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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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처음의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때다. 마을 분교에 입학을 했는데 교실 뒷편에 그리 크지 않은 유리문이 달려 있는 책장에 그림책이 가득 있었다. 집에서도 오빠들과 그림책을 본 기억은 있지만 그 그림책들이 몇 권 되지 않아서 책을 맘껏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학교에 들어가니 매일 매일 책장속의 책들을 마음대로 꺼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의 기쁨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각각 다른 내용의 책들은 내게 읽는 즐거움과 상상의 즐거움을 펼치게 하였다.

그후 오늘까지 여전히 나는 책들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책을 읽는 행위뿐만 아니라 책장에 가득 꽂힌 책들을 한 권씩 꺼내 어떤 책을 읽을까 고르는 행위를 더욱 좋아한다. 내가 고른 책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고르는 행위, 얼마나 찌릿하는지 모른다. 그 순간 나는 마치 회사의 오너처럼, 한 나라의 임금이 된것처럼 한껏 오만해진다. 어떤 사람은 전방위적으로 독서를 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말에 상관하지 않는다. 실껏 읽고 싶은대로 편독을 한다. 내 자유다. 

그러다 정말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바로 시어머님이다. 평생 책 속에서 사셨고, 몇 년 전에 뇌졸증으로 왼쪽 편마비가 되어 왼쪽 팔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시는 대도 책을 여전히 많이 읽고, 오히려 더 많이 읽게 되셨다고 한다. 눈으로 책을 읽으니 왼쪽 팔이 무슨 소용이랴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어머님이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어머님을 위해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나 침대를 따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



세살이 된 내 아이는 동네 도서관과 마을문고, 할머니의 서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돌이 되기 전부터 책에 관심을 보이더니 밤에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습관을 들였더니 짧은 그림책은 내용을 그대로 외워서 아무때나 읊고 다니며, 제법 글자에도 관심을 보인다. 나는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기를 또는 책만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아이가 책보다는 사람을 좋아하고, 생기발랄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책읽는 것은 강요를 해선 안된다. 스스로 즐겨야 한다. 그래야 평생 벗이 된다.

<책, 세상을 탐하다>라는 책은 책벌레 29인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중간 책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으며, 감동적이었다. 직업이 무엇이든, 연령이 어떻게 되든, 월세를 살던 자기 집이든 그것에 구애치 않고 책은 평등하다. 책값이 부담이라면 동네 도서관이나 마을문고를 이용해도 좋다. 

개인적으로 책을 많이 읽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혼자였을 때였다.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직장에 다닐 적에 책에 가장 열렬했던 것 같다. 지금도 서가에 꽂혀있는 무수한 책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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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혀봐! - 무늬보고 생각해요!가면쓰고 놀이해요!
신연미 지음, 권해현 그림 / 한국홀리스틱교육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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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림책들을 보면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책을 처음 접하는 연령이 낮아져서 그 아이들에게 맞춰서 책이 나오다보니 놀이와 병행할 수 있는 갖가지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 책 <맞혀 봐!>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약간 폭신한 느낌의 표지에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되어 있으며, 뒷표지 하단에 책장에 베이거나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책이 친절하다. 내용을 살펴보니 각 페이지마다 마치 수수께끼를 던지는 식으로 동물들의 무늬를 보여주며 그 무늬를 다시 색깔이나 말로 표현하며 어떤 동물인지 맞혀보라고 한다. 각 동물의 무늬에는 해당 동물의 얼굴모양이 오려져 있으며 그 모양을 뒤집어서 어떤 동물인지 맞혀볼 수 있으며, 그것을 가면처럼 얼굴에 쓰고 놀이를 할 수도 있다.



얼룩말의 경우는 왼쪽에 ’검정 줄, 하얀 줄이 나란히 나란히. 맞혀 봐.’라고 질문을 던진다. 오른쪽의 동물 모양을 꺼내면 ’나야, 나. 다각다각 얼룩말이야. 만나서 반가워.’라고 되어 있다. 동물의 이름과 그 동물의 무늬와 다각다각, 메에메에, 음매음매, 개굴개굴 등의 의성어와 색깔들도 익힐 수 있다.



