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바 마을 이야기
베르나르도 아차가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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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바 마을 이야기』는 바스크어로 쓰인 소설이다. 바스크는 스페인 북부의 자치공동체이다.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산맥 지방의 소수민족인 바스크인들은 스페인과는 독립된 언어와 관습을 따른다. 19세기 말부터 바스크어로 된 문학이 번성하였는데, 이를 바스크 문학으로 분류한다. 바스크 지방에서 전해오는 오래된 이야기들을 현대문학으로 재창조한 이 작품집은 세계 25개국에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옛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어린 시절 귀와 눈으로 스며든 옛이야기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린 망부석 아내, 시집 간 손녀를 만나러 가다 죽은 할머니의 넋이 피어난 할미꽃 전설과 같이 우리의 옛이야기들에는 恨이 서려 있다. 스페인 북부 상상의 마을 '오바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집은 몇몇 스페인 예술작품에서 얻은 나의 환상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전설 대부분이 무섭고 서럽다면 바스크의 전설은 다소 은밀하고 기묘한 속삭임과 같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나직한 속삭임은 뜻밖의 탄성을 자아낸다. 무심하게 듣고 있다가 이내, 어? 어? 어?



이 책은 스물여섯 편의 단편으로 엮어졌다. 총 3부로 나뉘어진 각각의 이야기들은 '오바바'라는 마을을 중심 배경으로 독립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니어서 마치 조각난 퍼즐을 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 든다.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1, 2, 3부 각 장마다 주제가 있고 그 주제는 다음 장으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부유浮遊하는 존재들이 등장하는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기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들여다 본다. 마지막 장은 1, 2부의 연결지점이자 귀결이라고 하면 되겠다. 1, 2, 3부를 순차적으로 읽지 않아도 큰 무리는 없다. 개별적인 짧은 이야기들은 각 장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전혀 독립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기묘하고 몽환적인 이야기들은 분명 매력적이고 재미있지만 그 이야기 형식은 우리 정서에 흡수되기 아쉬운 점이 있어보인다. 우리의 옛이야기는 이야기의 흐름이나 결말이 명확하고 권선징악 같은 교훈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 대부분이 우연성에서 출발하여 흐릿하게 끝을 맺는다. 당연히 이야기의 몰입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기묘하고 환상적인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들에는 인간의 고독과 설움, 사랑과 증오와 번민의 감정이 담겨 있다. 안개처럼 내리는 환상을 슬쩍 걷어내기도 하면서 '오바바 마을'로 깊이 깊이 들어가 보아도 좋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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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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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보니 세상이 한 척의 배 같군요.

두둥실 두리둥실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당신과 우리 모두 기다리며 한세상을 살아왔지요.

기다림이 없는 시간이 바로 절망의 시간 아닌지요.



- 본문 중에서










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리움을 부르는 냄새, 아니 향기다. 꽃향기 나는 연필심으로 종이를 꾹꾹 눌러 글씨를 쓰고 코를 대보던 기억이 난다. 내가 쓴 글씨에서 좋은 향이 난다고 기뻐했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도 내 주위를 감도는 이것은 그런 향기가 아니다. 책에서도 향기가 난다는 말은 은유인 줄만 알았다. 이제는 알겠다. 좋은 냄새를 뿜어내는 책이 있다는 것.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이 책을 코앞에 펼쳐 보이겠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





곽재구 시인이 9년 만에 내놓은 이번 산문집은 산티니케탄에서 보낸 540일 간의 특별한 일상을 담고 있다. 산티니케탄은 인도 서벵골주(州) 북서쪽에 있는 대학도시이다. 1921년 타고르가 설립한 비스바바라티대학이 있다. 시인은 타고르의 시편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그곳에 갔다. 거기, 타고르의 문장만큼이나 아름다운 생의 향기가 그득했다. 시인이 쓰는 문장, 행간마다 그 향기가 고스란하다.





꽃은 흰색과 노랑 두 색으로 피는군요.

아, 이런, 향기에 대해 먼저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꽃망울이 틔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순간 나는 나무 아래 조용히 섰습니다. 온몸의 호흡을 고요히 모았지요. 냄새들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마와 팔, 어깨, 눈 코 손 가슴 발 발바닥 머리카락...... 내 몸의 모든 부위들이 자신이 지닌 지극至極의 문을 열고 이 신비한 꽃내음을 받아들이는군요.



ㅡ 본문에서





산티니케탄에 단 한 그루 있다는 조전건다 나무의 꽃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고 한다. “몸의 모든 부위들이 자신이 지닌 지극至極의 문을 열”게 만드는 냄새. 시인의 섬세한 문장은 호흡하는 책읽기를 가능케 한다. 한 문장, 문단마다 가만히 호흡을 모으게 만드는 부드러운 힘을 지녔다.





안녕, 오늘 더웠지?

52도까지 올랐는데 견딜 만했어?

나, 괜찮아. 다들 견디잖아.



