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센스긴 한데.... 원작을 읽어본 이들이나 웃는 게 가능한 몰입성 짙은 개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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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고퀄리티, 고퀄리티 노래를 부르던 에어를 드디어 주말 이틀간으로 해서 8화까지 볼 수 있었다. 결론은....

이거 TV판 맞어?-_-



미연시 게임을 손에서 놓은지도 한참 오래된 얘기지만 일찌기 <문>에 대해서 잡설을 썼을 때도 잠깐 언급했던 택틱스에서 빠져나간 스탭이 차린 제작사인 키의 승승장구는 눈부신 것이었다. 도대체가 그놈의 캐릭터 디자인은 적응이 안되지만-_- 적어도 <문>에서 보여줬던 시나리오 라이팅의 능력이 그대로 이어지기만 했다면 2004년에 그들의 작품, <클라나드>가 미연시 관련 상이란 상을 모조리 먹어치운 일이 그리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히노우에 이타루의 원작이 보여주는 위화감 넘치는 캐릭터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저 집념. 여자 캐릭터들의 눈깔만큼이나 남자주인공놈의 헤어스타일이 심히 부담된다.

뭐, 남자 주인공이 어디 마을이나 장소에 우연하게 가게 되서 우연하게 만나는 인간들이 모조리 인연의 대상이다.... 라는 스토리라인은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이 팍팍 드는 바. 순애보와 인과율, 기적이라는 키워드 또한 너무 자주 본 것이기 때문인지, 거미줄처럼 얽혀 지긋지긋한 숙명들로 가득한 표준점 웰메이드 시나리오 지향의 이 작품에서 결국 눈길이 가는 것은 가끔씩 보여지는 센스있는 개그들과 무지막지한 작화다.


저 공중회전에서 보여주는 부드러움에 탄복했다....

과연 이 무시무시한 퀄리티를 만들어낸 이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바로 이 사람들이다. 익인전승회.... 제작위원회도 아니고 무려 '전승회'. 전원이 에어의 오타쿠라는 그들은 사재까지 털어가면서 이 하늘오타쿠들의 이야기를 전설의 차원으로 올리려는 야망-_-에 불타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 색감과 선의 작화, 그 난해한 구도가 보여주는 품질은 애정 없인 불가능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이 인간들은 불타오르고 있다!-_-


BGM을 게임에서 그대로 갖다 썼다. 같은 시추에이션, 같은 '미디' 음악.... 처음 보는 이가 가질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밀어부친 과감함-_-

이제 8화가 나왔지만 1쿨 단타로 쌈빡하게 끝낼 목적인 이 이야기는 이미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중. 고퀄리티의 작화와 스피디한 전개는 아직까지 합격점. 다만 미연시 게임 특유의 매너리틱한 센티멘탈리즘이 개인적으론 상당히 불편하다. 특히 저놈의 캐릭터 디자인....-_-



그리고 이 작품! 감독은 무려 역전의 노장이자 언제나 데즈카 오사무랑 혼동되는 이름인 데자키 오사무! '이렇게까지 타락했냐'라는 반응과 '감독 인생의 새 전환점' 같은 반응의 대립항이겠지만 정작 감독 자신은 게임을 안 해봤다고 한다-_- 그런데 어쩌다 만드실 생각을 하셨을까....


극장판의 캐릭터 디자인. 많이.... 다르다....

개인적으론 이쪽을 기대하고 있긴 한데.... 2월 5일, 개봉한 극장판을 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TV판보다' 작화와 스토리, 둘 다 못하다고 한다.... 역시 애정과 열정의 함량 차이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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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상희는 압구정동의 오렌지 걸. 어느날 카페에서 영빈을 발견하고 하룻밤을 지낸다. 영빈은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자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반항아. 일회용 사랑의 생활방식에 길들여져 있던 상희에게 자신만의 꿈을 갖고 사는 영빈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존재로 다가온다. 어느날 영빈은 자신의 오토바이에 치인 정원을 알게 되고 상희의 자유분방함과는 또 다른 편안함을 그녀에게서 발견한다. 한편, 영빈과의 관계가 소홀한 틈을 타 평소 안면이 있던 성우와 그의 친구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상희는 자살을 한다. 상희의 자살 소식와 함께 영빈은 자신이 관심을 보였던 정원이 사실은 상희와의 관계를 끊게 하기 위해 형이 돈으로 고용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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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종이 나왔다. 그의 최초의 정사씬이라나 뭐라나.... 근데 영화를 보면 썩 매끄럽지 못한 솜씨로 편집된 컷에서 여성상위인 상희가 '하아~' 요 한마디 하더니 일어나서 샤워실로 가버리고 그 밑에 있던 김민종은 아마도 분무기로 훌륭하게 표현된 듯한 땀투성이인 채로 누워있는 장면만 나온다. 그 씬 다음에선 상희가 훌륭한 모양과 볼륨을 갖춘 가슴을 드러내고 샤워하는 장면을 약 20초 가량 보여준다.

