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폰, 잔폰, 짬뽕>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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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대학로에 나가면 짬뽕 전문점을 종종 들린다. 가격도 저렴하고, 또 바쁜 시간에는 바로바로 나오는 데다, 매콤한 맛이 요즘처럼 쌀쌀할 때는 딱 제격이다. 너무 자극적이어도 물리기 마련이라 뭘 먹을까 하다가, 하루는 근처 호텔주방장 출신 중국인이 주방장이라는 중식당에 들어갔다.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짬뽕과 자장명과 탕수육을 시켰다.
그곳에서 먹은 짬뽕 맛은 좀 더 부드럽긴 했지만, 솔직히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장면도 마찬가지였는데, 딱히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좀 아쉬웠다. “청요리를 시켜야 차이가 나지, 일반식이야 뭐”하고 말았는데, <차폰, 잔폰, 짬뽕>을 읽어보니 무심코 한 말이 딱 맞았다.
이른바, 식사 메뉴가 아닌 요리 메뉴라고 부르는 고급 음식도 한국식으로 바뀐 게 맞지만 짬뽕, 자장면은 말 그대로 한국에서 새롭게 정착을 한 요리이니 중국인이 요리하든 한국인이 요리하든 큰 차이가 없을 수밖에. 정확하게는 화교(華僑) 음식이라고 불러야 한다.
서민음식인 짬뽕은 중국 푸젠의 지역 음식인 ‘탕러우쓰멘’이 일본의 무역도시인 나가사키에 중국인 마을인 당인촌이 번성하면서 ‘시나우동’으로, 이후 ‘잔폰’으로 바뀐 음식이다. 각종 재료를 넣고 육수에 삶은 면을 넣은 ‘잔폰’은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한국식의 매운 ‘짬뽕’과는 맛이 다르게 담백하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먹는 ‘짬뽕’은 말 그대로 한국에서 새로운 음식으로 바뀐 셈이다. 그러니, 중국인 주방장이 만들었다고 한들 그 맛이 그다지 다를 리가 없다.
민속학을 공부한 주영하 교수가 쓴 이 책에서는 단순히 요리의 경로만 추적하지는 않았다. 짬뽕만 해도 16세기 일본 개방 정책이 세계 포르투갈, 네덜란드, 중국 등 열강과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17세기 이후 쇄국으로 유일한 무역도시인 나가사키에 중국인들만 당인촌(작가는 세계 최초의 공인 차이나타운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이 세워진 배경이 있다.
그리고 주로 일본과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중국 남방지역 중국인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이런 관계망에서 중국에서 일본을 돌아 한국으로 짬뽕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마구 뒤섞어 놓았다’는 의미로도 쓰는 짬뽕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침략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중국음식에 따라 나오는 단무지 역시, 중국음식이 한국에서 번성할 당시 화교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같은 경제권에 속해 있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군대 시절, 그렇게 먹고 싶었던 자장면의 추억이 알고 보면 일제 이후, 60~70년대 경제 부흥기에 따른 추억이지 아주 오랜 추억이 아니라는 지적이 그렇고, 제주도 음식에서 더 이상 향토 음식을 찾아볼 수 없고, 육지 음식이 점령한 ‘주변부 음식 문화의 운명’은 중국 천편일률적인 소수민족 통합 정책 이후 소수민족의 고유 음식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흔히 55개 소수민족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중국 정부 공인’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고 에둘러 꼬집는다.)
무엇보다 짬뽕이 일본어에서 유래를 했다고, 국어순화 차원에서 ‘초마면’으로 쓰자고 하지만 초마면은 다른 음식이라고 점, 전주비빔밥을 세계 음식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해서, 시장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던 음식이라는 현실을 뒤엎고 임금님 수랏상에 오른 음식으로 둔갑한 점 등 우리가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진실과 다르게 왜곡되는 부분이 꽤 많다는 지적을 한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음식 한가지에도 정치 경제적인 역사가 함께 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사회적, 생태적,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먹을거리 관계망에 더해 한편으로 내가 먹는 음식에 알게 모르게 치열한 정치적인 함의가 있다는 생각에 번뜩 정신이 든다. 그래서 저자의 바람이 단순히 농사꾼들이나 시민단체의 지적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지역의 농수산물로 만든 향토 음식을 외식 업체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밥상에서도 살려 낼 고민을 농정 당국에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 지역의 먹을거리 자주권은 이제 국가의 먹을거리 자주권이며, 21세기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제주 음식이 육지에 포섭되어 박물관의 쇼윈도로 들어간 지금, 자칫 한국 음식도 그런 사정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196쪽, <2부. 국민국가, 로컬푸드를 포섭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