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세번째 앨범이자 비평가들 대다수가 2005년 자신들의 리스트에 올려놓게 만든 [extraordinary machine]이 아니라 6년 전 이 앨범을 꼽은 이유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별 이유는 없다-_- 간만에 듣게 되서 생각이 난지라....

처음 그녀가 18살의 나이로 [tidal]을 들고 MTV에 패션모델의 공허한 시선과 주술적인 압력을 가진 목소리를 가지고 나타났을 때, 여성 보컬계에 또하나의 신성이 나타났음을 예상했던 이들은 바로 맞춘 것이었다. 그러나 피오나 애플은 성급한 아이돌이 되기보단 깊은 침잠을 선택했다. 개인사적인 불행과 심적 고통을 음악으로 표현해내는 '이기적인' 작업방식을 가진 그녀의 음악적 동력은 독설과 자학의 방법론이었고 그런 이야기들이 그리 소모적일 정도로 술술 나온다면 그녀가 마돈나라도 될 각오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전략적인 상술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혹은 오매불망 새앨범만 나오길 눈이 벌겋게 기다리고 있는 apple cult들 입장에선 무척이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소위 고통의 진정성을 지키는 여자였고 덕분에 이제 그녀의 앨범은 고작 세 장만이 나와있는 상태다.

1집의 성공을 다시금 재연해 낸 2집을 들으면서 다시금 깨달은 건, 그녀의 아우라가 가진 컬트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노래 자체는 의외로 정통파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본시 그녀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보컬 역량으로 인해서기도 하겠지만 그녀의 호소력은 다소 특별한 종류의 폭력예찬인 그녀의 노래들의 본연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음울한 울림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음이 어울리지 않는 가수다. 그래서 전작들에 비해 훨씬 말랑말랑해진 3집이나, 그 3집이 6년 만에 나오기까지 그녀가 고의 음원유출과 같은 과격한 방법을 통해 벌인 레코드사와의 정력적인 대판 싸움을 보더라도, 어떻게 생각하면 이 [WHEN THE PAWN HITS THE CONFLICTS HE THINKS LIKE A KING WHAT HE KNOWS THROWS THE BLOWS WHEN HE GOES TO THE FIGHT AND HE'LL WIN THE WHOLE THING 'FORE HE ENTERS THE RING THERE'S NO BODY TO BATTER WHEN YOUR MIND IS YOUR MIGHT SO WHEN YOU GO SOLO, YOU HOLD YOUR OWN HAND AND REMEMBER THAT DEPTH IS THE GREATEST OF HEIGHTS AND IF YOU KNOW WHERE YOU STAND, THEN YOU KNOW WHERE TO LAND AND IF YOU FALL IT WON'T MATTER, 'CUZ YOU'LL KNOW THAT YOU'RE RIGHT]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어둠과 벌인 90단어 짜리 사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는, 그녀에게 반한 건 마릴린 맨슨뿐이 아니었다는 거다. 헛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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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shop 2006-01-30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좋아하는 앨범이야요. 요샌 그녀하면 왈츠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hallonin 2006-01-31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왈츠라. 그러고보니 한때는 왈츠 음악만 찾아다녔던 때도 있었죠.... 그 박자에 맛이 가서.
 

