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나는 뜸치료
주영호 지음 / 문이당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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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겠으나,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인체를 미의 기준으로 삼은 8등신이 황금비율이라는 당최 와 닿지 않는 비율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서양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은 동양에서도 그 영향은 대단한데, 202cm의 밀로의 비너스가 완벽한 8등신으로, 경국지색을 대표한다. 8등신의 원리에는 수학적 비율에 대한 당시 철학자들의 이상이 담겨 있어서 서양에서도 흔치는 않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면 또 전혀 다른 비율을 보이지만, 시대별 인체의 완벽한 조화를 찾는 경우는 생존 본능에 따라서도 어쩌면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그래서 몸의 보이는 분 어디 한 군데가 부족할 경우, 사람들은 부조화를 견디지 못한다.

신체장애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비록 운동역학적(?)으로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음에도 말이다. 이른바, 탈모 증세가 가장 심각한 고민에 해당하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봐도 정수리가 아니라, 머리카락을 포함한 비례를 따지고 있다. 이런!

<머리 나는 뜸 치료>는 이런 일까지 열을 받은 상황이 땅, 그러니까 두피를 황폐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열이 자꾸만 위로 뻗치니 털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오행법(五行法)의 원리를 통해 몸의 장기를 다스리면 털은 자연스럽게 자란다고 말한다.

이는 탈모 예방이 아니라 탈모 치료를 말하는 바라, 사실이라면 꽤나 획기적인 일이다. 과연, 사실일까? 무엇보다 서양 의학에서 말하길, 모근은 한 번 죽으면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이식 수술을 권장한다. 

모낭 세포는 절대 죽지 않는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이다. 만일 서양 의학에서 주장하는 대로 모낭 세포가 죽어 없어진다면 그 부분의 피부가 다 벗겨져야 마땅하고 대머리인 사람들은 살갗이 업어져 두개골이 훤히 드러나야 정상이다. 83쪽

침술 및 뜸치료 전문가인 저자 주영호 씨의 주장이다. 이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는데, 그는 그간 나이든 분들을 치료하면서 얻은 임상 결과를 내세운다. 그렇다고 검은콩 등을 권하는 한의학의 주장을 답습하는가 하면, ‘오장육부의 균형을 맞추는 치료법과는 크게 어긋한 변종 치료법’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뜸치료의 장점이라면 한의학의 근본 원리가 그렇지만, 머리카락이 나는 자리가 서양 의학처럼 미시적인 접근이 아니라 거시적인 접근으로 몸 건강 전체를 더불어 돌볼 수 있다는 점이다. 머리카락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기인 폐와 대장에 해당하는 금(金)을 돌보기 위해서는 상생인 토(土)에 해당하는 비장과 위장을 달래야 하고 이는 오행을 따라 자연스럽게 돌며 몸 전체 순환을 유기적으로 돕는다.

그래서 발모에 좋은 뜸자리는 몸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자리와도 일치한다. 그리고 오장육부에 따른 치료인 만큼, 동맥경화, 마른 비만, 콩팥 기능 이상 등 각 증상에 따른 혈자리를 보충으로 더한다.

다만,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8개월 동안, 한 번 뜰 때 같은 자리를 세 번, 열흘간 쉬지 않고 뜨고 사흘을 쉬는 3-10-3 법칙을 지켜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아무려나 머리숱이 적어서 고민이라면 족삼리, 상거허, 하거허, 충양이라는 혈자리만이라도 기억을 해서 뜸을 들여 보자. 밥도 그렇고, 뜸을 들여서 손해 볼 게 없는 건 적어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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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최용찬 옮김 / 난장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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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아이리스 장
 

홀로코스트란 단어는 유태인 대학살을 정의하기에는 정치적으로 옳지 못하다. 홀로코스트는 ‘제물’이라는 뜻으로 유대인을 신에 대한 제물인 양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쓰는 말이지만 당사자는, 혹은 당사자의 후손들에게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원제 : 엄마, 아우슈비츠가 뭐예요?)를 쓴 아네트 비비오르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그녀 남편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600만 명(400만 명에서 700만 명까지 추산)이라는 어마어마한 유태인 학살에서 자유로운 유태인 후손은 없다.

