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제국 -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임근혜 지음 / 지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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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식인상어 전용 죠스바, 얼린 대가리.젊은 미술가이자 책 편집자이기도 한 그녀와 일로 그녀의 작업실 겸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서는 툭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물었을 때, 그녀가 너저분한 책상에서 잡지에서 뜯어낸 듯한 페이지에 본 <셀프> 첫 느낌이다.

“드라큘라 여름 간식을 딱”이라고 했다가 순간 순한 그녀가 쏘아보는 눈빛을 잠시 받았었다. 스스로 꽤 그럴듯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반응에 설명을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맞는 말”이라고 하고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그녀와 인연이 될 가능성이 아주 없었는지 모르겠다.

<셀프>. 마크 퀸이 5년에 걸쳐 자신의 피 4ℓ(성인 한 사람분의 피)를 뽑아 제작한 자신의 두상조각. 전 세계에 딱 4점. 그 중 1점은 영하 10도로 냉동보관을 해야 하는 작품의 스위치를 청소부가 뽑아버리는 바람에 작품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나마 들어서 알지만 좀 늦었다.

한 달에 하루 이틀, 그녀의 작업실에서 원고 퇴고와 수정을 했다. 시간을 아끼자는 명목이지만 그녀와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주로 아크릴판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을 했다. 한국화 전공인 그녀와 다른 듯 혹은 담은 선이나 정서는 비슷한 듯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고는 했다. 영국 현대 미술 계보와 작가들과 작품들과 활약상을 다룬 <창조의 제국>을 읽고서 그녀의 작품에 줄리언 오피의 영향이 얼마간이라도 스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인 미술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어쩔 수없이 해야 하는 일인 편집만 두고 집중을 해서 얘기를 나눴으니 어차피 그녀에게 난 ‘어쩔 수없이 만나야 하는 부류’에서 더도 덜도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나 그녀가 나를 만났을 때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호감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속마음이 제이크 & 채프먼의 <지옥>같지만 않았길 바랄 뿐이다.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큐레이터십 석사 출신 임근혜가 <창조의 제국>에서 yBa(Young British Artist)에 대해 충실하게 소개할수록, 그녀와 내가 왜 인연이 될 수 없었는지 맞추지 못하고 덮어두었던 퍼즐의 몇 가지 힌트가 제공되었다. 영국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만큼 솔직히 현대 미술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는 나와의 의외로 많은 접점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단순히 한때 내가 좋아했던 그녀가 미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공유할 수 있는 건 현대인의 정서(주로 피폐한)가 작품에 잘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6장(팝, 아트 그리고, 팝아트)에서 소개하듯 비틀즈, 블러 등 유명 뮤지션 앨범 커버, 맥주병 라벨, 그리고 그 영향을 손에 꼽기도 힘든 광고들에서 역으로 흘러든 정서를 내 것인 양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 미술잡지 아트 리뷰 11월호 기사에서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작년 1위에서 올해 48위로 추락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 일간지에도 소개되는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이 책 표지다. 실제 해골에 제작비 200억을 들여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940억에 팔린 작품답게, 집 밖에서 책을 펴들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이 보는 건 해골인가, 다이아몬드인가. 책을 읽을 때마다 보다 보니 꽤 친숙하다. 처음에도 혐오스럽거나 부럽지는 않았다. 욕망의 무한 질주 퍼레이드에 사는 대한민국 서울시민으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살갗 뒤 친숙한 내면이지 않을까, 뒤표지는 크리스 오필리의 <아프로디지아>다. 포르노 이미지를 차용하고 코끼리 똥을 둥글게 뭉쳐 붙인 작품이다.

앞과 뒤, 입과 항문, 욕망과 배설, 다이아몬드와 똥. 앞 뒤 표지 컷 절묘한 구성에서 <창조의 제국>의 전체적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이로 15장에 걸쳐 영국 현대미술 계보의 내장을 통과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370컷의 사진만 놓고도 꽤나 만족스럽다.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운 눈을 띄워주었다. 편집자 노트에서 밝히듯, 사진의 80% 정도를 작가들이 무료 게재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작품 중 일부는 책에 실리지 못했거나 책값이 꽤나 올랐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내가 보지 못할 뻔한 작품들이다.

