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하는 날
최인석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난들 희망을 싫어할까. 허나 어쩌면 그 역시 그림자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소문은 무성하나 과연 존재한 적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것이다. 존재한다면 그건 여전히 사기다. 난 아직은 그 정도밖에 모르겠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은 좋을 동 말 동 하려나.

 

                                     ㅡ 작가의 말 중에서


 



 

  처음 그 제목을 접했을 때 '연애' 다음의 쉼표가 석연치 않았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최인석의 장편 <연애,하는 날>은 제목만큼 경쾌하지 않다. '연애'라는 단어에 혹해 책장을 넘기게 되면 '헉'할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 정도로 놀랄 만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간음(姦淫)'은 이제 통속극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흔한 소재일 뿐이니까. 그런데 이건 통속극이 아니다. 다양한 겉치장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혹은 사로잡는 통속극의 가슴 저리고 아름다운 연애와는 거리가 있다. 미세한 땀구멍부터 콧구멍 속 코털 하나까지 그려낸 인물화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거북하고 민망하고 혐오스럽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감정들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일까.

 

 

  서론이 길었다. 작가가 '연애' 다음에 쉼표를 두었던 것처럼, 나도 쉽게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사이. 작가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연애의 끝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독자도 그리고 '연애'하는 주인공들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뭐든 다 끝나기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적용하기엔 그들의 욕망이 진리와 너무 어긋나, 있다. 

 

 

   수진은 결혼 십여 년 만에 올리는 결혼식에서 수진은 장우와 재회한다. 온종일 기름집에서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골목에 나와 울던 어린 수진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장우. 그때처럼 이번에도 장우가 누추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꺼내주기를 수진은 욕망한다. 한편 장우는 그들, 상곤과 수진의 모습에서 삶의 공백을 의식한다. 그의 아내 서영과 자신은 그토록 "누추한 잔치"에서 "싸구려 한복"을 입고 더이상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수진과 장우의 연애는 각자의 '결핍감'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전 자신이 잃어버렸던, 혹은 한 번도 가진 적 없었던 것을 서로에게서 탐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연애이다. 매순간 욕망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찾는 것을 상대에게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욕망 자체가 가짜이기 때문이다.

 


    은 쉽게 새로워지지 않았다. (112쪽)


 

   수진과 장우를 중심으로 수진의 남편 상곤과 장우의 아내 서영, 영화조감독 대일과 백화점 판매원 연숙의 연애와 욕망을 좇아가는 이 소설은 무미하고 건조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아내와 부유한 외간 남자가 눈맞아 몸을 섞고, 여자는 요구사항이 늘어나고 남자는 여자에게 질려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의 비례 관계라는 주제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건조한 연애질 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애'가 아니라 연애하는 자들의 그림자 말이다. 상처와 외로움, 뒤틀린 욕망으로 비틀거리는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는 일은 무척 불편하다. 더욱 끔찍한 것은, 자신이 따르는 욕망이 가짜라는 것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함부로 비난하거나 분노할 수도 없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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