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설명할 수 없는 - 사랑을 움직이는 아홉 가지 비밀
율리아 파이라노.산드라 콘라트 지음, 박규호 옮김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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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라) 세상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 어떤 것일까?

(유모) 아가씨,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랍니다.

 

               * 에우리피데스 : <히폴리토스> 중에서

 

 

 

 

 

  존 덴버가 부른 'Two different directions'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갈등 상황을 표현한 곡입니다. 노래에 나오는 연인은 모든 면에서 대립적입니다. 한 사람은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집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한 사람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기 좋아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늦잠 자기를 좋아합니다. 한 사람은 창문 여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닫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사랑은 한순간에 미움으로 변합니다. 존 덴버가 두 번째 이혼을 한 직후에 만들어진 이 곡은 애정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 붕괴의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그리스 비극의 대사처럼 사랑은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존 덴버의 곡에서 우리는 그 고통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존 덴버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미움의 근원조차 알지 못해서 고통스러워 합니다. 만약에 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환희로 가득한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에는 새로운 고통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사랑에 빠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랑을 지켜내는 것은 아무나 하기 힘이 듭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래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요. 공부는 복습하면 실력이 향상되는데, 사랑은 왜 그렇지 못할까요. 우리는 왜 매번 같은 실수와 상처를 반복할까요. 에라 모르겠다,하고 머리털만 쥐어뜯고 있을 건가요. 평생 사랑 없이 살 자신 있습니까. 그 옛날 괴테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는 자는 그만 흙에 묻혀도 좋다"고 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사랑 없이 우리는 삶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 없이 자랄 수도 없었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소개할 책은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율리아 파이라노와 산드라 콘라트는 독일의 심리치료사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상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울증이나 그 외 다양한 심리적 좌절감의 근저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상처가 '사랑'이라는 것이죠. 애정 없는 결혼생활이나 연인과의 심각한 갈등, 혹은 오랜 시간 싱글로 지내온 사람의 외로움 같은 것이 심신의 병을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사례와 연구를 통해 사랑의 비밀 코드 아홉 가지를 발견합니다. 애착감, 친밀감, 주도성, 배려심, 현실 감각, 갈등 해결 방식, 외향성, 성적 욕구, 민감성. 이 아홉 가지 비밀 코드는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 고유의 방식을 설명해 줍니다. 이 요소들을 책에서는 '관계 성격'이라 부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있습니다. 가족관계, 친구관계, 동료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다양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우리는 대부분 일관적인 감정과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흔히 '성격'이라 하죠. 책에서는 이 '사회적인 성격'을 '관계 성격'과 구분 짓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성격과 관계 성격은 확연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친구와 싸우고 결별했다고 해서 한강 다리에 오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동생과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불안해 할 사람도 없고요. 확실히 사랑은 보편적 관계를 넘어서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마력이죠.

 

 

   사람들이 누군가와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명에 의해 정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내면 깊숙이 뿌리박힌 고유한 성격의 특정한 단면들에 의해 좌우됩니다. (책에서 옮김)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우리는 희망적인 기대에 부풉니다. 세상 모두를 얻은 것 같은 환희에 젖기도 하고요. 그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걸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존 덴버의 연인들처럼 서로 등짝을 내보인 채 제 방식을 고집하게 됩니다. 관계 성격은 이러한 갈등을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있는데요. 관계 성격의 핵심은 우리의 과거 경험입니다. 부모 혹은 조부모의 사랑 방식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방식도 대물림이 되는 것이죠. 어린 시절 부모의 존중과 신뢰를 지켜보며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애정 관계 안에서도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쉽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관심이나 무관심, 소통의 태도나 정도,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 같은 것이 우리의 관계 성격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 성격의 차이가 갈등을 낳게 되는 것이죠.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관계 성격의 형성 과정과 각 관계 성격의 요소 하나 하나를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 '등장인물 소개'가 있는데요. 관계 성격의 다양한 유형에 부합하는 커플들의 신상과 사랑의 태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제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인물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본문의 내용과 보조를 맞춥니다. 딱딱하고 이론적인 심리학이 어렵게 생각되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생각해 보기'라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구체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동안 자신의 관계 성격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사랑을 반성할 수도 있고요. 부록으로 실린 '관계 성격 테스트'는 매우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어서 놀라웠습니다. 테스트를 마치려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요.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는 분이라면 함께 하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 가슴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아주 마음씨가 좋고 상냥해서 기꺼이 남들과 나누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한 마리는 심보가 고약하고 탐욕스럽단다. 이 녀석은 남을 깨물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지. 이 두 마리의 늑대는 틈만 나면 서로 싸우면서 나를 차지하려고 한단다."

