 성애소설 마니아들에게 형성되어 있음에도 그렇다는 것은 출판사와 번역자의 정성 부족이다.

도미시마 다께오는 쇼화 6년, 1931년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와세다 대학 불문과 재학 중에 「상가의 개」를 <신초오(新潮)>에 발표 ‘아쿠타가와(芥川)’상 후보가 된다. 처녀출판 한 『검은 강』은 영화화 되어 제법 화제를 불렀다. 졸업 후 1955년부터 출판사에 근무를 했고, 그때부터 전업 작가 생활에 들어가 청춘소설과 관능소설(일본에서는 ‘관능소설’로 분류된다)을 썼다. 주요작품은 『검은 강』, 『어린 아내』, 『초야』, 『청춘야망』 등이 있다. 98년 2월에 폐암으로 죽었다.

그의 소설은 꽤 많이 영화(그 중 많은 것은 로망포르노로 제작되었다)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도미시마 다께오가 처음부터 성애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성애소설의 주인공들이 주로 20대 전후의 청년이듯, 그는 청춘을 테마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한국에서 ‘초야’로 번역된 1977년 작 『초야의 바다(初夜の海)』는 단행본으로 발매된 동시에 발행금지 처분을 받은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1984년에 <토쿠마(德間) 문고>에서 복간되었다. 당시의 일본사회에서 조차 그가 묘사하는 성애와 관능의 세계는 용납하기 힘들었던 같다.

국내에 소개된 것만을 한정해서 그의 작품을 한눈에 꿰뚫고 싶다면, 『여인의 마을(女神の里)』 과 『여인추억』, 『초야』를 읽으면 된다. 10대 초반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인의 마을』과 20대의 『여인추억』, 30대의 『초야』를 통해 각 연령대별 성적 환상과 비밀스런 놀이를 추적할 수 있다.

『여인의 마을』은 1890년대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10대의 소년이 동년배 및 연상의 여성들과 맺는 성적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갓 중학교에 입학한 소년, 엔타로는 19세의 처녀 아레에 의해 처음으로 성에 대해 눈을 뜬다. 여자친구 기꾸와의 비밀스런 성 놀이를 축으로 10대 소년들의 성적 환상과 주변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이어진다.

『여인추억』은 50년대 중후반의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20대의 대학 초년생 마사오의 여체탐험을 다루고 있다. 『여인추억』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여자친구 다에꼬 외에 대학동기 묘우미가 주요한 여성 캐릭터지만, 그 외 고등학교 여선생 바쯔, 하숙집 미망인과 그 딸, 매춘녀, 대학동기 등이 등장하여 다양한 성적욕망과 육체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사오와 수년에 걸쳐 관계를 갖는 고향의 연인인 다에꼬의 육체적 성장과 점점 대담해져가는 성적 표현을 추적해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30대 독신주의자 이시이가 세 명의 여성과 엮는 섹스를 묘사하고 있는 『초야』는 앞서의 것들보다 훨씬 더 섹스의 묘사에 있어 강도가 높고 현대적이다. 결혼 후에도 이시이와의 섹스를 잊지 못해 불륜의 관계를 맺는 에이코, 섹스 파트너 에이코의 결혼식에서 만난 아키코, 에이코의 여동생인 17세의 여고생 준코가 이시이의 섹스 상대다. 『여인추억』이 넓게 펼쳐진 파노라마라면, 『초야』는 깊게 파고 들어가는 현미경이다. 에이코와 아키코는 질투와 협력을 병행하면서 이시이와의 성적 환상을 이어가고, 준코는 이시이에게 17세 소녀의 처녀를 바친다.

피학과 가학이 없는 성애소설

10여 종이 넘게 번역되었음에도 겨우 200자 내외의 작가 소개만을 가지고 있는 도미시마 다께오는 국내 대중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성애문학 자체가 소위 대중문학에서 조차 찬밥 신세인 C급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가에 대한 유일한 언급은 박성봉 교수가 2002년에 쓴 「느낌표의 예술」에서다. 그 자신 포르노에 대해 여전히 현기증을 느낀다고 어디에선가 고백하지만, 도미시마 다께오의 소설이 다른 포르노 소설과 달리 “여자와 여자 몸에 대해 부드럽고 섬세하게 풀어간다”며 일독을 권하는 적극적인 평가를 내린다.

