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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투 도어 - 내가 빌 포터로부터 배운 10가지
셸리 브레이디 지음, 장인선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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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또는 지금 현재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오직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는 것뿐이지.”
- BILL 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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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문을 두드린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빌 포터. 언어장애와 사지근육마비를 동반하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빌은 방문판매사원이다. 혼자서는 구두끈을 맬 수도, 양복 단추를 채울 수도 없는 이 남자는 매일 15킬로미터를 걸어 낯선 문 앞에 섰다. 마비된 오른팔이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왼손에는 묵직한 가방을 든 채로 말이다. 문 앞에 서면 가방을 내려놓고 문을 두드렸다.
방문판매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애를 가진 빌에게는 더욱 그랬다. 낯선 이를 향해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문이 열리더라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말을 이어가는 장애인 판매사원에게 시간을 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당하는 일이 예사였다. NO! No No...꽝, 쾅 닫히는 문들 앞에 빌이 다시 설 수 있는 힘은 긍정적인 마음자세였다. 낯선 문 앞에 서 있을 때, 그 문을 두드릴 때 빌은 오직 자신의 일만 생각했다. 사람들의 거절에서 그는 판매상품에 대한 불만이나 판매방식을 바꿔달라는 단순한 요구만을 보았다. '안돼!', '싫어!' 같은 단순한 거절 표시에 마치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한 듯 상처받는 우리, 거절이 두려워 문을 두드려 보기도 전에 돌아서는 우리에게 빌은 자기를 사랑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신체장애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빌이 세상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데는 어머니 아이린의 역할이 컸다. 장애를 가진 빌만큼이나 그를 길렀던 어머니 역시 자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에 부딪혔다. 아이린은 그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덕분에 빌은 모든 아이들이 거치는 일반적인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확고한 신념과 사랑은 장애를 가진 빌이 세상과 분리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지켜주었던 것이다. 수없이 거절당하면서도 다시, 또 다시 낯선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용기, 구두끈 하나 맬 수 없는 남자를 누구보다 강하게 지켜준 힘은 끝없는 지지와 믿음, 그리고 사랑이었다.
어제 티비에서 개그맨 김구라가 강연을 했다. ‘불안한 20대 청춘을 위하여’ 라는 부제에 대해 그는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서두를 뗐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빌 게이츠마저도 나름대로 불안할 것이라고 했다. 언제 자신의 위치를 빼앗길지 모르는 경쟁사회니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김구라가 ‘독하게’ ‘살아남은’ 비결은 ‘꾸준한 돌아이짓’이라고 했다. 쟤 뭐야? 사람들이 뭐라든 굴하지 않고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하찮아 보이는 일도 꾸준히 하면 나중에 제 가치를 발휘할 때가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김구라가 강조한 것은 ‘독하게’도 아니고 ‘돌아이짓’도 아니고 ‘꾸준히’였다. 빌 포터의 이야기를 쓰고 있자니 문득 그의 강연 내용이 떠올랐다. 빌 포터의 삶이야말로 ‘꾸준한 돌아이짓’이 아니었나. 당장 성과가 없는 일을 꾸준히, 지치지도 않고 몇 십년을 이어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김구라의 강연 내용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당장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기 때문에 우리의 불안은 끝이 없는 거라고.
긍정적인 태도로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 서부지역 최고 판매왕 자리에 오른 빌 포터의 이야기는 1995년 <오리고니언>에 실린 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그의 오랜 친구 셸리 브레이디는 이 책에서 빌의 어린 시절부터 판매왕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낯선 문 앞에,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서 있다. 일단 두드리라고, 그러나 열리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말라고 이 책은 다독인다. 다른 문을 찾으면 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