세살배기 우리 아이는 처음엔 동물의 모양을 뒤집어 보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가졌고, 내가 얼굴에 대고 동물의 소리를 내니까 좋아하며 자신의 얼굴에도 써보고 얼른 거울 앞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얼룩말, 양, 젖소, 표범, 개구리, 나 이렇게 총 6개의 가면이 있고, 그 가면들은 두껍고, 부드럽게 테두리가 잘라져 있어서 손이 베일 염려는 없다. 각 동물 모양에 끈을 달아 얼굴에 쓸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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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야 2010-08-23 22:4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겠어요... ^^
저도 함 써보고 싶은데요?
 
<신통방통 나눗셈, 귀신 백과사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신통방통 나눗셈 신통방통 수학 2
서지원 지음, 심창국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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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때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회초리를 들고 오셔서 오늘 구구단을 다 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외우지 못한 학생은 외울때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평소 외우는 것이라면 자신있었던 나였지만 회초리를 드신 선생님의 엄한 표정에 쿵덕쿵덕 심장은 요동쳤고 머리속은 하애졌다. 정말로 선생님은 온종일 구구단을 외우게 했고, 다 외운 아이들은 선생님 앞에서 읊어야 했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도 집에 가지 못했으며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공포스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신통방통 나눗셈>은 초등 저학년 학생들에게 나눗셈이란 무엇인지, 나눗셈은 왜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기획된 동화다. 어쩌면 어려워할 수도 있는 나눗셈을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받아들이기 쉽게 이야기를 통해 재미나게 알려주고 있다.       

 

자칭 샤방공주인 나래는 늘상 새로운 귀걸이 목걸이 머리핀 팔찌 등으로 공주처럼 꾸미고 학교에 간다. 반 아이들은 몹시도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나래의 것이 아니다. 엄마의 선물가게에서 슬쩍 집어와서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친구들에게 자랑하고는 엄마가 눈치채기 전에 다시 갖다 두곤 한다. 그러다 엄마에게 들키게 되고 엄마는 가게 일을 도와주면 물건을 하나 주겠다고 한다. 엄마의 일을 도우려 하지만 물건을 각각의 봉지에 나눠 포장을 하는데는 나눗셈을 알아야 한다. 나눗셈을 못하는 나래는 엄마로부터 꾸중을 듣고 공원에 갔다가 나눗셈버스를 보게 된다. 나눗셈버스인줄 알았던 버스는 사실 나눔버스로 노숙자나 혼자 사는 노인분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나눠주는 일을 하며 거기서 일을 하시는 알통 아주머니를 만난다.   

나래는 일을 도와주면 밥을 주겠다는 아주머니의 제안에 따라 거들지만 반찬을 접시에 똑같이 나눠 담아야 하는 것에도 쩔쩔맨다. 바쁘게 일한 덕에 밥은 맛이 있고, 아주머니를 통해 나눗셈이란 똑같이 나누는 것이란 걸 배우게 된다. 아주머니는 학원이나 문제집이 아닌 나눔 버스에서 무료 급식을 열심히 하면 나눗셈은 저절로 잘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다음날 나눔버스를 다시 찾아간 나래는 착하고 예쁘고 똑똑하다며 아줌마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아이가 같은 반 친구 거지 공민주라는 걸 알게 된다. 평소에 지저분하고 행색이 초래하다고 민주를 깔봤는데 같이 일을 하면서 나눗셈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나래는 남을 위해 자신의 것도 나누는 진정한 나눗셈을 깨닫는 천사같은 아이가 된다는 내용이다.  

그냥 나눗셈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눗셈을 통해 모두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나눔'의 의미도 전달하는 점이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다. 뭔가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하며, 어려운 친구가 있어도 함부로 업신여겨서는 안된다는 것도 은근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나래가 꾸몄던 모든 상품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통해 외모지상주의인 요즘의 세태를 탓하는 것도 같다. 끝에 나눔천사로 거듭나는 나래의 모습이 진정 아름다워 보이며, 나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을 해본다. 만약 내가 어렸을 적에 이 책을 만났다면 나눗셈은 참 쉽고 그 나눗셈을 잘해야 세상이 공평해지며 남을 위해 베푸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다.  