무협소설이나 서부소설이나 외설문학 등은 남성 독자 중심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동굴초나 꿀딴지 등에서 시작하는 외설문학에도 격이 있는데, 전형적인 뽕 기운의 외설문학이라면 도시시마 다께오의 활홀한 만남을 포함해 네 권인가 만남시리즈는 대학생 정도의 독자에게 일독을 권할 만 하다. 아니면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한번 다루어보던가. 이 시리즈는 흔히 그렇듯이 남자 주인공의 성적 편력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비슷한 소설들과 구별되는 것은 남자 주인공의 여자에 대한 접근이 상당히 부드럽다는 점이다. 여성 몸의 반응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상당히 섬세하게 상황을 풀어간다

박교수의 평가대로, 도미시마 다께오의 성애소설의 특징은 단순한 성행위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여자의 몸과 표현, 심리에 대해 ‘나름대로’ 집요하게 묘사하고 추구해간다. 『초야』에서 17세 여고생 준코가 주인공 이시이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장면이 장장 100여 페이지에 걸쳐 묘사된다. 첫 체험 이전에도 소위 ‘작업(스킨십)’의 과정이 몇 차례에 걸쳐 묘사되고 있고, 그 과정마다 어린 소녀의 두려움과 반응을 적절하게 삽입하고 있다. 『여인추억』에서는 마사오와 다에꼬, 혹은 마사오와 대학동기 묘우미 등은 끊임없이 서로의 의사를 물어가는 에로틱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감정과 욕망을 확인하고, ‘마침내’ 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히 보여주고 있다.

당황해선 안돼. 다에꼬 자신은 승낙했어도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있어, 부드럽고 차분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해선 안돼..(중략) 첫번째 시도에 다에꼬는 마사오 밑에서 낮게 신음하며 몸을 뒤척였다. 피하려는 의도였다. 마사오는 다에꼬를 탓하기 보다도 자신의 초조함을 부끄러워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계속되었다. 다에꼬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마사오의 몸놀림에 따라가기는 하면서도 본증적으로 문을 열지 않았다.(『여인추억』)

이것이 서양의 성애소설을 비롯한 다른 소설들과의 차이를 보여주며, 도미시마 다께오 마니아를 형성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포르노 영화에 밝은 사람이라면 이미 꿰뚫고 있듯이 ‘행위’와 ‘테크닉’, ‘강도’를 중시하는 서양포르노와 달리 ‘분위기’와 ‘상황’을 중시하는 일본포르노의 일정한 반영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포르노 영화에서 분위기와 상황은 ‘영상’의 직접성이 주는 수치심과 표현의 변태성에서 기인하는 폭력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미시마 다께오 성애소설은 일본 포르노 영화와는 달리 수치심과 변태성을 ‘적절한 대화’와 ‘순화된 표현’을 통해 일정부분 벗겨내는 차이가 있다. 섹스를 하는 남녀의 분위기와 상황에 ‘일상적인 느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도미시마 다께오가 소설에 불어넣는 일상적인 느낌은, 남녀간 섹스에 대한 대중들의 상식을 그대로 녹여내는데 있다. 앞서의 인용에서 보이듯, 여타의 다른 소설과 달리 남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유도되는 섹스가 없다. 그것은 도미시마 다께오가 다른 소설들이 내비치는 폭력성을 일부러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섹스를 앞둔 남녀간의 상황에 대해 대중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그대로 인정한다. 여기서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의 성적쾌감이 자칫 소홀해질 수 있지만, 적절한 대화를 삽입하여 성적쾌감을 이끌어 낸다.

혹시 이것이… 마사오는 그것을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자 다에꼬가 작게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싫어?” 마사오는 다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그만해.” 괴로와 하면서 다에꼬가 호소했다. “싫어?” “아니, 그렇지만 아파” (중략) “다에꼬도 해볼래?” 다에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무서워” “무서울 건 없어” 드디어 다에꼬의 한 손이 마사오의 등에서 떨어져 몸 앞으로 왔다. (중략) 손바닥이 바지 위에 머문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이것이 도미시마 다께오 성애소설이 편하게 읽히는 이유다. 일방적이거나, 피학과 가학의 극단적인 성행위 묘사에 담긴 폭력성을 거부하여 대중을 편하게 이끌고 있다. 그렇다고 도미시다 다께오의 성애소설이 성의 본질이나 성적 욕망에 대한 진지한 사색으로 우리를 유도하는 새로움을 담고 있진 않다. 대중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 오락성이듯, 도미시마 다께오의 성애소설도 남성의 성적환상을 적절한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다만 잘된 대중문학이 흔히 자신의 소설이 처한 장르의 상투성을 적절하게 벗어나 있듯이 도미시마 다께오의 성애소설도 그러하다. 적절히 삽입되어 독자의 성적 긴장감을 높여 내는 대사나 순화된 표현으로 집요하게 여체의 반응을 이끌어내어 사실감을 높여내면서 상투성을 살짝 비켜서서 독자를 유인한다.

