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9
B. 파스칼 지음, 하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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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자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짓눌러버리는 데는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줄기 증기, 한 방울의 물도 그를 죽이는 데는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짓눌러버릴지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한층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들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팡세> 180쪽

갈대 같은 존재인 인간,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는 존엄을 갖출 수 있다. 생각에 온 힘을 다했을 때 위대한 갈대로 거듭난다. 파스칼의 갈대는 한낱 갈대이나 우주를 채우는 존재이고, 몸은 나약한 뿌리로 지탱하나 땅과 하나 되는 의지이며, 바람에 휘청거리나 세상 만물의 소리와 교합한다. 우주와 합일치 되는 순간, 갈대는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을 가득 채운다.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종교 사상가로 그 누구보다 생각하는 갈대이고 싶었던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의 <팡세>는 사람들을 신앙심으로 인도하기 위해 쓴 <기독교 변증론> 초고다. 그러나 그의 인도는 “무조건 믿으라, 그러면 천국 간다”는 식으로, 다른 갈대가 흔들린다고 덩달아 휩쓸리는 갈대이길 바라지 않았다.

11살에 이미 <소리의 전파에 관한 논고>를 썼고, 독학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생각해냈으며, 16살에 <원뿔곡선시론>을 발표한 천재 수학자는 확증이 불가능한 신앙 앞에 마주 서서 컴퓨터처럼 치밀하면서도 지독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파스칼은 계산기와 컴퓨터 원리를 발명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파스칼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에게 사고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은 돌이나 혹은 짐승일 것’이라고 말한다. 신앙으로의 귀의 이전에 신앙을 찾는 자기 자신, 그의 생각은 당연히 인간 존재 자체를 두고 깊은 물음으로 이어진다.

누가 나를 이 세상에 내놓았는가, 이 세상이 무엇인가,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나는 모른다. 모든 것에 관해서 나는 지족한 무지 속에 있다. (…) 내가 도처에서 보는 것은 무한뿐이며, 이 무한은 나를 일개의 미립자처럼, 또 한순간이 지나면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그림자처럼 둘러싸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바의 전부는 내가 마침내 죽으리라는 것뿐이지만, 내가 가장 모르는 것은 어떻게 해서도 피할 수 없는 바로 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107쪽

파스칼의 갈대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의 물아일체와 합치하는 듯, 엇갈리는 지점이다. 호접지몽이 일반적으로 덧없는 인생에 대한 비유로 쓰인다면, 파스칼의 갈대는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의 변증법을 통해 신을 향한 사랑으로 귀의한다.

병을 앓아 하반신 마비로 목발에 의지할 수는 아픈 몸으로도 파스칼은 포르루아얄 수도원 생활을 엄격하고 철저한 고행으로 일관했다. 지병으로 인해 39세에 갈대처럼 짧은 삶을 마감하였으나 병으로 완성하지 못한 채로 남긴 단편적인 초고는 이후 정리를 통해 <팡세>로 세상을 밝히는 사고(불어로 팡세)의 불이 되었다. 파스칼의 친구들이 초고를, 후세에 걸쳐 다시 정리한 900여 개 단편 모음집은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허나 가감이 없는 만큼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절절한 애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는 횃불을 들고 대지를 비췄다.’ 파스칼이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발췌한 문구이다. 이후 신에 대한 사상을 넘어서 수많은 실존주의자들의 선구자가 된 치열한 사고의 결정체 <팡세>는 돌 혹은 짐승이 들끓는 갈대밭에서 그래도 높고 환하게 타오르는 횃불이다.* 

밑줄긋기
인간이랑 모든 각도에서 보지 않았다는 데는 화를 내지 않지만 오류를 범했다는 말을 듣기는 싫어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인간이란 원래부터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과 감정의 지각은 항상 진실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보고 있는 방면에서는 본래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12쪽

감성은 이성을 허위의 외관으로써 기만하고, 또 감성이 이성에게 주는 이러한 속임수를 이번에는 감성이 이성에게 받곤 한다. 이성이 그것을 보복하는 것이다. 넋의 정념은 감성을 교란하고 그릇된 인상을 그에게 부여한다. 양자는 서로 다투어 속고 속인다. 55쪽

나는 때때로 운명에 대해 스스로 역행하려고 애쓴다. 운명을 극복하는 영광은 나로 하여금 즐겁게 운명을 극복하게 한다. 그 대신 나는 때때로 행운 속에서도 싫증을 일으킨다. 66쪽

현재는 결코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는 우리의 수단이요, 미래만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원하고 있다. 또 행복해지려고 언제나 준비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도 행복해질 수가 없다. 93쪽 

나는 손도 발도 머리도 없는 인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왜냐하면 머리가 발보다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경험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은 돌이나 혹은 짐승일 것이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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