1948년생인 저자 역시 수만 명의 유태인 언니 오빠들처럼 몇 년 더 일찍 태어났던들 어떤 일을 겪었을지 모를 일이다. 저자에게 유태인 민족 대학살은 남이 아닌 자신의 문제이다. 이후 유태인 학살 관련 전문 역사가가 된 저자는 13살 난 딸아이를 위해 비극을 쉽게 풀어서 써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역사가인 나에게 아우슈비츠를 서술하고, 유대인 민족 학살이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를 묘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긴 해도,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설명이 안 되는 핵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나치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잡아 죽이는데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지 이 책은 아울러 저자 자신에게 그 이유를 되묻는 작업이다.

이 말은 독일인들이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나치와 전시 국제법에 따라 싸운 대부분의 독일군은 별개라는 주장과도 일치하는 의문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유대인을 잡아들이고, 죽이는 일이 과연 승리의 최우선 요건이었을까?

자살하기 전에 유태인들을 몰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남긴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의 광기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어쩌면 ‘되풀이되지 말아야할 과거’를 위해 학살의 역사와 더불어서 그 배경인 ‘반유대주의’에 대한 설명에 힘을 더한다. 왜냐하면 말살을 당할 만큼, 유대민족의 과오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보이는 역사적인 반유대주의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유대민족이 지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에 더해, 악마로 취급당했던 전력을 담담하게 말한다.  페스트 전염병 당시에도 유대인에게 죄를 덮어씌웠고, 부활절에는 기독교인 아이를 잡아다가 피를 먹었다는 소문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패배이후 독일은 경제적 파탄 책임을 1%도 안 되는 유대인에게 돌린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 독일인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고, 사회 각층에서 엘리트로 두각을 나타냈음에도 타락의 원흉으로 주목 받았다.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유대인은 몰살의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순혈주의를 내세운 선동 헤게모니로 당시 아우슈비츠에는 집시들이 유대인과 같은 취급을 받아서 죽었고, 독일인이라도 정신병자, 불구자, 장애인들은 불임 시술을 받거나 마찬가지로 희생이 되었다.

가슴 아픈 얘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을 때에는 역사가 반복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고, 익히 서구사회에서 냉철하게 역사청산과 교육을 통해서 교훈으로 남겼다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이 위의 ‘반유대주의’ 논리와 과연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종교적인 터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번져 국가 간 전쟁과 테러로 21세기가 얼룩지고 있고, 이스라엘은 당한 만큼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서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이 책은 또 다른 의미로, 역설적으로 유대인이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 그것이 바로 저항이다. 바로 이 저항 개념에서부터 우리는 유대인 저항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라고 옮긴이의 입을 통해 저자는 말하지만 이 논리는 유대인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팔레스타인 민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 얘기할 것 없이 우리에게도 1923년 9월, 관동대진재학살(關東大震災虐殺)의 뼈저린 경험이 있다. (이때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조선인과 같은 취급을 받아 사형을 당했다.) 또 80년 5월, 군부의 광주 대학살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 이주외국인,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들이 받는 멸시와 조롱과 차별을 떠올리면 할 말이 없다.

나치의 광기와 연합국의 무관심이 부른 엄청난 학살의 기록, 그리고 팔에 푸른색 잉크로 새긴 문신이 남은 채로 살아가는 생존자들이 산 역사로 증언하는 시대에 딸아이에게 어쩌면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이 또 다른 악몽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철저한 기억은 없고, 철저한 망각만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어 친일파가 쥔 기득권이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뼈아픈 과거가 그리 멀지도 않은 일이고, 이제야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되었다. 이를 사죄하는 친일파 후손도 있으나, 폄하를 하고 핏대를 세우는 것들이 국회의원이랍시고 TV에서 당당하게 떠들어댄다.

아무리 속내에 정파 관계가 얽혔다지만 개인 영달을 위해 할 소리, 안 할 소리를 가려야 하는데, 그걸 못 가린다. 13살짜리 얘를 위해 썼다는 이 책을 그들에게 먼저 읽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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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폰, 잔폰, 짬뽕>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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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로에 나가면 짬뽕 전문점을 종종 들린다. 가격도 저렴하고, 또 바쁜 시간에는 바로바로 나오는 데다, 매콤한 맛이 요즘처럼 쌀쌀할 때는 딱 제격이다. 너무 자극적이어도 물리기 마련이라 뭘 먹을까 하다가, 하루는 근처 호텔주방장 출신 중국인이 주방장이라는 중식당에 들어갔다.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짬뽕과 자장명과 탕수육을 시켰다. 
 