출판사의 3년에 걸친 노력이 첫 번째 원동력이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비즈니스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줄리안 오피의 홈페이지에서 보듯, 작품을 곧 바로 티셔츠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그들에게 <창조의 제국> 출간은 광고의 일환, 시장의 확보의 의중이 있기도 할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 게재를 허락하기 전에 책 내용을 확인했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내년 1월 10일에 서울에서 아라리오 갤러리 2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유독 관심을 끄는 작품은 마크 퀸의 <셀프>, 그곳에 가면, 작년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그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일 부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조의 제국>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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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이재웅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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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눈이 시리다. 소설은 빠르게 훑고 지나가면서 읽지 않으면 문장 문장마다 아프게 속살을 헤집고 들어온다. 이재웅의 장편소설『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에서는 희망 따위, 소년이 흘리는 눈물만큼이나 드물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잘 울’지만 눈물을 흘려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걸 안 이상 ‘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만큼 12살 소년은 늙어버렸다. ‘늙은’ 소년은 오로지 누나를 위해서만 운다. 영양실조로 손바닥 껍질이 하얗게 벗겨질 때마다 자라기 위해 허물을 벗는 것이라 했던 할머니가 죽고, 이북 누나와 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누나가 사는 방 네 개짜리 아파트는 좋은 옷과 음식과 고급 자전거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경비실 직원도 누나의 고객인 ‘여자 사업장’이자 그 '여자'인 누나를 곽호 아저씨가 감시하는 감옥이다. 사창가에서 나오기 위해 곽호 아저씨에게 1억을 빚진 누나는 물건 값을 턱없이 싸게 깎으려고 주인과 매번 싸우는 “할머니보다 몇 백 배는 가난한 여자”였다. 지독한 가난 뒤에 화려하게 포장한 더 지독한 가난이 지옥처럼 소년을 맞이하였다.

“인생에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철없는 누나와 싸우고 난 뒤, 가출한 소년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무작정 고른 해남행 버스에 오르는 대신 대합실에서 눈물을 흘렸다. 지금 떠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안 소년은, 앞으로 누나에게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때 흘리는 눈물도 늙은이의 것이지 아이의 것이 아니다.

채팅방에서 소년을 사기 위해 경차를 몰고 나타난 -아마도 가난한- 서른아홉 이혼녀, 단속을 봐주는 대신 공짜로 자라는 제의에 “제 값 주고” 하는 걸 자존심이라 내세우는 경찰, ‘영계’를 내세워 창녀가 되고 싶으나 외모 때문에 그 마저도 포기하는, 소년만큼이나 늙고 가난한 소녀, 완주를 비롯해 세상은 충분히 저주스럽다.

그러나 “난 충분히 괴물이에요. 잔인한 괴물이에요”라고 외치는 소년을 더욱 몰아붙이는 건 “너는 좀 더 잔인한 것들을 경험해야 해. 고통스러운 것도. 넌 아직 어린애에 불과해”라는 곽호 아저씨의 말이 엄포로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늙은 소년은 그 모든 것을 알고, 그 운명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모든 것을 저주하며 자전거 타기에 열중하는 것뿐이다.’ 자전거 앞에 늘 나타나는 경사진 골목처럼, 좌절을 안기는 세상을 향한 소년의 힘겨운 페달질은 ‘거센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면 살아 있다는 느낌’인 동시에 속울음, 눈물이 섞인 짜디 짠 바람이다. ‘나무들 가지에서는 파도 소리’다.

소년은 눈물을 그쳤는가, 소년의 울음은 “이 불안전한 고독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라던 작가 이재웅이 소설을 쓰는 내내, 귀에서 맴돌았을 것이다. 냉정하고 우울한 소설인 동시에, 우직하고 가장 놀라운 데뷔작이다.*
  

“울어도 상관없어. 가서 누나한테 이대로 일러바쳐도 좋아. 징징 울면서 일러바쳐. 너는 갈보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사는 자식이야. 너 같은 자식에게 희망은 없어. 네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되면 살맛이 다 달아날 거다. 일찍 죽어버리는 게 좋아. 미래는 더 형편없을 테니까.”
그는 그런 말들이 열두 살짜리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열두 살이 아니었다. (…) “나는 희망을 기대하지도 않아.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지만 죽기 전에 분명히 말해둘게. 너한테도 희망은 없어. 너는 콜택시를 몰다가 차 사고로 죽어버릴 거야. 우리 누나 같은 갈보하고 함께.” - 108P

