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콤의 [바이오 해저드]가 가져온 것은 게임역사에 있어서 자사의 전설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2]에 필적할 정도의 대성공과 게임 컨텐츠의 다종화였습니다. 특히 [바이오 해저드]를 기점으로 호러라고 하는 장르가 비디오게임 시장에 깊숙하게 들어오게 됨과 동시에 좀비물이라는 장르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죠. 따라서, 그 이후에 비슷한 아류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시장의 논리에 비추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목록중에 코나미의 [사일런트 힐]이 끼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고 그런 아류작의 운명에 이 게임도 편승하게 되리라 생각했었죠.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일런트 힐]은 [바이오 해저드]와는 확연히 다른 구분점을 가진 게임이었습니다.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바이오 해저드]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쇼크요법과 무차별 학살의 쾌감을 보장하는 롤러코스터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사일런트 힐]은 그보단 무겁고 심리적인 측면을 자극하며 모호하면서도 은밀한 공포를 담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어둠과 악덕으로 인해 생겨난 악몽 같은 비전을 보여주는 묵직한 스토리, 찔끔찔끔 나오는 총기와 주로 타격계 물건들로 게임을 풀어가야 하는 제한된 상황, 그리고 끝간데 없이 펼쳐진 안개 낀 공간에서의 활보, 또 그와는 정반대인 녹이 잔뜩 슬은 지저분한 폐쇄공간이라는 조울증을 연상케 만들 정도의 급작스러운 배경전환이 전해주는 공포에서도 비롯됩니다. 특히 여기서 사일런트 힐이라는 공간을 디자인한 코나미 스탭들의 오리지날리티는 대단한 것으로 녹슨 철창과 타액이 흘러내린 듯 누렇고 지저분한 벽들, 그 사이로 유난스럽게 어둠이 강조되는 폐쇄공간들은 그자체만으로도 독창적인 공포의 기운을 전해주기에 충분합니다. 흡사 러브크래프트가 꿈꿔왔던 현실의 틈에 강제로 만들어진 이세계의 사악한 공간을 그대로 표현해낸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이 양반이 야마오카 아키라.

그 탁월한 공간감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사일런트 힐]이 대단했던 점은 바로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포감을 인지하고 정확하게 잡아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일런트 힐]에서 플레이어가 적이 다가옴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은 고장난 라디오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통해서입니다. 사방이 안개나 어둠으로 덮여있는 막막한 공간의 한복판에서 있을 때 그 지지적거리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플레이해 본 사람이면 잊기가 힘들죠. 그 뒤로 굵직한 코나미게임을 다수 맡았던 베테랑 음악가인 야마오카 아키라의 사운드디자인과 음악들이 있습니다.  배경에 포진하여 이 게임의 공포를 만들어내는 소리들은 공장의 기계소리, 표현하기 힘든 웅웅거림, 사이렌 소리, 소화기관이 내는 소리와 같은 일상적인 소음들을 통해 성립되는데, 그 낯설은 일상성이 전해주는 인상은 게임의 공포감을 끝까지 올려놓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거 하느라 밤샜다-_-

[사일런트 힐]은 플레이스테이션 포멧으로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먼저 발매되어 호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바이오 해저드] 만큼의 대히트는 아니었지만 게임이 전해주는 내밀한 공포감과 [바이오 해저드]를 능가하는 호러게임이라는 입소문은 이 게임의 판매치를 보장하고 골수 매니아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죠. 덕분에 속편인 [사일런트 힐2]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포멧으로 나오게 됩니다만 소수의 지지를 제외하면 역시 전작의 압도적인 공포감에는 조금 못 미친다는 평을 받게됩니다. 이어서 플스2의 기능적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그래픽을 갖춘 [사일런트 힐3]도 발매되는데 이 게임이 보여줬던 외양적인 탁월함과 게임성은 전작에 실망한 이들도 만족하게 만들었습니다만, 이때쯤 이르면 이젠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됐다고나 할까요. 호평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이후 발매된 [사일런트 힐4]는, 참 여기까지 오면 이 게임도 어지간히 길게 온 시리즈라는 인상이 들지만은, 아무튼지간에 그리 성의있게 만든 인상이 안 드는데다 긴장감도 전작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서 여러모로 악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찌되었든 호러게임의 또하나의 명작인 [얼론 인 더 다크]를 본좌 우베 볼에게 맡겨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헐리웃에서 이정도의 컨텐츠를 가만히 냅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겠지요. 영화화 판권은 트라이스타에게 팔렸으며 그쪽 이사진엔 우베 볼의 팬이 한 명도 없었던 모양으로 스탭목록엔 꽤나 다행스러운 인물들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선 그 중요한 음악 부분을 게임판을 맡았던 야마오카 아키라에게 그대로 던져주었습니다(이 부분만으로도 45.89%는 먹고 들어가는 겁니다). 덕분에 이펙트를 깊게 넣은 [사일런트 힐] 특유의 몽환적이고도 음울한 류트와 기타 사운드를 다시금 맛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로저 애버리([킬링조이]의 그 양반. 타란티노의 친구라는, 당사자로선 살짝 짜증나는 껌딱지 보유. 대체 얼마만인가.... 싶더니만 이후 각본목록에 로버트 저멕키스의 [베어울프]도 껴있고... 돈 안되는 자기 영화의 연출과 그래도 돈이 좀 되는 각본을 병행하며 열심히 산 거 같습니다.)에게 각본을 맡기고 크리스토퍼 갱스가 연출을 맡은 영화판이 드디어 올해 봄에 개봉예정으로 잡혀 있습니다.

http://www.ropeofsilicon.com/trailers.php?id=2158&PHPSESSID=02e922fda891173719fc7cfe2ba8fa02

일단 스토리는 공개된 트레일러만 봐선 1이 배경일 듯 싶군요. 원작의 세계관을 망쳐놓기 보단 계승하는 쪽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전작인 [늑대의 후예들]이 무진장 지루했던 것과는 반비례로 [크라잉 프리맨]은 아주 골수 B급 액션영화의 자질을 충실하게 지킨 덕에 꽤 즐겁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름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작자는 그의 영화에 꾸준하게 돈을 투자해왔던 사무엘 하디다인데, 그에 반해 이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법한 B급 액션영화계의 왕자인 마크 다카스코스는 이번엔 안 나오나 보군요. 카메오로라도 등장할려나.... 하고 있는데. 이 영화 끝나고 감독의 바로 다음 작품에서 주연으로 영화 찍네요. 크리스토프 갱스 본인이 직접 각본까지 맡은, 감독 일생의 야심작이 될지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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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6-02-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싸일런트 힐'의 흐뭇함을 망쳐버리지 말았으면... 그 우웩(!) 볼이라는 양반이 '하우스 오브 데드'도 망쳐놨다던데...
'사일런트 힐' 3편이 쵝오였죠. 전혀 매니악하지 않다구요. 얼마나 인기가 많은뎅.. ^_^

hallonin 2006-02-2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그런가요? 3가 상업적으론 상당히 재미를 못 봤다고 해서-_- 뭐 우리나라에는 한글화 동시발매가 이뤄져서 제법 이슈였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