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랭글홀드

애플시드

2004년부터 제작예정 목록에 [적벽대전], [닌자거북이], [히맨] 등을 올려놓고 있었지만 아직 어느 하나 소식은 없고.... 되려 자신이 세운 게임회사인 타이거힐에서의 결과물이 먼저 나오기 시작하는군요. 하긴, 그렇게 연타석으로 죽을 쑤었으니 일거리는 잘 안 들어오고 그 자신으로선 뭔가 성과가 필요했겠지만 말이죠. 사람들이 [매트릭스] 이후에 쏟아진 그렇고 그런 아류들에 아주 단단히 질려버린 결과이기도 하겠고. 그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적당히 당시 조류였던 전쟁영화장르를 통해 변신을 시도했던 [윈드토커]는 망했지만-_-

오우삼 영화의 감수성은 마치 좀비물이 현대에 와서 게임의 감수성으로 부활한 것처럼, 일찌감치 다음 세대인 게임세대의 감수성에 더 들어맞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워쇼스키 남매가 본능적으로 그 지점을 간파해내고 [매트릭스]를 만들어낸 것이겠구요. 맞아도 죽지 않는, 인간-타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냥할 때의 양심의 가책 따윈 느낄 필요가 없는 좀비라는 대상과 기관총 쏘듯 나가는 쌍권총과 발레댄스를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역동적인 몸놀림이라는 비현실적인 미학을 수반되는 오우삼 영화의 자장은 게임이라는 유저 본위의 조작 가능한 매체에서 각자 몹과 유저라는 두 영역으로 그 기본적인 성격이 서로 일치되는 코드겠죠.

그런데 저 [스트랭글홀드], 아무리 생각해도 영 아니군요-_- 일단 우리는 [맥스페인]이나 [건그레이브]와 같은 무제한 총질발레 게임을 거나하게 접한 바가 있는데다 그 다대일의 때려부수기형 액션 게임들이 얼마나 쉬이 지루해질 수 있는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문제적 요소들을 저 동영상 한 편에서 감상이 가능하네요.... [매트릭스]의 도착 이후 오우삼 전매특허 이미지들의 남발에 따른 오리지날이었던 오우삼의 입지축소처럼 그의 게임업계행 막차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요.

그러고보면 좀비와 건액션, 매트릭스식 카메라워킹을 하나로 합친 기념비적인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바로 요것.

리뷰-사람 잡는 영화 "the house of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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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나누리 옮김 / 필맥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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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본능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것중 하나가 바로 인간 자신에 대한 흥미다. 물론 그것은 사자가 탐슨가젤을 노릴 때의 흥미라고도 볼 수 있겠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고파 하는 측면에서의 흥미라고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은 하나의 정보집약체로서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얘기할 가치가 있고 또 굳이 그런 가치들을 분석적으로 따지기도 전에 우리는 매일마다 나가는 일터에서 누구랑 누구가 어젯밤 사무실에 남아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하루의 즐거운 이벤트로서 자연스럽게 탐구하고 또 추적하기 마련이다. 패리스 힐튼의 너절한 일거수일투족이 '팔리는' 이유는 별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적 본능 어딘가를 은근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사자는 탐슨가젤을 잡아먹기 전에 그 가련한 생물의 감정과 생리상태, 사상과 철학등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사자는 그 탐스러운 동물을 먹어치우기에 용이한 정보만을 선별하여 습득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언어라는 도구를 빌어 타자, 혹은 타생물체에 대한 담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물론 그것이 우리모두가 저녁밥상에 올려질 등심살의 주인이 자신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질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에 대해서 신경 쓸 정도로 정보로 인해 인류가 섬세해졌다는 걸 뜻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들의 사정을 듣고서 적극적인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있으니 완전히 소용이 없는 경우라곤 말할 수 없는 터일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보다 효과적으로 똘스또이를 씹어먹으려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들춰보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여기 이 국적상 오스트리아인이자 저명한 보헤미안이었던 우울증환자가 쓴 글을 보라. 그가 글쓰기의 세 대가들을 논하는 것을 보라. 인물을 향한 저열해질 수도 있는 말장난의 함정을 피해 담화에 예술의 왕관을 씌울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츠바이크가 이뤄냈다는 데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는 그 가련한 대상들을 핥고 빨아들여서는 입 안에서 굴리다가 결국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그는 사냥꾼이다. 우울했지만 더없이 당당했던 텍스트의 사냥꾼이었던 그는 온갖 정보들-재료들의 상찬으로 만들어진 두터운 글판 위에서 너무도 유혹적이고도 현란한 춤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판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그리고 같이 춰보자고 부추긴다. 그 거침없는 태도로 인해 카사노바와 스탕달, 똘스또이는 가차없이 재단되고 속절없이 제 몸뚱이를 드러내보인다. 츠바이크는 그들의 육체와 의식을 아우른다. 그는 그 인물들의 저열함과 위대함, 고상함과 천박함을 마음껏 드러내보임으로써 그들을 위한 커다란 웅덩이를 만든다. 장대한 글쓰기의 여정에서 하나의 세계, 더 나아가 모든 이의 세계로 공유될 방대한 공간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은 츠바이크가 만들어낸 웅덩이 속에서의 벌거벗은 농탕질로 가능하게 된다.