   "싸움에서는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란다."

 

 

   한 인디언 노인과 손자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는 함의하는 바가 큽니다. 사랑은 결국 자아 찾기의 일부입니다. 가슴속에 살고 있는 두 마리의 늑대를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속에 살고 있는 늑대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책에서 꾸준히 강조하는 것이 '대화'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관계를 돌아보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사랑을 잃은 존 덴버가 노래합니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너무 늦어버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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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쉘 실버스타인 지음 / 살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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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무줄놀이를 기억하는 저는 아주 먼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얼마 전에 조카들이 놀러왔습니다. 이모 이모 하면서 제 방에 들어온 아이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컴퓨터였습니다. 네 살 난 어린 조카는 제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인터넷 접속을 하더니 네이버 주니어에 로그인을 하고 게임을 하더군요. 겨우 걸음마를 뗀 이 아이의 모습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어른의 문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동안 황량한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아이들이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입니다. 어른의 말과 생각, 어른의 사랑, 어른의 노랫말을 흉내내는 아이들과 어른만 있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이 세계는 움직임이 없고, 소리가 없고, 냄새도 없고, 달콤함도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은가요.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저는 참 이상합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세계, 이 정지된 세계에서 하품을 하고 두리번거리다 제가 만난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요즘 아이들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 번 읽으면 평생 가슴에 새겨지는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단한 일이죠. 지금 소개하는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지은이 셸 실버스타인의 미발표작을 모은 마지막 책입니다. 셸 실버스타인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외에도 많은 시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주로 아이의 관점에서 씌어진 이야기들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사랑 받고 있습니다. 아이의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가 떠오르는군요. 아이의 마음, 아이의 세계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니까요.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역시 아이의 마음으로 씌어진 책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말하고 들은 모든 말은 놔두고" 망설일 것도 없이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를 베어먹기만 하면 됩니다.

 

 

 

           손들의 나라

 

모래땅에서 손가락들이 자라는

손들의 나라로 갈래?

그동안 말하고 들은 모든 말은 놔두고

손짓을 따라갈 수 있겠니?

 

 

   아이답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순수하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순수한 것처럼 잔혹한 것도 없습니다. 책에는 바로 그 순수함을 담고 있습니다. 깨고 부수고 짓밟고 더럽히고 소리지르고 터뜨리고 먹고 먹히고 거짓말하는 아이들의 세계가 생동감 있게 그려집니다. 이상하고 불길하지만 무섭지는 않은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말하는 식인 화초와 춤추는 신발들, 다양한 표정의 얼굴을 파는 프레드 머리가게가 있는 세계. 머리통이 다 닳도록 지껄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울고 발이 떨어져 나갈 듯이 걷고 심장이 터질 듯이 노래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어른의 일 같은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어른 흉내도 내지 마세요. 그러면 그 꿈 같은 세계에서 튕겨져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구름 타고 걷기

 

구름을 타고 걸을 때는 조심해.

구름을 타고 걸을 때는 주의해.

저 아래 뭐가 있는지 보려고

발밑을 내려다보면 절대로 안 돼.

