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 정의·도덕·생명윤리·자유주의·민주주의, 그의 모든 철학을 한 권으로 만나다
고바야시 마사야 지음, 홍성민.양혜윤 옮김, 김봉진 감수 / 황금물고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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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월 EBS에서 방영한 <하버드 특강 - 정의>가 뜻밖의 지적 열풍을 몰고 왔다. 나도 몇 회인가 강의를 시청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었는데, 다음 강의에 대한 기대감을 품을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례나 가상의 예를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를 열린 대화 속에서 풀어나가는 샌델의 강의방식에는 놀라운 흡인력이 있었다. 하버드 강의는 방송 종영 이후 책으로 출간되었고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마이클 샌델의 방송 강의는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정치철학 분야의 강의가 선풍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고바야시 교수는 서문에서 하버드 강의의 사회적 열풍 이유를 여덟 가지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세계 명문으로 치는 하버드 대학이라는 지적 브랜드이다. 미국 명문 대학의 학생들이 듣는 강의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에 앉게 했다는 것이다. 가볍고 즉흥적인 예능이나 스포츠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는 현 대중사회 상황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깊이 있고 진지한 내용의 강의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 고바야시 교수가 지적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마이클 샌델이 이끌어가는 소크라테스형 열린 대화나 토의 방식의 강의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철학의 원형을 간접 체험하게 해주는 동시에 몰입감을 준다는 것이 하버드 강의 열풍의 세 번째 이유이다. 극장형의 대강당(샌더스 극장)에서 대규모 학생들과 대화형 강의를 이끌어나가는 샌델의 예술적 강의술, 인상적인 사례나 도덕적 딜레마, 정치철학이라는 장르의 매력, 세계의 시대 상황과의 조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샌델의 정치철학과 동아시아의 문화적 사상과의 공통점을 꼽고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의와 덕이라는 윤리적인 관념과 선을 지향하는 샌델의 정의론은 윤리적, 정신적 맥락을 같이 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양인이 어렵지 않게 호응할 수 있었다는 것.

 

 

   책의 저자이자 하버드 특강 방송(일본)의 번역 감수와 해설을 맡았던 고바야시 마사야 교수는 방송 이후 요청을 받고 5회에 걸쳐 샌델의 저작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 강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정의의 탐구',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민주정에 대한 불만', '완벽함에 대한 반론', '공공철학 논집의 통찰' 총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된 이 책에서 고바야시는 샌델의 저작 ㅡ 정의: 원제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2009),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원제 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 (1982), 민주정에 대한 불만 - 공공철학을 찾는 미국: 원제 Democracy's Discontent: America in Search of a Public Philosophy(1996), 완벽함에 대한 반론: 원제 The Case against perfection》(2007), 공공철학: 원제 Public Philosophy: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2005) ㅡ 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하버드 특강 -정의>와 《정의: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2009)는 제 1장에서 다루고 있다. 마지막 5장에서는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샌델의 사상적 전개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 해석이 제시된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 대해 "나의 정치철학을 완전히, 그리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깊게",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개개인 독자의 몫으로 남겠지만, 이 책이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샌델의 강의만큼이나 고바야시의 해설도 유연하게 이어진다. 해설서가 범하기 쉬운 지나친 요약이나 장황함이 없어 거부감 없는 독서가 가능하다.

 

 

   치철학천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추상적인 공리공론이 아니라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학문

 

 

 

   마이클 샌델의 정치철학과 그의 강의 방식은 학문과 교육의 개혁 가능성을 제시한다. 앞서도 언급했던 샌델의 열린 대화형 강의는 선생과 학생이 모두 참여해 사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다. 대화를 이어가면서 자신의 사상적 입장이나 오류를 자각하고 스스로 논리를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샌델은 강의 마지막에서 이와 같은 대화형 논의는 일반 사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문화와 사회, 정치가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샌델의 논리는 "목적과 선이라는 의미 있는 사고와 행동으로 연결된다". 샌델이 제시하는 다양한 예시와 도덕적 딜레마를 고민하는 그 속에 실천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강의와 그의 저작, 그리고 이 책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올바르게 사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때 우리 사는 세계는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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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도시 - 우리 시대 예술가 21명의 삶의 궤적을 찾아 떠난 도시와 인생에 대한 독특한 기행
오태진 지음 / 푸르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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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초록강에는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이 오면 강은 강물이 얼지 않도록 얼음장으로 만든 이불을 덮을 것이다. 강은 그 이불을 겨우내 걷지 않고 연어 알을 제 가슴 속에다 키울 것이다. 가끔 초록강의 푸른 얼음장을 보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돌을 던지기도 할 것이고, 그때마다 강은 쩡쩡 소리 내어 울 것이다. 봄이 올 때까지는 조심하라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린 연어가 자라고 있다고. 