부록으로 딸린 '신통 방통 곱셈, 나눗셈' 벽보를 보며 남편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편은 구구단은 2단부터 9단까지 차례로 외우게 할 것이 아니라 2단 4단 8단을 함께 외우게 하고, 3단 6단 9단을, 5단과 7단을 묶어서 외우게 하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쉽게 외울 수 있다고 했다. 나눗셈은 곱셈과 떼레야 뗄 수 없는 '절친' 사이임에 틀림없다. 예제도 보니 나눗셈과 곱셈을 같이 적어 놓아 응용할 수도 있고 여러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통 방통하게 참 잘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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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 -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동심원 9
이묘신 지음, 정지현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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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삶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며 하루를 살아낸다. 아이들의 세계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학교와 친구가 그것일 것이다.『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는 그렇게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유독 가족에 관한 시가 많고, 가족에서 마을로, 그리고 같은 반 친구에게로 이야기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들은 하나같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담고 있다.

<쌀 싣고 가는 경운기>에선 앞에 가는 느린 경운기를 보며 아빠에게 빨리 운전을 재촉하는 아이에게 건네는 아빠의 말씀이 가슴에 콕 박힌다. ’이 녀석아, 어디 밥 안 먹는 사람 있냐!’.
<거미줄>을 보면 인간의 이기와 개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더 빠른 길을 만들려고 계속 길을 만드니 얽히고 설키어 거미줄이 되고, 그 거미줄에 족제비가, 산토끼가, 너구리가 걸렸다는 내용에서 마치 블록쌓기 놀이를 하듯 매일 매일 짓고 허물고 파헤치고를 반복하며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반자연적인 태도에 마음이 찔린다.

<맛> 

컴퓨터 할 때마다
엄마는 내게 말하지
-컴퓨터 맛들면 큰일 난다

누나가 휴대전화 문자 할 때도
엄마는 말하지
-아주 문자에 맛들었네 맛들었어

아빠가 늦게 올 때마다
엄마는 말하지
-술맛에 단단히 빠지셨군

그러던 우리 엄마가 
드라마 보는 맛에 밥도 안 차려 준다


나도 텔레비젼을 없애기 전에 드라마에 빠져서 밥먹는 것도 잊어버린 적이 있어 시를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바로 내 이야기야" 하면서 말이다. 우리 집을 시인이 엿보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핑계 9단>

오늘 아빠 생신인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햄스터가 아파서 그러는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받아쓰기 100점 받았는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이렇게 물을 때마다
커지는 엄마 목소리

내일은 또
무슨 핑계 댈 거야, 응?

요즘 아이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도 학원 수업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 하는데 어디 그럴 참이 없다.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에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다. 그런데 나처럼 시인도 걱정이 되나 보다.

<추억>

-넌 메뚜기 잘 잡았잖아
-고무줄도 참 많이 했는데
동창들과 만날 때마다
옛날 이야기하며
호호호 신이 난 엄마

30년 후에 친구들 만나면
우린 무슨 얘기부터 할까?

-난 만날 학원에 다녔어
-그땐 정말 시험 많이 봤지
친구들 얼굴 마주 보고
나도 엄마처럼 웃을까?


작년에 텔레비젼을 없앴다. 아이가 자라면서 텔레비젼만 켜면 그 앞에 서서 불러도 꼼짝을 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앴는데 그 후부터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이야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놀아주며, 베란다에 나가 달구경도 하고, 풀벌레 소리도 듣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도 베란다에 날아온 비둘기가 구구거리는 소리와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흉내내기도 한다. 텔레비젼을 없애고 나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텔레비젼>

커다란 텔레비젼 소리를
조금 줄여 봤어
엄마가 뚝딱거리며
음식 만드는 소리가 들렸어

텔레비젼 소리를
조금 더 줄여 봤어
째그르르 참새들
노랫소리가 났어

텔레비젼 끄니까
찌르르르르 찌르르르르
아주 작은 풀벌레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어


올해들어 두 달에 한 번 친정 부모님을 뵈러 간다. 부모님은 저멀리 남도에 끝자락에 살고 중간지점인 광주에서 만나는데 지난 7월에 뵈었다. 그런데 병원에 들려야 한다며 얼마전에도 광주에 올라오시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너희는 내려오지 마라, 지난달에 봤으니까 됐지" 하셔서 정말로 내려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본심이 아니셨나 보다. 

