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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ㅡ 본문 중에서
어릴 적 나의 꿈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어미 잃은 아이의 본능이었다. 자라면서 나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어미가 없어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아니, 한 세상이 끝나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 아니 아니, 다른 세상으로 툭,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엄청난 비밀을 알아버린 순간, 몸을 기어오르는 독충을 떨어내듯, 그때까지 쥐고 있던 최초의 꿈을 냅다, 놓아버렸다. 어미의 나이와 비슷해진 나는 그 순간의 기억을 일시정지시킨다. (어 어?)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꿈을 놓아버린 순간, 그 순간 나는 나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나의 엄마와 엄마의 자식 노릇을 한꺼번에 해내야 했던 나는 내 자식의 엄마 노릇까지는 못하겠다고, 나처럼 말 안 듣는 자식이라면 더더욱 곤란할 것이라고 지레 단념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쉰다. 한숨을 쉬는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고, 무엇보다 나는 나의 아버지 노릇까지 떠맡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아름의 용기(라고밖에는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는 그래서 가히 충격적이다. 겁 많고 이기적이고 그래서 한없이 무거운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불안 비슷한 것을 감지하면서, 나는 '아름'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얘, 뭐야? (남다른 아이구나)
나는 바람보다 키 큰 그물채를 잡고, 뱅글뱅글 어둠속을 날아다니는 문장들을 붙잡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몸이 날쌔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이윽고 그 말들은 스스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낳아드릴게요. 어머니, 내가 어머니를 배어드릴게요. 나 때문에 잃어버린 청춘을 돌려드릴게요.
ㅡ 본문 중에서
열일곱 '아름'은 정말 남다른 아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고 마침내 아기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제 나이의 시간에서 이탈한 그의 삶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여기 아름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다른 사람의 일 분이 한 시간, 한 시간이 하루, 하루가 일 년처럼 빨리, 자라고 늙는다. 비유나 상징 같은 것이 아니다. 아름이는 빨리 늙는 병에 걸린 것이다. 자기 안에 '가득 구겨져 있는' '너무 빨리 먹은 시간들'을 풀어내기 위해 아름이 생각해낸 것은 '이야기'를 짓는 것이었다. 자신이 알고, 또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뒤 나는 겸연쩍은 듯 말을 보탰다.
“하느님은 감기도 안 걸리실 텐데. 그죠?”
ㅡ 본문 중에서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 다른 사람의 시간을 공유할 수 없는, 아니 공감할 수 없는 아름은 자신과 주변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불완전한' 부모의 이야기,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불완전'이라는 표현이 아름의 부모에게는 마침맞아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는 철학적 접근 같은 것이 아니다. 아름의 부모는 미성년이다. 완전한 노인도 완전한 아이도 아닌 아름의 부모는 완전한 아이도 완전한 어른도 아닌 열일곱. 그러니까 지금 아름의 나이와 같은.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아름에게 하나의 문(問)과 같은 역할을 한다. '뱅글뱅글 어둠속을 날아다니는 문장들'을 따라 아름이 닿은 곳은 엄마 뱃속. 엄마 뱃속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 안에 있는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를 낳'고, '어머니를 배'는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어 온전한 자기와 만나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그렇게 누군가와 온전히 합쳐지는 기분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 다신 그럴 수 없지.”
“하지만 그거랑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남아있기는 해.”
“그게 뭔데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아버지는 나를 안았다. 그런 뒤 깃털처럼 가벼운 자식 앞에서 잠시 휘청댔다. 마치 세상 모든 것 중, 병든 아이만큼 무거운 존재는 없다는 듯. 힘에 부쳐 바들바들 손에 떨었다. 잠시 후, 어디선가 펄떡이는 아버지의 심장박동이 내 가슴께로 전해오는 기척이 났다.
‘쿵......쾅......쿵......쾅’
ㅡ 본문 중에서
김애란은 조로증을 앓는 소년 아름을 통해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일깨운다. '이른 아침, 어머니가 쌀독 뚜껑을 닫는 소리, 상투적인 멜로영화 예고편, 학교 운동장에 남은 축구화 자국, 밑줄이 많이 그어진 더러운 교과서, 경기에서 진 뒤 우는 축구선수들, 어머니의 빗에 낀 머리카락,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 한밤중 윗집 물 내리는 소리, 오후 두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말도 안되는 성대모사를 하는 중년남자, 집에 쌓인 영수증 같은 것'. 소설 속 장씨 할아버지의 말처럼, 세상은 살아 있는 것투성이다. 그러니까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포옹하고 그것들과 숨을 나누자는 것이다.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ㅡ 본문 중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어린 부모와 늙은 자식의 이야기. 어쩌면 굉장히 암울한 소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역시 김애란이다.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능청스러운 유머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근데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진짜 저러고 노셨어요?”
“어.”
“그럼 저 형들 욕하면 안되죠.”
“왜 안돼? 쟤들도 우리 욕하는데.”
“할아버지는 어른이잖아요.”
“그러니까 해야지. 우린 더 심심하잖아. 오토바이도 못 타고.”
“어휴.”
ㅡ 본문 중에서
김애란은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간과했던 것들을 붙들어 꾸밈없이 빵빵 터뜨린다. 바로 그 '꾸밈없음'이 김애란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억지스럽지 않고, 무엇보다 가슴을 파고드는 여운을 남기는 김애란 식의 유머가 나는 좋다.
그날, 너는 네가 완전한 노인도 완전한 아이도 아니라 힘들다고 했지? 너무 빨리 먹은 시간들이 네 속에 가득 구겨져 있다고. 네가 제작진을 향해 ‘그래도 제가 더 오래 살았을걸요?’라고 말했을 때 웃었어. 너만큼은 아니어도, 일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에 대해, 나도 조금은 알고 있거든. 그리고 괜찮다면, 네 속 시간들에 대해 내가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는 한라산! 음, 뭐, 백두산도 괜찮고 그냥 높은 산이면 돼. 예전에 지리시간에 그런 얘길 들었거든. 그 산들은 너무 높아서, 고도별로 다른 꽃이 핀다고. 같은 시간, 한공간 안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식물들이 공존한다고 말이야. 그곳에는 사계가 함께 있어, 여름에도 겨울이 있고, 가을에도 봄이 있대. 무슨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야. 그래서 내 멋대로 그렇게 정했어. 남들은 너를 ‘조로’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냥 너를 ‘산’이라고 부르겠다고.
ㅡ 본문 중에서
앞선 인용글은 작품 안에서 '이서하'가 아름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중 일부다. 열일곱의 나이와 여든살의 몸을 가진 아름에게 이서하는 '산'이라는 이름을 찾아준다. '같은 시간 한공간 안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식물들이 공존' 하는 높은 산. 고도별로 다른 꽃이 피는 그런 높은 산은 '아름'답다. 아름이가 들려주는 <두근두근 내 인생>은 바로 그런 산을 닮았다.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