그렇다, 츠바이크는 여기서 글 속에 숨겨진 사람을 끌어낸다. 그렇다고 글이 의미가 없어지느냐,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글을 통해서 사람을 보고 사람을 통해서 다시 글을 보게 된다. 츠바이크는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있게 그 두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가교를 마련해보인다. 그것은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작가가 만들어 보일 수 있는 하나의 황홀경이자 작품과 작가가 분리되야 한다는, 이제는 고전적인 문구가 된 법도를 무시하는 독자 입장에서의 은밀한 소원성취의 순간이다. 츠바이크의 혀와 손가락을 찬양할지어다. 그는 남의 이야기로 자신의 영역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 공간의 매혹적인 손길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달콤하니, 설혹 만에 하나 진실에서 벗어난 울림이라 하더라도 츠바이크는 온전히 압도적인 사기극을 마련한 것이리라. 그는 독자로 하여금 카사노바에게 질투하고 스탕달에게 위안을 받으며 똘스또이에게 경이를 느끼게 만들었으니 그 또한 그들의 전설을 마련하고 다시금 확정시킨 것이며 그것을 가능케 한 츠바이크 자신의 힘을 영원히 기록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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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습니다. 아주 제대로 속았습니다. 칭따오맥주, 세계 3대 맥주라는 이마트의 선전공략에 휘말려서 거금 1880원을 주고 산 이 맥주의 맛은 정말 최악. 도수는 5%인 주제에 목넘김까진 좋은데 본체에 도대체 맛이 안 납니다. 맥주라면 생각나는 풍부한 맛은 안 느껴지고 밍숭맹숭하다는 인상이랄까. 그런데 거기에 알콜맛은 좀 쎄게 느껴지는군요....

뭐 1903년에 만들어진 회사니 벌써 역사가 백년이 훌쩍 넘었고.... 독일의 조차지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혈통적 전통성도 갖고 있고.... 그 유명하고 비싸며 캔모양만은 예뻤던 삿뽀로도 저에겐 영 쉣이었다는 걸 기억하자면 이 맥주가 이토록 입맛에 안 맞는 건 제 취향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만.... 의외로 이 물건이 세계 3대 맥주라는 명칭이 붙은 것에 불만인 사람들 많더군요. 더군다나 중국에선 400원이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안타까운 마음의 임팩트가-_- 창고수입가로 하면 대체 얼마를 떼먹는 거야.

뭐 맥주에 헤롱대면서 쑤욱 본 만화입니다. 우시지마라는 사채꾼의 생활을 다룬 이 작품은 [돈이 울고 있다]의 잔혹살벌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돈이 울고 있다]가 합법화된 사채시장의 부드럽지만 잔혹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불법적인 사채시장을 다루는 [사채꾼 우시지마]는 작화스타일에서부터 암울 그 자체를 달립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우시지마는 악역캐릭터의 양상을 끝까지 밀고나간 인간으로 악덕사채꾼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정신세계는 한마디로 어떤 방법을 써서든 채무자에게서 얼마나 많은 돈을 뽑아내느냐에 모든 걸 걸고 있습니다. 창녀촌에 빚 진 여자를 팔아넘기고 제삼자를 통해 약물중독자로 만들고 그 약을 공급함으로 해서 털어내고 또 털어내죠. 삶에 대한 우회한 도덕적 방법론을 공격적으로 설파하는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쇼핑중독자에서부터 히키코모리, 도박꾼, 사채사냥꾼, 폭주족 및 야쿠자 등등에 이르며 작가는 계도적 결말 따윈 관심도 없는 듯 그들의 파멸을 그려내는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꽤 리얼한데다 지저분하고 악의적인 경지에까지 이르는지라 보는 이에 따라선 꽤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도 소음을 선으로 그려낸 듯 끊임없이 엉키는 느낌을 주는 그림체에서부터 호불호가 갈릴 작품입니다.