“난 벌써 먹었어.” 나는 말했다. 누나가 그것을 먹었다. 나는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대합실 한 쪽을 이유도 없이 노려보았다. 늙은 소년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228P

“우리가 회사와 싸우기 이전에 노조와 싸워야 한다는 건 비극이야. 그는 말했다. ”세상과 싸우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문제와 싸우는 게 비극이듯이 말이야.“ -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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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만들기 - 평생살찌지 않는 몸으로 건강하게 사는
이시이 나오카타 지음, 윤혜림 옮김 / 전나무숲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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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사는데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옷을 입는다는 점이다. 잠을 자거나 먹지 않고 살 수 없어도 옷을 안 입고는 살 수 있는 게 동물이라면, 의복은 몸을 보호하는 1차 기능을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차적인 기능을 넘어서 옷은 이제 지위, 계급, 성별, 나이, 상황을 구분 짓는 사회적 잣대지만, 결국 몸을 감싸는 역할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옷이 몸이 될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유니폼이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옷은 자칫 몸에 대한 본래적 이해를 가로막기도 한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만약 인간이 옷이 입지 않았더라면 비만이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을까. 앙상하게 드러난 아프리카 아이들의 갈비뼈가 기아 문제를 환기시키는 이미지로 쓰인다고 볼 때, 역으로 뉴욕 시민들의 축 늘어진 뱃살을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 비만 문제가 지금보다는 덜 심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 당신이 지금 막 외출을 하는데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팬티 한 장 걸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온다면 눈앞에 놓인 조막만한 500Kcal 치즈케이크를 맘 놓고 먹을 수 있겠나?   

옷 뒤에 숨은 뱃살은 보지 못하는 대신 광고에서 보는 복근으로 대리만족을 하고, 모델이 선전하는 브랜드 옷을 입고 착각에 빠져 사는 건 아닌가. 뭐, 남 얘기가 아니다. 쌀쌀한 겨울이 오고 두꺼운 겉옷을 챙겨 입으면서, 바지허리가 조이는 걸 문득 알아채고 말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활동량이 줄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겉옷이 내 뱃살을 가려줄 거라는 무의식이 부른 방심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문, 인터넷, 라디오, TV 어디를 보나 널린 게 다이어트 관련 광고니 걱정 없다. 그리고 광고들은 슬슬 말하기 시작한다. “겨울부터 살을 빼야 여름에 자신 있게 비키니를 입을 수 있습니다!” 철마다 늘 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 귀가 솔깃해지고 만다. 젠장, 당체 살은 찌긴 쉬운데, 왜 빼긴 어려운 거야? 것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 그러니. 이게 바로 나잇살이라는 건가?

인체 시스템은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하는 위기와 장래에 대비하여 남은 에너지를 몸 안에 ‘지방’으로 쌓아 둔다. 굳이 지방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방은 다른 영양소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체내에 쌓아 두려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지방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20P

<평생 살찌지 않는 몸으로 건강하게 사는 근육 만들기 (이하 근육 만들기)>의 설명은 살 때문에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제 상식으로 아는 얘기지만, 인간의 몸이란 의지나 이성과 다르게,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기초대사량이 줄고 지방 축적이 점점 높아지는 것 역시 활동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대비하기 위한 전략이다.

앞서 의식주에서 옷이 인간이 인간인 이유라는 말은, 동시에 인간이 생물종으로 인간이라는 조건에 반하는 조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옷을 입지 말라거나 투명한 옷을 입으라고 법을 제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당장 나부터가 길길이 반대를 할 것이다), 해결책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살을 빼! 

<근육 만들기>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에 한 마디 더하는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이어트 열풍 뒤에 숨은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고, 살을 빼기 위해서는 식사 조절, 유산소 운동에 앞서 근육을 먼저 키워서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몸으로 만드는 게 지방 소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인체 원리를 소개하는 책이다.

