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폼 팩토리 - 애플샌드의 내추럴&빈티지 공간 만들기
오진영 지음 / 미디어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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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거나 쓰임이 다한 물건을 앞에 두고 고민해 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선뜻 버리기엔 아깝고 그냥 두자니 거치적거리는 물건들은 먼지옷을 입은 채 우리의 선택만 기다리고 있다. 이미 쓰레기통에 던져져 수명을 다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아차, 하는 마음에 쓰레기통을 뒤져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리폼 팩토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든 '쓰레기'는 '보물'이 된다. 아, 그래서 리폼 리폼 하는구나, 알게 될 것이다. '리폼(reform)'은 개혁, 개선의 의미를 가진 영단어에서 나온 말로, 낡거나 오래된 물건을 고치는 일을 가리킨다. 리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지금 이런 설명은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리폼 도구만을 판매하는 사이트가 있을 정도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리폼의 매력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도해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른 사람들의 리폼 실력을 훔쳐보면서 감탄만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라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용기를 얻었다. 리폼이 타고난 감각과 손재주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은이 오진영 씨는 평범한 주부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살림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는 대신 쓰던 물건을 재활용하면서 리폼의 매력에 빠졌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그는 "리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강조한다. 책을 넘기다 보면 과연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빈 유리병에 글씨를 새겨넣은 꽃병, 플라스틱 용기에 레이스를 두른 화분, 자투리 나무에 구멍을 뚫은 연필꽂이 등 간단한 아이디어와 작은 손길 하나에서 리폼의 마술은 시작되는 것이다.

 

 






 

   책은 크게 4단계로 나뉘어 있다. 초보자부터 베테랑을 위한 리폼까지 단계별로 밟아가는 구성이다. 본격적인 리폼에 들어가기 앞서 필요한 준비물과 기초적인 리폼 기법도 소개해 놓고 있어 초보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리폼의 왕초보 중의 왕초보에 속하는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을 연발했다. 나무를 깎고 구멍을 뚫고 피스를 고정시키고 페인트를 바르고 말리고 또 한 번 바르고 말리고 바니쉬를 칠하고 말리는 숙련된 작업도 물론 훌륭하다. 그런데 너무 흔하다고 할까. 너나 할 것 없이 따라하는 리폼의 정석 같다는 느낌이 아쉽다. 반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이용한 단순한 리폼 기법들이다. 전단지 자석을 오려내 병뚜껑이나 낡은 물건에 붙인 근사한 마그넷, 종이상자에 서류봉투를 덧씌운 종이화분, 아이스크림 막대를 활용한 미니 옷걸이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재료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놀랍고 즐거웠다. 그동안 내가 버린 무수한 쓰레기들을 찾아 떠나고 싶은 애석함도 들었다. 무엇이든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관심 밖에서 조용히 잊혀지는 물건들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폼 팩토리》는 사람까지도 리폼시키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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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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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 꺼진 방 안의 어둠이다. 오래된 어둠의 한가운데 누워 가만히 눈을 감으면 나직하게 이어지는 엄마의 이야기. 내 눈꺼풀 위에 사뿐히 쌓여가던 그 이야기들은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부터는 스스로 이야기책을 찾아 읽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그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도.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이야기'였다. 나를 거쳐간 수많은 이야기들은 내 삶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나 있겠는가. 잘 짜여진 문학작품이나 역사책의 이야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떠도는 살아 있는 이야기들, 소문, 잡담, 농담, 변명, 일화, 황당한 거짓말 등등 오늘도 우리는 이야기 속에 살고 있다.

 


   바야흐로 포스트 디지털 시대이다. 기술과 정보의 포화 상태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감성적 교류, 즉 '이야기'를 원하게 되었다. 책이나 영화, 드라마는 물론 제품을 구매할 때에도 자신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것을 선호한다.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찾아나서고, 또한 좋은 이야기꾼이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 소개할《이야기의 힘》은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그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을 풀어놓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로버트 맥기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거장들이 밝히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과 그 조건을 응용해 실제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장章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 이론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야기의 힘》은 EBS에서 방영된 교양다큐 내용을 옮긴 책이다. 나는 EBS 다큐프라임을 즐겨 본다. 다양한 각도에서 주제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이 좋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이야기'라는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전기수 살인사건이나 스웨덴 드라마 <마리카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과 같은 일화들과 흥미진진한 실험 결과들을 통해 이야기의 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언어심리학자 캐서린 넬슨은 한 연구결과를 통해 인간은 이야기 본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말을 배우기 이전의 아기들도 옹알이나 짧은 음성표현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결국 소통과 공감의 욕구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스쳐간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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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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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침반을 찾으라.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과연 나는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때때로 이런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 때가 있다. 방향감각을 잃은 그때 우리에게는 인생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다른사람의 평가나 조언이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수도 있다. 책이나 음악에서 방향을 가늠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또다시 길을 잃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가리켜줄 나침반이 짠,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좌절할 것은 없다. 여기, 지난한 인생길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다.  