그건 그렇고 알라딘의 장르분류는 정말 엉망이군요. 이 무시무시한 만화가 명랑/코믹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니.... 아마 읽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이거 하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울러서 [안녕 절망선생]의 분류는 '레이디스코믹'.-_-

 

그리고 정액먹기 행위의 공평성에 대한 고찰과 [좆됐다 피트통], [기품있는 마리아]의 리뷰, 츠바이크의 두 저작의 번역상태에 대한 비교라든지, 장정일이 감추고 싶어하는 첫소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의 요소면에서의 관찰과 지하 야오이소설들과의 양상 비교 및 대딸방의 추억 등등을 쓰고 싶습니다만....

글이 머릿 속에 안 새겨지니 덩달아 귀찮아서 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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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5-14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따오 맥주는 가짜도 많답니다. (소근)
삿포로는 쌉싸름하니, 뒷맛이 심하게 깨끗하지요. 어떤 맥주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닝닝한 과일맥주 말고는 다 그맛 느끼며 좋아하는 편인데, 지금 냉장고에는 하이네켄이 있네요.^^ 일본 맥주들 쌉싸름한맛도 자꾸 먹으면 좋던데

hallonin 2006-05-14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럼 이건 가짠가?-_- 암튼 정말 입맛에 안 맞더군요.... 그러고보니 일본맥주는 그 특유의 싸한 맛이 싫은 거 같아요. 썩 깔끔하다는 인상은 못 받고 그 반대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호가든하고 레드락 좋아합니다. 코로나 엑스트라도 좋군요. 보드카 머드쉐이크 시리즈와 후치 시리즈 또한.... 혀가 좀 중구난방. 흘흘.

blowup 2006-05-14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부드럽고 달콤한 맥주를 좋아하시네요. '우시지 마'는 궁금하긴 한데, 엉키는 느낌의 그림체라니 살짝 걸리네요. 복잡한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하이드 2006-05-14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은 완전 반대 취향이시군요. ^^ ; 전 일본 맥주들, 그리고 흑맥주가 좋아요.

hallonin 2006-05-15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단 걸 좋아해서-_- 우시지마는 복잡하다기 보단.... 너저분한, 궁상맞은 느낌에 더 가까울 겁니다.
음, 그러고보니 흑맥주는 또 좋아하는군요-_- 스타우트 애호가.

sudan 2006-05-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야밤의 한담 1에서 40까지를 전혀 본 기억이 없는 건 저만 그런거에요?

hallonin 2006-05-1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1화는 저으기 밑에 있고 나머진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휴대폰 야설시장의 크고도 아름다운 세계

음.... 지난 3년간의 매출만으로도 480억.... 이거, 누가 볼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보는 사람이 꽤 많았군요. 그때 받은 정보중엔 인기작가 순위도 있었는데-_-


경찰은 올해 3∼4월 관련 업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근친상간, 직장내 성폭력, 불륜, 성도착 등 변태적 소재와 노골적 표현이 담긴 5천953편, A4 인쇄용지 4만장 분량의 야설 파일을 증거물로 확보했다....


아아, 내가 쓴 것도 저기 가 있으려나? 어쩌면 청운의 꿈을 안고 저쪽 업계에 들어갔으면 지금쯤 집으로 전화도 오고 관할 경찰서로 가서 형사님들이랑 친분도 쌓고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끝물은 끝물이었던 거라고 해야겠죠. 3년이 훌쩍 넘었었다니, 확실히 도미시마 다께오에 심취했던 어른들의 추억 찾기 덕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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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메드 모이스춰라이징 바디로션 - 200ml
보령메디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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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땡땡땡, 하고 쳐놓고도 도대체 다음에 무엇이라고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변명을 위해 말하건데 나로선 최초로 해야하는 화장품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 부단한 고심을 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둬야겠다. 따라서 내가 이 물건을 받은 이후 이토록 오랜 시간이 다음에야 리뷰를 작성하는 것은 순전히 그 지난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했음이란 것을 이 글을 읽는 이에게 이해시키고 싶다.