 

 

 

   셸 실버스타인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었습니다. 이 책에도 그의 그림이 등장합니다. 매우 장난스럽고 특히 표정이 살아 있습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책에서 그림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어떤 그림은 글 이상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웃음을 두 배로 부풀려 주기도 하고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트램펄린

 

 

트램펄린에서 퉁퉁 튀어서

내 머리가 닿는 데까지

높이높이 올라가면

여자애가 내려가는 게 보였지

 

머리에 데이지 꽃을 꽂고

비단 치마를 입었지.

하지만 그 여자애가 높이 올라가면

이번엔 내가 내려갔지.

 

"안녕, 좋은 날이야." 내가 인사하려 하면

여자애는 웃으며 빙그르르 돌았지.

나는 내려가고 있는데

"너도 나랑 같이 올라 와." 소리쳤지.

 

여태껏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

슬프게 한 아이가 올라가는 동안

한 아이는 내려가는 걸

알게 되었거든.

 

 

 

   표제작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핫도그를 주문하면서 "모두 넣어 주세요" 했는데, 앵무새와 밧줄 구멍이 뚫려 있는 돛대, 손목시계, 멍키 스패너, 금붕어, 깃발, 바이올린, 그네, 쥐 가면 같은 것들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이 담긴 핫도그가 나온 것입니다. 이런 걸 어떻게 먹겠느냐고 하실 건가요.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를 베어먹을 용기가 없다면 이 책에 펼쳐진 세계에서 즐겁게 뛰어놀기는 어려울 거예요. 돛대는 돛대가 아니고 손목시계는 손목시계가 아니며 금붕어도 우리가 알던 금붕어는 아니니까요.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에는 식인 화초가 자라고 있고요. 아이들을 자꾸 집어삼키기 전에, 얼른 핫도그를 베어물어요. 그리고 이 따분한 세계를 구해낼 궁리를 해봐요.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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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 - 1% vs 99% 누가 양극화를 만드는가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지음 / 문예춘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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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2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 방화 사건입니다. 그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방화범은 평범한 70대 노인이었습니다. 특별한 전과도 정신병력도 없는 그를 한순간 방화범으로 만들었던 것은 불합리한 사회 제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2006년 당시 노인 채 씨는 주거 소유지 중 일부가 강제 수용되는 과정에서 시공사와의 마찰을 겪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대화와 협의를 시도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담한 반응 뿐이었습니다. 방화 2개월 전 작성한 편지에서 그는 정부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관련 부서에서 합리적인 태도로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숭례문의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숭례문 복원 작업이 지난 8월부터 중단 상태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인부들과 시공사와의 임금 마찰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뭐,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일은 놀랄 만한 일도 아니잖아요? 하루 이틀 벌어지는 일이어야 말이죠.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대표적인 저신뢰 국가입니다. 특히 사회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합니다. 학연이나 지연에 목매는 끼리끼리 문화 역시 이 불신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압축적 경제성장으로 생활 수준의 향상을 누리고는 있지만 사회,정치적인 갈등과 불만, 상대적 박탈감과 빈부격차 등 양극화 현상에서 오는 불신과 분노는 우리나라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요. 

  

   숭례문의 비극은 우리 나라가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갈등과 마찰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어디서나 갈등과 마찰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갈등과 마찰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책입니다. 우리 나라는 갈등과 마찰만 있고 현명한 대응책은 없는 실정입니다. 여기서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회와 정부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깊습니다. 사회적 갈등 지수는 갈수록 높아집니다.