<빈말>

서울 큰아빠가 내려온다고 전화했다.
-기름값도 비싼데 뭘 오냐
할머니가 그러니까 진짜로 오지 않는다

작은아빠가 밥을 사 드린다고 했다
-사 먹으면 돈도 많이 들고 난 집 밥이 좋다
그러니까 있는 반찬에 밥만 해서 먹는다

고모가 바다로 놀러 가자고 했다
-다리도 아픈데 괜히 느이들 짐이나 되지
그러니까 정말로 고모네 식구들끼리 간다

에구, 할머니가 하시는 빈말인 줄도 모르고


<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는 우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자화상 같다. 읽는 동안 서로 아웅다웅거리는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고, 내가 가족을 참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혹시라도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고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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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바이러스 동심원 10
이병승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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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동시집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동시들을 읽다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읽게 되어 즐겁기도 하고 어린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거워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동시집인데도 아이들의 시선이 아닌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본 글들이 버젓이 동시집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도 있었다. 동시를 어른들이 쓰려면 아무래도 마음이 굳어있지 않고 말랑말랑해야 될 것 같다. 그래야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이들의 눈빛을 닮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초록 바이러스>는 참 유쾌한 동시집이다. 읽다보면 통통튀는 글 맛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서정적이라기 보다 아이들의 몸짓이 그려진다고 해야 할까. 암튼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그 재미를 혼자만 알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본문 중에 나온 몇 개의 시를 적어 본다.

<헬리콥터>

학교 끝났다, 오버

신발주머니 가방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달린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

발이 땅에서 떠오르는 아이들
모두 다
헬리콥터 되어

난다, 난다
신난다

수업이 끝나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너무도 실감나게 그려낸 것 같다. 아이들이 돌리는 신발주머니가 프로펠러가 되고 가벼워진 마음을 헬리콥터로 표현했다. 읽다보니 나도 난다, 난다, 신난다.

<고양이 기사>

동네 골목 전봇대 옆 으슥한 곳에
무시무시한 까만 봉지 괴물
빵빵한 배를 퉁퉁 치며 자고 있어요.

고양이 기사가 발톱으로 가르면
빨간 리본의 사과 껍질 소녀가 나와요
참치 캔 깡통 로봇도 나오고
신문지 박사와 샴푸의 요정도 나와요

썩지 않는 비닐 감옥에
천 년 동안 갇혀 있을 뻔했다며
고양이 기사에게 박수를 쳐요

으쓱해진 고양이 기사는
"뭘, 이까짓 걸 가지고  ……"
깡마른 생선 뼈 아가씨 하나 물고
담장 위로 사라지지요

하늘이 반달눈으로 살짝 웃어요


나는 쓰레기를 아무데다 함부로 버리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런데 길을 가다보면 길가 여기 저기에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다. 특히나 썩지도 않는 비닐 쓰레기들. 이 글을 읽다보니 괜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사람들이 생각나서 화가 살짝 나기도 했다.

<존댓말>

조회 시간
우리가 다 모였을 때는
교장 선생님도
존댓말을 하는데

따로따로
혼자 있을 땐
무조건 반말이다

역시,
뭉쳐야 한다

아이들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되겠다. 반말일지라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말과 그냥 대하는 것은 다르다. 아이들은 그런 것을 귀신같이 안다. 조금 찔린다.

<튀어나온 못>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고?

나는 뾰족한
못이 아니야

호기심이야
질문이야
웃음이야
생각이야
꼭, 하고 싶은 말이야!

개구리 올챙이적 모른다고 어른이 되면 자신의 어릴적 생각은 잊어버린채 아이들이 자신의 뜻대로만 따라주길 원하는 독선자가 된다. 튀어나온 못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행동이 호기심이고, 질문이고, 꼭 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겠다.

<초록 바이러스>

카페 온에
초록이만 나타나면
난 먹통이 된다

머릿속은 엉망진창
손발은 달달달달
심장은 벌렁벌렁
호호호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고
하얀 덧니 웃는 얼굴이 보인다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다

아이나 어른이나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반응은 비슷한 것 같다. 몇년 전 내 조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생선가시를 발라줬다는 얘길 듣고 한참동안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조카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이외에도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었을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보통 사람은 놓치고 말 것들도 시인에겐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가 되나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동시가 읽고 싶다면 <초록 바이러스>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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