캡콤의 [바이오 해저드]가 가져온 것은 게임역사에 있어서 자사의 전설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2]에 필적할 정도의 대성공과 게임 컨텐츠의 다종화였습니다. 특히 [바이오 해저드]를 기점으로 호러라고 하는 장르가 비디오게임 시장에 깊숙하게 들어오게 됨과 동시에 좀비물이라는 장르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죠. 따라서, 그 이후에 비슷한 아류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시장의 논리에 비추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목록중에 코나미의 [사일런트 힐]이 끼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고 그런 아류작의 운명에 이 게임도 편승하게 되리라 생각했었죠.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일런트 힐]은 [바이오 해저드]와는 확연히 다른 구분점을 가진 게임이었습니다.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바이오 해저드]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쇼크요법과 무차별 학살의 쾌감을 보장하는 롤러코스터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사일런트 힐]은 그보단 무겁고 심리적인 측면을 자극하며 모호하면서도 은밀한 공포를 담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어둠과 악덕으로 인해 생겨난 악몽 같은 비전을 보여주는 묵직한 스토리, 찔끔찔끔 나오는 총기와 주로 타격계 물건들로 게임을 풀어가야 하는 제한된 상황, 그리고 끝간데 없이 펼쳐진 안개 낀 공간에서의 활보, 또 그와는 정반대인 녹이 잔뜩 슬은 지저분한 폐쇄공간이라는 조울증을 연상케 만들 정도의 급작스러운 배경전환이 전해주는 공포에서도 비롯됩니다. 특히 여기서 사일런트 힐이라는 공간을 디자인한 코나미 스탭들의 오리지날리티는 대단한 것으로 녹슨 철창과 타액이 흘러내린 듯 누렇고 지저분한 벽들, 그 사이로 유난스럽게 어둠이 강조되는 폐쇄공간들은 그자체만으로도 독창적인 공포의 기운을 전해주기에 충분합니다. 흡사 러브크래프트가 꿈꿔왔던 현실의 틈에 강제로 만들어진 이세계의 사악한 공간을 그대로 표현해낸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이 양반이 야마오카 아키라.

그 탁월한 공간감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사일런트 힐]이 대단했던 점은 바로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포감을 인지하고 정확하게 잡아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일런트 힐]에서 플레이어가 적이 다가옴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은 고장난 라디오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통해서입니다. 사방이 안개나 어둠으로 덮여있는 막막한 공간의 한복판에서 있을 때 그 지지적거리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플레이해 본 사람이면 잊기가 힘들죠. 그 뒤로 굵직한 코나미게임을 다수 맡았던 베테랑 음악가인 야마오카 아키라의 사운드디자인과 음악들이 있습니다.  배경에 포진하여 이 게임의 공포를 만들어내는 소리들은 공장의 기계소리, 표현하기 힘든 웅웅거림, 사이렌 소리, 소화기관이 내는 소리와 같은 일상적인 소음들을 통해 성립되는데, 그 낯설은 일상성이 전해주는 인상은 게임의 공포감을 끝까지 올려놓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거 하느라 밤샜다-_-

[사일런트 힐]은 플레이스테이션 포멧으로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먼저 발매되어 호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바이오 해저드] 만큼의 대히트는 아니었지만 게임이 전해주는 내밀한 공포감과 [바이오 해저드]를 능가하는 호러게임이라는 입소문은 이 게임의 판매치를 보장하고 골수 매니아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죠. 덕분에 속편인 [사일런트 힐2]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포멧으로 나오게 됩니다만 소수의 지지를 제외하면 역시 전작의 압도적인 공포감에는 조금 못 미친다는 평을 받게됩니다. 이어서 플스2의 기능적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그래픽을 갖춘 [사일런트 힐3]도 발매되는데 이 게임이 보여줬던 외양적인 탁월함과 게임성은 전작에 실망한 이들도 만족하게 만들었습니다만, 이때쯤 이르면 이젠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됐다고나 할까요. 호평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이후 발매된 [사일런트 힐4]는, 참 여기까지 오면 이 게임도 어지간히 길게 온 시리즈라는 인상이 들지만은, 아무튼지간에 그리 성의있게 만든 인상이 안 드는데다 긴장감도 전작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서 여러모로 악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찌되었든 호러게임의 또하나의 명작인 [얼론 인 더 다크]를 본좌 우베 볼에게 맡겨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헐리웃에서 이정도의 컨텐츠를 가만히 냅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겠지요. 영화화 판권은 트라이스타에게 팔렸으며 그쪽 이사진엔 우베 볼의 팬이 한 명도 없었던 모양으로 스탭목록엔 꽤나 다행스러운 인물들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선 그 중요한 음악 부분을 게임판을 맡았던 야마오카 아키라에게 그대로 던져주었습니다(이 부분만으로도 45.89%는 먹고 들어가는 겁니다). 덕분에 이펙트를 깊게 넣은 [사일런트 힐] 특유의 몽환적이고도 음울한 류트와 기타 사운드를 다시금 맛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로저 애버리([킬링조이]의 그 양반. 타란티노의 친구라는, 당사자로선 살짝 짜증나는 껌딱지 보유. 대체 얼마만인가.... 싶더니만 이후 각본목록에 로버트 저멕키스의 [베어울프]도 껴있고... 돈 안되는 자기 영화의 연출과 그래도 돈이 좀 되는 각본을 병행하며 열심히 산 거 같습니다.)에게 각본을 맡기고 크리스토퍼 갱스가 연출을 맡은 영화판이 드디어 올해 봄에 개봉예정으로 잡혀 있습니다.

