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수수께끼와 역설의 유쾌한 철학퍼즐 사계절 1318 교양문고 14
피터 케이브 지음, 남경태 옮김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죽음을 멈추게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알았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영원한 삶을 누렸던 로봇은 죽음을 손에 넣으면서 인간과 동등해졌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수수께끼와 역설의 유쾌한 철학 퍼즐>의 제목이자 질문에 나름 떠오른 대답이다. 이 거창한 대답은 철학책이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 ‘돌아온 캐산(CASSHERN Sins)’의 대사다.  

유쾌한 퍼즐에 만화 대사, 딱 맞지 않는가? 역으로 말하면 만화도 머리 싸매고 봐야 하냐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자못 제목은 진지하지만 책은 스스로 정의하길, 유쾌하게 즐겨라! 라고 주문을 한다.   

만약, 이 책이 도서관 분류번호 100대의 항상 새것인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철학책들 마냥 칙칙한 외모와 두꺼운 몸피를 자랑했다면, 덩달아 그 무게에 질려 저런 명쾌한(?) 답을 만화에서 찾아낼 생각을 했을까 싶다. (29. “나는 로봇이다”에서는 철학적으로 인간만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전개를 진행한다. 다시 말해 로봇이 영원히 산다는 전제는, 책과 하등 상관이 없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꼽으라면 역시 ‘뜬 그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고 발가락이 비비 꼬이는 알쏭달쏭한 방식으로 푸는 대신, 철학 논제가 일상에서 비롯되었고, 또 일상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또 그 시도가 꽤 괜찮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효과는 같은 당의정인 셈이다. 이는 역시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의 저자로도 알려진 피터 케이브가 철학자인 동시에 작가이자 방송인인 데에서 기인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만만한가 하면, 독자마다 명백히 다르겠지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오가는 틈틈이 책을 읽는 평소 내 버릇을 두고 얘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 책 서른세 가지 퍼즐은 알기 쉬운 사례와 코믹한 일러스트에 더해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서 후딱 읽고 치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역시나 해답을 강요하거나 던져주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라는 식으로 입을 싹 닦는 바람에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꽤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비치는 태양빛을 보고 발을 내딛었다가 길이 없는 너른 벌판을 앞에 둔 상황이랄까.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현재 내가 당장 고민 중인 문제들, 예컨대 직장, 연애, 우정 등과 관련된 퍼즐을 찾을 수도 있어 새로운 처방이 되기도 한다. 짧은 단락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여지를 두는 바람에 우선 초벌로 읽고, 침대 맡에 두고는 재벌로 읽는 중이다.  

미학, 형이상학, 법학, 정치학, 윤리학 등이 골고루 있어서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 한 달치, 일주일에 하나씩 읽으면 반 년치’라는 복용 원칙을 잘 지킨다면 정신에 이로운 종합비타민으로 꽤 효과를 보지 않을까 싶다. 세파를 따라 흐르지 말고, 역설의 삶을 살기 위한 퍼즐들은 내 스스로가 비로소 인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로봇 혹은 부품이 아닐 수 있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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