그곳에서 먹은 짬뽕 맛은 좀 더 부드럽긴 했지만, 솔직히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장면도 마찬가지였는데, 딱히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좀 아쉬웠다. “청요리를 시켜야 차이가 나지, 일반식이야 뭐”하고 말았는데, <차폰, 잔폰, 짬뽕>을 읽어보니 무심코 한 말이 딱 맞았다. 
 

이른바, 식사 메뉴가 아닌 요리 메뉴라고 부르는 고급 음식도 한국식으로 바뀐 게 맞지만 짬뽕, 자장면은 말 그대로 한국에서 새롭게 정착을 한 요리이니 중국인이 요리하든 한국인이 요리하든 큰 차이가 없을 수밖에. 정확하게는 화교(華僑) 음식이라고 불러야 한다. 
 

서민음식인 짬뽕은 중국 푸젠의 지역 음식인 ‘탕러우쓰멘’이 일본의 무역도시인 나가사키에 중국인 마을인 당인촌이 번성하면서 ‘시나우동’으로, 이후 ‘잔폰’으로 바뀐 음식이다. 각종 재료를 넣고 육수에 삶은 면을 넣은 ‘잔폰’은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한국식의 매운 ‘짬뽕’과는 맛이 다르게 담백하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먹는 ‘짬뽕’은 말 그대로 한국에서 새로운 음식으로 바뀐 셈이다. 그러니, 중국인 주방장이 만들었다고 한들 그 맛이 그다지 다를 리가 없다. 
 

민속학을 공부한 주영하 교수가 쓴 이 책에서는 단순히 요리의 경로만 추적하지는 않았다. 짬뽕만 해도 16세기 일본 개방 정책이 세계 포르투갈, 네덜란드, 중국 등 열강과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17세기 이후 쇄국으로 유일한 무역도시인 나가사키에 중국인들만 당인촌(작가는 세계 최초의 공인 차이나타운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이 세워진 배경이 있다. 
 

그리고 주로 일본과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중국 남방지역 중국인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이런 관계망에서 중국에서 일본을 돌아 한국으로 짬뽕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마구 뒤섞어 놓았다’는 의미로도 쓰는 짬뽕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침략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중국음식에 따라 나오는 단무지 역시, 중국음식이 한국에서 번성할 당시 화교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같은 경제권에 속해 있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군대 시절, 그렇게 먹고 싶었던 자장면의 추억이 알고 보면 일제 이후, 60~70년대 경제 부흥기에 따른 추억이지 아주 오랜 추억이 아니라는 지적이 그렇고, 제주도 음식에서 더 이상 향토 음식을 찾아볼 수 없고, 육지 음식이 점령한 ‘주변부 음식 문화의 운명’은 중국 천편일률적인 소수민족 통합 정책 이후 소수민족의 고유 음식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흔히 55개 소수민족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중국 정부 공인’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고 에둘러 꼬집는다.) 
 

무엇보다 짬뽕이 일본어에서 유래를 했다고, 국어순화 차원에서 ‘초마면’으로 쓰자고 하지만 초마면은 다른 음식이라고 점, 전주비빔밥을 세계 음식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해서, 시장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던 음식이라는 현실을 뒤엎고 임금님 수랏상에 오른 음식으로 둔갑한 점 등 우리가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진실과 다르게 왜곡되는 부분이 꽤 많다는 지적을 한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음식 한가지에도 정치 경제적인 역사가 함께 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사회적, 생태적,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먹을거리 관계망에 더해 한편으로 내가 먹는 음식에 알게 모르게 치열한 정치적인 함의가 있다는 생각에 번뜩 정신이 든다. 그래서 저자의 바람이 단순히 농사꾼들이나 시민단체의 지적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지역의 농수산물로 만든 향토 음식을 외식 업체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밥상에서도 살려 낼 고민을 농정 당국에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 지역의 먹을거리 자주권은 이제 국가의 먹을거리 자주권이며, 21세기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제주 음식이 육지에 포섭되어 박물관의 쇼윈도로 들어간 지금, 자칫 한국 음식도 그런 사정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196쪽, <2부. 국민국가, 로컬푸드를 포섭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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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9
B. 파스칼 지음, 하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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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자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짓눌러버리는 데는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줄기 증기, 한 방울의 물도 그를 죽이는 데는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짓눌러버릴지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한층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들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팡세> 180쪽

