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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지구인 - 인간 심리를 지배하는 행동경제학의 비밀
하워드 댄포드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에 아버지를 여읜 마크는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마크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던중, 연락을 받은 유명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마크의 병실로 뛰어들었다. "오, 내 아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대체 이 지휘자는 누구일까?
문제를 처음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른 정답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자, 이 지휘자는 누구일까. 문제의 답은 '마크의 어머니'이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 문제이다. 경제학 서적 서평에서 무슨 황당한 수수께끼인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황당함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문제로 돌아가 보자. 문제의 답을 들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이 간단한 문제를 쉽게 풀 수 없었던 자신의 머리를 몇 대 쥐어박을지도 모른다. 자책할 것 없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이 간단한 문제가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남자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우리의 사고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일이나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는 지식이나 경험을 토대로 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터득한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즉, 사고의 지름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한다. 앞서 제시한 문제가 까다롭게 여겨졌던 것도 바로 이 ‘휴리스틱’의 작용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다양한 ‘휴리스틱’의 영향을 받는다.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음식점은 분명 음식이 맛있을 거라던가, 남성은 단순하고 힘 쓰는 일이 제격이라는 등 쉽고 빠른 판단에 도움을 주는 휴리스틱이 많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논리나 확률에 따른 사고가 생략되기 쉬운 휴리스틱은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불합리한 지구인>은 행동경제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책이다. ‘행동경제학’이 생소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읽는 동안 의아했을 것이다. 경제학과 교향악단 지휘자 문제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전통 경제학에 익숙해 있던 사람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통 경제학의 한계를 보완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했던 전통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오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손해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주식을 팔지 못하고, 꼭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이라도 홈쇼핑 채널만 보면 신들린 듯 주문전화를 해대는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에 접목시킨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경제학자이면서 책의 저자이기도 한 하워드 댄포드는 이 책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별에서 온 우주인 존스를 투입시켜 행동경제학 이론을 차근차근 집어준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우주인 존스가 지구인들의 불합리한 경제활동에 의문을 품으면 불합리한 지구인을 대표해서 저자가 답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휴리스틱’ 이론부터 손실을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는 ‘보유효과’, 불확실성 하에서 사람이 어떻게 예측하고 행동하는지를 설명하는 ‘프로스펙트 이론’ 등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긴장할 것 없다. 흥미로운 실험 문제와 해설을 풀어나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용어가 정리된다. 나는 행동경제학은 물론 경제학에도 문외한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론서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다.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이나 행동을 지배하는 심리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합리한 심리를 자극하고 이용하는 수많은 전략들 속에서 보다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할인쿠폰을 끼워 파는 기업이나 1+1을 외치는 대형마트, ‘초대박 구성’을 강조하는 홈쇼핑 운영자들은 긴장 좀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