 

   사회적 자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서로 주장이 다르다. 미국의 사회학자 콜만(Coleman)은 사회적 자본을 주로 신뢰관계의 형성에 따른 거래비용의 감소와 효용의 극대화로 정의한다. 반면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은 사회적 자본을 참여자들이 협력하도록 함으로써 공유한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성취하게 만드는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조직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사회구성원과 집단 간 상호관계의 질과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회적 자본을 규정한다. 즉 개인의 특성이나 능력뿐 아니라 개인들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사회적 자본이 매우 중요하며 이런 관계의 특징이 장기적으로 한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에서 옮김)

 

   이 책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요소로 신뢰와 소통(대화, 공감, 사과), 협력을 꼽습니다. 각 주제별로 이루어지는 실험 결과들은 매우 놀랍고 희망적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경제학의 대전제를 깨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실험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보다 공정성에 움직입니다. 상대의 태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배려와 친절, 또는 복수와 처벌을 가합니다. 독일의 진화인류학 연구소는 사회화되기 이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행동 연구를 통해 인간의 도덕성이 본능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은 공정성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도덕적이고 공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멀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견해로 적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성장에만 열을 올리고 달려온 화려한 대한민국의 이면에는 불신과 분노, 갈등과 상처가 얼룩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3의 자본입니다. 제대로 소통하고 협력하여 불신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통해 경제지수와 행복지수의 평형을 이루는 일이 시급합니다.

 

   물적 자본, 인적 자본에 더해 우리에게 필요한 제 3의 자본으로 '사회적 자본'을 말하는 이 책은 KBS에서 제작된 소셜디자인프로젝트 <사회적 자본> 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방송은 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보면 제작팀의 노고와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뢰, 소통, 협력. 크게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사회적 자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신경경제학에 입각한 다양한 실험 과정과 결과 자료, 사회적 자본을 잘 활용한 외국의 사례 같은 생생한 정보는 이론적이고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책 읽기를 긍정적으로 자극합니다.

 

   사회적 자본.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결여된 대한민국의 부(富)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자본의 절실함을 일깨우는 이 책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봄날을 앞당기는 촉진제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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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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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기 있는 것이고, 글을 쓰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언어와 민족과 문화 혹은 국가를 바꾸는 작가들이 없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항상 여기 있었고, 여기서 넋이 나간 채 풍경을 쳐다보았고, 바다 위를 지나가는 배들의 수를 세었어요. 나는 모든 것을 이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다가 문득문득 나는 행복한 존재라고, 더는 필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ㅡ 오르한 파묵 인터뷰 중에서

 

 

 

 

 

   16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이 특별한 인터뷰집은 작은 소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두 기자(문학전문기자 사비 아옌Xavi Ayen과 사진기자 킴 만레사kim Manresa)는 개인 사진집에 어울리는 단 한 줄의 헌사를 구하기 위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가장 일상적이면서 예외적인 인터뷰를 원했습니다. 일상적인 작가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 자체가 기존의 이미지나 관념을 벗어난 가장 예외적인 시도였던 셈입니다. 작가가 사는 도시의 길거리, 그의 거실, 서재, 주방, 작품의 배경지에서 자유롭게 진행되는 인터뷰는 짧게는 여섯 시간, 길게는 여덟 날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공항에서 한 시간 이상의 조사를 받기도 하고, 작가가 보낸 경호원의 안내를 받기도 하는 등 인터뷰 과정도 녹록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경이와 감격의 시간들을 이 책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로또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액의 상금 때문입니다. 일확천금이면 삶이 완전히 뒤바뀔까요.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삶은 수상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자신이 정한 규칙을 엄수하는 작가들의 삶은 물질적인 풍요나 그밖의 어떤 것도 뒤흔들 수 없을 만큼 확고합니다. 일상의 세세한 것부터 문학관이나 세계관까지가 그렇습니다. 각 작가들의 형편이나 삶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극명하게 대립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30년 전 프랑스로 망명해 지금은 완전히 정착한 중국작가 가오싱젠, 극우민족주의자들의 공격과 협박에도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지 않는 오르한 파묵,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운명>의 작가 케르테스, 젊은 시절 나치 친위대 소속이었던 전력 때문에 끔찍한 비난을 받고 있는 권터 그라스 등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확신입니다. 지금까지 글을 쓰게 한 힘도 다름 아닌 그것입니다. "어떤 '이즘'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16인의 반란자들을 대변하는 가오싱젠의 말이 감명적입니다.