                                     ㅡ 안도현《연어》 일부

 

 


   《연어》의 '초록강'과 같은 장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를 품고 키워준 어머니의 땅, 우연처럼 떠도는 우리를 운명처럼 받아준 고마운 장소들 말이다. 《내 인생의 도시》는 우리 시대 예술가 스물 한 명의 '초록강'을 찾아나선 특별한 여행기록을 담고 있다. 책을 엮은 오태진 씨는 조선일보 수석 논설위원이다. 작년 초 기획한 <나의 도시 나의 인생>이라는 주간연재를 맡아 편집국 기자와 격주로 쓴 것을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까지 치열한 삶의 행보를 이어온 분들을 찾다 보니 예술가, 그중에서도 문인에 치우치게 되더라고 했다. 스물 한 명 중 열네 명이 시인과 소설가다. 그러나 문학기행은 아니다. 한 사람이 '거기' 흘러들기까지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기행이다.

 

 

   "왜 그땐 그리 앓았을까. 되돌아보면 그건 탐욕 때문이었다"고 했다. 한승원은 "바다도 예전 젊어서 만났던 바다가 아니더라"고 했다. 그를 낳아준 장흥, 지금 자신을 보듬어주는 바다를 그는 우주의 시원, 우주적 자궁이라고 불렀다. "내게 득량만 바다는 화엄의 바다이고, 내 소설의 모태"라고 했다. 그는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장흥의 요소들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잘 안다.

 

                                             ㅡ (소설가 한승원의 '장흥') 중에서

 

 

 

   제목(내 인생의 도시)에서 '도시'는 시골의 대립어가 아니라 불특정 '장소'를 두루 일컫는다. 책에 소개된 스물 한 곳의 장소 중에는 도시도 끼어 있지만 ㅡ 영화감독 곽경택의 부산, 소설가 은희경의 일산, 화가 사석원과 소설가 조경란의 서울 동대문과 봉천동 ㅡ 자연 속 시골이 대부분이다. 탐욕을 버리고 예술가의 감성을 벼리기에 좋다는 것이 시골서 터 잡고 사는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교조 지회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운동가'로 활동했던 안도현은 1994년 산골 학교에 복직하면서 자연에 눈을 돌린다. 거대 담론에서 우리 가까이 있는 작고 일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도 모르고 살았다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담긴 시 <애기똥풀>도 그때 썼다. 이후 안도현은 시적감수성과 따스한 문장으로 성장통을 그려낸 <연어>와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며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시 <우리가 눈발이라면> 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안도현은 "도시 학교에서 근무했다면 얻지 못했을 결실들"이라고 했다. "1980년대에 삶에 부딪치는 건건이 늘 분노하고, 상처받고 스스로를 통제하고 못하고 망가졌던" 이철수도 농사 짓고 자연 속에 살면서 작품에 꽃과 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한승원이나 김도연처럼 귀향한 경우가 있고, 시인 유홍준이나 이원규처럼 바람처럼 흩날리다 정착한 경우도 있다. 귀향이든 우연처럼 흘러들었든 자신을 받아주고 품어준 자연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만은 한결같이 엿보인다.

