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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 - 사랑을 움직이는 아홉 가지 비밀
율리아 파이라노.산드라 콘라트 지음, 박규호 옮김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파이드라) 세상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 어떤 것일까?
(유모) 아가씨,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랍니다.
* 에우리피데스 : <히폴리토스> 중에서
존 덴버가 부른 'Two different directions'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갈등 상황을 표현한 곡입니다. 노래에 나오는 연인은 모든 면에서 대립적입니다. 한 사람은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집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한 사람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기 좋아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늦잠 자기를 좋아합니다. 한 사람은 창문 여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닫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사랑은 한순간에 미움으로 변합니다. 존 덴버가 두 번째 이혼을 한 직후에 만들어진 이 곡은 애정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 붕괴의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그리스 비극의 대사처럼 사랑은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존 덴버의 곡에서 우리는 그 고통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존 덴버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미움의 근원조차 알지 못해서 고통스러워 합니다. 만약에 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환희로 가득한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에는 새로운 고통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사랑에 빠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랑을 지켜내는 것은 아무나 하기 힘이 듭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래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요. 공부는 복습하면 실력이 향상되는데, 사랑은 왜 그렇지 못할까요. 우리는 왜 매번 같은 실수와 상처를 반복할까요. 에라 모르겠다,하고 머리털만 쥐어뜯고 있을 건가요. 평생 사랑 없이 살 자신 있습니까. 그 옛날 괴테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는 자는 그만 흙에 묻혀도 좋다"고 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사랑 없이 우리는 삶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 없이 자랄 수도 없었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소개할 책은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율리아 파이라노와 산드라 콘라트는 독일의 심리치료사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상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울증이나 그 외 다양한 심리적 좌절감의 근저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상처가 '사랑'이라는 것이죠. 애정 없는 결혼생활이나 연인과의 심각한 갈등, 혹은 오랜 시간 싱글로 지내온 사람의 외로움 같은 것이 심신의 병을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사례와 연구를 통해 사랑의 비밀 코드 아홉 가지를 발견합니다. 애착감, 친밀감, 주도성, 배려심, 현실 감각, 갈등 해결 방식, 외향성, 성적 욕구, 민감성. 이 아홉 가지 비밀 코드는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 고유의 방식을 설명해 줍니다. 이 요소들을 책에서는 '관계 성격'이라 부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있습니다. 가족관계, 친구관계, 동료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다양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우리는 대부분 일관적인 감정과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흔히 '성격'이라 하죠. 책에서는 이 '사회적인 성격'을 '관계 성격'과 구분 짓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성격과 관계 성격은 확연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친구와 싸우고 결별했다고 해서 한강 다리에 오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동생과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불안해 할 사람도 없고요. 확실히 사랑은 보편적 관계를 넘어서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마력이죠.
사람들이 누군가와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명에 의해 정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내면 깊숙이 뿌리박힌 고유한 성격의 특정한 단면들에 의해 좌우됩니다. (책에서 옮김)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우리는 희망적인 기대에 부풉니다. 세상 모두를 얻은 것 같은 환희에 젖기도 하고요. 그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걸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존 덴버의 연인들처럼 서로 등짝을 내보인 채 제 방식을 고집하게 됩니다. 관계 성격은 이러한 갈등을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있는데요. 관계 성격의 핵심은 우리의 과거 경험입니다. 부모 혹은 조부모의 사랑 방식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방식도 대물림이 되는 것이죠. 어린 시절 부모의 존중과 신뢰를 지켜보며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애정 관계 안에서도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쉽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관심이나 무관심, 소통의 태도나 정도,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 같은 것이 우리의 관계 성격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 성격의 차이가 갈등을 낳게 되는 것이죠.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관계 성격의 형성 과정과 각 관계 성격의 요소 하나 하나를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 '등장인물 소개'가 있는데요. 관계 성격의 다양한 유형에 부합하는 커플들의 신상과 사랑의 태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제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인물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본문의 내용과 보조를 맞춥니다. 딱딱하고 이론적인 심리학이 어렵게 생각되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생각해 보기'라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구체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동안 자신의 관계 성격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사랑을 반성할 수도 있고요. 부록으로 실린 '관계 성격 테스트'는 매우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어서 놀라웠습니다. 테스트를 마치려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요.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는 분이라면 함께 하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 가슴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아주 마음씨가 좋고 상냥해서 기꺼이 남들과 나누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한 마리는 심보가 고약하고 탐욕스럽단다. 이 녀석은 남을 깨물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지. 이 두 마리의 늑대는 틈만 나면 서로 싸우면서 나를 차지하려고 한단다."
"싸움에서는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란다."
한 인디언 노인과 손자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는 함의하는 바가 큽니다. 사랑은 결국 자아 찾기의 일부입니다. 가슴속에 살고 있는 두 마리의 늑대를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속에 살고 있는 늑대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책에서 꾸준히 강조하는 것이 '대화'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관계를 돌아보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사랑을 잃은 존 덴버가 노래합니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너무 늦어버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