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썩 추천해줄만 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시련이 그렇듯 자기자신과, 세계와 동시에 겨뤄야 하는 싸움인데 문제는 이 여정은 고생에 비해서 별로 얻는 것도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겠다고 결심한다면 그 전에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천편일률적인 소음과(메르세데스나 마티즈나 고속도로에서 내는 소음은 똑같다) 매연과 타이어냄새와 먼지가 가득 섞인 바람과 도로변 밭에 뿌려진 퇴비냄새를 샤워 맞듯이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걸 우선 감안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구리시를 다녀왔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구리시에 예쁜 여자들이 많아서.... 는 아녔고. 그냥 봄바람이었다. 어찌되었건 간에 천호대교를 건너서 구리시에 도착하는데는 40분 남짓밖에 안 걸렸으니까. 그리 먼 동네도 아니었던 셈이다. 성남시가 그렇고 안양이 그렇듯, 구리시도 개발되기 직전의 모습과 심하게 개발된 이후의 모습이 마구잡이로 겹쳐있는 듯한 동네였다. 인상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업시간이라서 여고생들이 거리에서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과 배달까지 되는 돈가스가 1인분에 3000원이었다는 걸 뻬면.
문제는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천호대교로 오는 길에 겪었던 신나는 내리막길을 기억하고 있던 나로선 그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로 변해있을 같은 코스를 건너갈 베짱이 도무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남시로 들어가는 삭막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하남시를 경유해서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긴 세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거쳐 돌아가야 할 고속도로와 대교는, 썩 즐거운 길은 아니었다.
우선 그 길은 계속해서 고속도로였다. 그래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길이란 안전선이 겨우 마련된 도로 외곽의 틈에 의지해서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야 하는 길이었는데다, 황사가 슬슬 다가오고 있었던 탓에 먼지바람이 시야를 온통 가려놓는 회색 대형 방음벽을 튕겨서 돌아와서는 내몸을 끊임없이 치고 있었다. 뒤에선 때때로 흙, 시멘트, 폐품을 잔뜩 실은 덤프트럭이 내 왼쪽 손잡이에서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맹렬하게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다 오르막길까지 있었다. 그 지리한 길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란 때에 따라 익숙한 조작음과 함께 기어를 바꾸는 것과 명상에 잠기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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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위에서 박찬욱의 몽타주만이 떠오른 것은, 순전히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이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는 은근슬쩍 영화 속에 도는 어떠한 태도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 그게 더 확실하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박찬욱은 카페에서 활동 성실히 하는 회원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댓글은 예쁘장하게 달고, 언제나 예의바른 소릴 하며 번개와 정모에 빠지지 않는 그런 회원 말이다. 그것은 정성일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같았다. 이 두 사람을 보면 초창기 통신 시절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글 하나에 진지해지고 문장 한마디의 유희에 나름의 재롱을 넣는, 그런 사람들. 지금처럼 약육강식과 이죽거리기가 보편화된 사막 카지노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감수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부터 난 그리 살가운 타입은 아녔으니까-_-
두시간 동안 안장에만 앉아있다보니 불알이 아팠다. 그러나 달리기가 정력을 증진시킨다는 어떤 뉴스 때문에, 나는 열심히도 페달을 밟고 있었다. 사실 안 달리면 차에 치일 거 같았다. 그쯤 되자 머릿 속엔 집에 가서 샤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앞서, 이런 여정은 별로 얻는 것도 없다고 했으나 실질적으로 한가지 얻은 것은 있었다. 고속도로 내리막길에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공장부지 옆에서 주은 포장도 뜯지 않은 대만제 렌치였다. 적어도 3000원은 되보이는 것 같아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