이 영화가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히로인인 상희의 멋진 가슴과 김민종의 방에 걸려있던 [엔젤하트]의 포스터, 아울러 사방팔방에서 툭하면 눈에 띄던 [베티블루]의 포스터와 그 영화를 노골적으로 흉내낸 블루톤의 화면, 그리고 소설까지 읽어버린 나의 열성 덕인데, 그 소설에서 보여지는 섹스 묘사는 [즐거운 사라]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얼마나 부당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해 줄 또하나의 자료로 써도 괜찮을 정도로 걸직했다(동시에 소설까지 찾아본 나의 노력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영화도 별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섹스씬을 무척이나 집착적인 감미로움으로 열심히 잡아내고 있는데 알고보니 이 영화의 감독이 [매춘]으로 80년대 말, 사창가 영화의 상업적 정점을 찍었던 유진선 감독이었다.

영화적 가치에 대해 묻는다면 이 영화가 인생의 오점이 될 겨를이 생기지 않도록 이후 수많은 졸작들을 통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정력적으로 채워넣은 김민종의 자세는 탁월했다고 말해줄 수 있을 정도다.

 

뭐 이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 책상 밑 어느 구석에 이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가 박혀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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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mob.co.kr/MediaMob/Article/ArticleView.aspx?PKId=8783

마광수라는 아이콘과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사라를 위한 변명]에 실렸던 장정일의 변론을 읽었을 때였다. 한창 재판이 진행중이었던 마광수라는 인물의 위치는 문학적인 측면과는 상관없이 온전히 신문 사회면을 위한 것이었고 장정일은 그의 문학적 성과까지 끌어안으며 그에 대한 옹호를 펼치고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검열이라는, 선택받은(누구한테?) 소수의 관음증환자들을 위한 제도가 배제된 시장이 가질 판단의 자유를 지지하고 있었고, 마광수의 소설이 가진 작품성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뭐 읽을 기회가 주어져야 말이지).

이후 장정일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강금실의 변호를 받으며 법정에 서는 난리통과 겹쳐서 마광수가 문화일보에다 연재하던 머시기 요술램프....인가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접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야한' 꿈의 일대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걸로 끝이었다. 감흥없음. 무라카미 류가 결국은 좌절했던 것처럼, 그의 상상력은 이미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즐거운 사라]를 구하게 된 것은 천호동의 어느 헌책방에서였다. 6쇄본이었던 이 책을, 나는 이미 세파에 질려 무감해진 감각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 읽고, 덮었다. 그때는 군대를 제대한지 1년이 넘었던 시점이었고, 이미 인터넷이 뻗칠대로 뻗친 세상이었다. [즐거운 사라]는 90년대 초반, 1.[오렌지 나라]에 출현했으면 적합했을 법한 여자의 심리를 의도된 천박함과 그를 통해 발가벗긴 정신상태의 묘사를 통해 시대의 풍속을 잘 포착했다. 그러나 그것뿐, 문제는 나에겐 별 자극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과연 이것이 그 시대에 그토록 불온한 책이었던 것일까.

좋아서 죽을려고 한 이문열이 사법당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펼쳤던 응원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사법처리에 관련된 과정이 일련의 코미디였다는 건 이제 와선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단적으로 이미 [로빈슨 크루소의 사랑]과 [눈이야기]가 버젓이 출판되던 시절에 연대교수로서의 '권위'를 못 맞춘 모난 정이었던 마광수 교수에 대한 업계 전반(과 관련된 전부)의 태도는 한마디로 마녀사냥, 바로 그것이었다. 장정일은 당시 베스트셀러 10 안에 몇개월 동안 꾸준히 오르락내리락하던 2.헨리밀러의 [북회귀선]을 대체 몇명이나 제대로 읽어봤을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당시 사회가 바라던 것은 이슈, 그것도 자신들의 도덕적 함량의 수위를 묻는 이슈거리였다. 그것은 이 재미없는 소설이 이슈거리가 될만큼 사회가 억압되어 있었다는 뜻이고, 그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동시에 권력이 바라는 사회정체성을 만족시킬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즐거운 사라]와 그것을 놓고 끊임없이 이슈화해서 희생양을 기초로 한 자기만족적이며 폭력적 생산기반을 요구하는 소위 '도덕적인' 사회, 도대체 어느 쪽이 천박한 것인가. 10년도 지난 요즘도 썩 바뀌지 않은 바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구산역에 있는 헌책방에서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선데이 서울이 아쉬울 정도로 싸구려티가 풀풀 나는 그 시집은 페티시즘과 자유연애, 섹스의 황홀함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시시했다. 그가 바라던 세상은 인터넷에서 이미 펼쳐지고 있었다. 그가 바라던 욕망이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노출되어 있는 세계가 됐다. 그걸 인지한 순간, 나는 처음으로 마광수의 작가적 미래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3.돈이 아까워서 책을 사진 못했다. 하지만 위 링크에 실린 인터뷰에서 보이듯이, 그는 너무 늙은 것처럼 보인다. 진심으로, 안타깝게도.

