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제국 -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임근혜 지음 / 지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식인상어 전용 죠스바, 얼린 대가리.젊은 미술가이자 책 편집자이기도 한 그녀와 일로 그녀의 작업실 겸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서는 툭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물었을 때, 그녀가 너저분한 책상에서 잡지에서 뜯어낸 듯한 페이지에 본 <셀프> 첫 느낌이다.

“드라큘라 여름 간식을 딱”이라고 했다가 순간 순한 그녀가 쏘아보는 눈빛을 잠시 받았었다. 스스로 꽤 그럴듯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반응에 설명을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맞는 말”이라고 하고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그녀와 인연이 될 가능성이 아주 없었는지 모르겠다.

<셀프>. 마크 퀸이 5년에 걸쳐 자신의 피 4ℓ(성인 한 사람분의 피)를 뽑아 제작한 자신의 두상조각. 전 세계에 딱 4점. 그 중 1점은 영하 10도로 냉동보관을 해야 하는 작품의 스위치를 청소부가 뽑아버리는 바람에 작품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나마 들어서 알지만 좀 늦었다.

한 달에 하루 이틀, 그녀의 작업실에서 원고 퇴고와 수정을 했다. 시간을 아끼자는 명목이지만 그녀와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주로 아크릴판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을 했다. 한국화 전공인 그녀와 다른 듯 혹은 담은 선이나 정서는 비슷한 듯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고는 했다. 영국 현대 미술 계보와 작가들과 작품들과 활약상을 다룬 <창조의 제국>을 읽고서 그녀의 작품에 줄리언 오피의 영향이 얼마간이라도 스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인 미술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어쩔 수없이 해야 하는 일인 편집만 두고 집중을 해서 얘기를 나눴으니 어차피 그녀에게 난 ‘어쩔 수없이 만나야 하는 부류’에서 더도 덜도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나 그녀가 나를 만났을 때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호감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속마음이 제이크 & 채프먼의 <지옥>같지만 않았길 바랄 뿐이다.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큐레이터십 석사 출신 임근혜가 <창조의 제국>에서 yBa(Young British Artist)에 대해 충실하게 소개할수록, 그녀와 내가 왜 인연이 될 수 없었는지 맞추지 못하고 덮어두었던 퍼즐의 몇 가지 힌트가 제공되었다. 영국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만큼 솔직히 현대 미술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는 나와의 의외로 많은 접점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단순히 한때 내가 좋아했던 그녀가 미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공유할 수 있는 건 현대인의 정서(주로 피폐한)가 작품에 잘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 6장(팝, 아트 그리고, 팝아트)에서 소개하듯 비틀즈, 블러 등 유명 뮤지션 앨범 커버, 맥주병 라벨, 그리고 그 영향을 손에 꼽기도 힘든 광고들에서 역으로 흘러든 정서를 내 것인 양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 미술잡지 아트 리뷰 11월호 기사에서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작년 1위에서 올해 48위로 추락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 일간지에도 소개되는 영국 현대미술의 대표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이 책 표지다. 실제 해골에 제작비 200억을 들여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940억에 팔린 작품답게, 집 밖에서 책을 펴들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이 보는 건 해골인가, 다이아몬드인가. 책을 읽을 때마다 보다 보니 꽤 친숙하다. 처음에도 혐오스럽거나 부럽지는 않았다. 욕망의 무한 질주 퍼레이드에 사는 대한민국 서울시민으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살갗 뒤 친숙한 내면이지 않을까, 뒤표지는 크리스 오필리의 <아프로디지아>다. 포르노 이미지를 차용하고 코끼리 똥을 둥글게 뭉쳐 붙인 작품이다.

앞과 뒤, 입과 항문, 욕망과 배설, 다이아몬드와 똥. 앞 뒤 표지 컷 절묘한 구성에서 <창조의 제국>의 전체적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이로 15장에 걸쳐 영국 현대미술 계보의 내장을 통과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370컷의 사진만 놓고도 꽤나 만족스럽다.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운 눈을 띄워주었다. 편집자 노트에서 밝히듯, 사진의 80% 정도를 작가들이 무료 게재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작품 중 일부는 책에 실리지 못했거나 책값이 꽤나 올랐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내가 보지 못할 뻔한 작품들이다.

출판사의 3년에 걸친 노력이 첫 번째 원동력이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비즈니스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줄리안 오피의 홈페이지에서 보듯, 작품을 곧 바로 티셔츠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그들에게 <창조의 제국> 출간은 광고의 일환, 시장의 확보의 의중이 있기도 할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 게재를 허락하기 전에 책 내용을 확인했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내년 1월 10일에 서울에서 아라리오 갤러리 2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유독 관심을 끄는 작품은 마크 퀸의 <셀프>, 그곳에 가면, 작년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그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일 부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조의 제국>을 꼼꼼하게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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