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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 - 1% vs 99% 누가 양극화를 만드는가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지음 / 문예춘추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2008년 2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 방화 사건입니다. 그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방화범은 평범한 70대 노인이었습니다. 특별한 전과도 정신병력도 없는 그를 한순간 방화범으로 만들었던 것은 불합리한 사회 제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2006년 당시 노인 채 씨는 주거 소유지 중 일부가 강제 수용되는 과정에서 시공사와의 마찰을 겪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대화와 협의를 시도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담한 반응 뿐이었습니다. 방화 2개월 전 작성한 편지에서 그는 정부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관련 부서에서 합리적인 태도로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숭례문의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숭례문 복원 작업이 지난 8월부터 중단 상태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인부들과 시공사와의 임금 마찰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뭐,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일은 놀랄 만한 일도 아니잖아요? 하루 이틀 벌어지는 일이어야 말이죠.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대표적인 저신뢰 국가입니다. 특히 사회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합니다. 학연이나 지연에 목매는 끼리끼리 문화 역시 이 불신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압축적 경제성장으로 생활 수준의 향상을 누리고는 있지만 사회,정치적인 갈등과 불만, 상대적 박탈감과 빈부격차 등 양극화 현상에서 오는 불신과 분노는 우리나라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요.
숭례문의 비극은 우리 나라가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갈등과 마찰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어디서나 갈등과 마찰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갈등과 마찰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책입니다. 우리 나라는 갈등과 마찰만 있고 현명한 대응책은 없는 실정입니다. 여기서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회와 정부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깊습니다. 사회적 갈등 지수는 갈수록 높아집니다.
사회적 자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서로 주장이 다르다. 미국의 사회학자 콜만(Coleman)은 사회적 자본을 주로 신뢰관계의 형성에 따른 거래비용의 감소와 효용의 극대화로 정의한다. 반면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은 사회적 자본을 참여자들이 협력하도록 함으로써 공유한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성취하게 만드는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조직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사회구성원과 집단 간 상호관계의 질과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회적 자본을 규정한다. 즉 개인의 특성이나 능력뿐 아니라 개인들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사회적 자본이 매우 중요하며 이런 관계의 특징이 장기적으로 한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에서 옮김)
이 책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요소로 신뢰와 소통(대화, 공감, 사과), 협력을 꼽습니다. 각 주제별로 이루어지는 실험 결과들은 매우 놀랍고 희망적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경제학의 대전제를 깨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실험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보다 공정성에 움직입니다. 상대의 태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배려와 친절, 또는 복수와 처벌을 가합니다. 독일의 진화인류학 연구소는 사회화되기 이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행동 연구를 통해 인간의 도덕성이 본능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은 공정성을 추구하는 속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도덕적이고 공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멀기도 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견해로 적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성장에만 열을 올리고 달려온 화려한 대한민국의 이면에는 불신과 분노, 갈등과 상처가 얼룩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3의 자본입니다. 제대로 소통하고 협력하여 불신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통해 경제지수와 행복지수의 평형을 이루는 일이 시급합니다.
물적 자본, 인적 자본에 더해 우리에게 필요한 제 3의 자본으로 '사회적 자본'을 말하는 이 책은 KBS에서 제작된 소셜디자인프로젝트 <사회적 자본> 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방송은 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보면 제작팀의 노고와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뢰, 소통, 협력. 크게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사회적 자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신경경제학에 입각한 다양한 실험 과정과 결과 자료, 사회적 자본을 잘 활용한 외국의 사례 같은 생생한 정보는 이론적이고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책 읽기를 긍정적으로 자극합니다.
사회적 자본.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결여된 대한민국의 부(富)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자본의 절실함을 일깨우는 이 책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봄날을 앞당기는 촉진제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