ㅡ 본문에서





후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꽃냄새 뿐만이 아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페달을 밟는 릭샤꾼의 땀냄새, 뜨거운 볕 아래 말라가는 빨래 냄새와 팔팔 끓는 짜이 냄새, 한밤중 비에 젖은 대지의 냄새와 뜨거운 볕 아래 녹아내리는 고무 냄새. . . 생이 피워올리는 냄새들은 챔파꽃 향기보다도 강렬하다. 상상할 수 없는 폭염 속에서도 쾌활한 삶을 이어가는 인도인들이 피워내는 향기일 것이다. 인도의 흙과 바람과 햇살이 만든 성품, 때때로 참을 수 없는 그들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아름답다.





위에서 나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여정’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썼다. 산티니케탄의 작은 집에서 시인이 보낸 540일의 체류는 분명 일상에 가깝다. 한가로운 아침 산책과 짜이 한 잔의 여유, 오가는 사람들과의 한담, 소소한 사건들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타고르의 시편을 찾아 떠난 산티니케탄에서 얻은 선물 같은 일상이다.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특별한 향기를 전해주는 책 『우리가 사랑한 1초들』. 책 사이사이 삽입된 타고르의 시들이 뜻밖의 울림을 준다. 산티니케탄의 햇빛과 바람과 정신이 깃든 탓이겠다. 살아 있는 타고르를 보내준 시인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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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비밀 50 - 과학자들이 밝혀낸
김형자 지음 / 푸른지식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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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봉아, 너는 사는 게 그렇게 즐겁냐?" "(망설임없이)!" 영화 맨발의 기봉이에서 엄마와 기봉이가 나누는 대화이다. 해맑은 웃음으로 씩씩하게 대답하던 기봉씨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통쾌하고 가슴 부듯한 장면이다. 배운 것 없고 돈 없고 정신지체 장애까지 안고 있는 기봉씨의 웃음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책에서 배운다고 하면 기봉씨는 으허허, 또 웃을 것이다.

 

 

   행복의 비밀 44: 웃으면 진짜 복이 온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웃음치료 강사는 웃을 일이 없어도 웃으라고 강조한다. 하.하.하 -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좋다니까 따라웃는다. 이 책 《행복의 비밀 50》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일설들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를 파헤친다.

 

 

   웃음은 뇌 활동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웃을 수 있게 하는 회로가 있다. 웃음은 15개의 안면 근육을 동시에 수축시키고 몸속에 있는 650개의 근육 가운데 203개를 움직이는 최고의 뇌 운동이다. 뇌는 우스운 소리만 들어도 웃을 준비를 한다고 한다. 웃음을 실행하는 역할은 뇌의 '웃음보'가 맡는다. (본문에서)

 

 

   웃으면 면역기능이 높아지고, 심박수가 두 배로 늘어나면서 폐 속의 나쁜 공기가 신선한 공기로 빨리 바뀐다. 암세포와 세균에 맞서 싸우는 NK세포, 감마인터페론, T세포, B세포 등이 증가한다. 기봉씨 행복의 비밀 가운데 하나는 해맑은 웃음이었나 보다. 사람들은 NK세포나 T세포 같은 암세포를 의식하면서 웃지는 않는다. 웃음이 나면 웃고, 웃기지 않아도 웃으면 좋다고 하니 웃는다. 이런 경우라면 NK세포나 T세포를 몰라도 괜찮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런데 우리의 무지가 해로운 작용을 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좋자고 하는 일이 실제로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거나 엉뚱한 데서 삽질하는 것이 된다면 말이다.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화장하지 말라거나 편식하는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라는 내용은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거나 조금 뜻밖이다. 우리의 일상적 행동 속에 행복과 불행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지요. 이런 유의 관념적인 행복론은 우리 일상에 스며들기 어렵다. 《행복의 비밀 50》은 명쾌하다.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들어 행복은 우리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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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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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내가 누구인지 누가 나에게 말을 좀 해다오.”



ㅡ 《리어왕》중에서











어제, 서울 강북에 위치한 백석공원에서 사람의 안구가 발견되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인근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는 서모 씨로, 그의 진술에 따르면 사체에서 적출한 것으로 보이는 안구가 백석의 <모닥불> 시비 앞에 촛불, 마른 명태 등과 함께, 마치 제사상 차림처럼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백석공원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체 훼손 사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경찰이 제일 먼저 지목한 살해 용의자는 ‘나’ - 주철. 그는 어머니를 찾아 남한으로 넘어온 탈북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주민등록상으로만 존재할 뿐 행방을 알 수 없다. 실의에 빠진 그가 돌아갈 곳은 없다. 유흥가에서 호객 행위를 하거나 영화의 단역을 하면서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는 주철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온라인 게임 속 가상현실 공간이 전부이다.