http://www.ropeofsilicon.com/trailers.php?id=2158&PHPSESSID=02e922fda891173719fc7cfe2ba8fa02

일단 스토리는 공개된 트레일러만 봐선 1이 배경일 듯 싶군요. 원작의 세계관을 망쳐놓기 보단 계승하는 쪽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전작인 [늑대의 후예들]이 무진장 지루했던 것과는 반비례로 [크라잉 프리맨]은 아주 골수 B급 액션영화의 자질을 충실하게 지킨 덕에 꽤 즐겁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름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작자는 그의 영화에 꾸준하게 돈을 투자해왔던 사무엘 하디다인데, 그에 반해 이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법한 B급 액션영화계의 왕자인 마크 다카스코스는 이번엔 안 나오나 보군요. 카메오로라도 등장할려나.... 하고 있는데. 이 영화 끝나고 감독의 바로 다음 작품에서 주연으로 영화 찍네요. 크리스토프 갱스 본인이 직접 각본까지 맡은, 감독 일생의 야심작이 될지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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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6-02-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싸일런트 힐'의 흐뭇함을 망쳐버리지 말았으면... 그 우웩(!) 볼이라는 양반이 '하우스 오브 데드'도 망쳐놨다던데...
'사일런트 힐' 3편이 쵝오였죠. 전혀 매니악하지 않다구요. 얼마나 인기가 많은뎅.. ^_^

hallonin 2006-02-2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그런가요? 3가 상업적으론 상당히 재미를 못 봤다고 해서-_- 뭐 우리나라에는 한글화 동시발매가 이뤄져서 제법 이슈였지만 말이죠.
 


[동아일보 2006-01-20 05:07]    



[동아일보]
《“요즘 고등학생 문예공모전 심사는 심사가 아니라 ‘수사(搜査)’예요.”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문예공모전과 백일장에서 남의 글 도용과 표절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상당수 대학이 입학 전형에서 입상자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특기생 입학 혜택을 줌에 따라 문예공모전 열기가 과열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부산 모 대학은 지난해 5월 문학 특기생으로 이 대학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던 김모(22) 씨의 입학을 취소했다. 김 씨는 여고생이던 2002년 한국작가교수회의가 실시한 제1회 전국고교 소설 백일장에서 단편소설 ‘바리데기 꽃’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경력을 인정받아 입학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사실은 작가 이용석 씨가 쓴 소설을 인터넷에서 보고 전체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이 백일장에서 본심에 오른 한 고교생의 작품은 이미 이 학생이 다른 문예공모에서 입상했던 작품임이 드러나 ‘변칙 응모’로 탈락됐다.


