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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후지와라 신야 글 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을 때 먼저 버릇은 책장을 바로잡고 사르르 넘겨보는 것이다. 이러면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당연히 사진이다. 특히 평상시 익숙한 모습에 눈은 더 강렬하게 반응한다. <여행의 순간들>에서는 부산 자갈치 시장을 글쓴이가 옮겨놓은 사진이 있다.
이미 <동양기행>을 통해 경험한 글쓴이 후지와라 신야의 사진들은 이 책 <여행의 순간>에서도 한결같이 어둡고 침침하다. 침잠된 어둠을 이용해서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둔한 독자인 나는 아직까지 명쾌하게 정의내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행의 순간>에서는 사진작가이면서 동시에 여행 작가인 글쓴이가 어둠을 통해서 내보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렴풋이 감지된다. 불신. 부산에서 글쓴이를 당혹하게 한 것, 나 역시 불안한 현실경험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강렬한 이미지를 글쓴이는 불신, 그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아주 짤막하게, 그래서 더 강렬했던 한국을 소개한 글은 ‘돌돔 공방(36쪽)’이었다.
우리 땅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그러나 글쓴이는 아주 담담하다. 그의 담담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는 제삼자, 결국 남이라 위치, 구경꾼이기 때문에 그의 담담한 글쓰기는 아주 당연함을 반영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피할 수 없는 사소한 분쟁은 그 나라 사람들의 환영키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러블은 마이너스적인 면도 있지만 여행을 활기차게 북돋아주는 경우도 많다. 굴곡 없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어준다는 의미에서 일부러 약간 위태롭게 보이는 다리를 건너갈 때도 있다.// 이를 테면 한국 부산 외곽의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으로 유명한 먹자골목에서 ‘도마 위의 잉어가 되어볼까?’라고 생각한 그 남자처럼 말이다.”(34쪽)
이 글에서 글쓴이는 자갈치를 찾기 전 무던히도 지루했던 모양이다. 그리고‘사소한 분쟁’으로 묘사를 하고 있다. 현지인은 무척이나 경멸스러운 경험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돌돔 사건. 요리를 다 먹고 나와서 주문한 돌돔이 멀쩡히 주방 세숫대야에서 아가미를 벌금거리고 있는 모양을 확인한 글쓴이는 매우 당차게 일을 해결한다. 적어도 남한을 글쓴이는 무법지대라고 생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더 모진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다행히도 글쓴이는 제법 그럴싸하게 넘겼다.
<여행의 순간>은 오히려 <동양기행>의 무게감보다는 양적인 면에서는 가볍다. 그러나 글쓴이가 말하는 것처럼‘정돈하지 않고 독자 앞에 그냥 내던지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 글쓴이의 시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곳을 훑고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화려함의 이면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행의 순간>에 특별한 가치를 둔다면 그것은 현상 속의 한 순간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이 곧 전체일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순간, 그때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진전이 있을 것이다. 냉철한 시각으로 세계 구석구석을 훑고 있는 글쓴이의 행보가 부럽다. 이 땅에서 나도 글쓴이와 같은 시각으로 순간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