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콤플렉스의 탄생, 어머니 콤플렉스 아버지 콤플렉스
베레나 카스트 지음, 이수영 옮김, 김영옥 감수 / 푸르메 / 2010년 8월
평점 :
오스트리아의 여성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작품《피아노 치는 여자》는 놀랍다. 피학 성애(Masochism) 성향을 보이는 여자(에리카)를 노골적으로 묘사해서가 아니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여타 외설물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작가의 거침없고 날카로운 문장은 단순히 '에리카'의 성적 피학증(sexual masochism)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막이 내린 무대 뒤를 훔쳐보는 듯한 집요한 시선으로 '에리카'의 성적 피학증의 근원을 파헤치고 있다. 피아노 선생 '에리카'는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어머니의 딸이기도 하다. 사회 일원으로서의 여성 '에리카'의 배후에는 늘 어머니가 있다. '에리카'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서 있지만 그녀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무대 뒤의 어머니이다. 작가의 통찰력 있는 묘사를 통해 독자는 '에리카'의 불안정한 감정과 자학적 성향, 모순되는 욕망의 근원이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스위스의 심리 분석가 '베레나 카스트'는 본 저서《콤플렉스의 탄생, 어머니 콤플렉스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부모를 통해 형성되는 콤플렉스를 유형별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오래 전 읽었던 옐리네크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변태적 성애에 대한 특별한 혐오감이나 편견 같은 건 없지만 그런 것을 표현해 낸 예술작품을 굳이 찾아 보지는 않는 편이다. 대개의 작품에 묘사된 변태적 성애는 다만 그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옐리네크는 딸의 위에 군림하는 독재적인 어머니를 내세워 '부정적 어머니 콤플렉스'의 다양한 성향을 묘사해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어머니는 딸(에리카)의 '그림자 원형'으로서 작용한다. 물론 당시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그림자 원형'이니 '부정적 어머니 콤플렉스'니 하는 심층적인 심리적 용어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베레나 카스트'의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설명을 통해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무의식 이론과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해 조금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베레나 카스트'는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콤플렉스 유형을 크게 네 개로 나누고 있다. '본래 긍정적인 어머니 콤플렉스', '본래 부정적인 어머니 콤플렉스', '본래 긍정적인 아버지 콤플렉스', '본래 부정적인 아버지 콤플렉스'. 저자는 다년 간 연구한 실제 사례자들과 신화나 동화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 네 개의 유형별 콤플렉스를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신화나 동화를 통한 풀이는 복잡하고 다양한 콤플렉스 유형에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나치게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마마보이나 파파걸은 특별하거나 병적인 사람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부모의 손에 길러지고 성장하는 사람 누구나 어머니나 아버지의 영향을 받는데, 그것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수 있고, 두 개의 양상이 복잡하게 얽힌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콤플렉스는 나이에 따른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경우에 생긴다고 한다. '베레나 카스트'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시기가 되면 부모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독립을 통해 자아 형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가도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이 어려워진다. 비교적 정상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도 어떤 난관에 봉착하면 성장하면서 형성된 무의식이 작용해서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심리적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여 절망할 것은 없다. 부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알고 그 근원을 파악하여 주체적인 자아형성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본래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과 생각, 행위에서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거나 흐뭇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하더라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부모 또한 그들 부모의 희생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은 제각각이고,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다양한 무의식적 행동으로 표출되거나 내면에 고인다. 우리 안에 고인 다양한 콤플렉스, 부정적인 부모의 영향을 극복하고 이제 홀로,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서 세상에 서야 할 때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나서기를 바란다. 끝으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를 소개하고 글을 맺겠다. 평생을 '아버지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카프카는 글쓰기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다. 소개하는 글은 오래 전 보았던 흑백영화 속 카프카의 독백이다. 언젠가 메모해 두었던 이 글에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끝내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엿보인다.
무지보다는 진실을 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옳았는지 의심스럽군요. 이젠 나도 세상의 일부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서로 견해는 다르더라도 전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늦으나마 이 중대한 깨달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이 조금은 쉬워지기를…….
ㅡ Franz Kafka (1883 ~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