갈대 같은 존재인 인간,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는 존엄을 갖출 수 있다. 생각에 온 힘을 다했을 때 위대한 갈대로 거듭난다. 파스칼의 갈대는 한낱 갈대이나 우주를 채우는 존재이고, 몸은 나약한 뿌리로 지탱하나 땅과 하나 되는 의지이며, 바람에 휘청거리나 세상 만물의 소리와 교합한다. 우주와 합일치 되는 순간, 갈대는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을 가득 채운다.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종교 사상가로 그 누구보다 생각하는 갈대이고 싶었던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의 <팡세>는 사람들을 신앙심으로 인도하기 위해 쓴 <기독교 변증론> 초고다. 그러나 그의 인도는 “무조건 믿으라, 그러면 천국 간다”는 식으로, 다른 갈대가 흔들린다고 덩달아 휩쓸리는 갈대이길 바라지 않았다.

11살에 이미 <소리의 전파에 관한 논고>를 썼고, 독학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생각해냈으며, 16살에 <원뿔곡선시론>을 발표한 천재 수학자는 확증이 불가능한 신앙 앞에 마주 서서 컴퓨터처럼 치밀하면서도 지독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파스칼은 계산기와 컴퓨터 원리를 발명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파스칼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에게 사고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은 돌이나 혹은 짐승일 것’이라고 말한다. 신앙으로의 귀의 이전에 신앙을 찾는 자기 자신, 그의 생각은 당연히 인간 존재 자체를 두고 깊은 물음으로 이어진다.

누가 나를 이 세상에 내놓았는가, 이 세상이 무엇인가,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나는 모른다. 모든 것에 관해서 나는 지족한 무지 속에 있다. (…) 내가 도처에서 보는 것은 무한뿐이며, 이 무한은 나를 일개의 미립자처럼, 또 한순간이 지나면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그림자처럼 둘러싸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바의 전부는 내가 마침내 죽으리라는 것뿐이지만, 내가 가장 모르는 것은 어떻게 해서도 피할 수 없는 바로 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107쪽

파스칼의 갈대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의 물아일체와 합치하는 듯, 엇갈리는 지점이다. 호접지몽이 일반적으로 덧없는 인생에 대한 비유로 쓰인다면, 파스칼의 갈대는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의 변증법을 통해 신을 향한 사랑으로 귀의한다.

병을 앓아 하반신 마비로 목발에 의지할 수는 아픈 몸으로도 파스칼은 포르루아얄 수도원 생활을 엄격하고 철저한 고행으로 일관했다. 지병으로 인해 39세에 갈대처럼 짧은 삶을 마감하였으나 병으로 완성하지 못한 채로 남긴 단편적인 초고는 이후 정리를 통해 <팡세>로 세상을 밝히는 사고(불어로 팡세)의 불이 되었다. 파스칼의 친구들이 초고를, 후세에 걸쳐 다시 정리한 900여 개 단편 모음집은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허나 가감이 없는 만큼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절절한 애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는 횃불을 들고 대지를 비췄다.’ 파스칼이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발췌한 문구이다. 이후 신에 대한 사상을 넘어서 수많은 실존주의자들의 선구자가 된 치열한 사고의 결정체 <팡세>는 돌 혹은 짐승이 들끓는 갈대밭에서 그래도 높고 환하게 타오르는 횃불이다.* 

밑줄긋기
인간이랑 모든 각도에서 보지 않았다는 데는 화를 내지 않지만 오류를 범했다는 말을 듣기는 싫어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인간이란 원래부터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과 감정의 지각은 항상 진실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보고 있는 방면에서는 본래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12쪽

감성은 이성을 허위의 외관으로써 기만하고, 또 감성이 이성에게 주는 이러한 속임수를 이번에는 감성이 이성에게 받곤 한다. 이성이 그것을 보복하는 것이다. 넋의 정념은 감성을 교란하고 그릇된 인상을 그에게 부여한다. 양자는 서로 다투어 속고 속인다. 55쪽

나는 때때로 운명에 대해 스스로 역행하려고 애쓴다. 운명을 극복하는 영광은 나로 하여금 즐겁게 운명을 극복하게 한다. 그 대신 나는 때때로 행운 속에서도 싫증을 일으킨다. 66쪽

