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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주문 신부
마크 칼레스니코 지음, 문형란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의 결혼 원정기>라는 영화가 있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먼먼 이국의 땅으로 신부를 찾아 나선 농촌 총각 만택이 겪어내는 웃지 못할 일화들이 펼쳐진다. 그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우즈베키스탄'에서 만택과 일행들은 상품을 고르듯 여성과 맞선을 본다. 여성들, 즉 '상품' 쪽에게도 이국의 남성들이 '상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남녀는 각자의 꿈과 상대를 가늠해본다. 자신이 상대의 조건에 만족하는 '상품'이 되기를, 그리고 상대 역시 자신의 조건을 충족시켜 줄 '상품'이기를 소망한다. 만택으로 분한 정재영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분명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 끝에 씁쓸한 여운을 길게 남기는 영화였다. 만택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국제결혼의 허점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지만,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 같은 실제적 문제는 여전히 당사자들에게 극복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우' 자도 들어본 적 없고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는 농촌 총각이 '신부 상품'을 찾기까지의 여정은 까다롭고 험난하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 카탈로그를 보고 전화로 주문하면 우편으로 배달되는 신부(新婦). 무슨 해괴한 이야기냐고? 지금 내가 소개하려는 책 이야기이다. 물론 픽션이지만, 어떻게 보면 완전한 픽션도 아니다. '우편으로 배달되는 신부'는 얼굴 한 번 본 남성의 손에 이끌려 하늘을 날아 온 이국의 신부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국제결혼은 이례적인 일도 아니다. 이전처럼 늙은 총각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영어 사용자가 늘어나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수도 늘어나면서 다양한 국제결혼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니까.
마크 칼레스니코는 캐나다 청년 '몬티'와 한국인 처녀 '경'의 결혼생활을 통해 국제결혼의 허점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항공우편으로 배달된 신부 '경'은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꿈을 안고 캐나다에 온다. 빈티지 장난감과 만화책을 모으는 것이 취미인 노총각 '몬티'는 동양 여성에 대한 환상 - 근면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고 귀엽고 이색적이고 가정적이고 순진한 - 에 젖어 있다. 저마다의 꿈과 환상을 품고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경'은 '몬티'의 지나친 장난감 수집 취미에 질리고, 마치 인형처럼 자신을 장난감 가게 카운터에 세워두는 '몬티'의 태도에도 분노한다. 새롭고 멋진 삶에 대한 꿈이 무참히 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있을 때 '경' 앞에 한국인 여성 '이브'가 나타난다.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이브'를 통해 '경'은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찾고 싶어한다.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동양 여성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던 '몬티'는 그런 '경'의 태도를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못한다. 꽈광!! 이들 부부의 충돌은 단연 국제결혼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성장배경 속에서 각기 다른 가치관을 형성해온 두 사람의 결합. 이것이 결혼이다. 지금껏 자신의 경험과 인식으로 쌓아올린 가치관에서부터 사소한 규칙, 습관 따위가 결혼과 함께 녹아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저항감이 작용해 충돌하기 십상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살아가면서 충돌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평생을 싸우면서 살아갈 수도 없다. 부부관계가 원만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모 TV 프로그램에서 부부심리상담사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 인간이잖은가, 그러면 적어도 상대방의 관점과 태도를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부부관계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 '경'과 '몬티'의 꿈과 환상은 찬란했으나 눈앞의 상대방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부족했다. 현실의 상대방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두 사람의 유대감을 형성했다면 꿈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종영되었는데, <사랑과 전쟁>이라는 부부클리닉 드라마를 즐겨 본 적이 있다. 조정위원들 앞에서 각자의 입장만을 변호하고 변명하는 부부들의 모습은 불편하고 안타까웠다. 나 또한 관계 속에서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깨닫고 반성했었다. 한 발 물러서서 상대방의 입장과 심정을 헤아려 본다면 상처를 반복하는 일이 줄어들 텐데. <우편주문 신부>는 표면적으로 국제결혼의 허점을 꼬집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아집으로 똘똘 뭉쳐 상대방을 내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섬세한 그림체가 인상적인 <우편주문 신부>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ble)의 특성 또한 잘 살려내고 있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