다이어트에 앞서 ‘건강’이라는 목표가 확고하다면 먼저 근육 트레이닝을 통한 무산소운동으로 기초대사율이 높은 몸을 만든 후에 유산소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현재 운동생리학 관점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다. 53P

한데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근육생리학자인 이시이 나오카타 교수의 주장이 단순히 건강지침서에 그치지 않고, 운동생리학적 관점을 통해 사회문화적인 현상을 같이 짚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식사 제한에만 의존하는 다이어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원하든 대로 지방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근육도 줄어든다. (…) 근육이 줄어드는 다이어트는 대사 기능을 떨어뜨려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몸’을 애써 만드는 꼴이 된다. 40P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몸이란 다시 말해 다이어트 최대의 적, 요요현상을 말한다. 요요현상이 비단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체 시스템이 그런 것인데, 괜히 의지만 탓하지는 않았나? 이시이 교수가 이 책을 쓴 이유 중에는 수많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심지어는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어 몸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있다. 당연히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돈을 벌려면 단기간 내에 빠른 효과를 봐야하고, 그러니 자꾸만 단식을 권하게 한다. 유산소 운동이 살 빼는 데 좋다는 건 다 알지만, 이시이 교수는 ‘효율’로 따지자면 먼저 근육량을 늘리는 무산소 운동을 어느 정도 한 뒤에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유산소 운동만 하거나, 순서를 뒤바꿀 때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3개월 동안은 꾸준한 무산소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야 하고, 무산소 운동은 지방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고객’이라도 좋아할 리가 없다. 더욱이 몸매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근육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기겁을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생리학적으로 살을 빼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에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도, 여전히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 대부분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 주에 2번, 하루 15~30 가량의 슬로우 트레이닝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편으로 너무 쉬운 게 아닌가 싶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원칙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 비로소 현혹되지 않는 건강한 몸 가꾸기 프로그램을 찾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이즈가 점점 늘어나는 내 몸으로 보건대, 누구보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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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 사랑했으므로, 사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권문수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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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 내가 걸린 병인 걸까. 좀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버겁기만 하다. 사랑에서 ‘쿨’하다를 말만큼 치사하고 더러운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름날 씹다 뱉어서는 아스팔트 위에 눌어붙은 캐러멜마냥 아픈 사랑이란 게 그 뒷마무리가 서로 눈살이 찌푸려질 일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나, 정작 나는 이별 다음을 깔끔하게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마주 칠 일이 있을까봐 같이 다니던 교회를 나가지 않고, 항상 퇴근길에 들르던 그녀의 집 근처 버스 정류장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만 할 때면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딱 한 번 새벽에 술에 취해서는 교회 지하에 숨어들어 새벽 기도 나온 할머니들이 드문드문 앉은 넓은 예배당 한쪽 귀퉁이에서 소리를 죽이면서 운 적이 있지만, 난 냉정하게 마무리한 편이다.

몇 년 후, 우연히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우리 사이를 알던 후배 입을 통해서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그때 일을 두고 잘했다고,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깔끔하게 비켜준 만큼 지금 남편인 사람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는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그 후, 난 이렇다 할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설레지 않은 적이 없던 게 아니지만 누구를 만나도 마음이 그때만큼 일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평소 모습과도 또 다르게 묵묵한 태도에 상대는 실망을 했다. 그들이 떠나갈 때 나에 대한 핑계를 직접적으로 대더라도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일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휘저을 수는 없다.

테라피스트들은 한 사람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놓고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의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상처가 비슷해도 그 사람의 상처는 절대 다른 누군가의 상처와 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45P

미국에서 전문 심리 상담 테라피스트로 근무하는 권문수는 자신이 상담한 이들의 사례를 기반으로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사랑을 두려워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냈다. 책에 실린 사례는 보통 중증 사례라 부를 만 하지만 알고 보면 나처럼 지루한 경증을 앓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누군가 그 상처를 건드리면 화를 내거나 그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반항은, 그 상처가 클수록 더 격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170P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라면 그들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방치’. 이 구절에서 나는 스스로 자유롭지 못했다. 난 그러고 보면 그녀를 위해 깔끔하게 정리를 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남들이 보는 시선이 두려워서 알지 못하도록 덮어두었을 뿐이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얼마나 논리적으로 행동하고 논리적으로 말할까. (…) 사실 성욕이나 식욕 등 인간의 본능과 연관된 심리를 보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회규범이나 도덕, 혹은 종교 교리에 들어맞는 ‘논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 비논리적인 게 본성일지도 모른다. 60~61P 

에곤 실레의 그림에 눈이 가기도 한, 가벼이 읽은 책 한 권으로 그때의 일을 다시 헤집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내가 무뎌진 건 단순히 그때의 헤어짐 때문만은 아니고, 그 사이 전혀 새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나를 바꾸어버린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논리로 해결할 게 아닌데, 박음질해놓고는 두었던 그때의 묵은 주머니를 뜯어내는 게 하나의 과정이 되리라는 단서를 얻었다.