 

 

 

    귀향한 첫해 여름, 단편 하나를 탈고했지만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 김도연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서다 반갑게 짖는 개를 붙들고 소설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듣던 개가 지루했던지 개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끌어내기를 거듭했다. 주무시던 어머니가 나와 "너 뭐하는 짓이냐. 잠이나 자지"라며 타박하는데도 한 편을 끝까지 다 읽어줬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목이 잠겨 있었다. 옷에도 개와 씨름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개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그를 보더니 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ㅡ (소설가 김도연의 '평창') 중에서 

 

 

 

   오태진은 서문에서  "이야기는 되도록 많이 들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담는 것이기에 정확해야 했고 그래서 꼬치꼬치 물었다. 어떤 분은 농반 '인터뷰가 아니라 고문'이라고 했다."면서 오랜 생활 몸에 밴 기자 습성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책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끼어들지 않는다. 스물 한 명의 삶의 이야기와 인터뷰 내용이 전부이다. 오태진은 혹여 책이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실은 나도 이 책을 펼치면서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책장冊張 넘어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다. 사족이 없이 깔끔하고 적당한 서정이 흐르는 문장도 참 좋다.

 

 

   긴 겨울 밤, 그는 나무를 때는 보일러실로 들어간다. 아궁이 앞에 주저앉아 장작을 때면서 돌배 술을 홀짝거린다. 아궁이의 열기와 술기운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김도연은 생각한다. 이 고향집이 지구의 막다른 절벽이라고.

 

                                                    ㅡ (소설가 김도연의 '평창') 중에서

 

 

 

   소설가 문순태는 수몰된 장성댐 아래 가라앉은 마을을 무대 삼아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기 전 찾아간, 이제는 호수가 된 마을터를 둘러보던 그때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했다. "물속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사이 물속 마을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기억(혹은 관심)에서 수몰된 어떤 장소를 환기시킨다. 저 아래 잠긴 물속 마을에는 우리가 두고온 사람들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곳, 그들이 그립다.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하다. 머잖아 '내 인생의 도시'를 찾아봐야겠다. 가서, 오~~래오~래 들여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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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투 도어 - 내가 빌 포터로부터 배운 10가지
셸리 브레이디 지음, 장인선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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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또는 지금 현재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오직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는 것뿐이지.”

 

                                                                                                                            -   BILL PORTER

 
   

 


   끝없이 문을 두드린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빌 포터. 언어장애와 사지근육마비를 동반하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빌은 방문판매사원이다. 혼자서는 구두끈을 맬 수도, 양복 단추를 채울 수도 없는 이 남자는 매일 15킬로미터를 걸어 낯선 문 앞에 섰다. 마비된 오른팔이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왼손에는 묵직한 가방을 든 채로 말이다. 문 앞에 서면 가방을 내려놓고 문을 두드렸다.

 

   방문판매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애를 가진 빌에게는 더욱 그랬다. 낯선 이를 향해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문이 열리더라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말을 이어가는 장애인 판매사원에게 시간을 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당하는 일이 예사였다. NO! No No...꽝, 쾅 닫히는 문들 앞에 빌이 다시 설 수 있는 힘은 긍정적인 마음자세였다. 낯선 문 앞에 서 있을 때, 그 문을 두드릴 때 빌은 오직 자신의 일만 생각했다. 사람들의 거절에서 그는 판매상품에 대한 불만이나 판매방식을 바꿔달라는 단순한 요구만을 보았다. '안돼!', '싫어!' 같은 단순한 거절 표시에 마치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한 듯 상처받는 우리, 거절이 두려워 문을 두드려 보기도 전에 돌아서는 우리에게 빌은 자기를 사랑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신체장애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빌이 세상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데는 어머니 아이린의 역할이 컸다. 장애를 가진 빌만큼이나 그를 길렀던 어머니 역시 자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에 부딪혔다. 아이린은 그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덕분에 빌은 모든 아이들이 거치는 일반적인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확고한 신념과 사랑은 장애를 가진 빌이 세상과 분리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지켜주었던 것이다. 수없이 거절당하면서도 다시, 또 다시 낯선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용기, 구두끈 하나 맬 수 없는 남자를 누구보다 강하게 지켜준 힘은 끝없는 지지와 믿음, 그리고 사랑이었다.