 

 

   생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신'이거나 '무의식'이라고 불러도 좋다. 때때로 우리는 알 수 없는 마음의 동요나 끌림을 느낄 때가 있다. 이성이나 논리를 넘어선 '그것'을 저자는 '내면의 나침반'이라 이름 붙인다. 내면의 나침반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바다거북의 긴 여정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바다거북의 긴 여정은 해변에서 알을 깨고 나온 직후부터 시작된다. 고난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어미가 덮어둔 모래막을 뚫고 나와 바닷물에 뛰어들기까지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해변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면 천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방향을 잘못 틀어 바다가 아니라 차도로 뛰어드는 거북들도 많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아 바다에 도달한 바다거북은 본격적인 여행길에 오른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해류를 따라 길을 찾고, 대양을 가로지르며, 허리케인을 견뎌내고 초대형 유조선이나 새우잡이 그물을 피하면서 수천킬로미터를 여행한다. 그리고 산란기가 되면 태어난 바로 그 해변으로 돌아와 모래 밑에 알을 낳는다. 바다거북들은 어떻게 수천킬로미터의 낯선 바닷길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다시 자신의 둥지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연구에 의하면 철새와 바다거북들의 이동에 지구자기장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일종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책의 저자인 스티브 도나휴는 우리 안에도 바로 이와 같은 내비게이션, 곧 내면의 나침반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발견하기 이전부터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준 내면의 강력한 힘 말이다.

 

 

   내면의 나침반을 올바르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 안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속칭 안전빵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지도를 따라가는 인생이 안전할 수는 있다. 운이 좋아서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과 일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펼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오롯이 자기 자신의 욕구와 재능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면 분명 방향판을 확인해 봐야 한다. 이성을 넘어선 끌림, 우리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일이나 사람 따위가 책에서 말하는 '내면의 나침반'이다.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려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는 첫 번째 여정은 '둥지'를 떠나는 것이다. 바다거북이 모래 보호막을 뚫고 해변을 가로지르듯 익숙한 보호막을 뚫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둥지를 떠났다면 자신의 깊은 내면의 '끌림'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여정이다. 진정 즐거움을 느끼고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일이나 공간, 사람을 따르는 것이다. 재능을 발견했으면 꾸준히 실력을 쌓고 적절한 사람을 만났다면 그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 즉,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행하는 것'이 세 번째 여정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마음의 이끌림을 따르라는 것이 매순간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패턴, 인간관계 따위를 신중히 검토하거나 명상, 글쓰기, 대화 따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더라도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는 일에는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지도를 따라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서 실수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두려워 한다. 실수가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책에서 제시하는 인생을 건너는 네 번째 여정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실수는 성장과 변화의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래 숨 참는 법을 배우라

 

 

   장수거북의 주된 먹이인 해파리는 수면 근처에 몰려 있어서 대부분의 장수거북은 수심 300미터 이상 잠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잠수 시간의 1퍼센트 정도는 1,000미터도 넘는 가장 깊고 컴컴한 바다를 탐색하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스티브 도나휴는 이를 우리 인생의 여정에 비유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어쩔 수 없이 깊고 컴컴한 바닷속에 깊이 잠수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로 좌절감이 들 때,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 깊이 잠수한 채 오래 숨 참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과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면을 탐색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여정이다. 헥헥

 

 

   수많은 위기와 좌절의 바다를 건넜다면 이제 다시 둥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바로 내면의 집으로 말이다. 이것이 마지막 여정이다.

 

 

  "면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당신의 본질, 즉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진실을 발견하거나 기억하고, 연결하거나 재연결하고, 찾거나 되찾는 순간을 말한다. 당신이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어디에 있든 그곳은 당신에게 꼭 맞는 곳이고 당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179쪽)"

 

 

 

   '운명'에 대해, 내면에 각인된 운명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살아내는 방법에 대해 이토록 명쾌하고 아름답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바다거북과 길고 긴 모험길을 건너는 내내 감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안에서 나침반의 깊은 떨림을 감지한다. 방향을 틀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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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하는 날
최인석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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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들 희망을 싫어할까. 허나 어쩌면 그 역시 그림자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소문은 무성하나 과연 존재한 적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것이다. 존재한다면 그건 여전히 사기다. 난 아직은 그 정도밖에 모르겠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은 좋을 동 말 동 하려나.

 

                                     ㅡ 작가의 말 중에서


 



 

  처음 그 제목을 접했을 때 '연애' 다음의 쉼표가 석연치 않았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최인석의 장편 <연애,하는 날>은 제목만큼 경쾌하지 않다. '연애'라는 단어에 혹해 책장을 넘기게 되면 '헉'할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 정도로 놀랄 만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간음(姦淫)'은 이제 통속극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흔한 소재일 뿐이니까. 그런데 이건 통속극이 아니다. 다양한 겉치장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혹은 사로잡는 통속극의 가슴 저리고 아름다운 연애와는 거리가 있다. 미세한 땀구멍부터 콧구멍 속 코털 하나까지 그려낸 인물화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거북하고 민망하고 혐오스럽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감정들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일까.