작가인 이병렬 숭실대 겸임교수는 “고교생 대상의 문예공모 행사들에서 표절 등 변칙 응모를 의심할 만한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며 “당일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 백일장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특히 골머리를 앓는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대상의 문예공모는 대학, 문학단체, 문학지들이 주로 주관하는데 1년에 100개 이상이 열린다. 여기에 문학과 관련 없는 청소년단체들까지 보장할 수도 없는 ‘입상자 가점 혜택’을 내세우며 우후죽순으로 행사를 열고 있다. 입상자에 대한 혜택 유무는 대학에 따라, 문예공모의 권위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대를 제외한 상당수의 대학이 문예공모 입상 가산점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겨냥해 시중에는 ‘문학 입시 가이드’류의 자료집까지 나왔고, 기출문제(백일장에서 제시된 작문 제목)를 갖고 ‘입시 공부하듯이’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


이 때문에 백일장에서 흔한 제목이 제시될 경우 응모작의 수준이 현격하게 올라간다. 대회장에서 글을 써 내야 하는 백일장과 집에서 써서 응모하는 일반 문예공모 작품 간의 수준도 큰 차이를 보인다.


청소년들의 사고 능력과 문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된 문예공모 입상 가산점 제도의 취지가 왜곡돼 또 다른 형태의 입시 과열을 빚고 있는 것이다.


문예공모 입상 가산점을 받은 학생이 국문과, 문예창작과가 아닌 이른바 인기 학과로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시인인 김혜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한 명문대에 출강해 문예창작 특기생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는데 수준이 낮아서 (과연 특기생 자격이 있나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최근 고교생 문예공모에선 표절 가능성이 있는 글을 ‘수사하듯’ 가려내는 게 주된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작가 이용석 씨는 “청소년 대상 문예공모의 경우 문예반 지도 교사가 학생 본인이 쓴 글임을 확인한 후 응모하도록 해야 하며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들의 경우 면접을 통해 작의, 주제, 표현능력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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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입시 가이드라, 재밌는 것도 나오는군요. 특정 단어나 문장이 제시되면 성향과 주제에 따라서 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의 설명이나 문장이나 연상 같은 게 친절하게 예시되는 타입일려나.

뭐 그러고보면 신춘문예가 수능시험처럼 변한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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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6-01-2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시험 보기 전 날 한시간여의 벼락치기 끝에 얻은 신기 넘치는 마법의 펜으로 되는대로 숫자들을 찍는 기분으로 대하고 있다고나 할까요-_-
 



[드래곤볼]의 수입과 대히트로 인해서 일본만화의 수입이 우후죽순으로 이뤄지던 시절,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불법 해적판들이었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선 500원 짜리 만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왔고 [리키오] 같은 과격파 고어만화들조차 무려 무삭제 완역판으로 팔려나가던 초기, 관련 만화들에 대한 제재 법규가 음란성 부분밖에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공권력 집행부 측에선 그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 단속을 전개해 나갔었죠. 그래서 수많은 회사들이 잠적하고, 또 다른 이름과 간판을 들고 나오기를 반복하던 시장의 상황에서, 해적판 만화계의 전설인 알라딘(....)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알라딘이 나올 즈음의 관련 해적판 회사들은 법규의 음란성 제재 부분을 회피하기 위해 만화 캐릭터들이 비키니만 입고 있어도 화들짝 놀라선 열심히 배곱 주변에다가 엉터리 수영복을 그려놓곤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뭐 그런 수정도 그렇고, 판형도 커지고 하던 때라 가격은 이미 500원을 훌쩍 넘은 2000~3000원에 이르고 있었죠. 그런데 해적판 만화의 역사에서 알라딘이 가지는 중요한 위치는 바로 그 편집 및 수정기술을 거의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었습니다.