 

1. 물론 이 영화가 세태풍자를 핑계로 남성이 바라는 성적 환상을 훌륭하게 채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마초들에겐 불쾌할 정도로 주체적인 여성의 성적자유를 얘기하고 있는 [즐거운 사라]와는 반대 지점에 있다는 걸 주지해야겠다.

2.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책은 화자의 웅얼거리는 독백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안쪽보다 표지에 떡하니 붙여진 누드화를 보는 게 더 즐거운 작품이었다.

3. 솔직히 말하자면 레어아이템으로서의 가치, 그러니까 사두면 나중에 돈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고민했다. 그러나 마광수가 프리메이슨이거나, 장미십자단의 천 년 묵은 비의를 잘 발라진 매니큐어에 대한 아드레날린 넘치는 묘사에 숨겨두기라도 하지 않은 한 이 물건이 돈이 될 가능성은 요원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둘 다 별 가망성은 없는 얘기다. 아나키스트 프리메이슨이 존재한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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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처음 알게 된 건, 어렸을 적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로 봤던 우주해적 코브라에서였다.


새빨간 쫄스타일 패션을 고집하는 센스와 함께 항상 시가를 물고 느끼한 미소를 흘리고 다니는 장애인 우주해적 코브라 선생. 여자를 무지 밝히는데 여자를 유혹하는 매너나 유혹 당하는 여자들의 풍만근육스러운 모습이나 아직 로리콘과 유아체형에 더럽혀지지 않은 시대를 반영하듯 양키 센스 100%의 양상들이 펼쳐진다. 요건 경성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인데 무삭제 완역 한국어판이라는 설명이 책에 세군데에나 박혀있고 번역자의 이름까지 표지에 떡 하니 쓰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정식계약을 맺고 출판한다는 설명과 증명은 어디에도 붙어있지 않은 신비로운 물건이다.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듯.

자유인인 코브라가 하도 이곳저곳에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짜증이 난 해적길드는 코브라를 족칠려고 암살자도 파견하고 함정도 만들고 뭐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주는데.... 그 해적길드의 왕초인 사라만다란 양반이 실은 히틀러였다는 설정. 대강 읽다보면 제3제국 중얼중얼도 나오고 위 그림과 같은 대사도 나오는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그 정도 반전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니면 내가 멍청했던 거든가-_- 아무튼 히틀러라는 이미지는 그렇게 초장부터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히틀러라는 인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게된 것은 이 히틀러의 정신분석이란 책에서였다. 여기서 묘사되는 히틀러, 아주 대단한 분이시다. 자유분방에 SM플레이어, 배설물 매니아 등등. 과대망상으로 포장된 자신의 겉모습을 채워줄 수단으로 변태적 성행위에 탐닉하는 제3제국의 총수님이 망명한 히틀러의 측근들의 증언과 증거들을 모아 나름껏 분석을 시도했다는 미국 국적을 가진 정신과 전문의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이 책은 인격자와 권력자가 침실 안에선 얼마나 짐승 같은지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만족시키고 히틀러라는 인물이 저지른 행위들의 비정상성에 대해 그만한 비정상적인 무게를 부여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젠 CIA의 역공작이라는 설이 파다하다(그에 대한 정확한 지적으로는 히틀러가 무척 금욕적이었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여러 사료나 증거로도 증명되거니와 그 정도의 권력을 가진 자가 일중독에 금욕적이기까지 했다는 것이 되려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상당히 설득력이 높다). 일단 대상을 정신병-히스테리의 영역에 들어온 것으로 간주하고 시작되는 정신분석적 분석에 비추어서도 여기서 묘사되는 히틀러는 아주 중증의 성도착환자로 묘사된다. 그는 미친 게 맞긴 맞았다. 그러나 아주 제대로 미친 사람이었지 약물과 섹스, 배설물에 취해 미친 사람은 아니었다.