 

   어제 티비에서 개그맨 김구라가 강연을 했다. ‘불안한 20대 청춘을 위하여’ 라는 부제에 대해 그는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서두를 뗐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빌 게이츠마저도 나름대로 불안할 것이라고 했다. 언제 자신의 위치를 빼앗길지 모르는 경쟁사회니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김구라가 ‘독하게’ ‘살아남은’ 비결은 ‘꾸준한 돌아이짓’이라고 했다. 쟤 뭐야? 사람들이 뭐라든 굴하지 않고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하찮아 보이는 일도 꾸준히 하면 나중에 제 가치를 발휘할 때가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김구라가 강조한 것은 ‘독하게’도 아니고 ‘돌아이짓’도 아니고 ‘꾸준히’였다. 빌 포터의 이야기를 쓰고 있자니 문득 그의 강연 내용이 떠올랐다. 빌 포터의 삶이야말로 ‘꾸준한 돌아이짓’이 아니었나. 당장 성과가 없는 일을 꾸준히, 지치지도 않고 몇 십년을 이어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김구라의 강연 내용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당장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기 때문에 우리의 불안은 끝이 없는 거라고.

 

   긍정적인 태도로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 서부지역 최고 판매왕 자리에 오른 빌 포터의 이야기는 1995년 <오리고니언>에 실린 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그의 오랜 친구 셸리 브레이디는 이 책에서 빌의 어린 시절부터 판매왕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낯선 문 앞에,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서 있다. 일단 두드리라고, 그러나 열리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말라고 이 책은 다독인다. 다른 문을 찾으면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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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 지음, 강병혁 옮김 / 푸른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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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는 코스모스가 가득한 들판을 둘러본다. 서쪽 하늘의 구름이 흩어지고 석양에 물든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섬세하게 빛나고 있다. 사람의 키보다 더 큰 야생 코스모스 뒤에 뭔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주소를 속인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에 있어!'

 

                                       ㅡ 본문 중에서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기《동양기행》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둡고 흐릿해서 다소 음침한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그의 사진들, 적당한 서정이 흐르는 문장이 좋았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밝고 화려한 세계에서 뜻밖에 마주친 자연스러움이었다. 그것은 나를 안심시켰다. 이제 소개할 그의 산문집 역시 마찬가지의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원제: 코스모스 그림자 뒤에는 늘 누군가 숨어 있다)》는 열네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편을 제외한 열세 편은 지하철에 놓이는 무가지(無價紙) <메트로 미니츠>에 6년 간 연재한 일흔한 편의 글 가운데 추려내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는 '지하철'에 주목한다. 가장 일상적인 서민의 교통수단이 바로 지하철이다. 하루에도 수백수천 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스쳐지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후지와라 신야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산문집은 서민적이고 일상적이다.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딱 한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편안하게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분량이나 내용에서도 부담이 없다.

 

 

   생태통로라는 것이 있다. 짐승들은 종횡무진 야산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몇 개의 통로로 이동한다. 동물의 행동은 보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기본적으로는 보수적 행동을 반복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 역에서 집으로 가는 루트를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ㅡ <당신이 전철의 다른 방향을 보았을 때> 중에서

 

 

   앞서 얘기한 일상성에 대해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일상성이라 하면 대개는 '보통'의 '평범함'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후지와라 신야가 펼쳐내는 일상성은 조금 다르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날들에 숨어 있는 특별함. 너무 익숙하고 흔해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그 길 이면의 진귀한 풍경을 펼쳐보여준다. 그러니까 일상성 속에 숨어 있는 비일상적인 이야기라고 하면 될까. 도로 공사로 인해 8년간 언제나 걸어다녔던 길에서 벗어나 한 번도 지나간 적 없는 길에 든 여성이 보았던 커다란 동백나무 같은 것 말이다. "겨우 몇 미터를 벗어나 다른 길을 걷는 것만으로 이런 정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곳에 살았던 8년간, 매년 그 동백은 소리 소문 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는 사라져갔겠지요. 왠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손해를 봤다는 느낌입니다." 오래된 저택 옆의 공터에서 마주친 커다란 동백나무 앞에서 그녀는 '판에 박힌 인간의 행동', 일상성에 젖어있는 인간의 안일한 고집이 세계를 얼마나 보잘것없이 축소시키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여기 담긴 열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후지와라 신야는 우리가 모르는 길, 혹은 무심히 지나쳤던 길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동백나무'(들)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묘지에 들어가게 된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적막함 속에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바라본다. 이 세상과 저세상이 뒤집혀, 문득 이 세상이 저세상으로 보인다. 죽음이라는 영원의 세계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살아 있는 자들이 사는 세상이 한순간의 환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들어온 나 자신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칠 때, 이상한 안도감이 생겨난다. 그런 안도감에 싸여,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온 죽은 자에게 바치는 다채로운 빛깔의 꽃들을 본다. 그 꽃들은 순식간에 퇴색할 것이다.