현재는 결코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는 우리의 수단이요, 미래만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원하고 있다. 또 행복해지려고 언제나 준비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도 행복해질 수가 없다. 93쪽 

나는 손도 발도 머리도 없는 인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왜냐하면 머리가 발보다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경험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은 돌이나 혹은 짐승일 것이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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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향연 - 끝나면 수평선을 향해 새로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한창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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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기분 풀어진 주인처럼 인자스러워졌다. 진짜 봄인가. 봄이라 해도 되나 몰라. 아무래도 될 듯싶다. 포근하다. 비로소 나는 내 식솔들, 고양이와 동백나무와 가문비나무와 온갖 벌레와 풀잎들에게 말했다. 이곳에 진정 봄이 왔음을 선포한다. 다들 안녕. (…)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253~254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그러니 견디어라. 책 마지막 문장이 내 속을 따스하게 풀어준다. 견디지 못하고 얼마나 도망치고, 외면하며 겉으로 아닌 척 하나 이대로 살아야 되나 싶었던 시절이 누구라고 없었겠나. 

늦가을 방으로 들어온 모기 한 마리 앵앵 날갯짓 덕에, 왼손 검지 따끔함에, 술 취해 선잠을 자다가 얼결에 일어나 무심코 집어든 소설가 한창훈의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을 붙들고는, 새벽 기도회 나가는 어머니가 튼 라디오 찬송가 소리가 들릴 즈음이 되어서는, 겨울 재촉하는 창 밖 빗소리가 거문도 해무가 뭉쳐 내리는 듯 했다.

어젯밤 무겁게 툭툭 술상 발밑으로 소주병뚜껑과 뒤섞여서 떨어지고도 갈치 주둥이에 매달린 낚싯줄 납덩이처럼 입 안에서 깔깔하고 텁텁하게 찌꺼기들이, 갈칫국 한 사발 들이킨 듯 책 한 권 독파에 말끔히 가실 수 있구나, 해서 신기하기도 하다. 소설가는 말하길,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혹독한 계절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습습한 갯것들이 먹여 키운 한창훈의 소설을 읽고는 참 구성지면서도 재밌다 했으나, 관광객처럼 그뿐이었다. 관광 잘 하고 돌아와서는 힘내서 일하자 하면 뭔가 좁아터진 게 넓어지는 맛도 알겠지 했는데. 63년생인 그이보다는 한참 젊은 축인데도 닻 같고 돛 같은 당신도 늙는군요. 저도 그래요, 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방금 전에 전어 눈알 같은 눈물 한 방울 떨굴 뻔했다.

그이의 첫 산문집은 소금기 밴 흰머리 섞인 봉두난발 머리카락이 하늘로 뻗대 있는 삶 이력이 만선처럼 담겼다. 이제껏 그이의 소설로 난간 위에서 수면 위 출렁이는 모양새만 봤다면, 지금은 갯바위에 게고둥처럼 배를 붙이고 누워 바닷물 속으로 고개를 들이고 물속에서 아린 눈을 뜨고, 그래도 휘익 한 번 본 기분이다.

실제 바다 속에 용궁은 없고 구멍 난 그물, 폐타이어 등속이 그득하듯이 책 속에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닷가로 돌아온 시절 내내 외로움, 시련, 고독, 가난과 그에 따른 악다구니리가 미역 점액질처럼 진득하다.

허나 싸질러 놓고 사는 게 인간의 생겨먹은 꼴인 것을, 바다는 그래도 ‘수십만 마리의 학꽁치 떼, 서해안으로 산란하러 가는 중인 그것을 하나같이 알이 통통 배고, 흰 정소가 가득 차 있었다. 떠난 곳에 남은 것은 이렇듯 생명들의 이동과 내림’, 향연이다.

이 책에 회에 양념 도배하듯 가타부타 설명을 다는 게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만 더 하자면 먼 뱃길 나갔다가 돌아오는 부모의 작은 동력선 엔진소리처럼 반가운 책이다. 해풍을 맞은 쑥이 약효가 좋듯이 이 책에 실린 그이 주변 인물들의 얘기 또한 이전에 알던 이들인가 싶게 뱃속에 회가 동한다. 그래서 몇 권 더 소설, 시집을 사러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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