전 10권으로 완결된 [골든보이]는 일본에서도 성인지인 빅점프에 연재되던, 아주 골수 성인만화였죠. 작가인 에가와 타츠야는 전직 수학교사이자 AV감독도 겸임하는 다재다능한 양반으로 스스로를 변태작가라고 부르기를 서슴치 않는 엄한 남자이기도 합니다. 동경대 출신이며 천재적인 머리와 운동신경을 갖춘 긴타로가 베낭을 메고 자전거 한대에 의지하여 일본 전국을 유람하며 겪는 인생공부... 를 이야기의 기둥으로 삼은 [골든보이]는 [엔젤], [키라라]와 더불어 당대 남한땅의 욕구불만 청소년들의 금서이기도 했죠. 물론 그것은 이 해적판이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그리 된 것이긴 합니다만.



이런 오묘한 장면들은 알아서 잘라내고 다른 장면 갖다 붙이고.... 사실 이정도는 별로 오묘한 수준도 아닙니다만-_- 알라딘은 말그대로 완전히 새로운 [골든보이]를 창조하는데 성공합니다. 서울대생인 강성민이 팔도 유람을 하면서 얻는 인생공부라는 점은 큰틀에서 보면 원작과 일치하지만,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잘리고, 그렇게 수정이 가해졌음에도 말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는 건, 나중에 [골든보이] 원판을 봤을 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죠. 그것은 실로 100% 한국판인 내용이었습니다. 저 의성어마저도 에가와 다츠야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작화에 최대한 충격을 주지 않도록 상당히 매끄럽게 새겨져 있었고, 심지어 에가와 타츠야의 본격적인 '기질'이 발휘되기 시작한 3권에 이르러서조차도, 알라딘 편집팀(과연 팀이라고 할 정도의 인원이 있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역시나 원본과는 완전히 딴판이지만 완결되는 이야기, 심지어 재밌기까지 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뭐, 그외에도 같은 작가의 [동경대학이야기]를 역시나 컨버전한 [캠퍼스 러브스토리]도 어지간한 편집기술로 유명하지만, 역시나 제게는 [골든보이]에서의 솜씨가 인상 깊었다고나 할까요. 더구나 한국판 [골든보이]는 원작이 가지고 있던 짙은 보헤미안적 정서가, 에로씬이 없어진 덕에 약해진 건지 진해진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퍽이나 인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통에 자전거 타고 전국 유랑이라는 저의 어린 날의 열망을 구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뒤로 가면서 점점 무지막지한 에로혼을 뽐내보이면서 이야기 자체도 [신세기 에반게리온] 말미의 폭주 수준으로 끌고가버린 작가 때문에 온전하게 제대로 끝을 맺진 못한 걸로 압니다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려 해적판으로, 그렇게 부숴지고 짜맞춰진 내용으로 10여권이 나올 정도로 계속 찍었었습니다....

그분들, 요즘은 어디서 뭐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분들. 정말 편집쪽에선 스카웃해도 아깝지 않은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들이었을텐데요....

 

사족 1.



어찌되었든 원작은 밀매업자들이 보따리로 만화를 사오던 우리나라만큼이나 자국 내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는지 OVA 6편으로 애니화도 되었습니다. 감독은 현재 일본에서 차세대 정통파 애니메이션 장인이라 불리는 콘 사토시. 1~5화는 원작의 에피소드를 차용했고 6화는 OVA의 오리지날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그리 높지 않은 1~2권에서의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만든 애니판은 별로 에로스럽진 않고 적당한 것이 딱 영지 수준의 수위를 보여주며 아직 디지털이 업계를 잡아먹지 않았던 셀애니 시절의 노가다의 결정체들을 간혹 보여줍니다. 특히 자전거VS바이크의 레이싱씬은 원작보다 대폭 파워업, 활동사진적인 쾌감을 안겨주기도 했죠.

 

사족 2.


이 그림은 본문의 특정한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목이 어째서 '금동이'인가에 대해선 별로 의견이 분분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저로선 저 제목이 스캇 플레이에서의 '골든'에 대한 작가의 애착이 발현된 것이 아닌지 추측해보는 바입니다-_- 확실히 만화를 보면 알겠지만, 자주 나옵니다 그게....

