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 -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동심원 9
이묘신 지음, 정지현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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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삶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며 하루를 살아낸다. 아이들의 세계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학교와 친구가 그것일 것이다.『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는 그렇게 아이들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유독 가족에 관한 시가 많고, 가족에서 마을로, 그리고 같은 반 친구에게로 이야기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들은 하나같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담고 있다.

<쌀 싣고 가는 경운기>에선 앞에 가는 느린 경운기를 보며 아빠에게 빨리 운전을 재촉하는 아이에게 건네는 아빠의 말씀이 가슴에 콕 박힌다. ’이 녀석아, 어디 밥 안 먹는 사람 있냐!’.
<거미줄>을 보면 인간의 이기와 개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더 빠른 길을 만들려고 계속 길을 만드니 얽히고 설키어 거미줄이 되고, 그 거미줄에 족제비가, 산토끼가, 너구리가 걸렸다는 내용에서 마치 블록쌓기 놀이를 하듯 매일 매일 짓고 허물고 파헤치고를 반복하며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반자연적인 태도에 마음이 찔린다.

<맛> 

컴퓨터 할 때마다
엄마는 내게 말하지
-컴퓨터 맛들면 큰일 난다

누나가 휴대전화 문자 할 때도
엄마는 말하지
-아주 문자에 맛들었네 맛들었어

아빠가 늦게 올 때마다
엄마는 말하지
-술맛에 단단히 빠지셨군

그러던 우리 엄마가 
드라마 보는 맛에 밥도 안 차려 준다


나도 텔레비젼을 없애기 전에 드라마에 빠져서 밥먹는 것도 잊어버린 적이 있어 시를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바로 내 이야기야" 하면서 말이다. 우리 집을 시인이 엿보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핑계 9단>

오늘 아빠 생신인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햄스터가 아파서 그러는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받아쓰기 100점 받았는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이렇게 물을 때마다
커지는 엄마 목소리

내일은 또
무슨 핑계 댈 거야, 응?

요즘 아이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도 학원 수업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 하는데 어디 그럴 참이 없다.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에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다. 그런데 나처럼 시인도 걱정이 되나 보다.

<추억>

-넌 메뚜기 잘 잡았잖아
-고무줄도 참 많이 했는데
동창들과 만날 때마다
옛날 이야기하며
호호호 신이 난 엄마

30년 후에 친구들 만나면
우린 무슨 얘기부터 할까?

-난 만날 학원에 다녔어
-그땐 정말 시험 많이 봤지
친구들 얼굴 마주 보고
나도 엄마처럼 웃을까?


작년에 텔레비젼을 없앴다. 아이가 자라면서 텔레비젼만 켜면 그 앞에 서서 불러도 꼼짝을 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앴는데 그 후부터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이야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놀아주며, 베란다에 나가 달구경도 하고, 풀벌레 소리도 듣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도 베란다에 날아온 비둘기가 구구거리는 소리와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흉내내기도 한다. 텔레비젼을 없애고 나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텔레비젼>

커다란 텔레비젼 소리를
조금 줄여 봤어
엄마가 뚝딱거리며
음식 만드는 소리가 들렸어

텔레비젼 소리를
조금 더 줄여 봤어
째그르르 참새들
노랫소리가 났어

텔레비젼 끄니까
찌르르르르 찌르르르르
아주 작은 풀벌레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어


올해들어 두 달에 한 번 친정 부모님을 뵈러 간다. 부모님은 저멀리 남도에 끝자락에 살고 중간지점인 광주에서 만나는데 지난 7월에 뵈었다. 그런데 병원에 들려야 한다며 얼마전에도 광주에 올라오시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너희는 내려오지 마라, 지난달에 봤으니까 됐지" 하셔서 정말로 내려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본심이 아니셨나 보다. 

<빈말>

서울 큰아빠가 내려온다고 전화했다.
-기름값도 비싼데 뭘 오냐
할머니가 그러니까 진짜로 오지 않는다

작은아빠가 밥을 사 드린다고 했다
-사 먹으면 돈도 많이 들고 난 집 밥이 좋다
그러니까 있는 반찬에 밥만 해서 먹는다

고모가 바다로 놀러 가자고 했다
-다리도 아픈데 괜히 느이들 짐이나 되지
그러니까 정말로 고모네 식구들끼리 간다

에구, 할머니가 하시는 빈말인 줄도 모르고


<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는 우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자화상 같다. 읽는 동안 서로 아웅다웅거리는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고, 내가 가족을 참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혹시라도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고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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