우리가 거창한 그 무엇을 찾아 조국을 떠났냐고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애초에 그런 목적이 있었다면 우리는 탈북자가 아니라 망명객이었겠죠. 우리는 그냥 다른 곳을 찾아 중국을 들러서 남한으로 왔습니다. 무엇이 다른 곳이냐고요? 몰라요. 모를 수밖에. 다른 세상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결국 도달한 곳은 리니지란 천국이었죠. (본문에서)




리니지 공간에서 주철은 해방혁명을 이끈 위대한 군주이다. 가장 낮은 레벨의 내복단이 뼈검을 휘두르며 궐기해 얻어낸 승리에서 그는 커다란 해방감을 느낀다. 리니지 세계만이 그의 또렷한 현실이다. 실제로 주철은 현실감각을 잃어간다. 탈북 과정에서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그의 기억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백석공원에서 발견된 안구의 주인 회령 아저씨 역시 탈북자이다. 조선노동당 당원이었다고 떠벌리며 탈북자들의 정보를 팔아넘겼던 그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주철과 회령아저씨는 탈북자들이 모여 사는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핸플방의 딸녀 엄지와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인희, 과일 행상을 하는 무산아저씨와 그의 아들 무진, 매일 찬송가를 부르며 울부짖는 정주 아주머니. 우리 사회의 변방,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들의 삶은 비루하고 암울하다.





‘아름답고 아늑한 마을 공동체, 눈물나게 숨막히게, 살가운 마을을 노래한 민족시인 백석. 한동안 북한의 농촌 마을은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니것 네것 없는 완전한 세상이었습니다.’ (본문에서)





회령아저씨의 안구가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석공원에서 목 맨 시체가 발견된다. 탈북 과정에서 아내와 딸을 잃고 홀로 남한에 온 탈북자였다. 그가 유서에서 밝힌 자살 동기는 ‘잃어버린 고향이 그리워서’였다. “아름답고 아늑한”, “완전한 세상”을 잃어버린 그들, 탈북자들이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찾았던 남한 땅에서 발견한 것은 “밥이 없어 굶어 죽는 그곳이 무슨 고향이냐며 경멸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상실의 기억과 공감의 부재 속에서 그들은 갈 곳을 잃은 것이다.





백석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탈북자들의 허망한 죽음과 부유浮游하는 삶을 그려낸 《유령》은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끔찍한 살인사건과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연결시켜 추리소설적 구성을 따르고 있다. 아쉽게도 추리소설의 긴박감은 좀 떨어진다. 그러나 가독성 높은 서술, 이야기 곳곳에 숨어 있는 능청스러운 익살 같은 요소는 이 약간의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탈북자들의 소외된 삶과 죽음을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따라다니는 ‘유령’과 같은 것임을, ‘상실의 기억’은 더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아프게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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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목소리
대니얼 고틀립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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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평온을 주셨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행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알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ㅡ 「마음의 평온을 구하는 기도」알코올 중독자 갱생회

 

 

 


 


 

 

   가장 가까이에서 비비고 살아가는 가족의 존재감은 크다. 가까운 만큼 기대와 실망, 상처를 주고받는 일도 피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 내 크고 작은 충돌 속에서 마음의 응어리를 키운다. 제대로 풀지 못한 이 응어리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폭발한다.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전쟁은 끝날 줄 모른다. 되풀이되는 충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가족의 목소리》는 이 문제에 대한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책의 저자 대니얼 고틀립은 1985년부터 현재까지 필라델피아 공영 라디오 방송 WHYY에서 <가족의 목소리>라는 심리상담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이 책에서 다양한 상담 사례를 통해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1979년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대니얼은 자신의 나약함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상담을 시작했다. 전문적인 용어는 최대한 배제하고 감정의 목소리에 마음을 기울였다. 심리치료사로서가 아니라 상처를 지닌 인간 대 인간의 대화로 치유의 과정을 밟아나간 것이다. 책에는 그 감동적인 과정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만으로는 실패를 거듭할 뿐이다. 말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정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말은 서로의 손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두 사람마저도 결별하게 만든다. 마지막을 예감하고 한자리에 모인 가족이 서로 부둥켜안고 작별을 고할 때에도 말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내 상담실을 찾은 어른들이 아무리 조리 있게 말하더라도, 여자아이가 "아빠, 가지 마. 제발 날 버리지 마!" 하고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면 우리는 당황한 나머지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본문에서)


  

 

   대니얼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가족 간 불화의 씨앗이 '말()'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먼저 소개한 본문의 내용에서와 같이 때때로 말만으로는 부족하거나 아예 불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반드시 말이 필요한 경우에 마음을 닫고 침묵하는 것이다. 결국 표현의 문제이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마음의 응어리를 안고 있는 사례자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였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부모나 자식, 배우자에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오해나 불신, 분노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 침묵하거나 어긋난 행동으로 관계를 악화시킨다. 끝없는 충돌과 상처,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일깨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상대의 목소리, 그리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어두는 것에서 치유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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