그러나 곤란한 것은 곤란한 것이다. 해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일에 낯설고 어색해하며 그에 따르는 심적 부담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선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저 제목, 하얀 추억이라니!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세바메드 모이스춰라이징 바디로션]을 쓰면서 이렇다 할 신비하거나 음란한 추억 같은 건 전혀 가져보질 못했다. 이것을 나쁜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그것은 순전히 제품의 기능성과는 완전히 무관한 영역의 얘기니까. 시장 골목에서 산 싸구려 녹색 스킨로션을 가지고도 사람에 따라선 얼마든지 추억이 피어날 수 있는 법이다. 부작용으로 인한 여드름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다음 번 로션 이벤트에서 한 번 더 당첨되길 바라는 선량하고도 소소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싼값에 모르모트가 되어 기꺼이 구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랬거니와 실제로도 유난히 엉망인 피부에 비추어 고마운 성능을 보여줬던 이 제품에 대해서 별 다른 해로운 감정이 없다.

자, 글을 쓰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옛 선현의 작법을 베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

'15자의 글자를 발음하면서 나는 내 혀끝이 몇 번이나 입천정에 닿거나 이빨끝을 쳐대는지 세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혼미한 행위의 과정 속에서도 부드럽게 느껴지는 너, 안타까운 이름이여. 세-바-메-드-모-이-스-춰-라-이-징-바-디-로-션....'

아무리 생각해도 업적으로나 취향적으로나 존경받을 만한 이 양반의 글은 이 제품의 너무 긴 명칭과 독일어적 단단함에 맞부딪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현자의 목소리를 빌려봐야 할 필요가 있다.

'5월 22일 수요일 오후 3시 45분 23초가 되었을 때, 마룻바닥에 누워 편안히 자고 있는 내 머리 속으로 곰사나이가 정중하게 노크를 한 다음 들어왔다. 나는 그를 3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는데 그는 서커스단에서 속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새로이 창간되는 제주도 지방신문 신춘문예에 낼 SF소설을 3일에 한 번 정도의 주기로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이보게 친구. 오랜만이라고 말하진 않겠네만 자네가 오랜만이라고 좀 해주면 안되겠나.> 나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게 오랜만이라고 말해줬다. 그가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폈기 때문에 그의 오른쪽 가슴에 달린 새로 만든 듯 깨끗하게 제도된 아이보리색 명함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이름은 [세바메드 모이스쿼라이징 바디로션]이었다....'

역시 무리다. 그런데다 이렇게 쓰면 90년대 초반에 많이들 그랬던 것처럼 분명 표절논란에 휩싸일 것이었다. 이미 한 문단을 뻔뻔스럽게 만들어버린 나로선 그 일본작가께서 관심을 가졌던 수많은 현대의 공산품들 목록에 세바메드 시리즈가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자자, 이제 글이 벌써 몇문단을 채워놓고 있다. 그리고 자, 도 두 번씩이나 썼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나는 이 제품의 리뷰를 대체 어떻게 써야 될 것인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해답을 다오 미네르바여, 아니 1981년생 아드리아나 리마여.

<[세바메드 모이스춰라이징 바디로션]은 언뜻 점성이 진하게 느껴지는 촉감을 주지만, 그건 착각이다. 단 몇 초 사이로 피부 속으로 흡수되는 놀라울 정도의 흡수력은 로션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으로 약하면서도 부담없는, 그래서 흡수 이후엔 거의 남지 않는 향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이 제품이 베이비로션에 가까운 저자극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흰색으로, 썩 특징이 없이 만들어진 제품 디자인도 그렇거니와 그에 호응하는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캡의 여닫음 장치가 더해져 [세바메드 모이스춰라이징 바디로션]은 튀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온순함, 그러면서도 제 역할은 충실하게 다 해내는 잘 만들어진 현대 화장품 화학의 즐거운 수확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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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5-0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재미있는 리뷰에요.
롤리타를 발음해보는 험버트 험버트? 두 번째의 현자는 하루키인건가요? (좀 자신 없어요.)

hallonin 2006-05-0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어렵지도 않았던 터라, 바로 맞춰버리셨군요.... 나름대론 광고효과를 노렸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