 

사족 3.

이 시점에서 이 사이트의 이름이 어째서 알라딘인지가 궁금해지는군요.... 솔직히 처음 알라딘이 도서사이트란 걸 알았을 땐, '생뚱맞게 이름이 웬 알라딘?' 이란 게 제 감상이었거든요. 설마 도서출판 알라딘의 유지를 잇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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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1-2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판으로 나온 에가와 타츠야의 만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흐흐.

hallonin 2006-01-2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모든 작품들이 해적판으로 나왔던 걸 기억해보자면, 확실히 해적판계의 인기작가였죠. 그러고보니 아동물을 제외한 청년물 즈음의 그의 작품으로 제대로 정발된 만화가 거의 안 보이네요. 상당히 국수스러운 내용인 러일전쟁이야기 정도?
 

[콜레트럴]은 어떻게 보면 톰 크루즈 때문에 손해를 본 부분이 있습니다. 포스터와 홍보에서부터 톰 크루즈의 거대한 얼굴이 팍팍 나오다 보니까 사람들은 이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을 잇는 그의 돈 들인 액션영화의 연속이라고 생각을 했겠죠. 그래서 포털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영화에서 액션이 안 나온다고 불평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퀵타임 트레일러로 폴 오큰폴드의 음악과 함께 먼저 접한 저로선 그런 반응이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요.

그러나 저도 영화를 보기 전에 지레짐작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톰 크루즈일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그러나 정작 영화는 불가해하며 모순적인 존재인 살인청부업자 빈센트보다는 리무진 운전사가 꿈인 소박한 택시운전수 맥스의 내면에 더 동화가 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 맥스조차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영화의 제목, [Collateral]은 평행한 이란 뜻이죠. 마이클 만은 그런 관계를 꾸준하게 다뤄왔습니다. 그런데 그 긴장감이 이 영화에선 사뭇 다릅니다. 허문영의 지적대로 영화에서 스펙터클은 의식적으로 자제되고(이건 마이클 만의 습성과도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대화는 끝간 데 없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하룻밤 동안 일어나는 이 단순한 플롯의 이야기는 두시간을 훌쩍 넘기는 런닝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콜레트럴]은 풍광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로스앤젤레스죠. 여기서 LA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남성 주인공의 대립각을 위한 장소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그 네온과 조명으로 싸인 몸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히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차기작인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고도화된 도시의 밤의 모습, 그 복잡다단함과 생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쓸쓸함과 공허함을 잡아내는데 있어서 [콜레트럴]은 가히 독보적인 경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김지운의 질투 섞인 찬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콜레트럴]에선 마이클 만의 영화들이 가지는 숙명적인 내러티브의 힘이 푸른색 LA와 함께 뿜어져 나옵니다.

사실 배 아픈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바로 서울이라고 하는 도시의 모습, 특히 그 밤의 모습을 어떤 매체로든 담아내는 일이거든요. 예전에 목동에서 차가 끊겨서, 겨우 시청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는 밤새도록 걸어다녔던 일이 있습니다(사실 자주 그런 식으로 밤을 걸어다닙니다-_-).  텅 빈 고가도로 위를 걸어다니면서, 다리 밑에 나란히 서있는 쓰레기차들을 보면서, 아무도 살지 않는 지저분해진 빌딩식 여관들을 보면서, 네온이 드문드문 빛을 비추는 축축한 골목 안을 들여다보면서, 앨리샤 키스와 언더월드, 언니네 이발관, 폴 오큰폴드(!)를 사운드트랙으로 삼아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콜레트럴]은 매혹이며 동시에 일종의 이상이자 좌절입니다.

 

 



초반에 빈센트와 가방 교환을 위해 일부러 몸을 부딪히는 '배달부'가 이 분이시더군요. 이분이 누구시냐면....

 

 

 

바로 이분입니다-_- 이로써 마이클 만의 유머솜씨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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