 

 

  서론이 길었다. 작가가 '연애' 다음에 쉼표를 두었던 것처럼, 나도 쉽게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사이. 작가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연애의 끝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독자도 그리고 '연애'하는 주인공들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뭐든 다 끝나기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적용하기엔 그들의 욕망이 진리와 너무 어긋나, 있다. 

 

 

   수진은 결혼 십여 년 만에 올리는 결혼식에서 수진은 장우와 재회한다. 온종일 기름집에서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골목에 나와 울던 어린 수진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장우. 그때처럼 이번에도 장우가 누추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꺼내주기를 수진은 욕망한다. 한편 장우는 그들, 상곤과 수진의 모습에서 삶의 공백을 의식한다. 그의 아내 서영과 자신은 그토록 "누추한 잔치"에서 "싸구려 한복"을 입고 더이상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수진과 장우의 연애는 각자의 '결핍감'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전 자신이 잃어버렸던, 혹은 한 번도 가진 적 없었던 것을 서로에게서 탐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연애이다. 매순간 욕망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찾는 것을 상대에게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욕망 자체가 가짜이기 때문이다.

 


    은 쉽게 새로워지지 않았다. (112쪽)


 

   수진과 장우를 중심으로 수진의 남편 상곤과 장우의 아내 서영, 영화조감독 대일과 백화점 판매원 연숙의 연애와 욕망을 좇아가는 이 소설은 무미하고 건조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아내와 부유한 외간 남자가 눈맞아 몸을 섞고, 여자는 요구사항이 늘어나고 남자는 여자에게 질려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의 비례 관계라는 주제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건조한 연애질 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애'가 아니라 연애하는 자들의 그림자 말이다. 상처와 외로움, 뒤틀린 욕망으로 비틀거리는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는 일은 무척 불편하다. 더욱 끔찍한 것은, 자신이 따르는 욕망이 가짜라는 것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함부로 비난하거나 분노할 수도 없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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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지구인 - 인간 심리를 지배하는 행동경제학의 비밀
하워드 댄포드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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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에 아버지를 여읜 마크는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마크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던중, 연락을 받은 유명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마크의 병실로 뛰어들었다. "오, 내 아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대체 이 지휘자는 누구일까?



문제를 처음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른 정답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자, 이 지휘자는 누구일까. 문제의 답은 '마크의 어머니'이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 문제이다. 경제학 서적 서평에서 무슨 황당한 수수께끼인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황당함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문제로 돌아가 보자. 문제의 답을 들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이 간단한 문제를 쉽게 풀 수 없었던 자신의 머리를 몇 대 쥐어박을지도 모른다. 자책할 것 없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이 간단한 문제가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남자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우리의 사고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일이나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는 지식이나 경험을 토대로 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터득한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즉, 사고의 지름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한다. 앞서 제시한 문제가 까다롭게 여겨졌던 것도 바로 이 ‘휴리스틱’의 작용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다양한 ‘휴리스틱’의 영향을 받는다.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음식점은 분명 음식이 맛있을 거라던가, 남성은 단순하고 힘 쓰는 일이 제격이라는 등 쉽고 빠른 판단에 도움을 주는 휴리스틱이 많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논리나 확률에 따른 사고가 생략되기 쉬운 휴리스틱은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불합리한 지구인>은 행동경제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책이다. ‘행동경제학’이 생소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읽는 동안 의아했을 것이다. 경제학과 교향악단 지휘자 문제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전통 경제학에 익숙해 있던 사람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통 경제학의 한계를 보완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했던 전통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오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손해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주식을 팔지 못하고, 꼭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이라도 홈쇼핑 채널만 보면 신들린 듯 주문전화를 해대는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에 접목시킨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경제학자이면서 책의 저자이기도 한 하워드 댄포드는 이 책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별에서 온 우주인 존스를 투입시켜 행동경제학 이론을 차근차근 집어준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우주인 존스가 지구인들의 불합리한 경제활동에 의문을 품으면 불합리한 지구인을 대표해서 저자가 답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휴리스틱’ 이론부터 손실을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는 ‘보유효과’, 불확실성 하에서 사람이 어떻게 예측하고 행동하는지를 설명하는 ‘프로스펙트 이론’ 등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긴장할 것 없다. 흥미로운 실험 문제와 해설을 풀어나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용어가 정리된다. 나는 행동경제학은 물론 경제학에도 문외한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론서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다.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이나 행동을 지배하는 심리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합리한 심리를 자극하고 이용하는 수많은 전략들 속에서 보다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할인쿠폰을 끼워 파는 기업이나 1+1을 외치는 대형마트, ‘초대박 구성’을 강조하는 홈쇼핑 운영자들은 긴장 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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