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 사랑했으므로, 사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권문수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병, 내가 걸린 병인 걸까. 좀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버겁기만 하다. 사랑에서 ‘쿨’하다를 말만큼 치사하고 더러운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름날 씹다 뱉어서는 아스팔트 위에 눌어붙은 캐러멜마냥 아픈 사랑이란 게 그 뒷마무리가 서로 눈살이 찌푸려질 일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나, 정작 나는 이별 다음을 깔끔하게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마주 칠 일이 있을까봐 같이 다니던 교회를 나가지 않고, 항상 퇴근길에 들르던 그녀의 집 근처 버스 정류장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만 할 때면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딱 한 번 새벽에 술에 취해서는 교회 지하에 숨어들어 새벽 기도 나온 할머니들이 드문드문 앉은 넓은 예배당 한쪽 귀퉁이에서 소리를 죽이면서 운 적이 있지만, 난 냉정하게 마무리한 편이다.

몇 년 후, 우연히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우리 사이를 알던 후배 입을 통해서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그때 일을 두고 잘했다고,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깔끔하게 비켜준 만큼 지금 남편인 사람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는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그 후, 난 이렇다 할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설레지 않은 적이 없던 게 아니지만 누구를 만나도 마음이 그때만큼 일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평소 모습과도 또 다르게 묵묵한 태도에 상대는 실망을 했다. 그들이 떠나갈 때 나에 대한 핑계를 직접적으로 대더라도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일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휘저을 수는 없다.

테라피스트들은 한 사람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놓고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의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상처가 비슷해도 그 사람의 상처는 절대 다른 누군가의 상처와 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45P

미국에서 전문 심리 상담 테라피스트로 근무하는 권문수는 자신이 상담한 이들의 사례를 기반으로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사랑을 두려워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냈다. 책에 실린 사례는 보통 중증 사례라 부를 만 하지만 알고 보면 나처럼 지루한 경증을 앓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누군가 그 상처를 건드리면 화를 내거나 그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반항은, 그 상처가 클수록 더 격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170P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라면 그들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방치’. 이 구절에서 나는 스스로 자유롭지 못했다. 난 그러고 보면 그녀를 위해 깔끔하게 정리를 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남들이 보는 시선이 두려워서 알지 못하도록 덮어두었을 뿐이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얼마나 논리적으로 행동하고 논리적으로 말할까. (…) 사실 성욕이나 식욕 등 인간의 본능과 연관된 심리를 보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회규범이나 도덕, 혹은 종교 교리에 들어맞는 ‘논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 비논리적인 게 본성일지도 모른다. 60~61P 

에곤 실레의 그림에 눈이 가기도 한, 가벼이 읽은 책 한 권으로 그때의 일을 다시 헤집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내가 무뎌진 건 단순히 그때의 헤어짐 때문만은 아니고, 그 사이 전혀 새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나를 바꾸어버린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논리로 해결할 게 아닌데, 박음질해놓고는 두었던 그때의 묵은 주머니를 뜯어내는 게 하나의 과정이 되리라는 단서를 얻었다.

사실 사랑의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 같다. 그것은 치료되는 게 아니라 잊어버리거나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치료’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46P 

무감각해질 것, 어쩌면 나한테 필요한 것은 덮었던 걸 파내고 평평하게 다지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섹스나 결혼과 동떨어지지는 않았으나, 그런 식으로 귀결된 사안은 아닌 듯하다. 사랑은 복잡하고도 그 고민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책을 읽고 나서도 사랑의 상처로 전문 테라피스트를 찾는 미국의 환경이 부럽기 보다는 프로작 처방이 빈발하는 나라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허나 책을 통해서 조언을 얻는 일은 도움이 되겠다 싶다. 사랑은 내가 먹고 싸고 자는 일을 그만두는 순간, 그러니까 죽지 않는 한 같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랑병을 정신병이라 얘기하고 유사한 점들을 이야기했지만, 사랑병은 다른 정신병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예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예방을 해서도 안 된다. ‘우울증의 예방’은 말이 성립되지만, ‘사랑병의 예방’은 있을 수가 없는 말이다. 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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