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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탄생 - 기획이 곧 예술이다
소홍삼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공연을 보러 다닌 지 4년 차, 여전히 취미 수준이지만 뚫린 눈과 귀가 있으니 이런저런 얘기를 보고 듣고는 한다. 취미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공연 리뷰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 찾고 보다보면 나름 눈이 뜨이는 순간이 온다는 게다. 공연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물론 있다. 영화나 TV와 달리 많은 정보가 있지 않다보니 선입견이나 휘둘리는 일이 적은 데다, 무대와 객석의 가까운 거리를 두고 매번 다른 연기에 매번 다른 감흥을 주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내 개인 취향에 맞는 공연을 만끽하는 일은 오로지 ‘나’하고만 대화가 가능한 일이다.
역으로 타 매체에 비해 관심도가 낮고 정보가 많지 않아 무대 주변과 관련해 돌아가는 상황을 알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연극을 즐겨보는 입장에서 전문잡지가 한 종 있기는 하나, 주로 공연 관련해 전문 평 위주라-또 이런 이유로 읽기도 하지만-작품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과정을 좀처럼 알기가 쉽지 않다. 몇몇 뮤지컬을 제외하고는 작품 흥행을 담보하기 힘든 바,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배경에 걸맞은 지원체계나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고 난 뒤 호기심이 더했던 참이다. 제작 배경을 알면 작품 이해를 작가, 연출, 배우 외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다.
나름 관객치고는 돌아가는 사정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대의 탄생>은 내가 지레짐작으로 알고 있던 몇 가지에 대해 그 배경을 밝힌다.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 무대 뒷얘기인 셈이다. 공연 관련 기획 홍보를 담당했던 저자 소홍삼의 분석은 주먹구구로 알고 있거나 알려진 작품 제작 배경을 꼼꼼하게 분석해 요약하여 전달한다. 기획 마케팅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작품 혹은 장르별로 구분해 실은 10가지 공연기획 말미에는 경영자 시각에서 바라본 분석을 내놓는다. 그가 다룬 사례는 성공 못지않게 실패한 경우를 들어서 반면교사로 삼는다. ‘특별한 이슈 역시 부재했다. 언론에 소개된 자료는 하나같이 작품의 규모나 수준 등 공연전반에 대한 소개 글 정도(…) 많은 화젯거리가 있었음에도 이를 총집합한 작품 전체에 대한 묶음기사만이 제공돼 홍보의 상승효과나 지속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98p ‘운동장 오페라’)와 같은 지적은 공연 기획이 아니더라도 분야가 다른 경우에서도 새겨들을 만하다.
다만 무대예술을 자체가 예술성, 역사성 등 단순히 흥행만을 두고 성패를 진단하기 어렵다보니 분석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분석이 다소 일반론에 그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앞서 머리말에서 밝혔듯, 예술경영이나 공연기획에 관심이 있은 학생들을 위한 지침 역할에 충실한 셈이다. 이 책의 장점은 현장을 목소리를 일관된 기획 방향을 잡아서 채집하고 요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천사처럼 기록을 소홀히 하는 공연계의 경향에 따라 현장 관계자가 아니면 모를 이야기들을 담아서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논란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셈이다.
2010년 3월 20일, LG아트센터에서 우연치 않게 독일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추모작 <카페 뮐러 & 봄의 제전>을 보러간 적이 있다. 그녀는 LG아트센터와 맺은 인연으로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인 이번 작품에서 <카페 뮐러> 무대에 직접 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9년 그녀가 갑작스레 작고하면서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은 추모 공연을 본 셈이다.
이전까지 피나 바우쉬를 전혀 몰랐던 나는 현대무용극인 작품을 보고는 피나 바우쉬에 대해 책과 자료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발자취를 쫓았다. 그녀를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 무대에서 영원히 보지 못하는 현실은 영화 애호가와는 다른 갈증을 준다. 아무려나 내 관심을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무용, 클래식, 오페라, 국악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하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무대의 탄생>에서는 내가 또 알지 못했던 한국과, 정확하게는 LG아트센터와 그녀와의 소소한 인연을 풀어낸다. 이 대목만으로 이 책은 나에게는 제값을 한 셈이다.
참고로, 악극, 서커스 등 일반 관객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생생한 목소리와 더불어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장르를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