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최용찬 옮김 / 난장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아이리스 장
 

홀로코스트란 단어는 유태인 대학살을 정의하기에는 정치적으로 옳지 못하다. 홀로코스트는 ‘제물’이라는 뜻으로 유대인을 신에 대한 제물인 양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쓰는 말이지만 당사자는, 혹은 당사자의 후손들에게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원제 : 엄마, 아우슈비츠가 뭐예요?)를 쓴 아네트 비비오르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그녀 남편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600만 명(400만 명에서 700만 명까지 추산)이라는 어마어마한 유태인 학살에서 자유로운 유태인 후손은 없다.

1948년생인 저자 역시 수만 명의 유태인 언니 오빠들처럼 몇 년 더 일찍 태어났던들 어떤 일을 겪었을지 모를 일이다. 저자에게 유태인 민족 대학살은 남이 아닌 자신의 문제이다. 이후 유태인 학살 관련 전문 역사가가 된 저자는 13살 난 딸아이를 위해 비극을 쉽게 풀어서 써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역사가인 나에게 아우슈비츠를 서술하고, 유대인 민족 학살이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를 묘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긴 해도,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설명이 안 되는 핵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나치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잡아 죽이는데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지 이 책은 아울러 저자 자신에게 그 이유를 되묻는 작업이다.

이 말은 독일인들이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나치와 전시 국제법에 따라 싸운 대부분의 독일군은 별개라는 주장과도 일치하는 의문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유대인을 잡아들이고, 죽이는 일이 과연 승리의 최우선 요건이었을까?

자살하기 전에 유태인들을 몰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남긴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의 광기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어쩌면 ‘되풀이되지 말아야할 과거’를 위해 학살의 역사와 더불어서 그 배경인 ‘반유대주의’에 대한 설명에 힘을 더한다. 왜냐하면 말살을 당할 만큼, 유대민족의 과오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보이는 역사적인 반유대주의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유대민족이 지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에 더해, 악마로 취급당했던 전력을 담담하게 말한다.  페스트 전염병 당시에도 유대인에게 죄를 덮어씌웠고, 부활절에는 기독교인 아이를 잡아다가 피를 먹었다는 소문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패배이후 독일은 경제적 파탄 책임을 1%도 안 되는 유대인에게 돌린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 독일인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고, 사회 각층에서 엘리트로 두각을 나타냈음에도 타락의 원흉으로 주목 받았다.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유대인은 몰살의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순혈주의를 내세운 선동 헤게모니로 당시 아우슈비츠에는 집시들이 유대인과 같은 취급을 받아서 죽었고, 독일인이라도 정신병자, 불구자, 장애인들은 불임 시술을 받거나 마찬가지로 희생이 되었다.

가슴 아픈 얘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을 때에는 역사가 반복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고, 익히 서구사회에서 냉철하게 역사청산과 교육을 통해서 교훈으로 남겼다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이 위의 ‘반유대주의’ 논리와 과연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종교적인 터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번져 국가 간 전쟁과 테러로 21세기가 얼룩지고 있고, 이스라엘은 당한 만큼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서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이 책은 또 다른 의미로, 역설적으로 유대인이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 그것이 바로 저항이다. 바로 이 저항 개념에서부터 우리는 유대인 저항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라고 옮긴이의 입을 통해 저자는 말하지만 이 논리는 유대인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팔레스타인 민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 얘기할 것 없이 우리에게도 1923년 9월, 관동대진재학살(關東大震災虐殺)의 뼈저린 경험이 있다. (이때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조선인과 같은 취급을 받아 사형을 당했다.) 또 80년 5월, 군부의 광주 대학살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 이주외국인,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들이 받는 멸시와 조롱과 차별을 떠올리면 할 말이 없다.

나치의 광기와 연합국의 무관심이 부른 엄청난 학살의 기록, 그리고 팔에 푸른색 잉크로 새긴 문신이 남은 채로 살아가는 생존자들이 산 역사로 증언하는 시대에 딸아이에게 어쩌면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이 또 다른 악몽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철저한 기억은 없고, 철저한 망각만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어 친일파가 쥔 기득권이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뼈아픈 과거가 그리 멀지도 않은 일이고, 이제야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되었다. 이를 사죄하는 친일파 후손도 있으나, 폄하를 하고 핏대를 세우는 것들이 국회의원이랍시고 TV에서 당당하게 떠들어댄다.

아무리 속내에 정파 관계가 얽혔다지만 개인 영달을 위해 할 소리, 안 할 소리를 가려야 하는데, 그걸 못 가린다. 13살짜리 얘를 위해 썼다는 이 책을 그들에게 먼저 읽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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