도미시마 다께오의 여인들

성애문학은 ‘외설문학’, ‘포르노소설’, ‘관능소설’, ‘성인소설’, 요즘은 ‘야설’로도 불린다. 학생들 사이에는 ‘빨간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류의 소설은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를 특징으로 한다. 물론 무협, 추리 등 대중문학이나 소위 순수문학에서도 꽤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성애문학은, 그러나 오로지 독자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킬 목적으로, 뚜렷한 줄거리도 없이 노골적으로 성행위와 성적표현으로만 내용을 채우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소재를 차용한다. 아마추어 아설 작가들의 소설을 서비스하는 인터넷 야설사이트에서는 소재에 근거해서 강간, 근친, 레즈비언, 변태, 여학생, 연애인, 유부녀, 캐리어 우먼 등으로 나누고 있다. 포르노 영화와 다른 성애소설의 특성에 따라 세부장르를 나누자면 대략, 남녀간 정상섹스, 근친상간(incest taboo), 강간, 로리타(lolita), 본디지(bondage), 사디즘(sadism), 마조키즘(masochism), 그룹섹스, 동성간 섹스, 기타 이상성애(異常性愛)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도미시마 다께오는 번역본 만을 한정하여 보자면, 남녀간의 일대일 섹스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약간의 그룹 섹스적 요소를 담고 있다. 동성간의 섹스는 없다기 보다는 남자주인공 주변의 여자들이 가끔씩 남자주인공과 함께 섹스를 하는 장면을 통해 간간히 여자들간의 섹스가 묘사된다. 그가 소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즐겨 차용하는 소재는 어린 소녀와의 섹스다. 학생복 차림을 연상시키는 어린 소녀와의 섹스는 ‘판타드림(fanta dream) 시리즈’ 등 일본 포르노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다. 번역된 그의 모든 작품엔 어린 소녀와의 섹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린 소녀가 자신의 첫경험을 바치기 위해 남자주인공을 유혹 하는 설정이다. 이 중 『초야』에서 17세의 준꼬가 이시이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은 도미시마 다께오의 소녀 섹스의 압권이다.

소녀 외에 그가 자주 작품에 등장시키는 소재는 여선생인데, 가끔씩은 혼혈이거나 이국적 취향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된다. 『동정』에 등장하는 여선생이 그러한 경우다. 하숙집 미망인도 그의 어린 딸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수년간에 걸쳐 억눌린 욕망을 주인공을 통해 서서히 터뜨리는 장면이 묘사된다. 『동정』, 『여인의 마을』, 『여인추억』 등에 등장한 연상의 친척 여인도 도미시마 다께오의 여인이다. 주인공 남자의 어린시절 성을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한다. 자전적인 체험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연상의 친척여인은 순화된 근친상간적 코드로 소설에 긴장감을 더한다.

도미시마 다께오의 여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순종적이며, 성을 배우는데 적극적이다. “낮에는 요조숙녀이고 밤엔 창녀”라는 남성들의 속된 믿음을 저버리진 않는다. 『여인추억』의 다에꼬와 묘우미가 그렇고, 『초야』의 아키꼬가 특히 그렇다. 성애소설을 비롯한 포르노 장르는 남성을 위한 섹스 판타지다. 남성적 시각과 판타지에서 파생되는 여성의 대상화는 포르노에서 당연하게 여겨진다. 도미시마 다께오는 여체와 여성의 욕망에 대해 비교적 폭력성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숙녀와 창녀를 오가는 여성캐릭터는 장르적 특성에서 어쩔 수 없는 설정이다.

도미시마 다께오가 빗어낸 남자 주인공은 성에 있어서 대단한 능력을 겸비하고 있진 않다. 다만 절정을 앞둔 순간에 임신의 위험이 없는지 묻고, 콘돔을 챙기는 사려 깊음과 상대와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여러 차례 사정을 참는 꽤 괜찮은 능력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남자에게서 장난스러운 짓?음은 있지만 강간충동이나, 피학과 가학의 폭력성은 없다.

이처럼 자주 반복되어 등장하는 여인과 그들의 캐릭터는 도미시마 다께오 소설의 특징을 형성하는 상투적 장치로 기능 한다. 설득력과 치밀함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고정 캐릭터의 형성은 독자들에게 특정한 즐거움을 기대하게 한다. 도미시마 다께오 성애소설이 스스로의 취향에 맞다고 여기는 독자들은 계속해서 그의 책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미시마 다께오의 소설을 서점이나 헌 책방, 혹은 여전히 터미날 가판에서 찾아 낸 열혈 독자는, 이들 캐릭터들이 한껏 충족시켜줄 성적쾌감을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 집어넣게 되는 것이다.

출처 : 만화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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