 

                                                     ㅡ <누가 바친 꽃입니까?> 중에서

 

 

 

    그의 사진은 여전히 어둡고 흐릿하다. 그런데 암울하지는 않다. 그 풍경은 '안도감'을 선사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다른 누군가 같이 보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일종의 감격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공감'을 찾아헤매는 동물이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눈앞의 모든 것은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면서 스러져 간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나는 놓칠 수 있고, 내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못 볼 수 있다. 저마다 가는 길이 다르고 마음의 방향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가끔은 익숙한 길을 등지고 다른 길로 들어서 보아도 좋겠다. 거기 숨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과 조우해 보자. 오래 전의 코스모스 들판에서 여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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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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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ㅡ 본문 중에서

 

 

 

 

 

 

 

 

   어릴 적 나의 꿈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어미 잃은 아이의 본능이었다. 자라면서 나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어미가 없어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아니, 한 세상이 끝나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 아니 아니, 다른 세상으로 툭,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엄청난 비밀을 알아버린 순간, 몸을 기어오르는 독충을 떨어내듯, 그때까지 쥐고 있던 최초의 꿈을 냅다, 놓아버렸다. 어미의 나이와 비슷해진 나는 그 순간의 기억을 일시정지시킨다. (어 어?)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꿈을 놓아버린 순간, 그 순간 나는 나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나의 엄마와 엄마의 자식 노릇을 한꺼번에 해내야 했던 나는 내 자식의 엄마 노릇까지는 못하겠다고, 나처럼 말 안 듣는 자식이라면 더더욱 곤란할 것이라고 지레 단념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쉰다. 한숨을 쉬는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고, 무엇보다 나는 나의 아버지 노릇까지 떠맡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아름의 용기(라고밖에는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는 그래서 가히 충격적이다. 겁 많고 이기적이고 그래서 한없이 무거운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불안 비슷한 것을 감지하면서, 나는 '아름'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얘, 뭐야? (남다른 아이구나)

 

 

   나는 바람보다 키 큰 그물채를 잡고, 뱅글뱅글 어둠속을 날아다니는 문장들을 붙잡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몸이 날쌔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이윽고 그 말들은 스스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낳아드릴게요. 어머니, 내가 어머니를 배어드릴게요. 나 때문에 잃어버린 청춘을 돌려드릴게요.  

 

                                         ㅡ 본문 중에서  

 

 

   열일곱  '아름'은 정말 남다른 아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고 마침내 아기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제 나이의 시간에서 이탈한 그의 삶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여기 아름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다른 사람의 일 분이 한 시간, 한 시간이 하루, 하루가 일 년처럼 빨리, 자라고 늙는다. 비유나 상징 같은 것이 아니다. 아름이는 빨리 늙는 병에 걸린 것이다. 자기 안에 '가득 구겨져 있는' '너무 빨리 먹은 시간들'을 풀어내기 위해 아름이 생각해낸 것은 '이야기'를 짓는 것이었다. 자신이 알고, 또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뒤 나는 겸연쩍은 듯 말을 보탰다.

“하느님은 감기도 안 걸리실 텐데. 그죠?”

 

       ㅡ 본문 중에서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 다른 사람의 시간을 공유할 수 없는, 아니 공감할 수 없는 아름은 자신과 주변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불완전한' 부모의 이야기,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불완전'이라는 표현이 아름의 부모에게는 마침맞아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는 철학적 접근 같은 것이 아니다. 아름의 부모는 미성년이다. 완전한 노인도 완전한 아이도 아닌 아름의 부모는 완전한 아이도 완전한 어른도 아닌 열일곱. 그러니까 지금 아름의 나이와 같은.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아름에게 하나의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뱅글뱅글 어둠속을 날아다니는 문장들'을 따라 아름이 닿은 곳은 엄마 뱃속. 엄마 뱃속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 안에 있는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를 낳'고, '어머니를 배'는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어 온전한 자기와 만나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만난 그런 박자를, 그렇게 누군가와 온전히 합쳐지는 기분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 다신 그럴 수 없지.”