히틀러라는 인물과 그 주변에 대해 보다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업계에선 비슷한 연구를 위해서라면 꼭 거쳐야 할 하나의 참고서적이 되버린 요아힘 페스트의 이 평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이전까지 나에게 있어서 사드의 소설 주인공이었던 히틀러는 정말로 미쳐버린 인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흥미가 생겼다. 히틀러라는 인간이 권력을 잡는 과정은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기대가 만나 철저하게 개인화된, 그리고 사적인 영역의 법칙과 욕구, 가치관이 폭발적으로 증폭되어 확대재생산 된, 그 이전엔 유례를 찾아볼 수 없거니와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인, 시대와 개인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미치광이 괴물의 탄생과 죽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였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과 그보다 많은 무기들이 동원됐고 지구의 거의 모든 땅에서 살육이 벌어졌던 그 모든 과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히틀러의 사고와 환상에 완벽하게 대입이 되는 순간, 그리고 그 폐허만 남은 공간이 오버랩되는 순간, 어처구니 없이 우스광스럽게 추락해버린다. 나는 그 감각, 어쩌면 인식의 폭력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감각이 좋았다. 이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사이코드라마의 연극용 대본을 만들어보고 싶다. 죽기 전 일주일 정도를 다룬. 그 절망적이고 텅 빈 공간에서 보여지는 병약한 인간들의 슬픈 유희를.

하지만 난 게을렀다-_- 문제는 달리 중요한 게 아니다. 게으름. 바로 그것이다.



알렉산더 소코로프가 먼저 그 영역을 잡아냈다. 죽음 직전, 히틀러와 결혼했던 에바 브라운의 시선을 따라 그려진 독일-러시아 합작 영화인 <몰로흐>에서 뭉개진 화면은 인간의 고독과 폭력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 그것은 긴 몽환이었고 충분히 유미적이었으며 애절하고 연극적이었다. 그리고 졸렸다-_-



그리고 올리버 히르비겔이 만든 <몰락>을 보았다. 엉망진창인 자막이긴 했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맘에 드는 영화였다. 무엇보다도 100% 독일인이라는 스탭, 캐스팅, 현지촬영이 뿜어내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외양은 확실하게 갖춰졌다.

이 작품이 센세이셔널리즘을 자극한 것은 히틀러가 광포하고 막무가내인 독재자가 아닌 늙고 소심하며 병약해서 인간적으로까지 보여지는 늙은이로 묘사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조커처럼 거부감 드는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건 수퍼맨 시절의 DC코믹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다. '교부들은 천사의 가면을 쓴 악마의 손길을 뿌리칠 줄 알아야한다고 했으니'. 이미 가치의 고정화를 경계하는 잠언은 수천 년 전부터 있었던지라. 추한 괴물 히틀러가 아니라 인간 히틀러로 보여짐으로서 히틀러라는 괴물은 진짜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홀로코스트를 만들어내고 전세계에서 벌어졌던 전쟁에 책임이 있으며 30여년 뒤에 대륙 하나 바다 둘 건너 나라에서 그려진 만화 속에서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욕을 쳐먹는 악역이 되야 하는(여기서 그럼 도조 히데키는 뭐야, 라고 살짝 물어주는 편이 현명하다. 혹은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는 천황 가문에 대한 질문도 유효하다) 이 늙은이가 정말로 별 게 없고, 그저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채식주의자라는 점은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것이다(원작이 된 트라우들 융게의 자서전에선 히틀러의 우회한 도착증세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혹자에겐 안타깝게도 그것은 신경증 증세가 있는 소심한 성격의 노인네가 가진 폐품모으기 같은 정도의 사소한 취미생활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될 듯 싶다).

히틀러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비서 트라우들 융게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광경들은 광기와 이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기이한 공간의 이야기이다. 그곳에서는 브랜디와 음악, 아이들의 천진한 합창노래와 상관에 대한 경의들을 단숨에 광기로 만들어버리는 자살방법에 대한 논의와 집단자살, 좁혀져오는 포위망과 독약, 거짓말과 거짓된 공간에 대한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그 위태로운 매트릭스의 복판에서 헤매던 트라우들 융게가 그 모든 것에 대해 가장 경악스럽게 느끼게 되는 순간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끝난 뒤에 나오는 대역이 아닌 그녀 본인의 인터뷰 장면에서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것을 우습게, 동시에 지독하게 슬프게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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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rabbit91 2006-07-07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락을 보셨군요.. 마지막 인터뷰장면 정말로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의심이 될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모든것의 부정.. 슬프다는 말에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