사실 사랑의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 같다. 그것은 치료되는 게 아니라 잊어버리거나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치료’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46P 

무감각해질 것, 어쩌면 나한테 필요한 것은 덮었던 걸 파내고 평평하게 다지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섹스나 결혼과 동떨어지지는 않았으나, 그런 식으로 귀결된 사안은 아닌 듯하다. 사랑은 복잡하고도 그 고민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책을 읽고 나서도 사랑의 상처로 전문 테라피스트를 찾는 미국의 환경이 부럽기 보다는 프로작 처방이 빈발하는 나라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허나 책을 통해서 조언을 얻는 일은 도움이 되겠다 싶다. 사랑은 내가 먹고 싸고 자는 일을 그만두는 순간, 그러니까 죽지 않는 한 같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랑병을 정신병이라 얘기하고 유사한 점들을 이야기했지만, 사랑병은 다른 정신병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예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예방을 해서도 안 된다. ‘우울증의 예방’은 말이 성립되지만, ‘사랑병의 예방’은 있을 수가 없는 말이다. 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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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수수께끼와 역설의 유쾌한 철학퍼즐 사계절 1318 교양문고 14
피터 케이브 지음, 남경태 옮김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죽음을 멈추게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알았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영원한 삶을 누렸던 로봇은 죽음을 손에 넣으면서 인간과 동등해졌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수수께끼와 역설의 유쾌한 철학 퍼즐>의 제목이자 질문에 나름 떠오른 대답이다. 이 거창한 대답은 철학책이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 ‘돌아온 캐산(CASSHERN Sins)’의 대사다.  

유쾌한 퍼즐에 만화 대사, 딱 맞지 않는가? 역으로 말하면 만화도 머리 싸매고 봐야 하냐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자못 제목은 진지하지만 책은 스스로 정의하길, 유쾌하게 즐겨라! 라고 주문을 한다.   

만약, 이 책이 도서관 분류번호 100대의 항상 새것인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철학책들 마냥 칙칙한 외모와 두꺼운 몸피를 자랑했다면, 덩달아 그 무게에 질려 저런 명쾌한(?) 답을 만화에서 찾아낼 생각을 했을까 싶다. (29. “나는 로봇이다”에서는 철학적으로 인간만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전개를 진행한다. 다시 말해 로봇이 영원히 산다는 전제는, 책과 하등 상관이 없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꼽으라면 역시 ‘뜬 그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고 발가락이 비비 꼬이는 알쏭달쏭한 방식으로 푸는 대신, 철학 논제가 일상에서 비롯되었고, 또 일상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또 그 시도가 꽤 괜찮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효과는 같은 당의정인 셈이다. 이는 역시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의 저자로도 알려진 피터 케이브가 철학자인 동시에 작가이자 방송인인 데에서 기인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만만한가 하면, 독자마다 명백히 다르겠지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오가는 틈틈이 책을 읽는 평소 내 버릇을 두고 얘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 책 서른세 가지 퍼즐은 알기 쉬운 사례와 코믹한 일러스트에 더해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서 후딱 읽고 치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역시나 해답을 강요하거나 던져주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라는 식으로 입을 싹 닦는 바람에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꽤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비치는 태양빛을 보고 발을 내딛었다가 길이 없는 너른 벌판을 앞에 둔 상황이랄까.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현재 내가 당장 고민 중인 문제들, 예컨대 직장, 연애, 우정 등과 관련된 퍼즐을 찾을 수도 있어 새로운 처방이 되기도 한다. 짧은 단락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여지를 두는 바람에 우선 초벌로 읽고, 침대 맡에 두고는 재벌로 읽는 중이다.  

미학, 형이상학, 법학, 정치학, 윤리학 등이 골고루 있어서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 한 달치, 일주일에 하나씩 읽으면 반 년치’라는 복용 원칙을 잘 지킨다면 정신에 이로운 종합비타민으로 꽤 효과를 보지 않을까 싶다. 세파를 따라 흐르지 말고, 역설의 삶을 살기 위한 퍼즐들은 내 스스로가 비로소 인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로봇 혹은 부품이 아닐 수 있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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