“하지만 그거랑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남아있기는 해.”

“그게 뭔데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아버지는 나를 안았다. 그런 뒤 깃털처럼 가벼운 자식 앞에서 잠시 휘청댔다. 마치 세상 모든 것 중, 병든 아이만큼 무거운 존재는 없다는 듯. 힘에 부쳐 바들바들 손에 떨었다. 잠시 후, 어디선가 펄떡이는 아버지의 심장박동이 내 가슴께로 전해오는 기척이 났다.

‘쿵......쾅......쿵......쾅’

 

                                                        ㅡ 본문 중에서  

 

 

   김애란은 조로증을 앓는 소년 아름을 통해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일깨운다. '이른 아침, 어머니가 쌀독 뚜껑을 닫는 소리, 상투적인 멜로영화 예고편, 학교 운동장에 남은 축구화 자국, 밑줄이 많이 그어진 더러운 교과서, 경기에서 진 뒤 우는 축구선수들, 어머니의 빗에 낀 머리카락,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 한밤중 윗집 물 내리는 소리, 오후 두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말도 안되는 성대모사를 하는 중년남자, 집에 쌓인 영수증 같은 것'. 소설 속 장씨 할아버지의 말처럼, 세상은 살아 있는 것투성이다. 그러니까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포옹하고 그것들과 숨을 나누자는 것이다.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ㅡ 본문 중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어린 부모와 늙은 자식의 이야기. 어쩌면 굉장히 암울한 소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역시 김애란이다.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능청스러운 유머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근데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진짜 저러고 노셨어요?”

“어.”

“그럼 저 형들 욕하면 안되죠.”

“왜 안돼? 쟤들도 우리 욕하는데.”

“할아버지는 어른이잖아요.”

“그러니까 해야지. 우린 더 심심하잖아. 오토바이도 못 타고.”

“어휴.”

 

                     ㅡ 본문 중에서

 

 

   김애란은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간과했던 것들을 붙들어 꾸밈없이 빵빵 터뜨린다. 바로 그 '꾸밈없음'이 김애란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억지스럽지 않고, 무엇보다 가슴을 파고드는 여운을 남기는 김애란 식의 유머가 나는 좋다.

 

 

   그날, 너는 네가 완전한 노인도 완전한 아이도 아니라 힘들다고 했지? 너무 빨리 먹은 시간들이 네 속에 가득 구겨져 있다고. 네가 제작진을 향해 ‘그래도 제가 더 오래 살았을걸요?’라고 말했을 때 웃었어. 너만큼은 아니어도, 일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에 대해, 나도 조금은 알고 있거든. 그리고 괜찮다면, 네 속 시간들에 대해 내가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는 한라산! 음, 뭐, 백두산도 괜찮고 그냥 높은 산이면 돼. 예전에 지리시간에 그런 얘길 들었거든. 그 산들은 너무 높아서, 고도별로 다른 꽃이 핀다고. 같은 시간, 한공간 안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식물들이 공존한다고 말이야. 그곳에는 사계가 함께 있어, 여름에도 겨울이 있고, 가을에도 봄이 있대. 무슨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야. 그래서 내 멋대로 그렇게 정했어. 남들은 너를 ‘조로’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냥 너를 ‘산’이라고 부르겠다고. 

 

                                                       ㅡ 본문 중에서  

 

 

   앞선 인용글은 작품 안에서 '이서하'가 아름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중 일부다. 열일곱의 나이와 여든살의 몸을 가진 아름에게 이서하는 '산'이라는 이름을 찾아준다. '같은 시간 한공간 안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식물들이 공존' 하는 높은 산. 고도별로 다른 꽃이 피는 그런 높은 산은 '아름'답다. 아름이가 들려주는 <두근두근 내 인생>은 바로 그런 산을 닮았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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