 

   노벨문학상. 일반인에게는 넘지 못할 산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품을 읽을 때에도 자유롭지 못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의미를 찾느라 순수한 감상이 배제된 책읽기는 길고 지난한 악몽으로 전락합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긴장이나 부담감 등 부자유한 감정, 그러니까 일종의 거리감 같은 것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일상과 솔직한 내면의 풍경을 포착한 이 인터뷰집은 그 거리감을 좁히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인터뷰는 작품 이야기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작가의 가족사나 개인적 경험, 아픈 치부, 사회문제나 정치적인 입장까지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각각의 인터뷰는 10페이지 내외로 많지 않은 분량인데요. 편집이 매우 뛰어납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그러나 인상 깊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능력은 저자들의 기자 경력이 큰 몫을 한 것 같습니다. 10페이지 정도면 적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겠는데요. 인터뷰 내용 중간 중간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검은 배경 위에 하나의 차분한 빛처럼, 또 하나의 배경처럼. 사진들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내용을 읽는 것보다 사진을 바라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킴 만레사의 사진들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작가들의 손을 찍은 사진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담배를 쥔 손, 깍지 낀 손, 입에 물린 손, 생각하는 손, 머뭇거리는 손, 침묵하는 손, 손, 손들.

 

   결국은 모두 작품 이야기겠지요. 작가에게는 그의 과거든 일상이든 미래든 모두 작품으로 귀결되니까요. 그러니까 작가의 과거나 일상이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을 읽는 일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혹적인 방식으로 독자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습니다. *(갈피끈이 짧아서 제 구실을 못한다는 것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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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내 마음의 여행 시리즈 1
이유미 글, 송기엽 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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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야생화들이 있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이토록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았다는 것에 회한의 감정이 밀려들 정도입니다. 그동안 나는 무엇에 마음을 팔고 있었던가 돌아보게 됩니다.

   이 책은 80여 종의 야생화를 싣고 있습니다. 새뜻한 색감을 자랑하는 야생화 사진이 우선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야생화 중에는 더러 눈에 익은 것들도 등장하네요. 흔히 계란꽃이라 불리는 개망초나 여름 날 우리집 화단 가득 피어나는 참나리, 어릴 적 꽃반지 만들던 토끼풀 같은 것들은 아련한 향수에 젖어들기 충분합니다. 이번 여름, 나와 함께 밤을 보낸 달맞이꽃은 개인적으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야생화들에서 발견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꽃잎의 크기입니다. 많은 야생화들이 자잘한 꽃잎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작고 여린 야생화의 모습은 우리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느리게 걷고 몸을 낮추지 않으면 가치 있는 아름다움을 간과하기 쉽다는 평범한 진실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작고 수줍은 야생화들을 오래 들여다 보고 있자니 또 다른 특징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색감입니다. 색이 은근한 것이나 강렬한 것이나 붉거나 노랗거나 하얗거나 마음을 끄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 모양이나 색은 쓸쓸하고 지난했던 야생화의 생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쉽게 눈을 돌리기 어렵습니다.

   사진작가 송기엽 씨와 식물학자 이유미 씨가 엮은 이 한 권의 책에는 야생화의 생태적 특성과 각 꽃에 담긴 사연이나 이름의 유래를 담고 있습니다. 식물의 정보를 딱딱하게 나열한 일반적인 식물도감에 비해 이 책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적당한 감성이 묻어나는 이유미 씨의 문장에서 야생화에 대한 세심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목이 왜 그냥 '야생화 여행'이 아니고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인지 알 것 같습니다.

   여름이면 가을을 기다리고 겨울이면 봄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겨울에는 나무도 꽃도 다 잠자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추운 겨울에도 줄기와 꽃을 피워 올리는 야생화가 있다는 사실에,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야생화들의 생태에서는 매 순간 순간이 귀하고 중요합니다.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 귀하고 중요한 가치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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